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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천광야 님의 서재입니다.

청세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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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천광야
작품등록일 :
2011.01.28 13:23
최근연재일 :
2011.01.28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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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876

작성
09.09.22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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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제 2장. 기르넨. 2

DUMMY

"오오오, 수고들 하시었소!"

상황이 종료되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듯, 한 남자가 말 위에서 빙그레 웃으며 다가온다. 이 피투성이의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 광이 나는 갑옷에 화려한 집을 가지고 있는 검. 하지만 그에 앞서 검이라고는 한 번도 잡아 본 적도 없는 것 같은 호리호리한 몸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수 십여명의 병사들의 뒤따르고 있다. 용병들과 싸우던 병사들과는 복장과 깃발이 틀리다. 그들 역시 막 나온 것처럼 깨끗한 복장을 하고 있다.

원래 왔었을 때에는 20여명 정도 되었던 인원이지만, 이제 남아 있는 숫자는 그 절반도 되지 않는다. 저들이 나서 주었더라면 죽는 이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용병단의 표정에 원망은 없다. 자신의 병사들이 죽는 것이 아까워 전장의 뒤에서 지켜보고만 있었지만.

그는 분명히, 일의 경위를 제대로 설명했고, 자칫하면 모두가 살아 돌아 올 수 없을 정도의 큰일이었다는 것도 전부 설명했으니까.

무엇보다도, 죽어버린 동료보다는, 이제부터 나올 보수.

그것이 용병단의 철칙이다. 이 생활을 하기 위해선, 돈을 위해서라면, 산적과 같은 일도 서슴치 않고 해낼 수 있어야 하니까.

빙글빙글 웃으면서 살아 남은 용병들에게 말을 걸어가는 말 위의 남자. 그는 이윽고 기르넨에게 다다른다.

"자네도 수고가 많았네. 이름이, 기르넨이라고 했던가?"

"이름은 아무래도 괜찮습니다. 그보다, 보수나 제때에 주시죠."

영주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그건 당연히 나와야 할 돈이다. 그는 분명, 빅이라는 사내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두당 12실버의 보수를 약속했으니. 허허 거리면서 칭찬하는 귀족에게 적당히 대꾸하면서 기르넨의 눈은 빅을 향해 있다. 그러자 빅은 할 말아 없다는 듯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다.

의뢰주와는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이니, 자신들의 보수에서 나눠 주어야 하는 일인 것이다. 몰래 죽여 버릴 수도 있는 일이지만, 마지막의 그의 솜씨를 생각하면 오히려 몰살을 각오해야 할 수도 있다.

애초에 그럴 목적으로 마지막에 마나를 발했던 기르넨이다. 빅이 제대로 약속을 지킬 것처럼 보이자, 기르넨은 씨익 웃으며 전장에서 돌아선다.


"여기, 약속했던 돈이다."

테이블에 제법 묵직한 소리를 내는 돈 주머니. 기르넨은 앉을 필요도 없는 듯 그것을 허리춤에 꾀 차고 바로 나갈 준비를 한다.

그는 등 뒤에서 당황한 듯 반쯤 일어서 있는 빅을 보지도 않고, 바로 문쪽으로 걸어나가며 흥얼거리듯이 말한다.

"굳이 세어보는 궁상맞은 짓은 하지 않겠어. 대신 나중에 액수 맞지 않으면 칼 들고 찾아오는 세련된 행동을 해주지."

"잠깐, 잠깐 기다려."

말을 나눠볼 생각이었을까, 하긴, 그럴 생각이 아니라면 테이블로 안내하지도 않았을 거고 차도 준비하지 않았을 거다. 앉지도 않고 돈 주머니만 받고 바로 나가버리는 기르넨의 행동이 상식 이상이었던 것이다.

물론, 기르넨도 몰랐던 것은 아니다. 귀찮으니까 말도 걸기 전에 나가버리려던 것인데.

굳이 걸음을 멈추는 기르넨이다.

"왜?"

빅은 그야말로 만들어낸 미소를 떠올리면서 은근한 말투로 그에게 말한다.

"너 정도의 실력, 왜 한 곳에 소속을 잡지 않나? 괜찮으면 우리 쪽으로 오지 않겠나? 바로 특급의 대우를 받을 수 있어. 커다란 의뢰가 팡팡 들어 올 거라고. 게다가 그 이름도 날릴 수 있으니, 나중에 어디에 기사라도 될 수 있는 일이지. 어때, 생각 없나?"

아니다 다를까, 기대에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 말이 튀어나온다. 여태까지 이런 말을 걸어온 것은 빅, 아니 이 길드 뿐만이 아니다. 기르넨은 한숨을 폭 쉬며 뒤돌아서 어깨를 으쓱인다.

"그런게 귀찮으니까 혼자 다니는 거라고. 굳이 내 생각을 해준다면 의뢰나 좀 나눠주면 그걸로 족해. 물론 그것도 내가 내킬 때만. 그럼 이만 실례하겠어."

"아, 자, 잠깐만, 말을 조금 더......"

"여태까지 이런 말 많이 들어 왔으니까. 여태까지랑 똑같은 말 하겠지. 관두자구?

어떻게든 잡아 보려는 빅을 뒤로하고, 기르넨은 이번에야 말로 문을 닫고 나서버렸다. 그러자 엉거주춤한 자세로 남아 있던 빅은 이윽고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면서 자리에 털썩 주저 앉는다.

모욕을 당했다, 라는 표정은 아니다. 오히려 대어를 놓친 듯한 얼굴이다.

"어이, 빅 왜그래? 저런 꼬마한테 쩔쩔 매고."

옆에서 비웃음이 가득한 동료 용병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런 꼬마? 쳇. 그냥 길거리의 꼬마면 내버려 두지도 않았어."

"뭐야, 저 녀석. 대단해?"

"대단하지. 저 녀석 때문에 열명이나 살아 왔으니까. 진짜 아깝단 말이다."

"헤에, 그렇게 대단한 녀석이, 왜 혼자서 다니지?"

남자가 이상하다는 듯 기르넨이 나간 문을 바라본다.

"그러게 말이다."

용병이란, 사실 합법화 되어 있는 산적들과 같다. 산적들과 다른 점이라고는 길드를 만들어 의뢰를 받고, 그 의뢰주의 적대 세력에 있는 곳을 '약탈'한다는 점이다. 물론 전과 같이 보수에 따라서는 전쟁도 대신 해주기도 하지만.

하지만 본업은 약탈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터인데. 게다가 약탈이라는 것은 혼자서 해선 그리 큰 돈을 움직이지 못한다. 빼앗은 물건을 가져다 파는 것에도, 몇 명의 인원이 필요한 일인 것이다.

그런데, 혼자서, 그것도 부수입이라 할 수 있는 보수만으로 저리 움직인다는 것은........

"녀석은 돈 때문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얘긴가."


돈 주머니를 들고 활보하고 있자니 여기저기서 탐욕의 눈빛이 쏟아진다. 그러나, 감히 앞으로 나서서 그 돈을 노리는 이들도 없다. 노련한 소매치기들조차 감히 그의 앞을 나서지는 못한다.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검. 낡은 것이 아니라 실전을 겪을 대로 겪은 듯 한 검. 몇 번이고 묻고 지우고를 반복해 아예 베어버린 핏자국이 남아 있는 갑옷. 이런 녀석에게 걸리면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죽을지도 모르고, 최소 운이 좋아도 손모가지는 남아 있지 않을 테니까.

원래 떠돌이의 인생이다. 딱히 정해진 숙소가 없기에 하룻밤 묵어 갈 곳을 찾아서 헤매고 있는 기르넨. 어쩌다가는 며칠, 혹은 몇달씩 머물기도 하지만 그것은 영지가 어떠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오, 멋진 꼬마잖아."

기다란 다리를 꼬고 진한 화장으로 본연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여자가, 마치 유혹하듯 담뱃대를 빨아 가면서 끈적끈적한 시선으로 기르넨을 바라보고 있다.

아니, 그 시선은 그의 돈주머니를 향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고.

그래, 이렇게 제법 괜찮다 싶은 여자가 자신을 잡을 경우에는 오래 머물기도 했다.

단순히 잠잘 곳을 찾기 위해.


"후우."

미지근한 싸구려 럼주를 하나 들고 일어나서 창 밖을 바라보는 기르넨. 갑옷으로 몸을 감쌌을 때와는 달리, 그의 앳된 분위기가 돌고 있다. 실제 그는 이제 겨우 15세가 되었을까 한 나이다.

제대로 된 부모가 있었다면, 그들의 혈연인 것을 이용해 한참 되먹지도 않은 어리광이나 부리고 있을 나이인데도.

그렇기에 이렇게 가슴이 허한 걸까. 여자랑 자는 일은 좋다. 그리고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나는 그 돈을 벌 능력까지도 가지고 있다. 어설픈 용병들과는 격이 다른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자각하고 있다.

이것도,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것들 중 하나라는 것도.

생각하지 말자. 돈도 있고, 그 돈 뺏으러 올 정도의 싸구려들은 죄다 목을 따줄 정도의 실력도 있다. 그냥 이렇게 살아가면, 적당히 이렇게 살다가 때가 되어 가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재미가 없군."

창밖을 내다보며, 무심코 홀로 중얼거리고 만다. 목소리가 의외로 컷던 탓일까? 침상에서 고히 잠들어 있던 여자가 부스스 머리를 들어 올린다.

"뭐야."

"시끄러. 잠이나 자."

"흥! 기껏 말 해줬더니."

말은 그리 하면서 다시 뒤치적 거리는 여자. 잠결이었겠지. 아마 깨어나면 기억도 못할 거다. 기르넨은 뒷통수의 길게 자라난 머리 틈을 박박 긁어 되면서 다시 창밖을 내다본다.

편하기는 하지만 재미는 없다.

슬슬 남들과 같이 적당히 자리는 잡아야 하는 건가. 칼질로 돈 벌어 먹고 산다는 게 그리 나쁜 일만은 아니다. 기르넨 자신도 자신과 똑 들어 맞는 일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칼 끝에 방향은 없다. 명예도 필요 없고 권력도 필요 없다. 돈은, 필수요소이긴 하지만 그것에 크게 탐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 난, 대체 뭘 위해?

그래, 이렇게 아무런 생각도 없으니 어디 적당한 데 기사로 들어가서 터전을 잡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정기적으로 돈이 나온다는 것은, 이런 프리로 일한다는 것보다는 훨씬 안정적인 일이 아닌가.

하지만, 이리도 자극적인 생활조차도 재미가 없거늘. 남들처럼 살면 그건 또 재미가 있으려나 모르겠다.

에이, 몰라. 생각하기도 귀찮다. 그리고 이럴 때, 생각을 지우기에도 딱 좋은 것이 옆에 있다.

"야 이년아, 일어나."

"으응? 뭐야, 아까는 자라더니."

기억하고 있었나.

"너 창녀잖아. 할 일 해야지."

"제기랄 놈."

욕설을 지껄이면서도, 워낙에 받은 돈의 액수가 액수다. 창녀는 귀찮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으며 다리를 벌린다.




그럼 다음에 또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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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제 3장, 카이젤. 1 +8 09.12.20 1,129 1 11쪽
15 로이안. +13 09.12.16 1,266 2 9쪽
14 제 2장. 기르넨. (완) +17 09.12.12 1,244 4 11쪽
13 제 2장. 기르넨. 6 +17 09.11.09 1,270 2 9쪽
12 제 2장. 기르넨. 5 +14 09.10.20 1,317 2 9쪽
11 제 2장. 기르넨. 4 +10 09.10.06 1,306 2 8쪽
10 제 2장. 기르넨. 3 +11 09.09.26 1,399 2 14쪽
» 제 2장. 기르넨. 2 +12 09.09.22 1,440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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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 1장. 블랙. 2 +8 09.08.27 2,182 3 8쪽
2 제 1장. 블랙. 1 +13 09.08.25 3,298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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