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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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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1,085,254
추천수 :
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06.14 22:25
조회
4,191
추천
99
글자
8쪽

< #8. 맘루크 8-2 >

DUMMY

"전하, 영광이 언제나 함께하실 겁니다."


들어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기'와 '레널드'.


잘생기고 인기도 많은 데다가 젊기까지 한 '기'와 저 배 볼록 이에 미친 전쟁광 '레널드'가 서로 잘 맞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혼자된 누이도 불쌍하고, 유럽의 영주들에게 병력을 지원받을 생각에 뤼지냥의 젊은 영주를 배필로 정했을 때는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사막으로 둘러싸인 섬 같은 예루살렘 왕국에는 언제나 병력이 부족했으니 말이다. '기'가 데려온 기사 오십 명은 보병을 오백 명이나 더 데려왔고 갈증 나던 병력에 한 줌 물줄기는 되었다.


그러나 뿌려진 물은 시원한 물이 아니었다. 아주 팔팔 끓는 물이었다. 겨우 화친을 맺은 살라흐앗딘을 계속 건드려대니 보두엥의 골치를 한껏 아프게만 하지 않았는가?


"예루살렘의 영광이라는 게 이리 추욱 처져 있는 게 맞는 건가?"


보두엥은 시종을 불러 부채질을 하라 말했다. 살갗이 문드러져 피고름이 터져나가는 얼굴은 미칠 듯이 간지러웠다. 칼로 긁어내도 아무 느낌이 없다가 갑자기 간지러워지면 참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도 신하들 앞에서 가면을 벗을 수 없으니 이렇게라도 하는 것이다.


아마 발리앙만 있었다면 체면은 벗어던지고 가면을 던져버렸겠지만. 이들에게는 아직 빈틈을 보여서는 안 된다.


"무슨 그런 외람된 말씀을······. 분명 신께서도 은총을 내리실 겁니다."


"그래, 신께서 은총을 내리셔서 적의 손으로 약을 가져왔네. 몸이 벌써 거뜬해지는 거 같은데 말이야. 참. 그 뜻은 헤아리기 힘들어."


기와 레널드가 고개를 살며시 들어 살피다 은가면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치자 다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기는 주눅 들지 않고 보두엥의 말에 대답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적의 진위를 잘 살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주교도 이번 일에는 우려를 표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 '기' 자네도 잠시라지만 섭정을 했었기에 말솜씨가 많이 늘었어. 처음 예루살렘에 왔을 때는 좀 수더분하니 말도 없었는데······. 차라리 난 그때가 좋았네. 여자한테도 그게 매력 있을 거야."


기 싸움이다. 대주교도 자기 쪽으로 섰다는 걸 넌지시 얘기하는 '기'나 섭정에서 물러나게 한 후 면박을 주는 보두엥이나 팽팽하다.


"뭐, 전하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지요. 충성을 의심하지는 말아주십시오. 그리고 오늘 제가 찾아온 것은 문안도 문안이지만 '레널드'의 조카 얘기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레널드'는 자신의 먼 조카가 맡은 한 요새의 일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예루살렘을 지키는 최전선의 방벽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용맹하게 달려나갔던 조카의 얘기에 오 분. 그리고 주변 동료들에게 신임받는 기사도의 화신이라는 얘기에 다시 오 분. 심지어 '투르'에서 열린 마상시합에서 우승까지 했었던 일.


보두엥의 인내심은 슬슬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그래, 알고 있네. '투르의 하얀 튤립'이라며 부인들에게 인기라던 그 애송이 녀석 말이야. 자네가 찾아와 영지를 내려달라고 애걸해서 북쪽으로 내던졌지."


레널드는 애송이라는 말에 살며시 얼굴이 붉어졌으나 아무 말도 못 하고 이마의 땀만 훔쳤다.


"그래, 내가 맡긴 건 모래바람이나 막으라는 방벽 역할을 하라는 거였어. 그런데 언제나 지나치는 베두인이나 무슬림 상인들에게 행패가 심했다는군."


"그건 오해 십니다. 조카의 무명을 듣고 찾아온 무슬림 기사들과 경기를 벌이기만 했을 뿐. 그건 모두 헛소문입니다."


"그래, 그 자랑스러운 조카가 이번엔 져버렸다지? 왜? 정당한 경기가 아니라 비겁한 술수에 넘어갔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건가?? "


부들부들하던 레널드는 이를 악물었다. 불경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주먹까지 살짝 쥐었다. 발리앙은 당황했다. 은가면 속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렇습니다. 무슬림 따위가 어떻게 제 조카를 이기겠습니까? 분명히 함정에 빠진 겁니다."


붉어진 얼굴에 이젠 침까지 튀겨가며 말을 뱉는 레널드. 의자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킨 보두엥이 다가섰다. 그래도 고개를 조아리지 않는 불경함.


"살라흐앗딘이 이번 일에 대해 사과를 해왔네. 자신들 쪽에 잘못된 일이 있으면 응당히 처분하겠다고 말이야. 난 그래서 답장을 보냈어. 그동안 있었던 잘못에 대한 신벌이 분명하다고 말이야. 그의 호의에 감사한다고 말이야."


보두엥은 발을 들어 레널드의 머리 위에 올렸다. 그리고 힘을 주어 내리눌렀다. 레널드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고개를 처박고 바둥거렸다.


"어쨌든 자네의 슬픔을 위로하며 애도하네."



***


문을 열고 나서는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보두엥은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던졌다.


"기, 이제 내 누이를 놔주게."


충격을 받은 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을 나가버렸다. 발리앙은 눈을 찔끔 감고 두통을 견디려 힘썼다. 분명 저 골칫덩이들이 일을 벌일 거고. 보두엥은 자신에게 뒤처리를 맡길 게 눈에 보였으니까 말이다.


"발리앙, 부탁하네."


"생각하신 남편감이 있나요?"


"찾아봐야지. 그리고 빨리 찾도록 하세나."


"알겠습니다.“


발리앙은 방을 나섰다. 왕의 말은 간결했다. 다음 왕좌를 굳건히 하려면 기는 배제해야 한다. 자신의 사후에 누이와 함께 왕권을 지킬만한 사람. 그런 사람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



숙영지로 돌아온 이후에 좌불안석인 날이 며칠 이어졌다. 다행히도 압둘은 입이 무거웠고, 무심한 맘루크들은 한 달 전에 늘어난 노예병 중 하나거니 하며 신경을 꺼버렸다.


"다행이군. 이제 꺼져버려. 여긴 네 원수가 모여있는 곳이야. 그러니 두 눈을 부릅뜨고 얼굴들 한 번씩 훑어본 다음에 꺼져버리란 말이다. 좀 더 커서 복수할 마음이 생기면 그때나 오라고."


류의 천막 한편을 차지한 샤아라는 꼬마는 류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있기만 했다. 한참을 기 싸움하던 둘 사이에서 덕윤만 눈치를 살며시 볼 뿐이었다.


으르렁거리며 괴롭힐 줄 알았던 류가 의외로 손대는 일이 없자, 가장 안전한 곳이 이곳이라는 걸 알아채고는 슬며시 붙어있었다. 이렇게 어색하기 그지없는 셋의 동거가 이어지고 있었다.


술을 가지고 천막 휘장을 열었던 압둘은 냉랭한 분위기에 술맛이 떨어진다며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그때 샤아가 일어나자 류가 반기며 말했다.


"그래? 마음을 먹은 거니? 어서 가라. 덕윤. 먹을 것과 담요 같은 것 좀 챙겨줘 봐."


"너도 갈 거야?"


샤아의 느닷없는 말에 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휘장 밖에서 얼쩡거리는 사내들의 모습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난 감시가 붙어있어서 말이야. 너는 신경 쓰는 사람이 없으니 괜찮겠지만 난 인기가 있어서 힘들다. 돈 필요하니?"


류는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져 돈을 적당히 꺼냈다. 맘루크들은 적당한 삯을 받는데 전쟁에 동원되다 보니 일반인들이 버는 것보단 풍족한 편이었다.


"됐어. 난 그냥 냇가에 가서 목욕이나 하려고."


샤아의 말에 잔뜩 기대했던 류의 얼굴이 일그러져갔다. 빌어먹을 골칫덩이들. 일그러지는 류의 얼굴에 덕윤은 살며시 샤아의 뒤를 쫓아 자리를 피했다.


"아···. 머리야.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지?"


그때 조용해진 천막에 압둘이 술을 들고 찾아왔다. 같이 마실만 한 이들이 없었나 보다. 그제야 며칠 만에 류의 얼굴에 기쁜 표정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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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 #9. 다마스쿠스1-2 > +26 18.06.18 4,214 109 9쪽
105 < #9. 다마스쿠스1-1 > +12 18.06.17 4,397 103 9쪽
104 < #8. 맘루크 10-2 > +19 18.06.17 4,130 103 9쪽
103 < #8. 맘루크 10-1 > +21 18.06.16 4,100 100 8쪽
102 < #8. 맘루크 9-2 > +12 18.06.16 3,992 97 9쪽
101 < #8. 맘루크 9-1 > +12 18.06.15 4,059 101 8쪽
» < #8. 맘루크 8-2 > +24 18.06.14 4,192 99 8쪽
99 < #8. 맘루크 8-1 > +15 18.06.12 4,198 104 7쪽
98 < #8. 맘루크 7-2 > +15 18.06.11 4,203 107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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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 #8. 맘루크 6-2 > +12 18.06.09 4,443 104 7쪽
95 < #8. 맘루크 6-1 > +20 18.06.09 4,500 10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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