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장. 기르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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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난 정말이지, 복잡한 건 질색이야.
사실 그렇잖아? 다들 폼 잡으면서 이것저것 멋들어지게들 말하지. 듣고만 있으면 정말이지, 그럴싸해서 나도 모르게 홀려버릴 듯 한 말들도 많다고?
하지만, 세상이란 게, 그리 복잡한 건가? 따지고 보면 결국 그 원인, 그리고 그 결과는 무지하게 단순한 게 아니냐 말이야.
멋들어지게 이것저것 이유를 붙여서 전쟁을 벌이지만, 사실은 그 전쟁에서 얻을 게 있어서고.
위의 높으신 분들이 모여서 멋들어지게 차를 들이키면서 얘기를 나누는 것도 서로 얻고 뺏기고 할게 있어서지.
규모만 좀 다르지, 결국 시장 흥정이랑 다를 게 뭐 있어?
결국, 정의라는 것조차도, 어디의 누군가가 지가 좋을 게 있으니까 외쳐 되는 게 아니냐 이 말이야.
너무 단순한 거 아니냐고? 당연하지. 말했잖아. 난 복잡한 건 딱 질색이라고. 그러니까.
단순하게 살아가는 게, 최고야. 그래,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단번에 행동으로 옮기고, 단순하게 생각을 할 거라고. 그러니까.
나는 칼을 잡았다.
다들 잡는 이유는 이것저것 있는 모양이던데, 나는 정말이지, 단순하게 생각하기 위해서 말이야.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살고자 잡았다고.-
"아아암......"
크게 하품을 하는 소년. 이윽고 소년은 입을 닫고 입을 쩝쩝 다시며 머리를 긁적거린다. 간지러운 곳이 뭐가 이리도 많은지, 머리의 가려움을 해결하자 이번에는 엉덩이가 가렵다. 소년은 왼손으로 두터운 갑옷 사이로 손을 비집어 넣고 엉덩이를 시원하게, 박박 긁는다. 그리고 이번에는 목이 마른지, 엉덩이를 긁던 손은 허리춤에 달려 있던 통으로 향한다. 하지만 탕! 소리가 들릴 정도로 안에 든 내용물은 아무것도 없다. 소년은 세상에 이렇게 슬플 일도 없다는 듯, 눈 꼬리를 내리며 서글픈 표정을 지으며 옆의 동료에게 외친다.
"어이! 빅! 물 좀 없냐?"
어딜 봐도 너무나 평화스러운 광경이다.
다만.
옆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그리고 주위에 난자해 널부러져 있는 살덩어리들. 마치 지하수라도 만들 것 같이 땅 속 깊이 스며들은 핏자국들. 한결같이 눈을 부릅뜨고 죽어간 끔찍한 시체들.
마치, 전장의 한 모습이다. 아니, 전장이다.
챙! 챙!
그리고, 들려오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기르넨! 너도 빨리 도와! 우리가 밀리고 있는 거 안 보이냐?!"
빅이라 불린 남자는 바로 자신의 코앞에 까지 내려쳐진 검을 필사적으로 막아내며 외친다.
아아, 정말이지, 귀찮은 녀석들이네.
소년은, 앉아 있던 '시체' 위에서 일어난다. 그가 일어나자, 사방을 포위하고 있던 적들이 긴장한 눈으로 그를 주시한다. 그들 모두가 알고 있다.
언뜻 보면 그들의 우세처럼 보인다. 수도 2배 이상 많고, 이들은 모두 제대로 된 훈련과 장비를 갖춘 정규병들이다. 그에 비해 맞서고 있는 이들은 복장도 각각, 무기도 각각인 용병단이다. 개개인의 승부라면 모를까, 집단 전에서 용병단이 정규병을 당해낼 수 있을 리가.......
있다. 그것도, 단 한명의 힘 만으로.
이제까지 이 용병단들이 밀리고 있었던 것은 저 소년이 그저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턱 하니 어깨에 검을 걸치고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는 기르넨. 그러자 앞에 있는 병사들이 움찔 거리며 물러난다. 그 틈을 노려 대치하고 있던 병사의 배에 검을 찔러버린 빅이 그에게 다가와 외친다.
"이 병신아! 너 때문에 제터하고 휴즈가 당했다고!"
"알게 뭐야 그런 싸구려 녀석들. 나 없으면 뒤진다고 내 탓이냐?"
"이 녀석......"
빅이라는 사내는 할 말이 없는지 그저 이를 뿌득 갈 뿐이다.
까놓고 말하자면, 이 소년 덕분에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임무에 이 정도까지 다다를 수 있었고. 이미 기르넨은 보수 이상의 일을 해줬다. 여기서 돌아가 버려도 아무도 뭐라고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들은 용병. 정확히 받은 보수만큼 일을 하면 아무도 뭐라그럴 사람이 없고, 도한 뭐라 그래서도 안 된다.
게다가, 동료인 것도 아니다. 그저, 이해가 맞아 함께 일하는 것 뿐이다.
"에고...그럼, 두당 얼마?"
수십 명은 될 것 같은 상대를 앞에 두고 태연하게 물어 보는 기르넨. 그러자 빅의 표정이 한층 더 일그러진다.
녀석은 지금, 의뢰를 수행하는 중에, 새로운 의뢰를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거다.
"으윽... 십, 십오 어떠냐?"
"골드로?"
"장난하지 마!"
"에잉, 너무 싸잖아."
"이, 이새끼들이......."
그의 실력이 굉장하긴 하지만, 결코 이 정도의 수를 앞에 두고 자신만만하게 있을 정도도 아니다.
아니, 아니라고 믿고 싶다.
"자, 가볼까, 뒤나 든든히 지켜줘. 등에서 찔리면 제 아무리 나라도 어쩔 수 없다니까."
내가 찔러 버리고 싶다 이 자식.
속으로 그리 생각하면서, 진짜로 그렇게 하면 당장은 기분은 좋을지 몰라도 뒷감당이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빅터와 살아 남은 용병들은 전부 기르넨의 등 뒤에 뭉쳐 선다.
마치, 병사들을 이끌고 앞선 기사와 같은 모습이다. 그러자 병사들 역시 서로 눈치를 보더니, 이윽고 대형을 갖춘다. 지금 쓰러져 있는 병사들의 3분의 1은 이 소년 혼자에게 당했다. 아무렇게나 맞설 상대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마치 거리를 걷듯 터벅터벅 걸어나가.
퍼벅.
그저 걸어 나가서, 칼을 횡으로 휘두른 것만으로 병사 하나의 창이 부러져 나가며 동시에 몸통도 갈라진다. 실로 무시무시한 힘이다. 그러자 지휘관으로 보이는 병사가 허리 춤에서 검을 뽑으며 외친다.
"제기랄! 한꺼번에 달려 들어!"
"우아아아!!!"
일제히 달려드는 병사들.
"어라, 위험하네."
그러자, 소년은 슬쩍 뒤로 빠진다. 제 아무리 마스터니, 그랜드 마스터니 하더라도 등 뒤에서 찔리면 방법이 없다.
그들이 대단한 것은, 그들의 칼이 닿는 범위 한에서 만이다. 그것은 기르넨 역시 마찬가지다.
병사들에 맞서 소리도 없이 달려드는 용병들, 이들 역시 전쟁질로 돈 벌어 먹고 사는 이들인 만큼, 개개인의 실력만큼은 정규 병사들을 상대로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소년은 그들의 틈 사이를 유유자적 걸어 다니며, 그와 칼을 맞댄 상대를 하나둘씩 제거해 나가고 있다.
"으악!"
"이, 이런 비겁한............"
기르넨에게는 비겁이고 뭐고 없다. 적의 등이 들어나 있으면 냉큼 찔렀고, 자신이 둘러쌓였다 싶으면 용병단이 있는 곳으로 냉큼 뒷걸음을 친다.
잔인하게 죽이는 것도, 도망가는 것도, 그 어느 행동에도 망설임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고작 10여분.
10여분 만에 30여명에 가깝던 병사들은 전부 바닥에 쓰러져 있다. 남은 것은 검을 들고 있던 지휘관 하나 뿐. 그의 검은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제기랄, 제기랄! 어째서 용병단에 이런 녀석이 있는 거냐!"
그의 앞에 선 기르넨은 쿡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인다.
"글쎄......나도 잘 모르겠는 걸? 그럼 당신이 마지막이니까, 서비스를 하나 해주지."
그는 검을 들어 올린다.
화르르륵.
하얗게 타오르는 검.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병사는 절망에 어린 표정을 떠올린다.
"마, 마나 사용자..........."
"그렇지. 난 천재거든."
뒤에 있던 용병들도 몰랐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다.
소드 익스퍼트, 키는 크지만 호리호리한 덩치에, 고작 십대 중반으로 밖에 안 보이는 소년이 숙련된 기사의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아니, 이 정도라면 당장 높은 돈에 작위를 받는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실력.
"어째서 이런 녀석이.........."
"당신의 목은, 그 여느 시체들보다도 매끈하게 잘릴 거야. 감사히 여기라고."
흔히 있는 싸구려 악당의 대사도 아니다. 재밌어 보이지도 않는다. 그는 그저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처럼.
단번에 그 병사를 내려친다.
기르넨의 말대로, 하늘로 솟구치는 그의 목은 이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의 것보다도 깔끔해 보였다.
기르넨장, 시작 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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