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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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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1,085,251
추천수 :
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06.09 22:25
조회
4,442
추천
104
글자
7쪽

< #8. 맘루크 6-2 >

DUMMY

찰나의 엇갈림으로 승패는 결정 났다.


류는 극을 들어 땅에 떨어진 투구를 들어 올렸다. 머리에서 빗겨 날아가는 순간 움푹 파여버려 있었다. 문양도 잘 새겨진 좋은 물건이었는데. 뭐 좋다. 이런 식으로 결딴날 물건이었어도 목숨을 살렸다. 그거면 족한 거 아닌가?


돌아오자마자 하지즈가 호들갑을 떨었지만, 류는 손가락을 다섯 개 남았다고 보여줬다. 하지즈의 호들갑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사 개월 이십오일."


조용히 읊조린 말에 하지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뭐라고 구시렁대려다 맘루크들의 환호성에 묻혀버렸다. 잔뜩 기세가 오른 맘루크들은 달려나가고 싶어 몸을 들썩였다.


"그만둬. 필요 없는 싸움을 할 필요는 없다. 내가 이번 싸움을 시작했으니 마무리한 것으로 놓아둬 줘."


류가 외치자 맘루크들은 흥분을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그래도 몇몇은 대열을 뛰쳐나가려 소란을 피웠다. 다행히도 상대는 목이 꺾여 죽은 영주를 둘러업더니 조심스레 병력을 무르기 시작했다.


협곡을 지날 때 분풀이를 하듯이 몇 번 화살 세례가 쏟아졌지만, 방패를 머리 위에 짊어진 용병대는 피해 없이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한참을 지나쳤을 때 류의 눈에는 망루에 서서 바라보는 사내가 보였다.


한참이나 자신의 주군을 욕하던 그 사내. 류와 눈이 마주치자 사내는 주변을 살피더니 손을 흔들어줬다. 흡사 고맙다는 듯이 말이다.


"웃기는 녀석이군."



***



하지즈는 말을 몰아 류의 곁으로 다가왔다. 말머리를 같이 하는 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꾹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뭡니까? 말 돌려달라고요? 지금 내릴까요?"


류는 넌지시 물었다. 오랜만에 말을 타니 기분이 좋았기도 했고, 틈이 난다면 도망치기도 편하니 놓고 싶지 않았다.


"도망치지 않겠다면 타도 무방하다."


하지즈의 대답은 의외였다. 왜냐면 류가 생각하는 것보다 하지즈의 기쁨이 컸던 것이었다.


"난 아스칼론 탈환 때 살라흐앗딘의 하급 장수 중에 하나로 참전했다. 우린 이만 아니 거의 삼만 명이나 됐지. 아스칼론만 무너뜨리면 바로 예루살렘이었어. 그때 그 환희를 넌 모를 거야."


어느새 고삐를 놓은 채 하지즈는 눈앞에 어루만질 게 있는 듯 손을 내밀어 쓰다듬고 있었다.


"아···. 흥분했군. 우리 무슬림들에겐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넌 모르겠지."


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어질 얘기는 대충은 알고 있었다. 전에 구해서 읽어본 '알하미르의 전쟁사'에도 나온 얘기니까 말이다.


"그런데, 겨우 천명? 아니. 한 오백 명이나 될까 말까 한 기사들이 달려들었어. 그 충격? 생각하기도 싫었지. 짓밟혀나가는 보병들. 술탄의 곁에서 목숨을 걸고 달려들던 쿠르드 친위대의 비명. 녀석들이 진을 뚫고 나갔다가 다시 달려들 때 뿌옇게 하늘을 가리던 먼지구름."


"철기들은 무섭지. 뭉쳤을 때의 위력이라면 충분한 일이야."


태평루에서 조왕의 철기병 오백은 황제의 턱 끝까지 닿았다. 전쟁은 기세의 싸움이다. 덩어리의 싸움이다. 힘과 힘이 맞부딪치는 것이다. 겪어봤으니 알고 있었다.


"그래, 몽기사르 전투. 악몽이었지. 그때부터 우리 술탄께서도 기사들과 맞붙을 기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지. 그때부터 타와시라고 중기병들을 키우고 말이야."


"돌려 말하는 건 하지즈하고 어울리지 않습니다."


"음···. 만약에 너만큼의 타와시가 여럿 있다면 말이야. 널 놔줘도 쓰린 속이 덜 하지 않을까 해서 말이야. 뭐, 돈도 많이 들겠지. 무구도 좀 해볼 만한 거로 준비해야 하고. 말도 커다란 준마로 준비하고 말이야."


솔깃한 제안이다. 목숨을 걸고 나설 기병들을 몇 육성해주면 놔주겠다는 얘기 아닌가?


"병사 중에 말을 잘 타는 투르크 녀석들이 여럿 있다. 그중에 힘이 세고 건장한 녀석들을 골라줄게. 가르쳐라. 그러면 나도 적당히 손을 내밀어줄 테다."


"이거 잘하면 내가 부관 자리로 올라가겠군요."


류는 하지즈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하지만 하지즈는 정색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건 안돼. 부관 녀석, 능력은 없어도 십 년 동안이나 내 곁에 붙어있었다. 집안이 몰락할 때도 날 택해서 따라다닌 녀석이야. 대신 맘루크들의 지휘관 정도는 가능하겠지. 그래도 부관 밑이다."


하지즈의 연이은 말에 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한낱 노예 병사가 아니라 당당한 자신의 측근 대우가 아닌가?


"당황스럽네요. 하지즈. 사실 당신은 용병대 대장보다는 장사치 같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통이 크군요. 아니 용병술이 뛰어나다고 해야 하나?"


"바보 녀석이군. 장사치가 맞다. 장사치가 어때서? 싸움만 잘한다고 군대를 이끈다는 건 바보들 생각이다. 이 오백 명을 먹여 살리고, 무기를 쥐여주고, 적당한 일거리를 찾는 거. 그 모두 다 머리 굳은 놈들은 안 되는 거야."


물건을 흥정하는 모습이 보인다. 상대가 가격을 제시했으면 '싫다. 좋다.' 얘기해야 하는 법이다.


"좋아요."


류가 담담히 수락하자, 하지즈는 한층 들뜬 모습으로 자신이 그리는 미래를 설명했다.


"그렇지. 술탄이 친정을 나서는데 그 악마 놈들이 말이야. 예전처럼 달려드는 거야. 그때 거들먹거리던 아미르들과 장수들이 겁을 먹고 살며시 몸을 뺄 거지. 눈앞에는 거대한 먼지구름이 휘날리고 술탄께서는 눈을 질끈 감으시고 신의 가호를 빌 거야."


"네, 그때 하지즈의 타와시가 앞을 가로막는군요."


"그렇지. 그러면 바로 나도 중요한 지역의 아미르가 될 거다. 혹시 아나? 이집트의 총독으로 보내실지. 암. 그렇지."




***




용병대가 행군을 마쳤을 때 모두 녹초가 되었다. 류도 말을 탔으니 말이지. 다른 맘루크처럼 걸었다면 분명 뻗었을 것이다.


"이틀 동안 이곳에 쉰다. 그다음에는 일해야지."


부관의 말에 모두 천막을 치고는 첫날은 그냥 뻗어버렸다. 하지만 그다음 날부터는 조금씩 기어 다니는 녀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류는 다들 힘들어하며 감시가 소홀할 때 기회를 엿봤다. 하지만 녹록하지는 않았다. 하지즈가 붙인 감시들은 볼일을 보러 갈 때조차도 따라붙었고, 야영지의 바깥은 기병들이 두셋씩 돌아가며 엄중하게 감시하고 있었다.


게다가 맘루크들의 천막을 둥글게 감싼 건 하지즈의 병사들이었고 말이다.


'아무래도 한바탕 싸움이 벌어질 때나 기회가 있을까?'


무리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류는 하지즈가 선발한 투르크 기병 넷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들도 분명 말에서 태어나고 말에서 자란 이들이 분명했다.


'기마술은 야초오가 더 나았고, 말 위에서 창술은 형이 최고였다. 난 어느 정도일까?'


그런 궁금증을 풀기도 전에 하루는 금세 지나갔고 다음 날 용병대는 길을 다시 나섰다. 험준한 산을 향해 구불구불 나가는 용병대의 꼬리가 길어졌다. 류는 하지즈의 곁에서 천천히 말을 몰았다. 중얼거리는 하지즈의 혼잣말이 신경 쓰였다.


'신이시여. 용서하소서.‘


작가의말

오늘도 연참이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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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 #10. 작지만 작지 않은 전쟁 1-1 > +10 18.07.06 4,043 98 8쪽
122 < #9. 다마스쿠스 9-2 > +14 18.07.05 3,653 100 9쪽
121 < #9. 다마스쿠스 9-1 > +8 18.07.03 3,634 99 9쪽
120 < #9. 다마스쿠스 8-2 > +10 18.07.02 3,572 96 8쪽
119 < #9. 다마스쿠스 8-1 > +16 18.07.01 3,701 94 8쪽
118 < #9. 다마스쿠스 7-2 > +25 18.07.01 3,761 96 9쪽
117 < #9. 다마스쿠스 7-1 > +8 18.06.29 3,815 92 8쪽
116 < #9. 다마스쿠스 6-2 > +16 18.06.28 3,847 98 10쪽
115 < #9. 다마스쿠스 6-1 > +12 18.06.26 3,983 101 9쪽
114 < #9. 다마스쿠스 5-2 > +8 18.06.25 3,967 107 8쪽
113 < #9. 다마스쿠스 5-1 > +15 18.06.24 4,052 100 8쪽
112 < #9. 다마스쿠스 4-2 > +10 18.06.23 3,996 113 8쪽
111 < #9. 다마스쿠스 4-1 > +15 18.06.23 4,079 102 10쪽
110 < #9. 다마스쿠스 3-2 > +9 18.06.22 4,109 96 8쪽
109 < #9. 다마스쿠스 3-1 > +18 18.06.21 4,142 107 8쪽
108 < #9. 다마스쿠스 2-2 > +30 18.06.19 4,157 110 9쪽
107 < #9. 다마스쿠스 2-1 > +17 18.06.18 4,228 104 7쪽
106 < #9. 다마스쿠스1-2 > +26 18.06.18 4,214 109 9쪽
105 < #9. 다마스쿠스1-1 > +12 18.06.17 4,397 103 9쪽
104 < #8. 맘루크 10-2 > +19 18.06.17 4,130 103 9쪽
103 < #8. 맘루크 10-1 > +21 18.06.16 4,100 100 8쪽
102 < #8. 맘루크 9-2 > +12 18.06.16 3,992 97 9쪽
101 < #8. 맘루크 9-1 > +12 18.06.15 4,059 101 8쪽
100 < #8. 맘루크 8-2 > +24 18.06.14 4,191 99 8쪽
99 < #8. 맘루크 8-1 > +15 18.06.12 4,198 104 7쪽
98 < #8. 맘루크 7-2 > +15 18.06.11 4,203 107 8쪽
97 < #8. 맘루크 7-1 > +9 18.06.10 4,342 106 8쪽
» < #8. 맘루크 6-2 > +12 18.06.09 4,443 104 7쪽
95 < #8. 맘루크 6-1 > +20 18.06.09 4,500 10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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