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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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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1,085,181
추천수 :
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07.01 00:46
조회
3,760
추천
96
글자
9쪽

< #9. 다마스쿠스 7-2 >

DUMMY

거처로 돌아오는 길은 발리앙의 병사들이 주변을 경호해주었다. 거처에 들어선 이후에도 돌아가지 않고 주변에 삼삼오오 모여 사람들의 통행을 가로막기 시작했다.


"덕윤아, 내일 아침 바로 떠날 수 있게 준비해다오."


"알겠습니다. 주인님."


어느새 주인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녀석이었다. 눈치가 재빨라서 그런지 척척 일을 해내고 있어 사소한 일은 덕윤이 없으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에 비교해 샤아라는 녀석은 심통 맞은 표정으로 주변을 지키는 사냥개 같았다.


어쨌든 둘 다 필요한 사람들이 돼버렸다. 가족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마음을 놓고 대할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요즘에는 가슴이 허하다.


"오라버니, 오랜만에 얼굴을 뵈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무사하셨다니 정말 기쁩니다. 그러면 쉬시죠."


연이는 고개를 숙이고는 자신이 머물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멍한 마음에 뒷모습을 바라보던 류는 당황했다.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손이 뻗어져 연이를 붙잡은 것이다.


"오···. 오라버니?"


"으···. 음. 연아. 긴 여행도 그렇고 여러 일이 있어 고단하리라 생각된다만. 지난 얘기를 나누고 싶구나."


멋쩍은 표정으로 횡설수설하는 류를 지그시 바라보던 연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류의 방으로 향했다. 침대 곁 의자에 앉아 류보고 편히 누우라는 듯이 침대를 손으로 매만졌다. 덕윤은 잠시 사라졌다가 소반에 간단한 요깃거리들을 챙겨 돌아왔다. 물론 덤으로 작은 술병도 하나 말이다.


싱긋 웃고 문밖으로 나가는 녀석을 보던 류는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너무 쉽게 열고 있는 게 아닌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저 녀석은 좀 더 밖에 놔둬야겠어.’


어쨌든 둘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류는 들떠 그동안의 고생에 살을 붙여 자랑스레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연이는 한참은 웃다가 또 한동안은 조심하지 않았느냐며 아이를 꾸짖듯 힐난하기도 하며 류의 얘기에 빠져들었다.


그때 샤아가 카펫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능숙한 솜씨로 침대 곁에 깔고는 정좌해 앉아 눈을 감는 게 아닌가?


“샤아야, 오늘은 이리 안 해도 된다. 돌아가서 방에서 자라.”


“떨어질 수 없습니다. 전 그렇게 하라고 명을 받았으니 지켜야지요.”


샤아의 말에 연이의 눈썹이 살짝 흔들렸다. 류는 왜 그리 연이가 반응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이리 잠을 잔 지 오래되었나 봅니다. 그러니?”


연이의 물음에 샤아는 잠시 고민하다가 나흘째라 말했다. 연이는 류를 보며 살짝 쏘아붙였다.


“오라버니도 이제는 어른이 되셨나 봅니다. 색을 이리 밝히시다니요. 그러면 전 자리를 피해드리죠.”


“색? 무···. 무슨?”


“아직 어려 보이니 너무 힘겹게 하지는 마세요.”


차가운 표정으로 사라지는 연이를 보고 류는 떨떠름하게 물었다.


“너 계집이었냐?”


“오늘은 원하시는 겁니까? 벗을까요?”


“아무 일 없었다고 얘기해줘도 됐잖아. 사실 선이 좀 곱다 했지만, 여자로는 못 알아챘다.”


“실망이군요. 주인께서는 안목이 별로 없으신 가봅니다. 덕윤이는 눈을 떼지도 못하던데···.”


류는 덕윤과 샤아가 남몰래 사고를 치고 다니는 게 아닌가 걱정이 슬그머니 들기 시작했다.


‘뭐, 가족이 늘면 나쁘지는 않은데······. 덕윤이 녀석은 장가를 가면 제대로 쥐여살겠군. 장가를 들게 해주고 이제는 놔줄까?’


흐뭇한 표정으로 골똘히 생각에 빠진 류를 이상하다 바라보던 샤아는 잠이 쏟아지는지 벌떡 일어서 방을 서성였다.


“난 잘 테니, 네 맘대로 해라. 소리는 내지 말고. 소리 낼 거면 네 방으로 꺼지던가.”


퉁명스럽게 얘기하고 이불을 덮은 류를 쏘아보며 샤아는 방을 천천히 돌아다녔다. 발끝을 들고 다니니 고양이처럼 소리 한점 나지 않았다.



***



밤은 깊어졌다. 멀리서 고함과 비명이 들리던 밤은 어느새 깊게 물들었고 정적이 주변을 휘감기 시작했다. 가끔 들리는 건 스산한 모래바람 소리뿐.


밤이 깊어지는 이 밤. 하루를 마무리하고 사람들은 잠에 깊이 빠져들 시간. 열린 창문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쏟아질 때 살짝 펄럭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창틀을 잡고 거꾸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그림자가 있었다.


카펫에 발을 대고는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그림자는 어둠을 틈타 벽에 바싹 붙어버렸다. 방안에는 조그만 촛불 하나만 위태로이 바람에 흔들릴 뿐, 어둠만이 가득했다. 울렁거리는 불빛에 천장은 이리저리 그림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한참을 가만있던 그림자는 살며시 몸을 드러냈다. 검은 옷을 온몸에 둘러싼 사내는 살며시 단검을 뽑아 들고는 움직여 샤아의 곁으로 다가갔다. 힘 있는 몸짓으로 방안을 돌아다니던 샤아는 밤이 깊어질수록 버티지 못하고 의자에 잠시 앉았다가 곯아떨어져 버린 상태였다.


단검은 그녀의 목덜미에 살며시 다가갔지만 고로롱거리는 콧소리에 멈췄다가 다시 떨어졌다.


“이제, 온 건가?”


난데없는 소리에 그림자는 주춤거리다가 다시 벽으로 붙어버렸다.


“오래 기다렸잖아.”


류는 침대에 기대앉은 채 무릎에는 검을 놓아둔 채로 상대를 노려보고 있었다.


“잠이 들었을 줄 알았는데······. 의외군. 멀리서 이 아이가 주춤거리다가 잠에 빠져드는 걸 보고 왔는데. 예상외야.”


“사실, 난 병이 좀 있어.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안 나네. 형이 죽었을 때였던가? 맘루크로 끌려가 처음으로 땀투성이 남정네들과 살을 맞대던 날이던가? 어쨌든 잠을 잘 못 자. 그냥 조금 눈만 붙이지. 그래서 그런지 좀 짜증을 많이 부려. 이해하게.”


“이해?”


“짜증을 부릴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런데 누가 보낸 거야? 궁금하다. 뭐 원한을 맺을 일이 별로 없어서 말이야. 뻔하겠지만 말이야.”


“일을 맡긴 사람은 알려줄 수 없네. 그게 이 바닥의 도리라서 말이야. 그런데 안타까워. 자네도 자고 있었으면 조용히 죽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고통스럽지 않은 죽음은 축복인데 말이야.”


“알았어. 아이는 깨지 않게 빨리 끝내자. 녀석 며칠 동안 잠도 못 자고 고생하더라고. 깨우고 싶지 않아.”


류는 일어서서 침대에서 조용히 내려왔다. 검을 스르륵 뺐지만 날카로운 소리가 방을 갈랐다.


“아. 이 아이는 출신이 그래서 말이야. 그런데도 믿는 건가?”


“가족으로 인정하면 말이야. 뒤를 봐줘야지. 그게 집안 어른이 할 일이야. 놀아주고 싶은데 아이를 깨우고 싶진 않아. 단칼에 베어 버려도 허탈해하지는 말라고.”


알 카나비라 불린 사내가 단도를 들고 암살자 특유의 소리 없는 공격을 시작했다. 카나비의 생각에는 웃긴 허세였다. 언제나처럼 검을 맞댄 상대는 죽는다. 그게 그의 일화가 아닌가? 그럴 때 류의 검이 빛났다. 허리춤을 돌아간 검이 단칼에 카나비의 손목을 그어버렸다.


잘려나간 손목을 움켜쥐며 숨을 고르던 카나비는 아직도 의아했다. 검에 뛰어난 사내들도 자기를 보면 겁냈었다. 그런데 이 사내는······. 빠르고 한 번도 주저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나도 눈을 붙여야겠군. 그러니 빨리 끝내자고.”


바닥에 뒹굴뒹굴하며 고통을 겨우 참고 있는 카나비에게 류는 성큼 다가섰다. 목덜미를 무릎 끝으로 눌러버린 류가 커다란 손으로 카나비의 입을 막았다. 숨이라도 막아 죽이려는 건가? 의아해하던 카나비는 곧 알 수 있었다.


소리 없는 고문이 시작됐다.


카나비가 놓친 단도를 남은 손으로 움켜쥔 류는 카나비의 허벅지에 찔러넣었다. 비명이 터지려 했지만, 힘껏 움켜쥔 류의 손아귀 힘에 헐떡임만 남았다.


“묻는 말에 대답해. 그러면 빨리 끝내주마.”



***



조용히 끝났다. 아직도 눈을 뜨지 않는 샤아를 넌지시 바라봤다. 이런 모습을 보았다면 녀석은 겁먹고 거리를 둘 것 같았다. 다행히도 잠에서 깨지는 않았다. 살아가며 믿을 인연이 적은데, 가족을 늘리면 늘렸지. 버리고는 싶지 않았다. 다행히 이 모습을 보지 않았다. 다행이다.


류는 시체와 밤을 보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샤아를 안아 들고는 조심스레 방을 나섰다. 1층의 응접실에는 커다란 디완이 여러 개 있었다. 하나에 샤아를 눕히고는 주변에 있던 담요를 가져다 덮어줬다. 마주 보는 디완에 앉은 류는 눈을 감아봤지만, 생각처럼 잠을 잘 수는 없었다.


아직도 형의 마지막 죽음이 기억났고, 그동안의 잘못된 선택들이 머리를 맴돌며 후회라는 행위를 만들어냈다.


‘지난 일이다. 하지만 참 바보 같았다. 이제는 영리하게, 가족만을 위해서, 이 먼 타국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을 생각만 하겠다. 어떻게든.’


작가의말

좀 생각이 많아서 집중을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토요일은 글을 올리지 못했네요. 일요일에 한편 더 올려 사죄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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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 #10. 작지만 작지 않은 전쟁 1-2 > +15 18.07.07 3,646 97 10쪽
123 < #10. 작지만 작지 않은 전쟁 1-1 > +10 18.07.06 4,042 98 8쪽
122 < #9. 다마스쿠스 9-2 > +14 18.07.05 3,653 100 9쪽
121 < #9. 다마스쿠스 9-1 > +8 18.07.03 3,634 99 9쪽
120 < #9. 다마스쿠스 8-2 > +10 18.07.02 3,572 96 8쪽
119 < #9. 다마스쿠스 8-1 > +16 18.07.01 3,701 94 8쪽
» < #9. 다마스쿠스 7-2 > +25 18.07.01 3,761 96 9쪽
117 < #9. 다마스쿠스 7-1 > +8 18.06.29 3,814 92 8쪽
116 < #9. 다마스쿠스 6-2 > +16 18.06.28 3,847 98 10쪽
115 < #9. 다마스쿠스 6-1 > +12 18.06.26 3,983 101 9쪽
114 < #9. 다마스쿠스 5-2 > +8 18.06.25 3,967 107 8쪽
113 < #9. 다마스쿠스 5-1 > +15 18.06.24 4,052 100 8쪽
112 < #9. 다마스쿠스 4-2 > +10 18.06.23 3,996 113 8쪽
111 < #9. 다마스쿠스 4-1 > +15 18.06.23 4,079 102 10쪽
110 < #9. 다마스쿠스 3-2 > +9 18.06.22 4,109 96 8쪽
109 < #9. 다마스쿠스 3-1 > +18 18.06.21 4,142 107 8쪽
108 < #9. 다마스쿠스 2-2 > +30 18.06.19 4,156 110 9쪽
107 < #9. 다마스쿠스 2-1 > +17 18.06.18 4,228 104 7쪽
106 < #9. 다마스쿠스1-2 > +26 18.06.18 4,214 109 9쪽
105 < #9. 다마스쿠스1-1 > +12 18.06.17 4,396 103 9쪽
104 < #8. 맘루크 10-2 > +19 18.06.17 4,130 103 9쪽
103 < #8. 맘루크 10-1 > +21 18.06.16 4,100 100 8쪽
102 < #8. 맘루크 9-2 > +12 18.06.16 3,991 97 9쪽
101 < #8. 맘루크 9-1 > +12 18.06.15 4,059 101 8쪽
100 < #8. 맘루크 8-2 > +24 18.06.14 4,191 99 8쪽
99 < #8. 맘루크 8-1 > +15 18.06.12 4,198 104 7쪽
98 < #8. 맘루크 7-2 > +15 18.06.11 4,202 107 8쪽
97 < #8. 맘루크 7-1 > +9 18.06.10 4,342 106 8쪽
96 < #8. 맘루크 6-2 > +12 18.06.09 4,442 104 7쪽
95 < #8. 맘루크 6-1 > +20 18.06.09 4,499 10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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