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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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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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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5,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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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06.10 21:30
조회
4,341
추천
106
글자
8쪽

< #8. 맘루크 7-1 >

DUMMY

류의 말 곁에 어느새 덕윤이 와서 조용히 말고삐를 쥐었다. 알아서 기는 것이리라. 이곳에선 힘이 있는 자가 최고였으니 말이다. 류는 요즘 난감해지기 시작했다. 며칠 전까지는 떠들썩하게 술을 주고받던 동료들이 달라져서다.


그를 바라보는 눈빛은 친근감이 아니라, 경외의 눈빛이었다.


“압둘, 좀 심하다. 너까지 그리 '뚫어져라' 쳐다보면 민망하다.”


“음, 이리 야리야리한데 말이야. 말 위에만 오르면 미친 듯이 세질까? 다음에도 한 번 더 붙으면 무조건 발을 땅에 디디는 조건만 좋다고 해야겠어.”


압둘의 말에 류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처음에 끌려오자마자 난동을 부리던 류에게 주먹을 날린 게 이 녀석이었으니 말이다.


“우습냐? 쳇, 건방진 녀석.”


녀석은 삐진 듯이 고개를 돌렸지만, 류는 압둘의 어깨를 두들기며 기분 풀라며 달랬다. 그래도 유일하게 마음을 연 동료가 아닌가? 녀석도 류의 매서운 주먹에 고전하다가 겨우 이긴 후에 손을 맞잡아주었다. 그가 용병대에서 인정한 사내는 몇 안 되기에 다른 고참들도 류를 괴롭혀보려다 그만두었다.


“요즘 동료들이 왜 이렇게 민망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뭐, 하지즈에 얘기를 들었잖아. 기사를 쓰러뜨리는 건 힘들다고.”


“그래 봤자. 기병 한 명일 뿐인데. 너무 ‘우우우’하니까 당황스럽다.”


“기병 한 명? 허···. 허허허”


압둘은 어이없다는 듯 배를 부여잡고 껄껄 웃었다. 압둘의 웃음에 당황하던 류는 설명을 듣고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투르에서 챔피언? 그 지방에서 가장 이름 날린다는 녀석이야. 기사라고 다 뛰어난 건 아니야. 심지어 창을 들고 부딪치는 법을 모르는 녀석도 있지. 그런 가짜가 아니라 진짜 대단한 녀석을 이긴 거라고.”


류는 아직도 살짝 생채기 난 이마를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엔 한번 붙어보겠다고 널 찾아다니는 녀석도 있을걸. 아마 네가 맘루크라는 걸 알면 도전자들도 깜짝 놀랄 거야. 크크크”


압둘은 류의 걱정은 손끝만큼도 하지 않았다. 류는 조그맣게 한숨을 쉴 뿐이었다.



***



조그만 마을이 보였다. 커다란 무리가 지나치는데 그들은 말없이 숨어서 바라보고만 있었다. 모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여···. 여기는 아니지?"


"네, 여기는 아직 경계 밖입니다. 반나절 정도 더 가야 해요.“


”그···. 그런가?“


하지즈가 한숨을 쉬듯 조용히 얘기하자 부관이 얼굴을 마주 봤다. 지금 와서 이래 봤자 뭐하냐는 표정이었다. 하지즈도 마음이 안 좋은 듯이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그래도 여기 사람들은 운이 좋군요."


부관은 나지막한 말소리로 조심스레 얘기했지만, 곁의 류에게는 커다란 목소리였을 뿐이다. 그리고 들은 얘기는 류의 궁금증을 키웠다.


“운? 경계? 이번에는 무슨 일을 하는 거야?”


“넌 몰라도 된다. 그냥 운이 좋은 사람들은 신이 보호하는 게 아닌가 생각들뿐이다.”


요 며칠 싹싹하게 대해주던 하지즈의 얼굴이 잔뜩 굳었다. 나름 쌀쌀맞게 대꾸하는 것이 더는 얘기하고 싶지 않은듯해 보였다. 하지만 류는 눈치채고 말았다. 목소리가 살며시 떨리는 것을 말이다.


그때 하지즈는 이 마을 사람들은 그냥 지나쳐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막상 일을 수락, 아니 하사받았을 때는 아무 감정 없이 해내겠다고 다짐했지만 그건 쉽지 않았다.


지나치며 보이는 마을의 풍경 모두가 단출하지만 평화로웠다. 두려움에 떠는 주민들이 담 뒤에서 살짝 눈만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빛은 순박해 보였다. 게다가 제 어미와 달리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잔뜩 궁금해하는 꼬마를 보니 마음이 떨렸다.


“웃긴 일이죠. 지도에 선 하나만 그어졌을 뿐인데. 반나절 거리 차로 운명이 바뀐다는 게요.”


하지즈는 말에 몸을 맡긴 채 눈을 감았다. 그는 골똘히 생각했다. 바로 반나절 거리인 목표와 달리 여기는 안전한가? 여기도 하사신들이 진을 치고 있는 게 아닌가? 어디서 습격이라도 한다면? 대열이 너무 길지 않은가? 넘겨받은 지도의 선을 꼭 지켜야 하는가? 생각이 많아지니 인상만 찌푸려질 뿐이었다.



***


류는 여전히 입을 꾸욱 다물고 있는 하지즈와 부관을 번갈아 보았다.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맘루크 따위가 주인의 입을 강제로 열게 할 방법도 없고 그냥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주변을 살피던 류의 눈에 한 소년이 옆에 광주리를 낀 채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광주리 안에 붉은 것은 과일이 분명하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녀석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천천히 대열을 향해 다가온다.


주변의 다른 맘루크들을 둘러봤다. 류처럼 알아챈 녀석들도 몇 있지만, 신경 한점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조그만 마을을 지날 때 이리저리 물건을 들이미는 녀석들이 많았으니 그들 중 하나라 생각한 것 같았다.


하지만 류의 감각이 위험을 알린다. 지금까지 지나오며 마주쳤던 마을 사람들은 눈을 내리깔고 두려워하는 눈빛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겁먹지 않고 눈을 살며시 옆으로 치켜뜨고 있다.


‘아, 주인이 죽으면 곤란하지. 면천할 시간이 다가오는데 말이야.’


녀석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하지만 눈에 띌 정도는 아니다. 녀석의 목덜미에 땀이 흘러내린다. 빤히 쳐다보는 류의 눈길을 녀석도 알아챈 것 같았다. 조금 더 빨라졌다. 그래도 다른 맘루크들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녀석이 한 손으로 든 광주리 안에 손을 집어넣는다. 이제 하지즈에게서 다섯 걸음. 녀석이 발에 힘을 준다. 뛰려는 건가?


[부우우웅]


검날은 소년의 목 바로 앞에서 멈췄다. 놀란 소년은 엉덩방아 찧고 넘어져 부들거렸다. 갑자기 뽑아 든 류의 검에 하지즈가 화들짝 놀랐다. 부관은 검을 잡더니 류를 노려봤다.


“뭐···. 뭐냐?”


류는 땅바닥에 쓰러진 꼬마를 바라보며 하지즈에 사과했다. 눈은 하지즈를 보지 않고 꼬마를 쳐다보고 말이다.


“아, 딴생각하다가 사과를 팔려고 왔는지 모르고 휘둘러버렸습니다. 얘야. 다치지 않았니?”


류는 꼬마를 쳐다보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그래도 녀석은 알아챘다. 이글거리는 눈으로 류를 노려봤다. 입술이 터져서 피가 쏟아질 정도로 앙다물면서 말이다.


‘하지 마.’


입만 열어 모양으로 말했다. 그제야 녀석은 고개를 숙이더니 광주리 안쪽으로 뭔가를 더 밀어 넣고는 뒷걸음질 쳐 사라졌다.


“긴장했나 보군.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죽일 뻔했는데, 사과라도 넉넉히 사주지 말이야. 내가 그리 박하게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하지즈가 류의 어깨를 두들기며 씨익 웃었다. 류도 마주 웃었다.


‘이 사람아. 그 목 내가 지켜준 거야. 어디서 씨익 웃고 말이야.’



***



행군은 산에 들어서며 느려졌다. 산과 산 사이의 작은 분지, 그곳과 그 옆에 산까지 늘어선 마을로 간다고 했다. 바로 여기서 반나절 거리. 어떤 일이 기다리는지 모르는 군대는 그저 지휘관의 외침에 발을 재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행렬을 언덕 위에서 바라보던 소년은 산길을 따라 날듯이 뛰어 달리기 시작했다. 가죽을 덧댄 샌들이 위태롭게 널린 돌덩이 위를 밟으며 이리저리 길을 찾았다. 군대가 다음 마을에서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르지만, 그곳엔 소중한 사람이 있다.


‘셰이크가 다치면 안 된다. 마을 사람 모두 알아야 싸울 것이야.’


소년 샤아는 오늘 같은 날 셰이크가 마을을 방문한 게 너무 걱정됐다. 마을 사람들은 풀뿌리 하나 남지 않을 때까지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이다. 그러나 몇 안 되는 마을. 거길 오백 명에 달하는 군대가 쳐들어온다면 그의 안위를 보장할 수 없다.


그가 만약에라도 해를 입는다면······.


생각하기도 싫다. 그러면 피를 피로 씻는 전쟁이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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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 #10. 작지만 작지 않은 전쟁 1-2 > +15 18.07.07 3,646 97 10쪽
123 < #10. 작지만 작지 않은 전쟁 1-1 > +10 18.07.06 4,042 98 8쪽
122 < #9. 다마스쿠스 9-2 > +14 18.07.05 3,653 100 9쪽
121 < #9. 다마스쿠스 9-1 > +8 18.07.03 3,634 99 9쪽
120 < #9. 다마스쿠스 8-2 > +10 18.07.02 3,572 96 8쪽
119 < #9. 다마스쿠스 8-1 > +16 18.07.01 3,701 94 8쪽
118 < #9. 다마스쿠스 7-2 > +25 18.07.01 3,760 96 9쪽
117 < #9. 다마스쿠스 7-1 > +8 18.06.29 3,814 92 8쪽
116 < #9. 다마스쿠스 6-2 > +16 18.06.28 3,847 98 10쪽
115 < #9. 다마스쿠스 6-1 > +12 18.06.26 3,982 101 9쪽
114 < #9. 다마스쿠스 5-2 > +8 18.06.25 3,966 107 8쪽
113 < #9. 다마스쿠스 5-1 > +15 18.06.24 4,051 100 8쪽
112 < #9. 다마스쿠스 4-2 > +10 18.06.23 3,996 113 8쪽
111 < #9. 다마스쿠스 4-1 > +15 18.06.23 4,079 102 10쪽
110 < #9. 다마스쿠스 3-2 > +9 18.06.22 4,108 96 8쪽
109 < #9. 다마스쿠스 3-1 > +18 18.06.21 4,142 107 8쪽
108 < #9. 다마스쿠스 2-2 > +30 18.06.19 4,156 110 9쪽
107 < #9. 다마스쿠스 2-1 > +17 18.06.18 4,228 104 7쪽
106 < #9. 다마스쿠스1-2 > +26 18.06.18 4,214 109 9쪽
105 < #9. 다마스쿠스1-1 > +12 18.06.17 4,396 103 9쪽
104 < #8. 맘루크 10-2 > +19 18.06.17 4,129 103 9쪽
103 < #8. 맘루크 10-1 > +21 18.06.16 4,100 100 8쪽
102 < #8. 맘루크 9-2 > +12 18.06.16 3,991 97 9쪽
101 < #8. 맘루크 9-1 > +12 18.06.15 4,059 101 8쪽
100 < #8. 맘루크 8-2 > +24 18.06.14 4,191 99 8쪽
99 < #8. 맘루크 8-1 > +15 18.06.12 4,198 104 7쪽
98 < #8. 맘루크 7-2 > +15 18.06.11 4,202 107 8쪽
» < #8. 맘루크 7-1 > +9 18.06.10 4,342 106 8쪽
96 < #8. 맘루크 6-2 > +12 18.06.09 4,442 104 7쪽
95 < #8. 맘루크 6-1 > +20 18.06.09 4,499 10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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