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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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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1,085,060
추천수 :
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06.24 18:49
조회
4,051
추천
100
글자
8쪽

< #9. 다마스쿠스 5-1 >

DUMMY

‘승리한 알폰소는 원하는 게 있는가?’


‘전하의 앞에서 미숙한 모습만 보여드려 송구합니다. 벌하지 않으시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럽습니다. 하지만 만약 저에게 무언가를 내려주고 싶으시다면 제가 모시던 기사님의 영지를 계속 지키고 싶습니다.’


‘그러면 널 그곳의 영주로 임명하지. 견습 따위는 지금 활약을 보면 떼어버리는 게 맞을 것이야.’


류는 보두엥과 알폰소의 대화를 들으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생각해보니 ‘다치지 않게’라는 조건이 붙었던 게 기억이 났다. 그 덕분에 코에서 피를 흘리는 저 녀석이 이긴 것인가? 류는 잠시 둘의 장난질을 바라보다가 좀 더 세게 때려버릴 걸 후회하기 시작했다.


이겼음에도 이긴 것 같지 않은 찝찝함에, 아무래도 놀아났다는 생각에 얼굴에 성이 잔뜩 났나 보다. 보두엥은 류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장난이었던지 손을 끄덕여 가까이 오라 했다.


“그래, 해 뜨는 곳에서 온 기사여. 자네의 무용담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나는 알겠다. 훌륭한 기사에게 무언가를 내려주고 싶은 게 왕의 마음. 가진 것 없는 빈한한 왕이니 이 정도로 만족해다오.”


보두엥은 손을 가리켜 벽에 장식된 검을 가리켰다. 곁에 있던 발리앙이라 불리는 대머리 사내가 걸쇠에서 빼내어 왕에게 두 손으로 바쳤다.


보두엥은 류에게 그걸 넘겼다. 두껍고 커다란 폼멜에는 자그마한 보석이 푸르게 빛나고 있었고, 검신은 예전에 선예가 줬던 것만큼 두텁고 날카로웠다. 칼받이는 작았지만 이어붙이지 않은 통짜로 튼튼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전쟁터에서 휘둘렀던 검이다. 세상에 명검이 많겠지만 그럭저럭 쓸만한 검이다. 받아다오”


사양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들어보는 순간, 묵직한 느낌에 균형이 류의 마음에 꼭 들었다. 그동안 류가 썼던 선예의 검과 느낌이 거의 같았다. 쌍둥이 같은 그런 느낌. 감사하다는 표시로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고는 검을 뽑았다. 날이 푸르스름하고 이하나 나가지 않았다.


“하마드, 너무 인상 쓰지 말게나. 몽기사르 이후에는 별로 무슬림의 피를 묻히지 않았어. 기껏해야 열대여섯?”


보두엥의 농담조에 둘러선 기사들의 낄낄거림이 시작됐다. 그러더니 그때의 얘기에 서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옛 영광의 기억이 그들에게 얘깃거리를 만들어준 것이다. 아픈 기억에 하마드만이 얼굴을 찌푸렸을 뿐이다. 아니 한 명 더 하지즈도 부들부들했지만 애써 미소를 잃지는 않았다.


“이제 손님이 쉴 시간을 드려야 할 것 같으니, 모두 물러가라.”


보두엥의 말에 기사들이 왕의 홀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왕이 일어서 자신의 방으로 향하자, 발리앙이 하마드에 다가왔고 둘은 잠시 얘기를 나눴다.


하마드는 류와 하지즈를 불러 자신은 볼일이 조금 더 있다면 숙소로 돌아가 쉬라 말했고 둘은 알았다며 말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숙소에 도착하자, 손님이 한 명 찾아왔다는 걸 알았다.


류는 피가 멈췄지만, 살짝 삐뚤어져 버린 코를 보며 ‘한 번만 더 때려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폰소는 헤어진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반갑게 류를 안았다.



***



보두엥의 내실에는 커다란 책상 위에 지도가 펼쳐져 있었고 그걸 둘러싼 채 세 사내의 열띤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 알렉산드리아와 사마다크(안티오키아의 항구도시)의 항로를 열 생각인데, 아크레를 열어달라?”


보두엥은 하마드에게 물었다. 의아한 표정이다. 이미 열린 항로인데, 중간에 기착점이 필요할까?


“그렇습니다. 저희 쪽은 배에 익숙지 못한 민족입니다. 프랑크 쪽의 그 물귀신들과는 다르죠.”


“베네치아 녀석들은 우리가 봐도 물귀신 같기는 하지. 그래도 이집트인들도 그 정도로 배에 약한 사람들이 아닐 텐데?”


보두엥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하지만 사실 이들 무슬림들은 땅 위에서는 프랑크의 기사단이, 물 위에선 베네치아의 수병들이 진절머리날 정도로 싫었을 것이다. 오히려 베네치아 수병들은 해전에서 져본 일이 없으니 보두엥조차도 물귀신이라 말할 상대였다.


“물론입니다만, 배의 크기가 문제입니다. 작은 배들로는 적재량이 적어서 멀리 나가봤자 득이 없습니다. 그래서 큰 배를 이용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엔 배의 수가 모자랍니다. 다만 아크레를 열어주시면 거길 기점으로 올라가는 배, 내려가는 배를 모두 작은 배들로 쓸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그 대신 배는 내항에는 들어올 수 없으며 비무장일 것이 조건이네. 우리 군선이 계속 화물을 확인을 할 테니 알려두고 말이야.”


“감사합니다. 전하. 저희 살라흐앗딘께서는 거래세로 화물의 10%를 넘겨드리겠다고 하십니다.”


보두엥의 간단한 허락에 하마드의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 찼지만 이벨린의 발리앙은 반대로 죽을 맛이었다. 이렇게 결정하고는 반발이 일어나면 뒷수습은 자기 몫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냥 5%로만 하게나. 사실 받고 싶지는 않지만, 보나 마나 시끄러운 영주들이 있을 거야. 입막음이라도 해야 하니 그 정도로 이해해주게나.”


“감사합니다.”


보두엥의 말에 계속 감사하다는 하마드. 보두엥은 얼굴을 살피다가 넌지시 하마드에게 말을 꺼냈다.


“우리는 알 카락의 북쪽으로 요새를 하나 건설할 것이네. 우리 영토이지만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살라흐앗딘에 양해를 구하게나.”


“그 뜻 감사합니다. 저희 술탄께서도 감사하다고 하실 겁니다.”


보두엥은 무슬림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을 향할 때 알 카락 요새 부근을 지나치지 않도록 할 생각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레널드가 난동을 부리는걸 막는 것이고, 평화는 계속 지켜질 것이다.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알 카락이 어이없게 넘어간다고 해도, 튼튼한 방어선의 한 축이 될 테니 나쁠 것은 없었다.


그런 보두엥의 배려를 하마드는 말 한마디에 꿰뚫은 것이다.


“그러면 살라흐앗딘께서는 모술은 언제 떨어뜨리려나? 이번에 하사신들도 한 방 먹였다며? 아, 알레포가 먼저인가?”


그 질문에는 곤란하다는 듯이 하마드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무조건 함구하는 것만이 예는 아닌듯하여 다시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아마, 오래 걸리지는 않으실 겁니다.”


“너무 서두르지 마시라고 전해드리게나. 다음은 우리일 터이니 밤잠을 못 자겠다고 하소연이라도 전해주면 좋겠구나.”


보두엥의 뼈있는 말에 하마드는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섰다. 그러다 고개를 돌리고 보두엥에게 살라흐앗딘의 속내를 드러냈다.


“술탄께서는 ‘길에 돌덩이가 있으면 돌아가면 된다. 다만 돌덩이가 계속 움직여 발을 막으면 어쩔 수 없지만, 그냥 돌아가도 된다면 돌을 들다가 손을 다칠 필요는 없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두엥은 하마드의 말에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마드는 보두엥의 대처에 놀라며 바닥에 엎드려 절을 올리며 받고는 종종걸음으로 어려운 자리를 피해 사라졌다.


“발리앙, 교황 폐하께 서신을 보내야겠어. 전쟁이 다시 시작되겠군. 사람이 모자라, 3차 십자군이라도 일으켜달라고 애원해야지.”


“힘 있는 왕들이 도와줘야 하는데, 관심이 없습니다. 교황께서는 군대가 없습니다.”


“뭐. 난 몇 년 안 남았어. 아니 내일 못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네. 그래도 말이야. 내 대에서 왕국을 망하게 할 수는 없잖은가?”


“글을 써주시면 사람을 골라 보내겠습니다.”


“그러세나.”


이렇게 외교라는 이름으로 서로 간의 정탐은 끝났다. 다시 불붙기 위한 때를 알았으니 준비할 것이다. 이번엔 왕국의 존폐가 결정이 날것이다.


보두엥은 방 밖으로 사라져가는 발리앙을 보며 가면을 벗었다. 어릿어릿한 모습으로 구리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무너져가는 자신의 얼굴이, 무너져가는 왕국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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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 #10. 작지만 작지 않은 전쟁 1-2 > +15 18.07.07 3,646 97 10쪽
123 < #10. 작지만 작지 않은 전쟁 1-1 > +10 18.07.06 4,042 98 8쪽
122 < #9. 다마스쿠스 9-2 > +14 18.07.05 3,653 100 9쪽
121 < #9. 다마스쿠스 9-1 > +8 18.07.03 3,634 99 9쪽
120 < #9. 다마스쿠스 8-2 > +10 18.07.02 3,572 96 8쪽
119 < #9. 다마스쿠스 8-1 > +16 18.07.01 3,701 94 8쪽
118 < #9. 다마스쿠스 7-2 > +25 18.07.01 3,760 96 9쪽
117 < #9. 다마스쿠스 7-1 > +8 18.06.29 3,814 92 8쪽
116 < #9. 다마스쿠스 6-2 > +16 18.06.28 3,847 98 10쪽
115 < #9. 다마스쿠스 6-1 > +12 18.06.26 3,982 101 9쪽
114 < #9. 다마스쿠스 5-2 > +8 18.06.25 3,966 107 8쪽
» < #9. 다마스쿠스 5-1 > +15 18.06.24 4,052 100 8쪽
112 < #9. 다마스쿠스 4-2 > +10 18.06.23 3,996 113 8쪽
111 < #9. 다마스쿠스 4-1 > +15 18.06.23 4,079 102 10쪽
110 < #9. 다마스쿠스 3-2 > +9 18.06.22 4,108 96 8쪽
109 < #9. 다마스쿠스 3-1 > +18 18.06.21 4,142 107 8쪽
108 < #9. 다마스쿠스 2-2 > +30 18.06.19 4,156 110 9쪽
107 < #9. 다마스쿠스 2-1 > +17 18.06.18 4,228 104 7쪽
106 < #9. 다마스쿠스1-2 > +26 18.06.18 4,214 109 9쪽
105 < #9. 다마스쿠스1-1 > +12 18.06.17 4,396 103 9쪽
104 < #8. 맘루크 10-2 > +19 18.06.17 4,130 103 9쪽
103 < #8. 맘루크 10-1 > +21 18.06.16 4,100 100 8쪽
102 < #8. 맘루크 9-2 > +12 18.06.16 3,991 97 9쪽
101 < #8. 맘루크 9-1 > +12 18.06.15 4,059 101 8쪽
100 < #8. 맘루크 8-2 > +24 18.06.14 4,191 99 8쪽
99 < #8. 맘루크 8-1 > +15 18.06.12 4,198 104 7쪽
98 < #8. 맘루크 7-2 > +15 18.06.11 4,202 107 8쪽
97 < #8. 맘루크 7-1 > +9 18.06.10 4,342 106 8쪽
96 < #8. 맘루크 6-2 > +12 18.06.09 4,442 104 7쪽
95 < #8. 맘루크 6-1 > +20 18.06.09 4,499 10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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