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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 님의 서재입니다.

HONOR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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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
작품등록일 :
2022.05.21 14:36
최근연재일 :
2022.06.18 20:55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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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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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08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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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9화

HONOR CLUB




DUMMY

# 멀티 페르소나


지영은 오전 내내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박부장의 말을 듣고 아무리 추리를 해 보아도 회장이 어떻게 자신을 알고 있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그룹의 총수가 자신과 같은 말단 사원을 직접 지명해 호출한 것일까? 혹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지명한 것이 아닐까? 그걸 박부장이 잘못 알고 나에게 얘기해 준 걸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박부장의 표정이 너무나 확신에 차 있었다. 박부장은 분명 호란그룹의 구회장이 말단직원 최지영을 호출했다고 얘기했다. 그것은 너무나 분명해 보여서 의심할 필요도 없었다. 시간은 꾸준히 오후 3시를 향해 가고 있었고, 최지영의 심장은 빠르게 요동치고 있었다.


호란빌딩 48층. 회장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지영이 내렸다. 김비서는 엘리베이터가 올라올 때부터 계속 그쪽을 보고 있었다. 김비서는 자신의 노트북을 확인하더니 지영에게 다가왔다.


-최지영씨?


-아, 네. 저 맞아요.


-이쪽으로 오시죠. 회장님이 기다리십니다.


김비서는 지영을 회장실로 안내했다. 지영은 그제서야 회장이 자신을 부른 것이 맞다고 확신했다. 김비서는 직접 회장실의 문을 열어 주었다. 회장실에 들어간 지영은 넓은 창가에 앉아 있던 구회장과 눈이 마주쳤다. 구회장은 지영을 알아보고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서 오세요.


구회장은 웃으며 지영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지영은 회장이 왜 자신을 보고 웃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지금 이 상황에 자신이 들어와 있는 것이 너무 황홀했다.


-이쪽으로, 이리 와서 앉으세요.


구회장은 지영을 방 한가운데에 있는 쇼파로 오라고 했다. 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심스럽게 걸어가 쇼파에 앉았다. 쇼파에 앉자 창을 넘어 온 따스한 햇살을 온 몸으로 흠뻑 받을 수 있었다. 회장실의 바깥으로 향하는 모든 창이 크고 넓어서 오후 햇살이 거리낌 없이 침공하듯 방 안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당황스럽죠?


구회장은 웃으며 지영에게 물었다. 구회장의 갑작스러운 말에 놀란 지영이 구회장을 바라 보았다.


-음, 우리 인사부터 해요. 제 이름은 구진호입니다. 하하하.


구회장은 자기소개를 한 것이 쑥스러운지 크게 웃어버렸다. 지영은 지금 이 상황이 무척 혼란스러웠고 난처하기까지 했다. 까마득한 자리에 앉아 있는 그룹의 총수가 난데없이 말단직원인 자신을 회장실로 호출하더니 지금은 또 갑자기 지영에게 직접 자신의 소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지영은 이 모든 것이 황당하고 어리둥절 했지만, 그리 싫은 감정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 저는, 최지영입니다.


지영도 구회장을 따라 자기소개를 했다. 구회장은 지영의 자기소개에 더욱 크게 웃었다.


-하하하. 알죠, 최지영씨.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지영은 구회장이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을 알고 있었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그렇다면 지금 이 만남이 우연이 아니라는 말인가?


-저를, 어떻게 회장님 같은 분이 저를 알고 계신가요? 저는 이제 겨우 입사 3년차 햇병아리 인데요?


지영은 구회장이 어떻게 자신을 알고 있는 지 궁금했다.


-제 방에 오려면, 아, 여기 이 회장실 말이에요. 제 방에 오려면 현관 로비를 지나 뒤로 돌아와야 하거든요. 거기 뒤로 돌아와야 미안하게도 저만 사용하는 엘리베이터가 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로비를 지나쳐야 하는데, 평소에는 제가 출근이 늦어서 다른 직원들과 마주칠 일이 드물거든요.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일찍 눈이 떠진 거에요. 왜 그런 날 있잖아요. 전날 새벽까지 과음했는데 아침 6시에 그냥 눈이 떠져 버리는, 그런 날이요. 아무 이유 없이요. 하하하.


구회장의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 밝아 보였다. 그는 잠시도 말을 쉬지 않고 계속해서 떠들고 있었다.


-딱 그날이 그런 날이었어요. 마침 비도 내리고 있었죠. 차에서 내려 로비를 지나치려는데, 지영씨가 직원 엘리베이터 앞에 그냥 서있었던 거에요. 코트에 묻은 빗방울들을 손으로 툭툭 털어내면서요.


구회장의 눈이 소년의 눈처럼 반짝거리더니 최지영을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구회장은 최지영에게 향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제가 그 자리에서 얼마나 오래 서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요. 지영씨를 보고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었거든요.


구회장은 지금 최지영에게 고백을 하고 있었다. 최지영은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머릿속이 하얗게 백지가 되어 버렸다. 지금 호란그룹의 총수가 말단직원 최지영에게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추적


-어떤 거 같애?


최박사는 #HC.N013이 찍힌 사진을 호정에게 보여 주었다. 사건 현장에서 정인이 촬영한 사진이었다. 호정은 사진 속의 글자를 뚫어져라 쳐다 봤지만 쇠로 만든 주물로 지진 것이라 짐작만 할 뿐, 당연하게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글자네요, 알 수 없는. 여기 실물이 있는데 왜 사진으로 봐요? 직접 볼께요.


호정은 이미 며칠을 최박사에게 시달리는 중이었다. 범죄 심리를 전공한 호정은 이미 십수년 전부터 감식반에 들어와 크고 작은 여러 사건들의 실마리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 왔다. 오랫동안 미제 사건으로 남아 일선 형사들을 괴롭히던 진동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을 밝혀낸 것도 호정의 공이 컸다. 당시 범인의 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해 다음 피해자를 지목, 범인을 범행 직전 현장에서 검거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 호정의 날카로운 심리 분석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날고 기는 감식반의 정호정이라고 해도 최박사가 가지고 온 사진 속 글자는 도무지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남자야 여자야?


최박사는 방화대교 시신에 대해 호정에게 묻고 있었다. 방화대교에서 발견된 시신은 두 사람 앞에 밀랍 인형처럼 무표정하게 누워 있었다.


-치아 구조로 봐선 중년 남자에요. 척추와 고관절이 휘어져 있는 형태로 봐서 배도 좀 나왔던 것 같구요. 다이어트에는 관심이 없었을거에요. 다들 그렇잖아요.


호정은 무덤덤하게 최박사를 아래 위로 훑었다. 호정은 자신 앞에 누워 있는 끔찍한 시신을 마주 보고도 조금의 심적 동요도 하지 않았다. 이미 감식반에서도 베테랑 축에 속하는 호정은 그동안 온갖 끔찍한 시신을 검시하면서 동정이나 연민이란, 존재하지 않는 그저 단순한 글자일 뿐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우치고 있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가해를 목격한 사람은 더 이상 사랑이나 동정, 연민과 같은 관념에 빠질 수 없었다.


-목부터 그은 게 맞는 것 같아요. 목부터 시작해서 얼굴까지 벗겨내다가 여기, 여기서부터는 그냥 뜯어버렸네요. 시간이 없었나 봐요.


호정은 시신을 옆으로 굴려 엎드리게 했다. 엎어진 시신 왼쪽 엉덩이에 #HC.N013이라는 글자가 선명히 보였다. 호정은 가해자가 굳이 피해자의 몸에 이런 글자를 새겨야 할 만한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생각해 보았다. 낙인은 대개 소유권을 증명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 왔다. 거래를 완료한 명세서나 그 내용을 대신할 증명서가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물건의 한쪽 귀퉁이에 자신만의 식별 기호를 새기곤 했다. 어떤 것은 세모로, 또 다른 것은 동그라미나 네모등을 그려 넣었다. 어떤 도형이던 상관 없었다. 혹여 물건을 도난당했을 경우 쉽게 그것이 자신의 물건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있으면 그걸로 그만이었다. 낙인은 물건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노예가 경제 활동의 큰 몫을 차지하던 과거에는 주인이 직접 불로 달군 낙인을 노예의 이마나 가슴팍에 지지곤 했다. 노예도 다른 물건들처럼 소유자가 있는 물건이었던 것이다. 노예들 역시 다른 물건들과 마찬가지로 잃어버리거나 혹 도망친 것을 다시 잡아 왔을 때, 그것이 누구의 노예인지, 또 어느 집에서 도망친 노예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지나가 버린 먼 과거의 일이었다. 지금 같은 과학의 시대에 누가 사람에게 이런 끔찍한 낙인을 찍는단 말인가?


-낙인이라는 거 말이야?


한쪽에서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던 최박사가 입을 열었다.


-낙인이라는거 말이야, 꼭 소유권을 표시하는 표식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


최박사의 말에 호정은 고개를 들어 최박사를 쳐다보았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게 아니라면 무슨 다른 의도라도 있다는 말씀이세요?


최박사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과거에는, 물론 소유권을 표시하려고 낙인을 찍기도 했지만 무언가 죄를 지은 자에게 불명예에 대한 처벌로 사용되기도 했거든.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찍어 죄를 지은 자에게 평생 모욕을 주려고 말이야.


호정은 최박사의 추리가 그럴 듯 하다고 생각했다.


-그럼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이런 식으로 낙인을 찍어 모욕을 주려고 했다는 거군요? 이미 살갗을 다 벗겨내고 참혹하게 살해한 후에도 말이죠!


호정은 몸이 쭈뼛거렸다. 대체 이 사람은 어떤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런 끔찍한 최후를 맞이한 걸까? 그리고 피해자를 이렇게까지 잔혹하게 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다음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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