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메어(1)
초보 글쟁이의 여러모로 부족한 글입니다.
죄를 저지른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며,
자기의 죄를 정당화하려는 것은 악마의 일이다.
─프로이트
짧은 종말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인류의 멸망을 예감했다. 늙은 노인도, 어린 아이도 붉게 타오르는 하늘 아래에서 종말의 바람에 휩쓸렸다. 목숨만을 부지한 인류들만이 전란의 불길을 피해 지하로 내려왔다.
고도의 문명이 사라지고 인류는 1400m 지하에 몸을 웅크렸다. 끝나지 않는 겨울이 시작되었고, 식량은 서서히 부족해졌다. 사람의 수에 비해 비축된 식량은 적었다. 불과 석 달도 채 되지 않아 식량은 바닥났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이 부족해지기 시작했고, 결국 분란이 일었다. 이대로 가면 어차피 죽을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나타나면서부터 시작된 분열은 결국 그들이 지상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지상으로 돌아간 이들은 피가 끓어오를 한참 때의 젊은이들이었다. 가혹하고 끝없는 겨울일지라도 그들을 막을 수는 없었고, 결국 인류는 한차례 나뉘어졌다. 약 십분의 일인 천 명의 젊은이가 지상으로 올라갔다.
한차례 분열을 겪은 인류는 조금 더 깊은 지하로 파고 내려갔다. 그들 중에는 과학자들과 기술자들도 있었다. 부족한 식량과 끝없는 추위 속에서 그들은 인류가 구원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잃어버린 기술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고도 문명의 기술 중 일부분만이라도 되찾기를 바라며 하나의 단체를 만들었다.
유토피아….
다시 한 번 과거의 세계를 꿈꾸며, 그들은 이상을 꿈꾸었다.
남은 인류의 대부분이 이상을 그리며 유토피아에 소속되었고,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고도 문명의 기술을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최후의 인류에게 있어 이것은 작지만 큰 발전이었다.
하지만 고도 문명의 기술을 복원하는 것으로 인해 점차 유토피아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뉘어졌다. 기술을 복원한 과학자들과 그것을 토대로 기계들을 만들던 소수의 기술자들은 그것을 빌미로 삼아 여자와 권리를 찾았다.
유토피아에 소속된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모두 남자였고, 명예와 젊은 여자를 탐했다. 고도 문명때의 윤리나 법규 같은 것은 모두 종이조각처럼 사라진 후였기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해 젊은 여자들을 그들의 노리개로 바치었고, 그 댓가로 목숨을 연명했다.
유토피아는 서서히 타락했다.
그 무렵, 이름모를 거대 괴물이 지하로 내려오며 그동안 경외시했던 고도 문명의 무기들을 복원하는 연구가 진행되었다. 공장 같은 것이 없었고, 대량생산 할 수 있는 기계들은 복원하지 못했지만 검이나 창 같은 철제 무기를 생산하는데 성공한 인류는 드디어 총을 생산하기에 이르었다.
비록 과거의 생산년도 같은 것은 모르지만 기록에 남아있는 제작법을 따라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총기는 서서히 지하세계에 무력이란 개념을 심었다. 유토피아가 붕괴된 것은 첫 총기가 만들어진 후 일주일이 채 안 되었을 무렵, 한 연구원이 자유를 주장하기 시작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젊은 여자를 탐하고, 다른 사람을 짓밟으며 즐거워하는 유토피아의 상류층을 맹렬히 비난하며 그는 자신과 이상이 같은 이들을 이끌고 유토피아에서 벗어났다. 상류층이 보존하고 있던 고도 문명의 자료들을 복사하고, 그 중 필요한 자료들만 추린 그들은 곧장 지상으로 나가는 길목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 지하로 내려왔을 때 머물렀던 곳….
그곳에 자리를 잡으며 그들은 언젠가 이런 지하에서 벗어나는 날을 기도하며 자신들을 노스탤지어라 불렀다. 향수, 고향을 그리는 그들의 마음을 담은 이름은 조금씩 그들이 자리잡은 곳을 칭하는 이름이 되었다.
노스탤지어가 갈라져 나간 뒤 유토피아는 붕괴되었다.
소수만이 모든 것을 누리는 유토피아보다 자유를 추종하는 노스탤지어로 가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자연스럽게 유토피아는 붕괴되었다. 상류층이었던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그런 민심을 잡기 위해 단체의 이름을 바꾸어야 했다.
샹그릴라….
오래된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지상 낙원의 이름으로 바꾸며 유토피아의 체제는 바뀌었다. 확연한 계급사회, 계급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장소로 낙원은 바뀌었다. 고도 문명 시절의 계급을 사용한 그들의 계급은 과거의 군대처럼 확실하고 뚜렷하게 나뉘어 있었다.
극소수의 사람들만 탐욕의 배를 채우는 장소로 바뀌었다.
낙원은 사라졌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술을 들고 달아난 노스탤지어를 배신자,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며 배척했다. 샹그릴라의 맹공격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드문드문 나타나는 나이트메어라 칭한 거대괴물들을 뒤로 한 채 다양한 병기들을 앞세워 압박해오는 샹그릴라에 노스탤지어 역시 무기를 개발하고 대항하기 시작했다.
자유를 얻기 위해, 저항하는 노스탤지어에서 자유를 지키기 위한 아르카디아가 생겨났다.
시간이 거꾸로된 회중시계를 몸에 새긴 노스탤지어 최강의 정예군단, 아르카디아가 정면으로 샹그릴라에 대항하며 두 세력은 되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샹그릴라는 무력으로 노스탤지어를 굴복시키려 하였으나 아르카디아가 막아서며 사상의 차이가 깊어졌다.
그러나 이런 두 세력에도 암묵적인 룰은 존재했다.
이 지하 세계에서 전멸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룰이었지만, 서류로 남긴 것도 구두로 계약한 것도 아닌 룰이 두 세력간에 존재했다.
하나, 폭탄은 만들지 않는다.
광산개발용으로 개발되었다는 다이나마이트라 할지라도 동시에 두 세 개만 터진다면 이곳에 깔려 생매장당하기 쉽다. 유토피아라는 원류를 지닌 두 세력은 그래서 폭탄의 개발법 만큼은 연구하지 않고 있었다.
단, 개인화기나 병장기들은 활발하게 연구되었다.
하나, 한 달에 한 번, 그 달이 끝나갈 무렵 이틀 동안은 노스탤지어를 공격하지 않는다.
노스탤지어는 한 달에 한 번 아르카디아를 지상으로 정찰 보낸다. 언젠가 지상으로 돌아갈 날을 그리면서 그들은 추운 겨울바람과 잿빛 안개를 뚫고 지상에 올라간다. 혹시라도 살아남은 인류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오래전 지상으로 올라간 동료들이 살아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그들은 한 달에 이틀간 지상에 머문다.
샹그릴라는 그들이 지상으로 올라가있을 때 노스탤지어를 공격하지 않았다. 철저한 계급사회에는 샹그릴라의 군대에 비하면 질적, 양적인 면에서 아르카디아로는 조금 부족했다. 하지만 그들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피해를 감수해야한다.
먹기에는 별로고 양보하기에는 아까운 그런 애매한 상태가 지속되며 양 측의 경계가 서서히 약해질 무렵, 샹그릴라에 새로운 피가 보충되기 시작하며 전황이 바뀌었다. 그들은 더 이상 노스탤지어를 공격하는데 망설임이 없었고, 계속해서 병사들을 전장으로 몰아넣었다.
어리석은 과거는 반복되려 한다.
살을 엘 듯한 겨울바람 아래 앉은 채 나루는 담뱃갑에서 한 개피를 꺼내 물었다.
약 8.4cm는 되어보이는 하얀 막대를 입에 문 채 몸을 살짝 숙여 바람을 막은 나루는 가스라이터로 능숙히 불을 붙였다. 막대불꽃처럼 끝이 붉어지며 막대에서 회색빛 하늘을 닮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담뱃갑의 빈 공간에 라이터를 집어넣은 나루는 잿빛 안개가 낀 하늘을 올려다보며 담뱃잎을 태웠다. 씁쓸한 연기를 천천히 폐속으로 집어넣자 멍해지는 머릿속으로 무수히 많은 생각이 떠오르고, 사라졌다.
필터선까지의 담뱃잎을 모두 핀 나루는 지체없이 필터를 바닥에 버리며 일어섰다. 감각이 조금 무뎌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방해될 정도는 아니다. 딱 기분 좋은 정도다. 타르 1mg이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나루는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굴곡이 심한 언덕들이 길게 펼쳐져 있고, 그 위로 나이트메어라 불리는 짐승들이 기어다니고 있었고, 하늘위로는 날개가 달린 종의 괴물들이 날갯죽지를 편 채 비행을 하고 있었다.
잿빛 안개를 가르며 먹잇감을 찾는 비행형 나이트메어는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을 지니고 있었다. 높은 고도에서 비행을 하고 있을 터인데도 선명히 보일 정도면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다.
나루는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지상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추운 겨울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담배연기는 이미 빠져나갔는데 새하얀 입김이 숨쉴 때마다 새어나온다. 오랫동안 지속된 겨울위로 잿빛의 가루가 눈처럼 쌓여간다. 먼지 위를 걷듯 아무런 느낌도 나지 않는다. 나루는 입을 다문 채 추위를 참으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경사진 산의 중턱은 시야가 넓었다.
회색빛의 세계 역시 넓은 것은 변함이 없었다. 다르다면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이 다르다는 것밖에 없을 것이다. 저 멀리 떨어진 나이트메어들의 괴상한 생김새를 육안으로 확인하며 나루는 조용히 무장을 확인했다.
전장이 짧은 소도 하나를 허리에, 손에 익숙한 K-2소총을 등에 돌려매고 나루는 가볍게 몸을 풀었다. 추운 날씨에 몸이 굳지 않도록 틈틈히 풀었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생과 사를 결정할 수 있는 이곳은 한 번의 방심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전장이다. 덕분에 여유가 생기면 무장부터 확인하는 것이 습관으로 변했다. 나루는 노스탤지어에서 챙겨온 탄환의 여유분과 손상된 무기가 있는지를 점검했다.
틈틈히 손질을 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곳에서도 작동불량이란 것은 존재한다. 다만 현실보다 확률이 낮을 뿐 여러가지 고장들이 일어난다.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나루는 총기 손질을 배워야 했다.
모든 것은 그날의 저녁부터….
노스탤지어의 전투로부터 한 달이 흘렀다.
그 날, 그 때 나루는 한 가지 무기만으로는 전장에서 싸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물건은 필요한 상황을 가정하고 만들어진다. 그것을 알기에는 나루의 실전경험이 부족했다. 스물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적을 반이나 놓쳤다는 것을 되새기며 나루는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었다.
열 개피 남아있다. 정확히 반갑 남은 것을 확인한 나루는 조용히 한 개피를 입에 물었다. 지상으로 올라온 후 담배를 입에 무는 횟수가 늘어나고, 주기는 짧아진다.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 나루는 그만두는 것을 거부했다.
담배연기가 흔들리며 하늘로 오른다.
그것을 입에 문 채 나루는 아이템 창에서 전장이 기다란 총기 한 정을 꺼내었다. 줌을 할 수 있는, 스코프가 달린 소총이었다.
─L96A1
장탄 : 5 / 10발
사용총탄 : 7.62mm x 51
작동방식 : 볼트액션
전장 : 1180mm
총신길이 : 660mm
발사속도 : 수동
무게 : 6.55kg
사용제한 : 레벨 92 이상
보병 병과 주특기 1111(소총수)
영하 40˚의 날씨에서도 무리 없이 작동가능한 저격소총….
최근 마지막으로 구한 무기며, 요즘들어 조금씩 익숙해지는 이 차가운 금속의 개머리판을 어깨에 견착한 나루는 한쪽 무릎을 꿇고 무릎 쏴 자세를 만들었다. 오른쪽 눈동자에 스코프가 비치며 저 멀리, 육안으로 보았던 나이트메어가 코앞으로 당겨졌다.
흘러내리는 오물처럼 피부가 흘러내리는 곤충형의 나이트메어를 포착한 나루는 조용히 방아쇠 위로 오른손을 올렸다.
담뱃 연기가 폐 속으로 들어가며 호흡이 살짝 불안정해지는 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적의 덩치는 충분히 맞출 수 있을 만큼 크다. 거기까지 생각한 나루는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다.
손등에 그려진 회중시계가 팽팽하게 당겨지는 감촉을 느끼며 나루는 방아쇠를 당겼다.
히쭉….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전투방식을 찾기 시작한 지 벌써 한 달….
탕!
굉음이 울려퍼지는 동시에 나루의 신형이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총알의 궤도를 따라 직선으로 달려나간 나루가 사라진 자리 위로는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 된 덩어리들만이 널부러져 있었다.
녹색의 액체가 땅과 하나가 된 것처럼 메말라가고 있었고, 생기를 잃은 눈동자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나이트메어의 것….
한 차례 전투가 지나간 흔적들이 나루가 사라진 곳에 방치되었다.
잿빛 안개의 먼지는 서서히 그 위로 덮히며 죽은 이들을 품에 안았다.
히쭉….
미끄러지듯 산길을 내려가며 나루는 L96A1 저격소총을 아이템창에 넣으며 히죽거렸다. 어느새 귀면탈을 쓰고 K-2소총을 쥔 나루는 필터까지 줄어든 담뱃잎을 뱉고 손등에 새겨진 노스탤지어의 상징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나이트메어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질 때마다 징크스처럼 반복하는 기도를 끝으로 총성이 회색빛 하늘을 갈랐다.
지상 낙원으로 나를 인도하기를…….
총구가 불을 뿜었다.
탕!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가의말
재미있게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모두 감사드립니다!
담배는 몸에 해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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