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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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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1,086,258
추천수 :
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06.08 22:25
조회
4,381
추천
108
글자
8쪽

< #8. 맘루크 5-2 >

DUMMY

"그래. 너처럼 영악한 녀석이 말이야. 어쩌다 끌려온 거지? 또 이번에 살려준 사내가 알고 봤더니 노예상이더라. 그런 건가?"


잔뜩 날이 선 류의 말에 덕윤은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불쌍한 처지를 설명하려 한 것이겠지만 류에게는 씨알도 안 먹힐 소리였다.


"골골하던 아비가 결국 죽었어. 난 그래도 평소와 다를 게 없이 살았지. 그런데 그렇게 친절하던 상인들이 아비가 없다는 걸 알자마자 돌변하더라고."


뭔 쉰 소리냐며 귀를 후비는 류를 살펴보던 덕윤은 넌지시 물었다.


"뭐, 나도 잘못했지만 말이야. 그래도 내가 놔뒀으면 형···. 형이라고 해도 되지? 형도 죽었을 거야. 그렇지? 서로 잊고 지내면 되지 않을까?"


류는 덕윤의 얘기를 끝까지 인내하고 들었다. 허탈했다. 녀석. 잘 살기라도 해야 더 미울 텐데. 그래도 봐줄 생각은 한치도 없었다. 이렇게 될 게 류의 운명이었다면 녀석의 운명도 이렇게 될 팔자였으니 말이다.


"내가 해코지할 거라 겁을 먹었다면 오산이다. 난 그냥 네가 잘 헤쳐나갈 수 있게 도와줄 생각이야. 그래. 생명의 은인인데 말이야. 막 대할 수는 없지? 안 그래?"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머리를 쓰다듬는 류의 손길에 덕윤은 조금은 마음이 놓인 듯했다. 하지만 병영에 도착하자마자 덕윤의 기대는 바로 깨어졌다.


"압둘! 신입이야. 잘 좀 가르쳐줘."


류는 아직도 머리를 쓰다듬다가 압둘이라는 대머리 사내에게 덕윤을 넘겼다. 녀석은 쭈뼛거리다가 압둘의 손길에 이끌려 천막 가운데 공터로 끌려갔다.


"자아! 신입이다. 신고식을 해야지. 거기 너, 너, 너. 고개 돌리지 말고. 너는 말고 애새끼 죽일 일 있냐?"


삐쩍 마르고 날카롭게 생긴 녀석 하나, 중간키에 다부진 사내 하나, 그리고 그냥 거대하다고 할 만한 흑인 하나. 이렇게 셋이 압둘의 말에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그리고 주변의 병사들은 둥그렇게 덕윤과 그들을 감싸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뭐···. 뭐야?"


류는 주변의 사람들과 같이 앉아 술을 찾고 있었다. 애타게 부르는 덕윤의 말에 겨우 고개를 돌리고서는 주먹을 불끈 쥐고 힘내라 응원했다.


"뭐···. 뭐냐고?"


"간단한 시험이야. 전쟁터에서 서로 등을 맡길 동료들인데 말이야. 약한 녀석은 서로 못 믿어서 말이야. 어느 정도인지 보고 나름 줄을 세우는 거지."


"줄을 세운다고?"


"열심히 해봐. 한 명도 못 이기면 알지? 맨 아랫급인 거지. 참고로 제일 밑이면 생활하기가 좀 어려워. 동료로 취급받지 못하는 거지."


어안이 벙벙한 덕윤의 표정을 잠시 즐기던 류는 술을 받아 목을 시원하게 축였다. 아주 해맑게 방긋 웃으며 덕윤의 궁금증을 풀어줬다.


"하급이라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을 거야. 뭐 선임자들 잠자리를 챙긴다던가. 먹을게 나오면 마지막 찌꺼기만 먹는다던가······. 아, 싸울 때는 맨 앞에 서지. 오래 못 살 거 같으면 먼저 화살받이라도 하라고 말이야."


"제···. 젠장."


덕윤은 류의 말에 주먹을 움켜쥐었지만, 첫 상대로 나선 흑인의 주먹 한 방에 배를 얻어맞고 땅을 기어 다녔다. 별로 먹은 것도 없는 속을 게워내면서 말이다.


주변의 야유와 함께 겨우 정신을 차린 덕윤에게 두 번째 사내가 다가왔다. 손을 들어 잠시 기다려달라는 덕윤의 말엔 상관도 없이 녀석은 발로 덕윤의 턱을 차버렸다.


"에이, 별로네. 실망이다."


사람들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둘 볼일을 보러 떠나기 시작했다. 류는 그래도 덕윤이 이를 악물고 마지막 사내에게 달려드는 모습을 흥미롭게 보고 있었다.


덕윤은 힘에서 밀리자 녀석의 다리에 이빨을 들이대고 물어버렸다. 그렇게 나름 분투를 했지만, 상대의 화만 돋운 셈이 됐고, 결국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버렸다.



'녀석, 악착같네.'


류는 그래도 마지막까지 달려들던 덕윤의 모습에 조금은 감동하였다. 그래서 다음날부터는 좀 더 강한 훈련을 받을 수 있게 해주려 했다.


그런 류의 얘기를 들은 압둘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해서 류의 마음에 꼭 들었다.



***



"용맹하기로 이름을 떨친다는 하지즈여, 이번에 일을 의뢰하고자 찾아왔소이다."


상투적인 말투로 넌지시 인사를 던지는 사내는 눈만 빼곰히 내보이게 천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뭐, 언제나 의뢰는 환영합니다만. 알 수 없는 분의 일은 맡지 않는 주의라서요. 솔직히 다 털어놓아야 저희도 일을 잘 할 수 있답니다."


새로 온 맘루크들도 한 달간의 훈련을 통해 그럭저럭 폼이 잡혀가는 와중이었으니 슬슬 일할 때도 되기는 했다. 때마침 찾아온 의뢰인이 반가웠지만 그래도 조심스러워서 나쁠 건 없었다.


사내는 얼굴의 천을 천천히 풀었다. 구릿빛 얼굴에 날카로운 눈매. 콧수염은 가지런히 잘 단정된 것이 꽤 외모에 신경 쓰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리 숨기려 한 건 아니네만. 얼굴이 알려져서는 좀 곤란한 일이 있네."


보나 마나 귀족일 것이고, 또 더러운 일에 이름이 불리는 게 싫은 것이겠지. 하지즈는 이런 일은 꽤 많았다는 듯이 방긋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 했다.


"이곳은 조용한가?"


느닷없는 물음에도 하지즈는 조용히 고개를 조아리고 의뢰인의 비유를 맞췄다.


"제 부관은 입이 무겁습니다. 장막 밖에 있는 병사들도 이미 물렀습니다. 들을 귀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번 일에 대해 맡아 달라고 부탁하네. 아니 어떻게든 맡게 될 테니 거절할 생각은 말게."


하지즈의 인상이 잠시 찌푸려졌다. 이런 협박은 도통 받아본 기억이 없기에 의뢰인의 말투 하나하나가 '네 깠게 어쩌겠어?'라고 들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좀 더 들어보는 게 낫지 않겠느냐며 자신을 다독였다.


"마을 하나라네."


품에서 꺼낸 지도를 하지즈의 앞에 내밀었다. 얼추 보니 산맥 중간쯤에 있는 곳이다.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 밑에 적혀있는 것으로 보아 그리 크지도 않은 곳인 것 같았다.


"영주들끼리 싸울만한 곳도 아닌데. 뭐 금광이라도 갑자기 튀어나온 거요? 그러면 좀 세게 받아야 하는데."


"그냥 조용히 청소를 해주면 되네."


청소라는 말에 하지즈의 뒤편에 서 있던 부관이 살며시 하지즈의 어깨를 잡았다. 받아들이지 말라는 얘기. 아주 더러운 일이다. 산 것 하나 없이 몰살하라는 말은 아주 더러운 일이니까 말이다. 결국, 하지즈도 거절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음. 여기서 보름은 가야겠군요. 이름도 이상하고. 어···. 이거 위험한 곳이군. 마스야프가 가까워."


에둘러 말하기 시작했지만 정중한 거절. 하사신 들의 요새인 마스야프도 가까우니 너무 위험하다는 뜻이다.


"해야 할 것이네. 당신네는 스물두 번째 용병대야. 다른 곳들도 모두 한 마을씩을 맡았지. 왠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테니 말하지 않겠네.“


벼락이 정수리에 내리꽂힌 느낌이었다. 부관도 슬며시 어깨에서 손을 놓았다. 뻔하지 않은가? 이 많은 용병을 움직일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단 한 명 아닌가?


"호···. 혹시······. 그분이신가요?"


하지즈는 상대의 말에 주눅 들어 덜덜 떨리는 말로 물었지만, 상대는 입을 열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한참 후, 콧수염 끝을 매만지던 귀족 나리는 거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즈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 꿇고 절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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