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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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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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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5,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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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06.23 22:25
조회
3,996
추천
113
글자
8쪽

< #9. 다마스쿠스 4-2 >

DUMMY

"예루살렘, 나블루스, 베들레헴, 아크레, 시돈, 여리고의 정당한 지배자며, 성묘의 수호자인 나, 보두엥 당주는······. 자네 이름이 류였던가?"


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보두엥은 계속 말을 이었다.


"류를 기사로 서임한다······. 이제 한번 보여줄 거지?"


사람들의 경악에 찬 탄식은 아랑곳 안 하고, 가면 안의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이 정도면 됐지?'라며 좋은 구경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사실 류도 한번 붙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고, 이 자린고비 왕도 더는 내놓을 생각이 없어 보이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마드가 나서서 중재를 시도했다. 좋은 자리에서 피를 튀기는 게 좋을 턱이 있나? 넌지시 말을 꺼냈다. 서로 좋게 마무리할 수 있게 말이다.


"서로 겨루다 보면 어느새 알게 모르게 격해지는 게 대결 아닙니까? 그러니 검 대신에 나무막대기로 겨루시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보두엥이였다. 그래 봤자 아이들 장난 아니겠냐는 표정. 우스운 것은 류마저 고개를 젓고 있었다는 것이다.


"무게가 달라서 실력이 안 나올 거야. 그러니 철검으로 하자고. 뭐, 겁먹고 나서는 사람이 없으면 나는 좋지."


하마드는 잔뜩 기대에 찬 둘을 보며 마지막으로 조율했다.


"전하, 그러면 철검으로 하는 대신에 사슬 갑옷을 입고 머리와 다리는 공격금지. 더불어 몸도 찌르기는 불가. 이 정도면 다쳐도 중상은 아닐 겁니다. 그렇게 배려해주신다면 저도 만족합니다."


서로 장단이 맞아들어가는 둘을 바라보며 잔뜩 인상을 찌푸린 하마드의 말이었다. 류는 고개를 끄덕였고, 결국 보두엥도 좋다고 외쳤다.




***




류의 도발에 기사들은 서로 자신이 나서겠다며 웅성거렸다. 보두엥은 그제야 불이 붙었다며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한창 심술을 부리던 보두엥은 머리를 식혔다. 차분히 왕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건방지게 눈을 치켜뜨는 영주들에게 창피를 주는 것도 중요했지만 이왕 시작한 대결을 져버리면 곤란하다. 무슬림들이 의기양양해진다면 이 작은 나라는 곧 전화에 휩싸일 것이다.


커다란 물결처럼 밀려드는 그들을 막아내는 건 싸움을 위해 태어난 기사들. 그들마저도 쉽사리 진다는 소문은 백성들에게 불안만 심어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심술을 부려봐야겠다.


"그러면, 레널드. 자네가 조카의 원한을 풀어볼 텐가?"


"왕이시여. 제가 나선다는 건 격이 안 맞습니다. 제가 영지를 잃었다고는 하지만 안티오키아의 공작입니다. 지금에야 알 카락 같은 조그만 성채에 있지만 전 공작이라고요."


한 번 더 속을 뒤집으니 마음이 좋았다. 주변을 훑어보자 사기꾼 하마드와 발리앙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이마를 만지고들 있었다.


"전하, 미숙하나마 제가 나서면 안 되겠나이까?"


긴 금발 머리를 뒤로 모아 묶은 사내가 기사들 사이에서 나왔다. 잘 생긴 미남자. 얼굴에 장난기가 묻어있다. 보두엥의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자네, 이름은?"


"카스티야에서 온 알폰소라고 합니다. 저자와 구면인지라 어울려보는 데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보두엥은 기억을 되짚어봤다. 분명 이베리아에서 무슬림과 수많은 전투로 단련된 기사들. 그중 하나일 것이다. 당당하게 나서는 모습을 보면 그럴 터인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알폰소란 사내가 검을 빼 들고 앞으로 나섰다. 이제는 그만두라하기에도 애매한 상황이어서 보두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기사 중에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전하, 알폰소는 견습입니다. 무리입니다."


보두엥은 기뻤다. 손을 들어 오늘 입 밖으로 냈던 목소리 중 가장 큰 목소리로 외쳤다.


"싸워라, 신께서 굽어살피신다. 신께서 승자를 가리실 거다."


'이기면 좋고, 져도 견습이라면 무방하다. 딱 좋은 상황이다.'


보두엥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피었다.



***



류는 상대가 검을 빼 들고 휘두르는 모습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구면? 도대체 어디서 본 녀석일까?'


의아하게 쳐다보는 류를 알아챘는지 알폰소라는 녀석은 손을 머리 위로 쳐들고 흔들기 시작했다. 잘 가라고 배웅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야 알겠다. 귀찮은 표정으로 말을 몰고 달려와 영주가 골통이라고 한숨을 쉬던 그 녀석. 영주를 죽인 원수일 텐데도 손을 흔들며 배웅해주던 이상한 녀석.


"이것도 인연인가 보네."


류의 말에 알폰소는 방긋 웃으며 말을 엮었다.


"그러게. 그럼 잘 부탁하네. 이래 봬도 사랑하는 연인이 있어서 말이야. 죽을 수는 없으니 말이네. 실수하지 마."


그러며 자신의 목에다 손을 갖다 대고 툭툭 쳤다. 분명 목 위는 쳐서 안 된다는 얘기를 다시 하는 것이다. 류도 똑같이 웃으며 목을 툭툭 쳤다.


"너도. 적어도 난 고백이라도 해보고 싶다."


류는 주변을 둘러보다 검을 하나 얻었다. 무슬림은 예루살렘 안에서 검을 소지할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성문에서 무기를 맡길 때 무슬림이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결국 맡길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쥐어본 검은 튼튼했지만, 균형이 잘 잡히지 않은 검이었다. 두툼한 칼날인 데다가 칼끝으로 갈수록 오히려 무게가 몰려있다. 내려찍으라고 만든 검이다.


'이걸로 낙엽 베기는 힘들겠군.'


몇 번 휘둘러 검의 무게와 길이, 균형을 몸에 익혔다.




***




류는 무릎을 굽히며 중단으로 베어 들어갔다. 찌르기가 금지됐으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알폰소는 검날을 아래로 향하게 하고 막아내더니 바로 내려치기로 응수했다.


류도 검을 머리 위로 들어 내려찍는 검을 받아치고는 일어서며 어깨로 밀어버렸다. 알폰소는 의외의 공격에 뒤로 밀리면서도 자세를 잡았다.


이번에는 알폰소가 좌우로 검을 흔들며 치고 들어왔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홀 안에서 위이잉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류도 한 치도 밀리지 않은 채 받아치며 둘의 공방은 절정에 달했다.


‘녀석, 분명 결투 경험이 많은 녀석이다. 검도 수준급이다. 이 정도가 견습이라고? 말도 안 된다.’


류는 이 정도 수준이 견습기사라는 얘기에 당황했었다. 하지만 곧 이 알폰소의 실력이 일류 기사들 수준과 별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의 대결을 지켜보는 다른 기사들의 눈빛에 경악스러움이 스며들어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나에겐 아직 한 수 밑이다.’


어깨를 비워 알폰소의 공격을 유인했다. 순간 눈이 빛나며 녀석은 함정에 빠져들었다. 어깨를 비스듬히 노리고 내려치는 검은 힘찼다.


‘그렇게 맞으면 쇄골이 으스러진다고. 이 자식아.’


이를 악문 류는 앞으로 파고들면서 두 손을 꽉 쥐고 검을 어깨 위에 얹었다. 검이 맞부딪치는 순간, 두 손과 어깨의 힘으로 받아낸 류는 몸을 핑그르르 돌려 팔꿈치로 알폰소의 얼굴을 쳐버렸다.


코피가 터져 나오며 쓰러지는 와중에도 알폰소는 지지 않고 류의 허벅지를 잡고 몸을 밀어 넘어뜨리는 게 아닌가? 둘을 바닥에 엉켜 뒹굴기 시작했다. 하지만 류가 격술은 약하다고 해도, 무예에 전념한 지 얼마인가? 이리저리 서로 엉키다가 알폰소의 위에 올라탄 류의 허벅지가 알폰소의 목을 내리누르기 시작했다.


‘이겼다.’


그 순간 알폰소가 생각보다 긴 다리를 들어 무릎으로 류의 등을 찍어버리더니 몸을 일으켜 빠져나갔다. 둘은 다시 검을 집어 들었다.


서로 노려보며 대치하는 와중에 보두엥의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 얼마나 야수 같은 사내들인가? 더 싸우다가는 멋진 사내들이 다칠 게 뻔하니 이 정도로 마무리하자.”


속 보이는 수다. 이 정도로 마무리하는 게 딱 적당하다는 거겠지. 더 싸워봤자 뭐하겠는가? 류는 그렇게 마무리된 결투에 만족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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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 #10. 작지만 작지 않은 전쟁 1-1 > +10 18.07.06 4,043 98 8쪽
122 < #9. 다마스쿠스 9-2 > +14 18.07.05 3,653 100 9쪽
121 < #9. 다마스쿠스 9-1 > +8 18.07.03 3,634 99 9쪽
120 < #9. 다마스쿠스 8-2 > +10 18.07.02 3,572 96 8쪽
119 < #9. 다마스쿠스 8-1 > +16 18.07.01 3,701 94 8쪽
118 < #9. 다마스쿠스 7-2 > +25 18.07.01 3,761 96 9쪽
117 < #9. 다마스쿠스 7-1 > +8 18.06.29 3,815 92 8쪽
116 < #9. 다마스쿠스 6-2 > +16 18.06.28 3,847 98 10쪽
115 < #9. 다마스쿠스 6-1 > +12 18.06.26 3,983 101 9쪽
114 < #9. 다마스쿠스 5-2 > +8 18.06.25 3,967 107 8쪽
113 < #9. 다마스쿠스 5-1 > +15 18.06.24 4,052 100 8쪽
» < #9. 다마스쿠스 4-2 > +10 18.06.23 3,997 113 8쪽
111 < #9. 다마스쿠스 4-1 > +15 18.06.23 4,079 102 10쪽
110 < #9. 다마스쿠스 3-2 > +9 18.06.22 4,109 96 8쪽
109 < #9. 다마스쿠스 3-1 > +18 18.06.21 4,142 107 8쪽
108 < #9. 다마스쿠스 2-2 > +30 18.06.19 4,157 110 9쪽
107 < #9. 다마스쿠스 2-1 > +17 18.06.18 4,228 104 7쪽
106 < #9. 다마스쿠스1-2 > +26 18.06.18 4,214 109 9쪽
105 < #9. 다마스쿠스1-1 > +12 18.06.17 4,397 103 9쪽
104 < #8. 맘루크 10-2 > +19 18.06.17 4,130 103 9쪽
103 < #8. 맘루크 10-1 > +21 18.06.16 4,100 100 8쪽
102 < #8. 맘루크 9-2 > +12 18.06.16 3,992 97 9쪽
101 < #8. 맘루크 9-1 > +12 18.06.15 4,059 101 8쪽
100 < #8. 맘루크 8-2 > +24 18.06.14 4,191 99 8쪽
99 < #8. 맘루크 8-1 > +15 18.06.12 4,198 104 7쪽
98 < #8. 맘루크 7-2 > +15 18.06.11 4,203 107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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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 #8. 맘루크 6-2 > +12 18.06.09 4,443 104 7쪽
95 < #8. 맘루크 6-1 > +20 18.06.09 4,500 10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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