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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대체역사

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1,085,187
추천수 :
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06.17 17:39
조회
4,396
추천
103
글자
9쪽

< #9. 다마스쿠스1-1 >

DUMMY

하지즈는 조용히 천막의 문 쪽이 아니라 뒤쪽을 들고 사라지는 알마릭을 보았다. 천막을 고정하는 줄 중 하나를 끊어내고 몰래 들어왔었던 것 같다. 거세게 바람이 불자 펄럭거리며 소리가 요란했다.


휘날리는 천막 천 너머로 알마릭이 말을 올라타고 달리는 걸 지켜보았다.


‘젠장, 너무 풀어놓아 줬나? 용병 쓰레기들이라도 나름 군대인데 말이야.’


하지즈는 슬쩍 목을 매만져봤다. 하사신들도 저 알마릭처럼 다가와 침상에 누운 자신의 목을 가르지 말란 법이 있는가? 종이를 다시 슬쩍 읽어보던 하지즈는 내용에 만족했다.


「알마릭과 앗산의 비밀을 지키는 데 도움을 준 하지즈에 향후 영구적인 편의를 봐줄 것을 신의 이름으로 맹세한다.」


어차피 서로 펼쳐 보이지 못할 약속이니 제대로 자세하게 적자고 했으나, 알마릭은 그것까지는 안된다고 고개를 저었다. 아마 이런 일에는 익숙지 않은 무인임에 틀림없었다.


“이봐, 누구 있으면 부관을 불러와.”


한창 왁자지껄한 소란 속에 하지즈의 고함이 들리지 않는지 대꾸가 없었다. 몇 번을 부르다 포기한 하지즈가 천막을 나섰다. 보초는 없었다. 어디선가 이리저리 섞여 술이라도 퍼마시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젠장, 이럴 때 습격이라도 당하면 몰살이겠군.”


발걸음을 재게 움직인 하지즈는 천막 몇 개를 뒤져 반쯤 얼큰하게 취해가던 부관을 찾아냈다. 한참 즐기던 부관은 하지즈에 술이라도 들라며 권했다가 꾸지람만 들었다.


“부하들을 모아라. 맘루크는 말고, 병사 중에 힘쓸만한 녀석만 이삼십 명으로 말이야. 제대로 무장시키고 말이야. 다 모으면 나를 찾아와라.”


갑작스러운 하지즈의 말에 부관은 당황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궁금했다. 아까 잔치를 열라며 한껏 웃던 표정과 지금의 잔뜩 굳은 얼굴은 너무나 달랐다.


“하지즈님,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물건에 기름칠을 더해달라는 녀석들이 있어서 말이야. 팔려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당최 알 수 없는 얘기를 한다며 속으로 투덜거리던 부관은 고개를 다시 끄덕이고는 병사들이 모여있을 만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얼마 걷기도 전에 하지즈의 말이 나지막이 들렸다.


“아, 소란스럽지 않게 말이야. 쥐들이 뒷발을 들고 살금살금 걷듯이 말이네.”



***



압둘은 곤드레만드레 취한 채 쓰러졌다. 약간 얼굴이 붉은 류는 하지즈가 준 술은 단 한 잔만 마시고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가? 류의 길지 않지만 짧지도 않았던 일생을 되짚어보면 마음을 놓았을 때는 언제나 일이 벌어졌다. 마음을 놓는 건 가족들을 만날 때 하기로 맹세했다.


샤아는 조용히 구석에서 옷가지를 챙기고 있었고, 덕윤은 류의 눈치를 보다가 귀한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귀하지만 너무 독했나 보다. 류가 별 얘기하지 않고 눈을 감자, 따랐던 술을 마저 털어 넣고는 샤아를 도와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드르렁거리는 압둘의 콧소리와 떠들썩하게 바깥에서 들려오는 맘루크들의 주사 소리만이 천막의 적막을 깨고 있을 뿐이었다.


“역시 너무 쉽더라.”


류가 선예에 받았던 검을 끌어당겨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무슨 얘기인가? 쫑긋거리며 샤아와 덕윤이 류를 쳐다봤다. 그때 휘장이 들썩거리더니 하지즈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즈의 바로 곁에는 손을 검 손잡이에 댄 채 따라 들어오는 부관과 병사 몇이 있었다. 잔뜩 긴장한 얼굴이다.


불빛에 비치는 천막 천 조각 너머로 병사들이 에워싸는 게 그림자로 너울거리고 있었다.


“마음이 바뀐 거요? 하지즈?”


“이걸 보게나, 내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하지즈의 손에서 종이를 낚아챈 샤아가 류에게 가져다주었다. 흘끔 쳐다봤지만, 샤아는 글을 몰랐다. 받아든 채 읽어내려가던 류는 웃었다. 역시 예상대로구나. 그런 표정이었다.


“결국, 죽여서 입을 막는 게 최고다. 그런 거군요. 참 편한 방법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하지즈?”


“그게 가장 간편하기는 하지.”


“그렇죠. 그러면 앉아서 죽을 생각은 없으니, 제 검을 받아내야 할 겁니다. 참, 압둘은 나하고 친하기는 해도 당신과 싸울 생각은 없을 겁니다. 그러니 놔두시죠.”


툭 튀어나온 배를 어루만지며 잠에 한창인 압둘은 이 소란을 모르고 거친 숨을 몰아쉴 뿐이었다. 눈치가 빠른 샤아는 어느새 단검을 주어 들고 류의 옆에 다가가 섰다. 사이에 끼어버린 덕윤은 어쩔 줄 몰랐다가 천막 가운데서 불타고 있던 모닥불에서 기다란 나뭇조각을 들었다. 끝은 숯덩이처럼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타닥타닥 불꽃을 흩날렸다.


“참나, 부관. 이거 훈련을 다시 시켜야겠어. 감히 주인에게 반항하려 하고 말이야. 애송이 녀석들은 빠져라.”


류는 당황스러웠다. 별로 정을 준 적도 없는데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겠다니. 당황스러운 건 당연했다. 샤아라는 꼬마는 모르겠지만 덕윤이 마저 그럴 줄이야. 길동무로 데려가는 건 찝찝한데······. 입을 열어 이들에게 관용을 베풀어달라고 하려 할 때, 먼저 입을 연 건 하지즈였다.


“난 고민이다.”


“뭐가?”


“넌 많이 받아낼 수 있는 녀석이야. 이 정도로 파는 게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좀 더 받을 수 있을 거 같은데 말이야.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귀찮기도 해. 그냥 팔아버릴까? 이렇게 고민 중이라는 말이지.”


“그냥 빨리 결정해.”


류가 검을 살며시 뽑기 시작했다. 노려보는 눈빛이 날카롭다. 그 모습에 하지즈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래, 결정했다.”



***



하마드는 피곤함을 감추지 못했다. 일족의 원로들이 주변을 둘러싼 채 이런저런 다툼에 대해 조언을 멈추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봐, 하마드. 자네는 그 미천한 튀르크 용병한테 충성한다는 게 바르다고 보는 건가? 장기의 부하 녀석이었던 녀석이 결국 군대도 빼앗고 부인도 빼앗고······. 우린 인정할 수 없어.”


“그래도, 이집트와 다마스쿠스 두 곳의 술탄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지금 적을 앞에 두고 아직도 신분 얘기입니까?”


하마드는 속이 뒤집혀 하얀 수염을 휘날리는 노인에게 날 선 대답을 했다. 그 노인의 눈은 날카로워지더니 자신의 자리로 뒤돌아가 앉았다. 하지만 하마드의 귀에는 또렷이 들렸다.


‘쳇, 노예의 자식이었던 녀석이라 그런지 동질감이라도 느끼는 건가?’


선대 족장이었던 아버지가 수발을 들던 미천한 여자를 건드렸다. 그래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게 하마드였다. 아직도 원로들은 살라흐앗딘과 하마드를 신분 때문에 출세에 눈이 먼 미치광이로 보는 듯했다. 노인은 곁에 앉은 노파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하마드를 훔쳐봤다.


곁에서 귀를 들이대지 않아도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것 같았다.


노인들의 얘기를 귀로 흘려들으며 자신을 노려보는 한 중년 여자의 눈살에 하마드는 머리마저 아팠다. 야스암. 한때는 좋아하지 않았었나? 그런데 이제는 원수를 쳐다보는 눈빛 아닌가? 한때는 열렬히 사랑하지 않았었나? 신분 때문에 정실 어머니 밑에서 난 동생을 선택할 때도 하마드는 원망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아직도 동생의 죽음이 하마드 때문이라고 원망하는 건 그녀일 뿐. 어쩌다 얘기를 나누게 되면 차가운 목소리로 ‘어서 앗산에게 족장을 넘기고 사라지세요.’ 이렇게 쏘아붙이니 미칠 지경이었다.


“원로님들, 오늘 일이 무슨 중요한 일이라고 이렇게들 모입니까?”


하마드는 방안의 의자에 모여앉은 원로들을 둘러봤다. 야스암이 제일 젊은 축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오늘내일하는 고리타분한 늙은이들. 그래도 이들의 눈 밖에 나면 씨족들이 갈가리 흩어질 터이니 홀대할 수도 없었다.


“하마드, 우리 부족에 충성하는 외부인들의 인사 아닌가? 예전부터 그랬네. 족장만이 힘을 갖는 걸 서로 견제하려는 전통 아닌가?”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원로들은 이번 하사신 토벌 때 힘을 보탠 용병대장들을 하나하나 맞으며 인사를 주고받았다. 하마드가 일족의 군대를 대신할만한 세력을 가지는 것이 못마땅했으니까 말이다. 눈인사를 주고받은 용병대장 중 몇은 몰래 불러 밀약을 맺을 것이다. 후에 다툼이 일어나면 족장이 아니라 원로들 편을 들라고 하면서 말이다.


“알았습니다. 알마릭, 다음은 누구신가?”


“하디타의 하지즈 십니다.”


방을 들어서는 문과 나서는 문은 달랐다. 서로 칼을 나누던 용병대장끼리 만나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으니 말이다. 복도의 작은 방에서 차를 대접받으며 지루한 시간을 기다리다 조용히 부르면 문을 열고 복도를 지나 들어설 뿐이었다.


시종들이 문을 열자, 뚱뚱한 사내가 웃으며 들어와 고개를 조아렸다. 고개를 드니 긴장한 표정의 알마릭, 그리고 앗산이 노려보고 있었다. 입조심을 하라는 무언의 경고였을 것이다. 하지즈는 그냥 웃었다.


“안녕하십니까? 하지즈라고 합니다.”


작가의말

에라이 쏟아내자. 어제에 이어 오늘도 연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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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 #10. 작지만 작지 않은 전쟁 1-2 > +15 18.07.07 3,646 97 10쪽
123 < #10. 작지만 작지 않은 전쟁 1-1 > +10 18.07.06 4,042 98 8쪽
122 < #9. 다마스쿠스 9-2 > +14 18.07.05 3,653 100 9쪽
121 < #9. 다마스쿠스 9-1 > +8 18.07.03 3,634 99 9쪽
120 < #9. 다마스쿠스 8-2 > +10 18.07.02 3,572 96 8쪽
119 < #9. 다마스쿠스 8-1 > +16 18.07.01 3,701 94 8쪽
118 < #9. 다마스쿠스 7-2 > +25 18.07.01 3,761 96 9쪽
117 < #9. 다마스쿠스 7-1 > +8 18.06.29 3,814 92 8쪽
116 < #9. 다마스쿠스 6-2 > +16 18.06.28 3,847 98 10쪽
115 < #9. 다마스쿠스 6-1 > +12 18.06.26 3,983 101 9쪽
114 < #9. 다마스쿠스 5-2 > +8 18.06.25 3,967 107 8쪽
113 < #9. 다마스쿠스 5-1 > +15 18.06.24 4,052 100 8쪽
112 < #9. 다마스쿠스 4-2 > +10 18.06.23 3,996 113 8쪽
111 < #9. 다마스쿠스 4-1 > +15 18.06.23 4,079 102 10쪽
110 < #9. 다마스쿠스 3-2 > +9 18.06.22 4,109 96 8쪽
109 < #9. 다마스쿠스 3-1 > +18 18.06.21 4,142 107 8쪽
108 < #9. 다마스쿠스 2-2 > +30 18.06.19 4,157 110 9쪽
107 < #9. 다마스쿠스 2-1 > +17 18.06.18 4,228 104 7쪽
106 < #9. 다마스쿠스1-2 > +26 18.06.18 4,214 109 9쪽
» < #9. 다마스쿠스1-1 > +12 18.06.17 4,397 103 9쪽
104 < #8. 맘루크 10-2 > +19 18.06.17 4,130 103 9쪽
103 < #8. 맘루크 10-1 > +21 18.06.16 4,100 100 8쪽
102 < #8. 맘루크 9-2 > +12 18.06.16 3,991 97 9쪽
101 < #8. 맘루크 9-1 > +12 18.06.15 4,059 101 8쪽
100 < #8. 맘루크 8-2 > +24 18.06.14 4,191 99 8쪽
99 < #8. 맘루크 8-1 > +15 18.06.12 4,198 104 7쪽
98 < #8. 맘루크 7-2 > +15 18.06.11 4,202 107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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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 #8. 맘루크 6-2 > +12 18.06.09 4,442 104 7쪽
95 < #8. 맘루크 6-1 > +20 18.06.09 4,500 10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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