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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 님의 서재입니다.

HONOR CLUB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공포·미스테리

박길
작품등록일 :
2022.05.21 14:36
최근연재일 :
2022.06.18 20:55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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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글자수 :
125,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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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0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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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HONOR CLUB




DUMMY

# 미끼


추적추적 장마비가 내리고 있었다.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겼고 사람들로 넘쳐났던 거리엔 사람이 머물던 흔적만 남아 공허하고 쓸쓸하게 빈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서울병원 응급실 앞으로 빗길을 가로질러 승합차 한 대가 무섭게 달려들었다. 병원 응급실 앞에서 끼이익 급정거한 승합차의 문이 열리더니 무언지 모를 묵직한 물체가 차에서 떨어져 땅 위를 두어 번 굴렀다. 승합차는 몇 번 크게 경적을 울리고, 비가 내리는 도로 끝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경적 소리에 놀란 건지 응급실 문이 열렸고 가운을 입은 의료원이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왔다. 이리저리 둘러보던 의료원의 시야에 커다란 포대자루가 눈에 들어왔다. 포대자루 밖으로 검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 모습을 목격한 의료원은 다급하게 응급실 안으로 들어가 건장한 사내 두 명을 데리고 나왔다. 두 명의 사내는 포대자루를 열고 그 안에 웅크리고 있던 신원미상의 남자를 응급실 안으로 옮겼다. 지금은 장마철, 뜨거운 비는 계속해서 땅바닥을 두드리고 있었다.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이었지만 동우는 근심에 쌓여 있었다. 러시아에서 건너오는 물건들이 묵호에서 누군가에 의해 슈킹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식의 말에 의하면 묵호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양아치라고 한다. 족보도 없는 양아치인데 힘이 좋고 몸이 날래서 다루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 바닥에서 러시아 배가 동우파의 돈 줄 이라는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도 그 양아치 새끼가 겁도 없이 러시아 배를 슈킹한 것이라면 동우파와 관련된 배인지 모르고 그런 행동을 했거나, 아니면 동우파에게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것이 틀림없었다. 동우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강기호와 큰 그림을 그리고 제주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새까만 양아치 새끼 하나가 이렇게 골머리를 섞힐 줄이야! 눈을 깜박거리던 동우는 한참을 골똘히 생각했다.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던 동우가 어떤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응급실 문이 열리고 동우와 진식이 뛰어 들어왔다. 이곳저곳 침상을 살피던 두 사람은 한쪽 구석에 있는 헝크러진 침상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몸을 옮겼다. 침상에는 온몸을 붕대로 동여맨 사람이 누워 있었다. 병상에 누운 남자는 두 사람이 다가오는 인기척에 눈을 떴다.


-괜찮아?


동우가 침상의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침상의 남자는 두 눈만 껌벅거릴 뿐, 몸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늘 웃는 얼굴이던 동우의 표정이 무표정하게 바뀌었다.


-길상이 형님! 좀 어떠세요? 괜찮으세요? 아이고, 이거 완전 작살이 났네!


병상에 누워 있는 사람은 길상이였다. 진식의 말대로 길상의 온 몸은 붕대로 칭칭 감겨 조금도 움직 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진식은 길상의 상태가 심각한 것을 보고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길상이는 주위의 소란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두 눈을 조용히 감더니 한참동안 뜨지 않았다.


-심하게 다친 것 같은데?


-형님. 심한 정도가 아닙니다. 까딱하면 송장 치르겠어요. 이 꼴을 보십시오. 이게 사람입니까? 지금 이대로 장례 치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에요. 창주, 이 개새끼!


-쉿! 목소리 낮춰라. 다른 사람도 있는데.


동우는 다른 침상에 누워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진식을 진정시켰다. 동우와 진식이 길상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쳐다만 보고 있을 때, 응급실 전담 의사가 길상이 누워 있는 침상으로 다가왔다. 두 사람을 옆으로 비키게 한 의사는 길상의 몸 이곳저곳을 눌러보기 시작했다. 의사의 손이 몸에 닿을 때마다 길상은, 소리는 내지 못하고 얼굴만 일그러뜨렸다.


-이 환자분, 누구와 원한이라도 있었던 겁니까?


의사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제가 외과 전문의가 된 지 올해로 이십년이 다 되는데, 이렇게 처참하게 망가진 환자는 처음 봅니다. 두개골부터 발가락 끝까지 아주 철저하게 부숴놨군요. 뭉툭한 어떤 도구를 사용한 것 같은데, 사람 몸 안에 있는 뼈란 뼈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부숴 놨습니다. 여기, 함몰된 거 보이시죠? 이 부분은 수술도 할 수 없습니다. 함몰된 뼈 조각이 안으로 들어가 뇌의 미세 신경 부분을 누르고 있습니다. 뼈 조각을 제거하려 이 부분을 절개하는 순간, 환자분은 즉사하고 말 겁니다.


의사는 한숨을 쉬며 진저리를 쳤다. 의사가 가리킨 길상의 두개골 부분이 움푹 들어가 있었다.


-큰 원한이 있지 않고서야 사람을 이렇게 까지 망가트릴 수는 없는 법입니다. 가해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이길 포기한 자 같군요.


-길상이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정상인으로 살아갈 수 없는 겁니까?


-잘 아시겠지만, 뼈가 붙는 것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산산이 박살 난 뼈들은 모두 긁어내고 인공뼈로 대체할 수 있겠죠. 다른 곳도 시간을 두고 치료하면 어느 정도 회복이 되겠지만, 여기 두개골 부위의 상흔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쪽을 열었다가는 환자가 즉사하고 말 겁니다. 그 부위는 지금으로서는 손댈 수 없습니다. 뇌 속의 뼈가 미세 신경을 더 누르지 않도록 기브스를 하는 정도로 그 부위의 응급 처치는 끝낼 겁니다. 다행히 상황이 나빠지지 않는다면 목숨은 구할 수 있겠지만, 후유증은 피할 수 없습니다.


-어떤 후유증이 있다는 말씀이죠?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동우는 누워 있는 길상을 보며 의사에게 물었다. 길상이 이런 꼴을 당한 건 전적으로 동우의 책임이었다. 창주 구역에 점포를 내고 길상이를 앞세운 것이 동우였기 때문이다. 동우의 계획대로라면 다혈질인 창주가 덮어놓고 길상의 점포에 쳐 들어와 난장을 부리리라 예상했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동우의 뒤를 봐주던 박반장이 창주를 낚아채 주기만 한다면, 그때는 창주의 손에 있던 모든 것이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동우의 손으로 고스란히 넘어오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미련한 창주가 여우짓을 했다. 자신은 드러내지 않고 비밀리에 길상을 사육장으로 끌고 들어간 것이다. 창주가 동우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동우가 미처 대비하지 못하는 사이에 길상을 데려간 것이다. 고작 점포 몇 개 낸걸 가지고 사육장이라니! 이건 동우도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기억이 온전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다친 곳이 기억을 담당하는 부분인데, 환자분이 얼마나 많은 부분을 기억해 낼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습니다.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게 뭐죠?


-사지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게,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사지를 움직이지 못한다구요?


-우리 뇌는 우리 몸을 관장하지요. 기억도 그렇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도 모두 뇌의 명령으로 이루어집니다. 지금으로서는 지켜보는 수 밖에 없습니다. 몸을 열어서 부서진 뼈 조각들을 꺼내고 인공뼈를 심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골절된 뼈들이 붙기를 기다려야지요. 다행히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는다면 스스로 보행하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마십시요. 사실 지금보다 더 안 좋아질 경우가 확률적으로 더 높습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다려 보는 일밖에 없습니다.


의사는 말을 마치고 나가버렸고 두 사람은 길상의 곁에서 길상의 얼굴을 보며 묵묵히 서 있었다.


# 결심


두 사람은 국밥집 창가에 나란히 앉아 창 밖으로 쏟아지는 장마비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동우의 잔에 소주를 따른 진식은 이어서 자신의 빈 잔에도 소주를 부었다.


-어떻게 될 거 같아?


소주를 한 잔 들이키고 동우가 물었다.


-길상이 말이야, 의사 말로는 가망 없다는 거 같지?


동우는 진식의 손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잔에 술을 따라 부었다.


-휴, 모르겠어요. 의사 말이야 늘 최악을 생각하고 하는 말이니까요. 이러다가 갑자기 길상이 형님이 벌떡 일어나 버릴지 어떻게 압니까?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


-아니에요 형님. 세상에 우리가 모르는 기적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데요.


진식은 어릴 때 부터 알아 온 길상의 처지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길상과 동우, 그리고 진식은 모두 한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란 깨복동이 친구들 이었다. 서로의 집안 사정까지 모르는 게 하나도 없을 정도로 친형제처럼 가깝게 지내왔다. 그렇게 같이 자란 길상이 저 모양으로 처참히 쓰러졌으니, 그 모습을 보는 진식의 마음이 어떨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동우는 그런 진식의 마음을 읽었는지 진식을 보며 빙긋 웃었다. 동우는 진식의 머리 위에 손을 얹어 진식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술잔을 들어 단번에 들이켰다. 술잔을 내려놓은 동우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병원에 들렀다가, 들어가라.


동우는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냉정하게 진식에게 말하고 있었다. 진식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웃지 않는 동우의 말 속에 숨은 뜻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길상이 보내고 창주, 그래! 창주 잡으러 가자.


창에 비친 동우의 눈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진식은 탁자에 얼굴을 묻고, 동우에게 들키지 않을 만큼만 흐느끼고 있었다.




다음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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