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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천광야 님의 서재입니다.

청세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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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천광야
작품등록일 :
2011.01.28 13:23
최근연재일 :
2011.01.28 13:23
연재수 :
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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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739
추천수 :
209
글자수 :
212,876

작성
10.01.27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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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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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제 3장. 카이젤. 3

DUMMY

"벽보를 보고 왔습니다만."

병사는 블랙을 보고 흠칫 놀란다. 자칫하면 창까지 들이내밀 기세다. 물론 생긴 것이 그리 못난 것은 아니다만, 병약하다 싶을 정도의 새하얀 피부. 그리고 웃어본 적이라고는 난생 없어 보이는 표정. 그럼에도 무서울 정도로 빛나는 검은 눈동자. 낮이 아니었다면 뱀파이어라 오해 받아도 여지가 없을 그런 얼굴이다.

블랙이 묵묵히 답변을 기다리자, 놀람을 가라앉힌 병사가 묻는다.

"벼, 벽보라니?"

"마관직을 모집한다고 해서 왔습니다. 일단 글은 읽고 쓰는 정도는 됩니다."

사실, 그 정도 수준이 아니다만 일부러 필요 이상의 정보를 누출할 필요는 없는 법이다.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가서 결정할 일.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닌 듯 병사는 고개를 갸웃 거리며 서 있다.

"마관직? 그게 뭐야?"

보아하니 병사도 모르는 눈치다. 옆에 있던 병사를 흘낏 보자, 옆에 있던 병사도 어깨를 으쓱한다.

두 병사와 블랙의 사이에 싸늘한 공기가 흐른다.

"아,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문뜩 생각났다는 듯 한 병사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뭐 들은 거 있나?"

"그 왜 있잖나, 얼마 전에 집사 녀석이 뭐라고 떠들던 거."

"아, 그 말 사려는데 글 읽을 수 있는 놈이 없어서 곤란하다던가?"

그제야 그도 생각이 난 듯하다. 인상이 찌푸려 지는 것이 아무래도 집사라는 작자가 제대로 된 자는 아닌 모양이다.

"그거 아냐?"

"아니, 그래도 딱히 지시 받은 건 없는데......"

"........"

속으로 한숨을 내쉬는 블랙. 엉망이다. 물론 이런 소소한 일로 영지민들을 다 불러 모아서 포고를 한다던가 하는 일까지 있지는 않겠지만, 하다 못해 아래 병사들에게까지는 제대로 전달 되어 있어야 하는 일이 아닌가? 원래 제대로 된 영지가 아니다라는 것은 느끼고 있었던 바이지만, 한층 더 앞날이 걱정된다.

물론, 영지의 앞날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앞날이었지만.

'역시, 괜히 왔나........'

속으로는 굉장히 실망하고 있었지만,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병사들의 결론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무뚝뚝하게 서 있는 블랙. 그러자 한 병사가 그의 기색을 눈치챈 듯 후딱 성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거, 거 잠깐 기다리고 있어 보구랴. 내 얼른 가서 물어 보고 오리다."

마관직인지 뭔지 모르지만, 일단 관리가 되기 위해 찾아온 이다. 그 얘기는 자신의 위에 설 수도 있는 인물이라는 뜻. 괜히 밉보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안내된 성 안. 성안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지만 그리 별다른 감회는 생기지 않았다.

"그래, 글을 읽을 줄 안다고?"

"예. 서점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호오, 이 영지에 서점이 있던가?"

집사라 불리는 돼지 같은 녀석이 은근한 눈초리로 블랙을 위아래로 훑어본다. 좋은 뜻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본대, 서점이란, 지식층이 운영하는 만큼 많은 금전에 오가는 곳. 한몫 뜯어낼 수 있는 곳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의 눈치를 살핀 블랙은 조심스럽게 대꾸했다.

"조그마한 고서점입니다. 골목사이에 있어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손님도 그다지 없지요. 책도 낡은 것들 뿐입니다."

"그래? 흐음......."

전부 믿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흥미는 가신 것 같다. 하기사 그렇게 돈이 오가는 곳이라면 그에게 까지 들려 왔으리라 계산하는 것 같다.

어찌 되었든, 그의 관심이 다시 블랙에게로 돌아온다.

"그래, 글을 읽고 쓸 수 있다니 찾아온 것이겠군. 허헛. 벽보를 붙여 놓기는 했지만 찾아온 이는 자네가 처음이네. 쯧쯧, 멍청한 백성들은 글을 읽을 수도 없으니, 말로 하지 않으면 모른단 말이야."

언제 가르쳐 주기는 했던가. 속으로 슬쩍 빈정거리는 블랙이다.

"그래서 읽고 찾아오는 놈은 알거라 생각했지. 어쨌든 자네라도 와서 다행이로군. 다름이 아니라, 우리 쪽에서 군마를 사들이려고 하네만, 아무래도 무식한 놈들뿐이 없어서 말이지. 그렇다고 내가 가기에는 곤란하고 말일세."

"단기... 적인 일입니까?

이런 일이라면 관직이라기에 보기에는 힘들지 않은가? 정기적인 일을 기대했던 블랙은 내심 실망한 기색을 그에게 살며시 비친다. 그러자 집사는 그렇지 않다는 듯 크게 껄껄 웃으며 손을 휘젓는다.

"허허허헛. 그런 건 아니지. 네, 이제 한식구니 말해주네만, 이제 이 영지도 그리 안전하지만도 않다네. 전쟁에 말려들 준비를 해야 하지.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이 많다네. 한번으로 그치지 않을 테지. 일단 자네가 일하는 것을 보고, 괜찮다 싶으면 말에 관한 전권은 그대에게 맡기도록 하겠네. "

"그런 중요한 일을....... 저에게?"

아직 자세히는 누군지도 모르는, 그저 글을 안다는 것 만으로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해도 된단 말인가? 기가 막힘에서 나오는 질문이었지만 집사는 달리 해석했는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어깨를 두들긴다.

"영광으로 여기도록 하게나. 자네가 진정 성안의 관리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니 말일세."

".........감사합니다."

너무나, 너무나 단순하다. 이렇게 영광으로 여기게 한마디에 끝난단 말인가?

아니다. 달리 생각해보자. 이자가 이리 후하게 대해주는, 아니 대해주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나름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뒤에 그리 복잡한 사정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자신이 생각하고도 어이 없는 결론이었다만.

귀찮은 일을 그에게 넘기는 듯한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근래, 나름 냉정하게 사물을 판단할 수 있다고 믿어 왔다만 처음으로 사고를 필요로 하는 일은 그것을 단번에 흔드는 일이었다.

혹 빈정거리는 말이라도 튀어나올까 싶어 블랙은 급히 화두를 돌린다.

"혹시, 달리 하실 말씀은 없으신지요."

"아, 아하하. 급여 말인가?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말게. 자네가 잘하면 내 적당히 챙겨 줌세."

급여의 얘기는 아니었다만, 블랙은 조용히 입을 다문다. 거부할까. 아니다. 이제는 그럴 분위기가 아니다. 허허 웃고 있지만 잘못 거슬리면 쥐도 새도 모르게 시체로 변해 들판에 버려질 수도 있다.

확실하진 않지만, 그런 느낌이 든다. 나중은 어떨지 몰라도, 여기서는 일단 침묵을 지키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었다.

그나마, 그에게 아부하는 말을 안한 것은 그에게 남아 있는 자존심 탓이었다.


"자, 이게 자네가 처음 맡을 일일세."

집사는 묵묵히 지시를 기다리고 있던 블랙에게 한 뭉치 종이 덩이를 툭 하니 던진다. 다들 깨알만하게 글씨가 빽빽이 적혀 있다. 허름하기 짝이 없는 게, 골방에서 십수년은 처박혀 있었던 것 같다.

"일단, 성 안에 있는 자료들로 긁어 모아온 것일세. 거래처로 적당한 영지를 알아보도록 하게."

-노이로 왕국력 31년.-

가장 첫 번째의 서류에 찍혀 있는 날짜다.

"............."

혹 잘못 보았나 싶어 몇 번이고 눈을 껌뻑였지만 틀리지 않았다. 진짜로 십수년, 정확히 16년은 지난 자료들이다. 이걸로 뭘 어쩌란 말이냐.

"하하하. 그럼 잘 부탁 하겠네."

자신이 할 일은 끝났다는 듯 속이 후련하다는 듯 웃으며 방 밖을 나가는 집사. 눈앞에 깜깜해지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으며, 블랙은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해 돌파구를 찾는다.

그리고 쓸만한 문구를 발견한다.


-지도자는 전문가일 필요가 없다. 지도자는 전문가를 부리는 이를 뜻한다.-


그렇다면 이런 서류는 볼 필요도 없다.

'아무래도, 자료 수집부터가 내가 할 일인 것 같군.'

보아하니 제대로 된 자료도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근본적인 것부터 자신이 직접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역시 말이라면, 마구간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이 가장 잘 알 터이다.

"안녕하십니까?"

마구간 앞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내는 블랙. 그러나 아무도 대꾸해주지 않는다. 다들 뭐야, 저 시허연 놈은? 하는 시선이다.

"이번에 마관직을 담당하게 된 블랙이라고 합니다.

"그게 뭔가?"

이들 중 가장 경력이 있어 보이는 중년의 사내가 성큼성큼 다가오며 그에게 묻는다.

"집사님의 분부로, 말에 관해서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정확히는 군마에 관해서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들도 전문적으로 군마를 키워내는 일을 하는 이들은 아니다.

"아, 관리 나으리였구만, 이거 실례했소이다."

그럼에도 별로 신경 쓰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집사란 양반을 잘 알고 있는 모양인지, 잠깐 얼굴 보고 말 사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 무슨 일로 오시었소?"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영지에서 군마를 구입하려고 하는 듯 합니다만, 자료가 부족해서 말이지요. 혹시 거래처로 틀만한 곳을 알고 계신가 해서 와봤습니다만........."

서로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우뚱 하는 이들. 척 봐도 알겠다. 역시 이들도 아는 것은 없다고 봐야 한다.

"거 왜, 군터 남작령에 기사단이 그리 유명하다지 않은가?"

이곳에서는 그나마 영지의 이름이 하나 나오긴 했다. 군터 남작령. 블랙도 들은 바가 있다. 하지만 적어도 거래처로 여길 곳은 아니다.

애초에, 이곳과는 상대도 되지 않는 강대한 영지. 말만 남작이지, 실재로는 어지간한 백작령들과 붙어도 지지 않을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하는 곳이다. 이런 듣도 보도 못한 영지가 가서 거래를 트자고 하더라도 단번에 무시당할 것이 분명하다. 아니, 무시당하는 것으로 끝날까?

이건 웬 밥이야, 하고 공격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니 일단 거리가 있으니 그렇지는 않겠지만 직접 가게 되는 자신의 목숨은 없다고 봐야겠지.

물론, 굳이 영지와 거래를 틀 필요는 없다.

"달리 유명한 곳은 없는지요? 상단이라도 좋습니다."

"그야 우리도 모르지, 가끔 소문에 들려오는 영지들 외에는........"

"..........."

이들에게 물어 보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었는지도 모른다. 응당 알고 있어야 할 위쪽 귀족 선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거래처부터 자신보고 알아 오라니, 그것도 정확한 권한도 주어지지 않은 체, 그저 집사의 이름을 빌리는 것만으로 말이다.

하지만 모르겠다고 숙이고 들어갈 이유도 없었다.

애초에, 이 영지의 관리들조차도 잘 모를 터다. 위를 믿고 있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된다면, 영지 밖의 일에 훤한 사람들을 찾아 봐야겠군.'

기본적으로 상단, 혹은 다른 영지와 거래를 트는 것은 영주의 권한이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상점의 주인들이 뭘 알겠는가 싶지만, 직접적으로 안면과 거래를 트는 것은 그들이다. 어딘가 주워 들은 것 정도는 있을 터이니 이들보다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 생각하며 블랙은 성 밖을 나섰다.







으음;;; 오랜만에 쓴다고 썼는데, 글이 늘어집니다. 후딱후딱 애새끼들 만나서, 친구 먹고 세력 만들고 한 세력으로 군림하게 하고 싶은데 얘기는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으니;;;;;;;; 운명의 상대들(지금까지는 기르넨 밖에 못 만났군요. 아예 시작에 만나 버렸으니, 긁적긁적. 카이젤이 제일 늦을 듯 합니다만서도.. )도 빨리 만나야 하는데, 어느세월에......... 진짜 스피디쉬하게 전개하는 글들이 부러워 지는 군요.


그럼 다음에 또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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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제 3장, 카이젤. 2 +9 09.12.24 1,023 1 8쪽
16 제 3장, 카이젤. 1 +8 09.12.20 1,12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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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제 2장. 기르넨. 6 +17 09.11.09 1,270 2 9쪽
12 제 2장. 기르넨. 5 +14 09.10.20 1,317 2 9쪽
11 제 2장. 기르넨. 4 +10 09.10.06 1,306 2 8쪽
10 제 2장. 기르넨. 3 +11 09.09.26 1,399 2 14쪽
9 제 2장. 기르넨. 2 +12 09.09.22 1,439 1 10쪽
8 제 2장. 기르넨. 1 +12 09.09.15 1,706 2 9쪽
7 제 1장. 블랙. (완) +15 09.09.13 1,757 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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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 1장. 블랙. 4 +9 09.09.02 1,767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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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 1장. 블랙. 2 +8 09.08.27 2,182 3 8쪽
2 제 1장. 블랙. 1 +13 09.08.25 3,298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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