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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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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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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5,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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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06.16 10:25
조회
3,991
추천
97
글자
9쪽

< #8. 맘루크 9-2 >

DUMMY

"영광입니다. 미천한 저희의 노력을 알아주시다니 감읍하지요."


"모두 하지즈님의 고군분투에 감사드립니다. 무슬림들을 위해 큰일을 하신 겁니다."


하지즈는 얼굴에 잔뜩 미소를 띠고 손님들을 맞아들였다. 그들은 나름 정중하게 대꾸하며 이전에 왔던 귀족 나부랭이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것이 더욱 하지즈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옆에 선 부관도 흐뭇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하지즈는 인사는 끝났다는 듯이 본격적으로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어쨌든 이번에 토벌 때 꽤 많은 병력이 손해를 입었습니다. 녀석들의 저항이 도통 큰 게 아니라서······. 뭐 그래도 저희가 돈 때문에 일을 한 건 아닙니다. 그래도 앞으로 어떻게 꾸려나갈지 생각만 하면 머리가 지끈거리는 게······."


말끝을 흐리자, 눈앞에 앉은 두 사내중 나이든 이가 조용히 꾸러미를 내놓았다. 가득 든 금화와 종이 여러 장이 들어있었다. 금화는 어딜 가나 훌륭한 값어치가 되니 문제없으나 종이가 문제였다.


"이런···. 이런···. 저희 충정이 이렇게 매도되다니···."


"그러면 안 받으시겠소?"


젊은이가 웃음을 띤 채 묻자 하지즈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듯이 팔로 안아 당겼다. 팔 안에 느껴지는 묵직함에 웃음이 조금 더 커졌다.


"물론 더 사람을 구하고 키워서 큰 뜻을 이어받으라는 명이시겠죠. 그러면 따르는 게 도리가 아닐까요? 그런데 이건?"


슬쩍 종이를 펼쳐보며 하지즈는 물었다. 젊은 사내가 하지즈의 물음에 그러면 그렇지라는 투로 대답하기 시작했다.


"다마스쿠스의 상인이 보증하는 차용증이요. 그 종이 한 장이 대략 지금 금화의 다섯 배 금액을 될 거요. 그리고 차용증 말고 다른 한 장은 우리 아신 일족이 당신의 후견인이 될 거라는 그런 내용이고. 의외로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고 합디다."


용병대의 후견인. 규모가 커다란 용병대는 누군가가 뒷배를 봐주지 않으면 세력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사실 천 명이 넘어가는 용병대는 영주들간의 싸움까지 바꿀 정도로 크기에 견제가 이곳저곳에서 잦았다. 그럴 때 유력한 가문이 뒤를 봐준다는 건. 하나의 세력으로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후견인이 전쟁에 나설 때는 그를 받드는 게 조건이었다.


"감사합니다. 저희는 아신 일족의 울타리 안에 있겠습니다."


하지즈는 입꼬리가 하늘을 향해 치솟는 걸 겨우 참았다. 세력이 조금 작기는 해도 욱일승천하는 아신 일족이 아닌가?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족장이 술탄의 입을 대신하며 다마스쿠스의 궁전을 쥐락펴락한다는 소문이 파다했었다.


"필요하면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동안은 좀 더 키워주시고 준비를 해주십시오. 하지만 족장이신 하마드님의 말씀에 의하면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을 드릴 수는 없다고 하십니다."


'하···. 하마드? 들어본 이름인데···.'


뭐, 인사치레일 수 있겠지만 어차피 하지즈는 병력을 놀릴 생각은 없었다. 이들이 돌아가면 부관과 이리저리 지도를 놓고 세력을 갈라야 할 것이다. 아신 일족과 친한 세력들, 그리고 적대하는 세력들. 이제는 시장이 반으로 줄어드니 잘못 물건을 사면 큰일이었다.


"참, 여기 유명한 타와시가 있다던데. 아니 진짜 기사를 쓰러뜨린 일이 있소?"


젊은 사내의 질문에 하지즈의 둥글고 납작한 코가 하늘을 향해 찌르기 시작했다. 아마 어깨도 한치는 올라갔으리라.


"뭐, 이런 얘기를 또 어디서 들으시고······. 장관이었죠. 솔직히 가슴에 맺혔던 게 뻥 뚫리더이다. 그 몽기사르 때 저도 참전을 했었는데 말입니다."


앗산과 알마릭은 침을 튀겨가며 자랑을 하는 하지즈의 말에 한참이나 곤욕을 치렀다. 잔뜩 바람을 넣어가며 바람을 불어넣던 하지즈가 잔뜩 굳은 둘의 얼굴을 보더니 겸연쩍은 웃음을 지었다.


"이봐, 부관. 녀석을 데려와. 아무래도 보고 싶으시다니 말이야······. 아, 그리고, 그 갑옷도 잘 맞춰서 입히고 말이야. 허름한 천 쪼가리 걸치고 있으면 멋이 없잖아. 아. 투구도 새로 구한 거로 말이다."


그제야 앗산과 알마릭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



압둘과 거나하게 술에 취해가던 류는 부관이 찾아오자 인상을 찌푸렸다.


손님들에게 인사를 시킬 테니 챙겨입으라며 하지즈가 보낸 건 예전의 검은 갑옷. 투구는 여분이 있었는지 새것을 가져왔다.


그것과 더불어 안에 입을 천 옷은 투박한 기존 것과는 달리 수도 놓이고 부들거리는 게 꽤 고급스러웠다.


"뭐야? 인사가 아니라 시집이라도 보내는 건가?"


압둘은 술을 벌컥벌컥 넘기며 류에게 시비 걸듯 말했다. 하지만 말투와는 달리 부러움이 가득했다.


"젠장, 그럼 네가 가던가? 나보다 네 녀석 뒷구멍이 쫄깃쫄깃할 텐데."


"빌어먹을 새끼."


둘의 음담패설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부관이 나가버렸다. 천막의 휘장 너머로 부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 오지 않으면 채찍질이다."


그때 휘장이 열리며 샤아와 덕윤이 들어왔다. 한결 깨끗해진 얼굴의 샤아와 먼지투성이 덕윤. 한 놈은 분명 목욕을 한 것이고 한 놈은 모래 위를 뒹군 것 같았다. 잔뜩 굳은 샤아와 덕윤을 보고는 한마디 하려다 류는 포기하고 옷을 훌렁 벗어젖혔다.


탄탄해진 몸에 어깨가 넓었다. 등에는 예전부터 당했던 상처가 가득해 징그럽기까지 했다. 최근에 생긴 건 도망을 치다 부관에게 당했던 채찍질이었지만 더 심했던 건 희미해지기 시작한 옛 상처들이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생사를 넘나들었을 만한 커다랗고 깊은 상처들. 그걸 바라보는 샤아의 눈이 빛났다.


"오, 역전의 용사라 이건가?"


그걸 바라본 압둘은 혀를 내두르며 휘파람을 불었다. 심지어 샤아의 눈도 계속해서 류의 등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류는 휘파람 소리에 쑥스럽다는 듯이 손을 내저으며 바지까지 훌훌 벗어젖혔다.


"그래? 사실 이게 더 역전의 용사지.“


”크하하하, 그 작은 애벌레는 무언가? 귀엽기 그지없군. 귀부인들이 본다면 귀여워는 해주겠어.“


”쳇, 네 녀석이 쓸모없이 커다란 것뿐이야.“


류는 목욕할 때 넌지시 훔쳐봤던 압둘을 생각하며 분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어쨌든 류는 머쓱해져 서둘러 바지를 걸쳐 입기 시작했다. 류는 깨닫지 못했지만, 샤아의 시선을 덕윤이 몸으로 가리고 있었다.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이상하기는 했다.


”그래도 처음 왔을 때는 세상 모든 짐을 다 짊어진 것처럼 그러더니. 지금은 꽤 재미있어. 이렇게 재미있는 녀석인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잘해줄 걸 그랬지.“


”글쎄. 나도 성격이 많이 바뀐 거는 같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는 망나니 형이 있었거든. 맨날 날 괴롭히는 재미로 사는 그런 형 말이야. 난 크면 형처럼 저러지는 말아야겠다. 그랬는데······.“


”지금은 판박이가 됐군. 형제란 그런 거야.“


”그래. 그게 핏줄인가 보지.“


압둘은 류의 가족 얘기는 처음 들어봤다. 옷을 걸쳐 입은 류에게 샤아가 다가와 사슬갑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덕윤은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샤아의 반대편으로 서서 돕기 시작했다. 서로 류에게 필요한 사람이란 걸 인식시키려 애쓰는 듯했다. 샤아가 견갑을 들어 어깨에 대면 덕윤이 가죽끈을 동여매기 시작했고, 덕윤이 흉갑을 들어 가슴 쪽에 들고 서 있자 이번에는 샤아가 가죽끈을 이리저리 엮기 시작했다.


”쳇, 부럽군. 나도 말이나 좀 타볼까? 완전히 시종이잖아. 아, 그 형님 말이야. 너처럼 강한가? 매일 괴롭힘을 당했다면 꽤 싸움꾼이었나 봐?“


”......형? 내가 아는 제일 강한 사내였지.“


들떠있던 류의 목소리가 침울해지며 가라앉자 압둘이 당황스러워하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내 기억에는 가장 강할 거야. 더 지지 않는 사람이니 말이야.“


”지지 않는다고?“


”죽었어.“


압둘은 입을 다물었고 할 말을 잃자 애꿎은 술병만 들어 입으로 옮겼다. 류의 얼굴에는 씁쓸한 표정만 가득했다.


갑옷을 다 입은 류는 투구를 머리에 올려 내렸다. 옛 희랍인들이 썼던 투구처럼 코 가리개가 길게 내려와 얼굴을 최대한 가렸다. 화살을 막으려는 이유도 있었지만,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려면 사람 같지 않아야 한다는 하지즈의 생각이었다.


그래도 이 느낌이 나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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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 #10. 작지만 작지 않은 전쟁 1-1 > +10 18.07.06 4,043 98 8쪽
122 < #9. 다마스쿠스 9-2 > +14 18.07.05 3,653 100 9쪽
121 < #9. 다마스쿠스 9-1 > +8 18.07.03 3,634 99 9쪽
120 < #9. 다마스쿠스 8-2 > +10 18.07.02 3,572 96 8쪽
119 < #9. 다마스쿠스 8-1 > +16 18.07.01 3,701 94 8쪽
118 < #9. 다마스쿠스 7-2 > +25 18.07.01 3,761 96 9쪽
117 < #9. 다마스쿠스 7-1 > +8 18.06.29 3,815 9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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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 #9. 다마스쿠스 4-2 > +10 18.06.23 3,996 11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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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 #9. 다마스쿠스 3-1 > +18 18.06.21 4,142 107 8쪽
108 < #9. 다마스쿠스 2-2 > +30 18.06.19 4,157 110 9쪽
107 < #9. 다마스쿠스 2-1 > +17 18.06.18 4,228 104 7쪽
106 < #9. 다마스쿠스1-2 > +26 18.06.18 4,214 109 9쪽
105 < #9. 다마스쿠스1-1 > +12 18.06.17 4,397 103 9쪽
104 < #8. 맘루크 10-2 > +19 18.06.17 4,130 103 9쪽
103 < #8. 맘루크 10-1 > +21 18.06.16 4,100 100 8쪽
» < #8. 맘루크 9-2 > +12 18.06.16 3,992 97 9쪽
101 < #8. 맘루크 9-1 > +12 18.06.15 4,059 101 8쪽
100 < #8. 맘루크 8-2 > +24 18.06.14 4,191 99 8쪽
99 < #8. 맘루크 8-1 > +15 18.06.12 4,198 104 7쪽
98 < #8. 맘루크 7-2 > +15 18.06.11 4,203 107 8쪽
97 < #8. 맘루크 7-1 > +9 18.06.10 4,342 106 8쪽
96 < #8. 맘루크 6-2 > +12 18.06.09 4,442 104 7쪽
95 < #8. 맘루크 6-1 > +20 18.06.09 4,500 10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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