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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천광야 님의 서재입니다.

청세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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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천광야
작품등록일 :
2011.01.28 13:23
최근연재일 :
2011.01.28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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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12,876

작성
09.08.25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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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제 1장. 블랙. 1

DUMMY

-언어를 배워 사고를 넓히고, 역사를 배워 미래를 읽고, 무를 배워 자신을 지키고 남을 지배하고, 돈의 흐름을 읽어 그 돈의 물줄기를 자신에게로 끌어 들인다.

아는 만큼 세상을 볼 수 있고, 아는 만큼 세상을 주무를 수 있다. 천년, 만년이 지나간다 하더라도, 이것은 결코 신에게조차도 어긋나지 않는 진리. 나는 그리 믿는다.

신조차? 아니지, 신보다 많은 것을 깨닫게 되는 자가 바로 신일 터이니.

그리고 내가 가진 것 또한 오로지 아는 것. 혹은 그 알고자 하는 욕구.

나는 이것 하나 만으로 세상에 나갈 것이고. 이것 하나만으로 세상에서 살아남을 것이고. 이것 하나만으로.

세상이라는 것을 이기겠다.-


한부부가 있었다. 마을에서 함께 자라고, 자연스럽게 한 가족이 되어,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기는 그런 부부가 있었다.

조상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조그마한 밭을 가지게 되고. 그들은 그들의 부모님이 살던 집에 한 가정을 차리고 곧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전쟁이 벌어졌다.

특별히 괴로운 일도, 행복했던 일도 없었지만 소소하게 살아가던 마을의 일상.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피난을 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처음으로 마을 박을 나와, 세상을 떠돌게 되었던 부부. 아무것도 모르기에 조금이나마 가지고 있던 돈도 모두 빼앗기고 말았다.

굶고, 춥고, 배는 고프고,

아이는 울었다.

결국, 그들은 울면서 자신들이 아이를, 땅에 살며시 내려놓고, 길을 떠났다.

그리고, 한 무리의 걸인집단이 그 아이를 발견했다. 아무도 그 아이를 주우려 하지 않았지만, 한 노파가 클클 낮게 울면서 아이를 품안에 안아 올리고.

그리고 그들은 다시, 전쟁을 피해, 먹을 것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기서 이 망할 도둑 놈아!!"

"저 새끼, 그놈이다! 그 블랙 놈이다!"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는 소년, 그리고 그 뒤를 쫓는 건장한 체구를 가진 두 남자.

소년이 블랙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실로 단순한 이유다. 머리칼이 검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검은 눈동자를 지녔으니까 블랙.

어차피 버려진 아이들 중 하나다. 거지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체이며 살아 왔으니 이름을 멋지게, 공들여서 지어줄 이가 있을 리도 없다. 그리고 대충 부르다 보니 그것이 이름이 되었더라, 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소년도 자신의 이름이 이상하다거나, 하고 의심을 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아니, 그에 앞서 이름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던가? 그는 주위에서 불랙이라 불리고 있으니 그저 블랙에 불과한 것을. 갈색 머리였으면 브라운이었을 수도 있고, 금발이었으면 골드라고 불렸을 수도 있었던 것을.

갓난아이로, 그것도 버려진 체로 이제까지 살아 왔으니, 오히려 이름 따위를 신경 쓸 여유가 있을 리 없다. 그럴 여유가 있다면, 당장의 굶주린 배를 채워야 한다.

"이런 젠장할! 또 놓쳤어!!"

"야, 그 녀석 어디 갔어!""

거친 욕설과 함께 숨을 씩씩 거리고 있는 두 명의 건장한 남자. 그들의 손에는 머리에라도 한번 맞으면 두개골이 그대로 깨질 것 같은 두꺼운 몽둥이가 들려 있다.

그리고 그들을 피해 뒷골목에서 숨을 헐떡거리며 숨어 있는 블랙. 혹시라도 자신의 숨소리가 바깥으로 나갈까봐 자신의 거뭇거뭇한 입으로 입을 꾹 틀어막고 있다.

"에잇, 저쪽으로 가보자!"

"망할 녀석! 잡히기만 해봐라! 가만 안 둔다!"

타닥타닥 거리는 발소리가 점점 멀어져 가자, 그제야 블랙은 입에서 손을 때고 푸헉 하고 숨을 몰아쉰다.

그의 손에 들려 잇는 것은 사과 하나, 그리고 손가락과 사과 사이에 껴져 있는 것은 소세지 3개.

"나중에 열배로 갚아 줄 테니까 너무 쪼잔하게 그러지들 말라고 아저씨들."

아무도 듣지 않는 말이지만, 소년은 진심을 담아 그리 말하고 손에 쥐어져 있던 것을 바로 입에 쑤셔 넣어 우걱우걱 씹기 시작한다. 아껴서 나중에 먹는다? 그런 생각 따위, 블랙의 머릿속에는 들어 있지 않다. 손에 쥔 것은 가능한 빨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물론 좀 전의 몽둥이들을 든 상인들은 무섭다. 하지만 더욱 무서운 것은 같은 거지들이다. 그들의 눈에 띄기라도 한다면 차라리 저 상인들에게 끌려가는 것이 나을 정도로 두들겨 맞은 후 먹을 것을 빼앗길 터이다.

아니, 아예 시체가 되어 그들의 입 안으로 들어갈 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직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풍문으로는 흔히 있는 일이라고도 하니. 주어들은 바로는 거지들 사이에서도 식인으로 배가 두툼한 녀석도 있다고 한다.

절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블랙은 소세지를 입에 전부 집어넣고 꼭꼭 씹는다. 오늘은 운이 좋은 편이다. 비록 밀가루가 가득 들어간 싸구려 소세지라 할지라도, 고기를 입에 넣을 수 있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다. 표정 없는 그의 입가가 조금이나마 올라간다. 게다가, 새빨간 것이 먹음직한 사과까지 손에 쥐어져 있다. 그는 더러워진 소매로 사과를 슥슥 문지르고는 한입 베어 문다.

물이 많고 단 사과다. 냉막한 소년의 얼굴에 조그마한 미소가 떠오른다.

식사를 끝내자, 블랙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거리로 나온다. 완전히 멀어졌는지, 주변에서 쏟아지는 것은 그저 거지를 향한 불쾌한 시선을 뿐. 블랙 역시 익숙한 듯이들의 사이를 지나간다.

목적지도 없이, 그저 걸어서 오늘 하루 안락한 잠자리가 될 곳을 찾아 헤매는 거지.

"어이, 소문 들었나?"

"아아, 그 미친 놈?"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관심도 없고 여유도 없었지만 미친놈이라는 말에 절로 귀가 솔깃한다. 블랙은 걸음을 멈추고 두 남자의 대화를 듣는다.

"응. 얼마 전에 실종되었던 그 홀란드의 막내딸 있잖아. 얼마 전에 뼈만 남은채로 발견 되었다는구만.

"끔직도 하지, 어찌 사람을 먹는단 말인가."

그들의 말에 블랙은 속으로 몰래 조소를 짓는다. 배때기가 부른 자들의 이야기니까 끔직도 하겠지. 하지만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거지들 사이에서야, 그런 이야기 쯤은 이미 한참 전에 돌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집 딸인 것은 안거지?'

블랙이 그런 의문을 품고 있을 무렵, 한 남자도 같은 의문을 품었는지 다른 이에게 그것을 묻는다.

"아니, 뼈밖에 안 남았는데, 어찌 그 집 딸인 것은 알았다는 건가?"

"쯧쯧. 체구가 있잖은가 이 사람아. 게다가, 생일날 주었던 머리핀이 피투성이 머리칼 속에 있었다는 구만.

"어이구 끔직도 하지......."

소름이 끼친다는 듯 몸서리를 치는 남자. 다른 이는 오히려 이런 풍문이 흥미롭다는 듯 더욱더 끔찍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블랙에게는 더 이상 들어줄 여유가 없었다.

문득 머릿속에 스쳐가는 것이 있어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블랙.

사람이 사람을 잡아 먹는다, 라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가장 노리기 쉬운 자는 바로 자신과 같이 어리고 힘이 없고, 또한 없어져도 문제가 되지 않을 거지가 아니던가?

순간 피부가 불룩불룩 튀어나왔지만, 이윽고 실소가 이어진다.

'나 같이, 마른 거지가 뭘 먹을 게 있다고........'

그리 생각하며 걸음을 옮길 때였다.

푸욱!

갑자기, 길 앞에 푹신한 벽 같은 것이 느껴진다. 블랙은 맹맹해진 코를 부여잡으며 그 벽을 올려다 본다. 태양을 등지고, 그림자로만 보이는 그것.

벽이 아니라 사람이다. 꼬릿꼬릿한 냄새가 나는 것으로 봐서는 역시 블랙과 같은 거지. 게다가 소년인 블랙의 몇배는 될 것 같은 거대한 체구에, 찢어진 조끼 하나만을 상체에 걸치고 있어 투실한 배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씨익.

"꼬마야, 조심해서 다녀야지."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기분이 굉장히 좋은 듯 남자는 얼굴 한 가득 웃고 있다. 그리고는 블랙의 머리를 두툼한 손으로 툭툭 치고는 느긋하게 걸음을 옮긴다. 그 역시 거지, 그가 지나가자 불쾌한 시선들이 그를 향해 쏟아지지만 그는 아랑곳 하지 않고 가던 길을 가고 있다.

물건을 도둑맞은 상인들의 몽둥이보다 더 무서운 것들이 어른이 된 거지들이다. 순간 죽었다 싶었던 블랙은 쿵쿵 거리며 멀어져 가는 그 거지를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음?'

몇걸음이나 옮겼을까. 순간 블랙의 머릿속에 어떤 위화감이 떠올랐기에 뒤돌아 그 거지를 다시 바라본다. 저 두툼한 뱃살과도 같이 둥그스런 어깨에 등짝이다. 그 위화감이 무엇인지는, 자신조차 모른다.

어딘가, 있어서는 안 될 일을 겪었다는 육감인 것일까. 그도 아니면, 작은 것이나마, 그가 알고 있는 정보가 머리에 모여서 어떤 이성을 끌어낸 것인가.

결국, 다시 머리를 긁적거리며 돌아서는 블랙. 별 쓸모도 없는 것에 신경이 쓰였다 싶어 그의 뇌리는 다시 오늘 밤 머물 곳을 찾아 돌아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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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제 2장. 기르넨. (완) +17 09.12.12 1,244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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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 1장. 블랙. 4 +9 09.09.02 1,767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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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 1장. 블랙. 2 +8 09.08.27 2,182 3 8쪽
» 제 1장. 블랙. 1 +13 09.08.25 3,298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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