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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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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1,085,059
추천수 :
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06.17 10:25
조회
4,129
추천
103
글자
9쪽

< #8. 맘루크 10-2 >

DUMMY

류는 갑작스러운 하지즈의 변화에 사뭇 놀랐다. 알마릭의 말 이후에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막 대할 사람이 아니란 걸 인정해버린 것이다.


"편하게 말이야. 천막도 옮기고 말이야. 시중들 아이들도 몇 보내주지. 아 그리고 술을 조금 했지만 말이야. 괜찮지? 내가 좋은 술이 좀 있어서 그것도 보내줄게."


하지즈의 눈동자는 이리저리 구르며 머리가 핑그르르 회전하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게 사람 말을 믿었어야지. 차라리 날 그때 하마드에 보내줬으면 이렇게 척을 질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야."


넌지시 협박하듯이 말하자 하지즈는 움찔거렸다. 하지만 특유의 넉살을 보이며 기분을 풀려고 애를 쓰기 시작했다.


"그건 신께 맹세코 모두 내 잘못이네. 내가 자네라는 원석을 보고는 욕심에 눈이 먼 것이지. 사실 자네가 너무 뛰어난 것도 내 눈을 가리는데 한몫을 했으니 모두 내 탓이라고만 하지 말게나."


하지즈는 천막 밖으로 류를 떠밀다시피 하더니 손님들이 기거하도록 만든 화려한 천막 쪽으로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남자끼리 남사스러워 뿌리쳤지만, 류도 더 박정하게 대꾸하지는 않았다.


"도시에서 오늘 저녁 데리고 올 아이들이 원래 있었는데 말이야. 그중의 하나가 손재주 하나는 대단하더라고. 피로도 좀 풀고 말이야. 아이고 이거 어깨가 뭉쳤구먼."


슬그머니 목 뒤에 손을 댄 하지즈는 살짝 주무르기까지 했다. 류는 순간 소름이 돋았지만, 그냥 놔뒀다. 하지즈는 그새 류가 마음을 풀었다고 생각하고는 설레발을 치기 시작했다.


"이봐! 부관. 제대로 된 식사를 준비하게. 오늘 우리 류가 좋은 술에 만취할 텐데. 속을 버리면 안 되지!"


류는 하지즈의 고함에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고생. 가족과 떨어짐. 이것이 안개 낀 호수 같았다면 지금은 안개가 서서히 물러나며 아름다운 야경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반짝거리는 물결에 일렁이는 달그림자까지 말이다.


"하지즈, 고마워. 좀 쉴게."


류가 기분 좋게 말하자, 하지즈는 기분 좋다는 듯이 한껏 웃었다. 그러다가 류의 등을 두들기고는 부관에게 들뜬 목소리로 얘기했다.


"부관. 기분이다. 오늘 모두 잔치야. 술을 뿌려라!"


소란스러운 병영을 바라보다 류는 손님용 천막으로 들어서려 했다. 쭈뼛거리며 슬그머니 쳐다보는 덕윤이 보였다. 압둘과 샤아는 허락하지도 않았지만 당당하게 류를 제치고 천막으로 들어가 버렸다.


류는 덕윤에게 손짓해 들어오라 했다. 녀석은 류가 들어설 때까지 기다리다 들어가 버리자 소리도 내지 않고 발끝을 들어 살그머니 들어왔다.


'좀 풀어줄까?'


아니다. 그간 고생을 한 걸 생각하면 좀 더 굴려야겠다. 이곳에 놓고 가면 더 굴리기 힘드니 하지즈에 부탁할 생각이다.


평생 곁에 두고 굴려야겠다. 압둘이 차려진 술상 옆에 앉더니 술병의 마개를 열어젖혔다. 향긋한 냄새가 천막 안을 가득 채운다. 류와 압둘의 얼굴이 환해졌다.




***



앗산은 굳은 얼굴로 말을 달리는 알마릭을 슬쩍 쳐다봤다. 얼굴 가득 화가 치밀어 오른 것 같았다. 그래도 이렇게 돌아가서 백부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수는 없다.


"아···. 알마릭. 녀석을 죽였어야 했어. 안 그러면 우리 일족의 명성에······."


"그 입 다무십시오."


주변의 기병들은 험상궂은 말투에 슬며시 거리를 벌려 바깥으로 대형을 벌렸다. 윗사람들의 다툼에 끼어들어봤자 좋을 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알마릭도 류를 죽여서라도 입을 막고 싶었다. 하지만 느닷없이 싸움이 벌어진다면? 용병들이 달려들지 않을까? 게다가 류는 두꺼운 갑옷으로 몸을 에워싸고 있었다. 분명 알마릭의 검을 받아내고는 앗산의 목을 꺾어버렸을 것이다.


한참을 달리던 알마릭은 말의 고삐를 당겨 세웠다. 말이 거칠게 멈추더니 투레질하며 한 바퀴를 돌았다. 알마릭의 눈에 떠나온 병영이 보였다. 어스름 속에 이곳저곳 불이 밝혀지자 커다란 도시 같았다. 황폐한 초원 한가운데에 있는 병영은 그것 자체로 온기를 지닌 듯 따스해 보였다.


옆에는 잔뜩 주눅 든 앗산이 말을 몰아 다가왔다. 아버지에게 꾸지람 듣기 직전의 꼬마 같다.


몽기사르에서 아신 일족은 살라흐앗딘의 곁을 지켰다. 튀르크 친위대가 무너질 때도 하마드와 알마릭, 앗산의 아버지는 목숨을 다해 버텼다. 그 덕에 술탄은 몸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마드는 동생을 잃었고, 알마릭은 두 형을 잃었다. 수많은 일족이 가족을 잃었다. 술탄은 칭찬했지만, 상처 입은 일족을 다시 전쟁터로 내보내기 싫었던 하마드는 여행을 자처했다. 그리고 원로들은 몇 년간 족장의 부재를 핑계로 전쟁에서 발을 뺄 수 있었다. 아마 그 마음을 살라흐앗딘도 알았을 것이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하마드는 동생의 유일한 혈육인 앗산을 아꼈다. 모자랐지만 애써 키웠다. 그러나 오늘 사실을 알면 하마드는 분명 차기 족장의 후보에서 앗산을 내칠 것이다. 가슴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말이다.


"아···. 알마릭, 실수였어. 예전에 겁쟁이였던 거야. 그런데 난 겁쟁이면 안 됐어. 그래서 거짓말쟁이도 됐어.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 그···. 그렇지만 이건 나의 망신만이 아니라······."


"먼저 가십시오. 전 머리 좀 식히고 가겠습니다."


알마릭은 말에서 내려 광활한 평원을 살폈다. 이젠 어둠이 잔뜩 내리기 시작했다.


"그···. 그러면 먼저 가겠네."


"방에서 혼자 자숙하고 계십시오. 곧 뒤따라 갈 테니까요. 너희들! 도련님을 잘 모셔라."


기병들이 다가와 앗산을 에워쌌다. 무리가 다시 먼지를 일으키며 사라지자 알마릭을 주저앉아 어둠 속에 빛나는 병영을 구경했다.


잠시 마음을 추스른 알마릭은 말에 올라 병영을 향해 달렸다.



***


흡족한 표정으로 하지즈는 천막으로 돌아왔다.


물건에 문제가 좀 있었지만, 자신의 문제는 아니었으니까. 아마 그 애송이 녀석은 족장에게 크게 혼날 테지만 하지즈 자신의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류도 이제는 기분을 푼 것 같았다. 사실 근래 요즘 잘 대해준 것도 있고 오늘 통 크게 대접까지 하니 안 풀어진다면 이상할 것이다.


일 년 반의 시간을 뺏겼지만 이미 지난 시간이고, 오해 아니던가? 그렇게 마음 편한 대로 하지즈는 생각하고 있었다.


'계속 잘해주는 것보다는 어쩌다 한 번씩 챙겨주는 게 낫다니까.'


끌끌 혀를 차며 천막의 휘장을 걷고 들어서던 하지즈는 흠칫 놀라 서버렸다. 천막 안의 의자에는 한 사내가 앉아있었다. 그는 어서 오라며 손짓을 했고, 하지즈는 다가가 마주 앉았다.


"아까 얘기가 끝난 게 아니었습니까?"


"다 못한 얘기가 있어 저만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알마릭의 표정을 살피던 하지즈는 살기 어린 눈빛에 슬그머니 주변에 놓인 무기를 찾아보았다. 몸을 던질 거리에 장검이 하나 있지만 달려들기도 전에 허리가 반 토막이 날 게다. 고개를 흔들며 포기했다.


그러면 싸움은 입으로 할 수밖에.....하지즈는 묻기 시작했다.


"얘기란 것이 무엇인지요?"


"내일 출발하실 때 류는 데려오지 않았으면 합니다."


하지즈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훔쳤다. 빌어먹을. 유명한 부족들은 늘 이런 식이다. 하지즈의 대답이 없자 알마릭은 물건의 값을 올렸다.


"아까 그분의 실수. 우리 일족에서는 큽니다. 애송이처럼 보였겠지만 차기에는 족장이 될 겁니다. 이번에 우리를 도와준다면, 그리고 입을 다물어 준다면 말이오. 앞으로는 우리가 챙겨주겠소."


"데려오지 않는다? 그냥 제가 데리고 있으면 되는 건가요?"


하지즈의 물음에 알마릭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티푸스나 열병이나 이런 환경에서는 잦은 일이 아닙니까? 시름시름 앓던 노예를 땅에 묻고는 불태웠다. 전염병이 퍼지지 않으려면 보통 그렇게 하지 않나요?"


"저도 보증이 있어야 합니다. 술탄이 찾는 사람을 죽이라는 얘기인데. 잘못돼서 나 혼자 뒤집어쓸 수는 없습니다."


그 말에 알마릭은 탁자에 있던 종이를 집어 들었다. 그러더니 아낌없이 지원하겠다는 내용을 적고는 반지의 인장을 눌러 찍어서 건네줬다.


적은 내용을 쳐다보던 하지즈는 씨익 웃더니 종이를 두 갈래로 찢어버리고 다른 종이를 내밀었다.


"제가 부르는 대로 적으시지요.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알마릭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줄 한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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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 맘루크 10-2 > +19 18.06.17 4,130 10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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