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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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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1,085,064
추천수 :
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06.22 22:25
조회
4,108
추천
96
글자
8쪽

< #9. 다마스쿠스 3-2 >

DUMMY

아침에 눈을 떴다. 포근한 침대에서 눈을 뜨니 기분이 상쾌했다. 침대 옆의 의자에는 아버지가 눈을 감고 새근새근 잠들어있었다. 아마 밤새 얘기를 나누다 방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스르르 잠든듯했다.


눈을 끔뻑거리며 인상을 쓰는 게 꿈을 꾸시는 듯했다. 입이 살며시 열리더니 뭐라 뭐라 중얼거린다.


‘잘 왔다. 류야. 잘 왔어. 이제야 제대로 눈을 감을 수 있겠구나.’


“아버지,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지만, 진짜 아버지시네요. 앞으로는 고생하지 않으시게 하겠습니다.”


조그맣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아버지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입가에 미소를 띠며 웃는다. 아마 좋은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나도 어제는 꿈만 같았다. 마주 웃으니 아침부터 즐거운 하루가 될 것 같았다.


[띠리링]


문에 달린 작은 종이 울리고 수건을 챙겨 든 소녀 둘이 들어와 고개를 숙였다. 뒤에는 건장한 남자 노예들이 커다란 물통을 가지고 들어왔다. 따뜻하게 김이 오르는 모양이 몸의 피로를 풀어줄 목욕물인가보다.


고개를 숙였던 소녀가 입을 열려 하지만 입가에 손을 대고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했다. 눈으로 잠든 아버지를 가리켰더니 그들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가온 그녀들은 살며시 옷을 벗기더니 물을 가리켰다.


‘우습구나. 벗기더니 얼굴을 붉히다니. 부끄러운 건 나이거늘.’


빨개진 얼굴로 살짝 고개를 돌린 하녀들이 우습기도 하고, 벌거벗은 몸이 부끄럽기도 해서 얼른 물로 들어갔다.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사라져가니 절로 눈이 감겼다. 소녀들은 부드러운 손으로 천을 들어 몸의 구석구석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기분 좋은 냄새를 풍기는 향료를 끼얹으니 왕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고로롱거리는 콧소리에 잠을 깨버렸다. 피곤이 쌓였었는지 다시 잠이 들어버린 것이었다. 창피하게도 자기 콧소리에 깨버렸으니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소녀들도 서로 입을 가리며 웃는다.


아마 내 얼굴은 새빨개졌을 것이다.



***



커다랗고 둥근 지붕을 가진 거대한 건축물.


그곳을 향해 수많은 무슬림들이 양탄자를 가진 채 향한다. 그곳을 지나 조그만 걸어 올라가면 술탄의 궁이 보인다. 그 웅장한 모습에 류는 기가 살며시 죽었다. 금의 수도에도 가본 적이 있었지만, 이 정도로 찬란한 궁전은 아니었다. 이곳은 온갖 부가 흘러넘치는 곳이었다.


“류, 살라흐앗딘이라는 이름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아나?”


“잘 모르겠습니다. 겨우 대화를 나눌 정도라 숨은 뜻이나 그런 건 어렵습니다.”


“정의와 신념이네. 그리고 그거 하나는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지.”


“뭘요?”


“그분은 그 이름을 가질만한 분이시네. 내 얼굴을 봐서 무례는 범하지 않도록 조심해주게.”


하마드의 안내에 따라 길을 들어섰다. 거대한 홀을 지났다. 거대한 기둥이 떠받히는 지붕에는 아름답게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하마드는 걸으며 어리둥절 해하는 류에게 이것저것을 설명했다.


“그분께서는 이곳을 너무 화려하다고 싫어하시지. 그래도 부수기에는 아깝고 놔두기에도 아까우니 그냥 쓰시는 것뿐일세.”


“특이하시군요.”


류는 하마드의 계속되는 칭송에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뒤편을 졸졸 쫓아오는 하지즈의 눈은 경탄에 가득 찬 채 이곳저곳 훑기에 바쁠 뿐이었다. 가끔 헉하는 소리에 돌아보면 멍하니 그림이나 조각에 빠졌다가 급히 쫓아오는 모습만 보였다.


류는 눈여겨보았다. 거대한 기둥 그림자 사이로 보이는 검은 옷의 사내들. 온몸을 검은 천으로 감싼 그들은 머리에도 검은 터번을 썼고 입 주변조차 검은 천을 감았다. 어둠 속에 숨은 것 같은 그들은 다만 눈에만 빛이 흐를 뿐이었다.


“저들은 쿠르드족 출신의 근위병이네. 곳곳에 숨어있지만 마주치기는 힘들어. 너무 겁먹지는 말게나.”


하마드가 류에게 설명할 때, 하지즈는 멋있는 등신대 조각을 바라보다가 어둠 속의 근위병과 눈이 마주쳐 다시 도망치듯 쫓아왔다. 그 모습에 류와 하마드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



눈매가 날카롭고 코도 매부리코이다. 전체적으로 강한 인상이지만 내면에는 부드러움도 같이 가지고 있었다. 얼굴의 근육이 억지로 웃는 모습을 흉내 내지는 않았다. 자연스러운 웃음. 그는 류를 환대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너무 빤히 쳐다보는 류가 실수라도 할까 봐 하마드가 조그맣게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살라흐앗딘은 만류하듯이 손을 내밀었다. 그도 류가 빤히 쳐다보듯이 류를 빤히 쳐다봤다.


“재미있는 젊은이. 젊음과 함께 힘을 가졌군. 눈에는 총기를 가졌고, 부러운 사내야.”


“감사합니다.”


살라흐앗딘의 칭찬과 함께 류도 고개를 숙여 정중히 예를 올렸다. 류의 뒤에는 하지즈가 벌벌 떨며 절한 채 얼굴도 한번 들지 않고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환영하네. 하마드의 손님이면 나한테도 손님이지.”


그는 손수 주전자를 들어 향이 나는 차를 따라 잔에 하나씩 하나씩 채웠다. 하마드는 자주 있었던 일인 듯 들어 향을 맡으며 음미했고, 류는 한 번에 벌컥 들이켰다. 하지즈는 부들거리며 손을 떠느라 마시는 것 반, 흘리는 것 반이었다.


지금까지 류가 겪었던 일을 하나씩 듣던 살라흐앗딘은 난관을 겪을 때는 슬프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고 승리를 했을 때는 영광된 기적을 본 듯이 환하게 웃어줬다. 한참을 즐겁게 이야기를 듣던 그는 곁의 상자를 열어 종이를 하나 꺼내 하마드에 건넸다. 종이를 공손히 받아들여 읽는 하마드를 보고는 그는 류를 향해 물었다.


“어차피 예루살렘에 찾아갈 생각이란 건 알았네.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나? 이방인 친구.”


“존귀하신 분의 부탁이라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야죠.”


하마드는 내용을 다 읽고는 살라흐앗딘에게 돌려줬다. 하마드는 살라흐앗딘의 부탁이 뭔지 알겠다는 듯이 웃었다.


“자네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나만이 아니더라고. 예루살렘에 가면 눈인사 한 번만 해주게나. 내가 심부름 삯은 넉넉히 쥐여줄 테니 말이네.”


“눈인사요?”


차를 마시려 잔을 드는 살라흐앗딘을 대신해 하마드가 얘기했다.


“예루살렘 왕이 훌륭한 기사를 보고 싶다고 편지를 보내오셨네. 자네 이름이 이리저리 퍼져서 시끌벅적한가 보는군.”


하마드의 말이 맞는다며 살라흐앗딘은 고개를 끄덕였고, 하지즈는 자기도 꼭 데려가 달라는 눈빛으로 애처롭게 류를 쳐다봤다.


‘이 용병대장 녀석은 기독교 쪽 의뢰도 받을 생각인가?’


류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미소를 지었을 뿐인데 하지즈는 허락했다고 생각하고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


류의 목욕을 도왔던 소녀 중 하나가 물동이를 지고는 저택을 나섰다. 그녀는 매일 하던 것처럼 우물에 도착해서는 도르래를 움직였다. 지나치던 한 노파가 우물에 다가와 차례를 기다리는 척하더니 슬그머니 그녀에게서 종이를 한 장 받아 품속에 숨겼다.


노파는 잠시 주위를 돌아보고는 발걸음을 옮겨 골목 사이로 사라져버렸다. 그 종이는 흘러 흘러 야스암의 손에 들어왔다.


종이를 다 읽은 그녀는 사람을 불러들였다. 커다란 체구의 사내는 공손히 야스암의 말을 기다렸다. 얼굴이 검고, 상처가 적지 않았다. 게다가 누군가가 입에 칼을 넣고 끊어버렸었는지 길게 찢겼다가 아문 상처가 있었다.


“예루살렘에서 사람을 죽여줬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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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 #10. 작지만 작지 않은 전쟁 1-1 > +10 18.07.06 4,042 98 8쪽
122 < #9. 다마스쿠스 9-2 > +14 18.07.05 3,653 100 9쪽
121 < #9. 다마스쿠스 9-1 > +8 18.07.03 3,634 99 9쪽
120 < #9. 다마스쿠스 8-2 > +10 18.07.02 3,572 96 8쪽
119 < #9. 다마스쿠스 8-1 > +16 18.07.01 3,701 94 8쪽
118 < #9. 다마스쿠스 7-2 > +25 18.07.01 3,760 96 9쪽
117 < #9. 다마스쿠스 7-1 > +8 18.06.29 3,814 92 8쪽
116 < #9. 다마스쿠스 6-2 > +16 18.06.28 3,847 98 10쪽
115 < #9. 다마스쿠스 6-1 > +12 18.06.26 3,983 101 9쪽
114 < #9. 다마스쿠스 5-2 > +8 18.06.25 3,966 107 8쪽
113 < #9. 다마스쿠스 5-1 > +15 18.06.24 4,052 100 8쪽
112 < #9. 다마스쿠스 4-2 > +10 18.06.23 3,996 113 8쪽
111 < #9. 다마스쿠스 4-1 > +15 18.06.23 4,079 102 10쪽
» < #9. 다마스쿠스 3-2 > +9 18.06.22 4,109 96 8쪽
109 < #9. 다마스쿠스 3-1 > +18 18.06.21 4,142 107 8쪽
108 < #9. 다마스쿠스 2-2 > +30 18.06.19 4,156 110 9쪽
107 < #9. 다마스쿠스 2-1 > +17 18.06.18 4,228 104 7쪽
106 < #9. 다마스쿠스1-2 > +26 18.06.18 4,214 109 9쪽
105 < #9. 다마스쿠스1-1 > +12 18.06.17 4,396 103 9쪽
104 < #8. 맘루크 10-2 > +19 18.06.17 4,130 103 9쪽
103 < #8. 맘루크 10-1 > +21 18.06.16 4,100 100 8쪽
102 < #8. 맘루크 9-2 > +12 18.06.16 3,991 97 9쪽
101 < #8. 맘루크 9-1 > +12 18.06.15 4,059 101 8쪽
100 < #8. 맘루크 8-2 > +24 18.06.14 4,191 99 8쪽
99 < #8. 맘루크 8-1 > +15 18.06.12 4,198 104 7쪽
98 < #8. 맘루크 7-2 > +15 18.06.11 4,202 107 8쪽
97 < #8. 맘루크 7-1 > +9 18.06.10 4,342 106 8쪽
96 < #8. 맘루크 6-2 > +12 18.06.09 4,442 104 7쪽
95 < #8. 맘루크 6-1 > +20 18.06.09 4,499 10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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