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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천광야 님의 서재입니다.

청세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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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천광야
작품등록일 :
2011.01.28 13:23
최근연재일 :
2011.01.28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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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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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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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글자수 :
212,876

작성
09.08.29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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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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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제 1장. 블랙. 3

DUMMY

"......"

"......"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노소. 다시는 이곳에 올일 없다고 소리치며 골목을 나간 블랙이었지만, 몇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다시 이 골목으로 돌아왔다. 워낙에 주변의 시선이 흉흉하다 보니, 인적이 드물고 마음 놓고 있을 수 있는 곳이 별달리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노인은 블랙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다는 듯, 마치 조각인 마냥 조금 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노인을 마주해 가게 앞 벽에 털썩 주저앉아 지친 몸을 쉰다. 저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들려오는 몇몇의 목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있는지조차 모를 이들이 많을 그런 숨겨진 장소.

그렇기에 의문이다. 일단, 가게라고 열어 놨으면 찾는 손님이 있어야 장사가 되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 손님이라는 건 사람들의 눈에 띠는 곳에 있어야 올 텐데, 이런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 간판을 걸어 두어 봤자......

"저 왔어요!"

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처음으로 손님이 왔다. 하지만 이런 곳에는 굉장히 안 어울리는 손님이기도 했다.

여자애다. 그것도, 블랙보다도 한층 더 어려 보이는 여자 아이. 장이라도 보고 오는 참인지 짚으로 만든 바구니에는 맛스럽게 익은 사과가 한가득 담겨 있다.

"책 왔어요?"

"왔다."

"와, 다행이다. 이번에도 안 왔으면 전 진짜 주인님에게 혼날 뻔 했다구요."

팔짝팔짝 뛰면서 좋아하는 여자 아이. 그러다가 뒤에 있는 블랙에게 눈이 갔는지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며 노인에게 묻는다.

"저 아이는?"

"바보다."

"바보 아냐!"

버럭 소리를 지르는 블랙. 소녀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입을 가리고 쿡쿡 웃는다.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 블랙은 고개를 팩 돌려 버린다.

"너, 재밌네."

"이 기집애가......"

무시 당하는 것에는 익숙해져 있지만, 이런 자신보다도 훨씬 어리고 약해 보이는 계집애에게까지 무시를 당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하지만, 곧 그녀를 자세히 살펴 보게 된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단아하게 갖춘 복장에 피부도 깨끗하다. 게다가 살도 제법 불어 오동통 하니 귀여운 맛이 있다.

아무래도, 거지인 자신이 함부로 할 상대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나름대로 머리를 글리던 블랙의 눈에, 아이가 들고 있던 사과 바구니가 눈에 띤다. 여기서는 잘 보이면 사과 하나 얻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블랙은 침을 꿀꺽 삼키며, 벌벌 떨리는 손을 그녀에게 뻗친다.

"저...."

"음?"

"사, 사과 하나만......."

"미안, 이거, 주인님 심부름이라서 함부로 못줘."

"쳇!"

그래도, 먹을 것을 주지 않는 이에게는 의미가 없다. 블랙은 다시 한번 고개를 획 돌리고, 소녀는 다시 쿡쿡 웃는다.

"갈게요~"

"오냐."

찰그랑~

순간 블랙의 눈이 휘둥그래진다. 소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건내고 간 것은 무려 금화다. 가져본 적이 없으니까 돈 이란건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누런색이면 금화다. 도대체 저 종이 쪼가리가 뭐 길래 저리도 큰돈을 주고 바꿔 간단 말인가.

아니, 그것보다, 저 노인의 등 뒤에 잔뜩 쌓여 있는 것이 전부다........

탐욕스럽게 노인 뒤의 책을 바라보는 블랙. 그러자 노인은 담담하게

"아서라. 너 같은 녀석은 팔아먹지도 못할 테니까."

"책은, 가치를 아는 사람 만에게 필요한 것이지. 글도 못 읽는 이들이 어디 책을 살 것 같으냐?"

눈 앞에 금덩이들이 순식간에 다시 종이쪼가리로 몰락하는 순간이다. 확실히, 처음 봤을 때 블랙도 그리 생각했으니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일게 분명하다. 글도 모르는데, 이상한 게 잔뜩 쓰여 있는 책을 일부러 돈 주고 살 바보는 없겠지.

그보다, 손에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어떻게 팔 수 있을 것인가.

"쳇."

다시 한번 신경질을 내고는 자리에 주저앉는 못 먹는 떡들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더 배가 고파진 느낌이다.

서서히 해가 져간다. 노인도 가게 문을 닫으려는 지 엉거주춤 일어나서 의자를 가게 안으로 집어넣고. 널부러져 있던 책들을 차근차근 정리하기 시작한다.

블랙은 담벼락 뒤에 몸을 깊숙이 뉘인다. 오늘 하루, 아무것도 먹지 못했지만 그래도 지금 이 영지에서 이곳만큼 마음 편히 있을 수 있는 곳은 없으니까. 어차피 굶는 것은 익숙하고, 자고 일어나서 정 견딜 수 없으면 다시 나가면 될 일이다.

툭.

그때였다.

"먹을 테냐?"

도무지 믿기지 않아서 눈을 껌벅 거리면서 노인을 올려다 본다. 두툼한 빵이 블랙을 향해 건내져 있다.

"그런 눈으로 볼 것 없다. 한적했거늘, 말상대해준 대가로 주는 것이다."

블랙은 울 것 같은 눈으로 노인을 바라본다. 이렇게, 온전한 방 한 개를 고스란히 주다니, 이제까지 알 수 없는 소리만 던 기분 나쁜 노인에서 성자로 격상한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리 좋은 일을 하시니 정녕 신에게 축복 받으실 겁니다."

표정 없던 노인도 이번 만큼은 기가 막혔는지, 입이 살짝 벌어진다. 그리고 쓸쓸한 눈으로 변해 하늘을 바라본다.

조각이 아니다. 이 노인은, 분명 살아서 숨 쉬고 있는 노인. 그리고 지나온 세월에 무수한 후회를 담고 있는 그런 이이다.

물론, 눈 앞에 빵에 정신이 팔린 블랙은 전혀 보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세상에 신의 축복 따위는 없다 인석아."

그리 말하며, 노인은 일그러진 미소를 짓는다.


이제, 블랙의 거처는 이 곳이 되었다. 제 아무리 노인이라도 블랙을 집에 들여 보내주는 것 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낮에 가게를 열면 앉아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있다면 밤에 빵 하나를 주고는 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에게 만찬이나 다름 없었다.

먹을 것을 남에게 나눠 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사치. 노인은 블랙의 생각보다도 훨씬 더 잘사는 사람인 듯 했다. 아무래도, 노인의 말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지만 말이다.

"요즘, 시끄러운 것 같구나."

"그러게 말이에요."

그리고, 전의 그 계집과도 안면이 생겼다. 이름이, 아리시아라고 했던가? 블랙보다도 어리지만, 그래도 한 부잣집에 하녀로 들어가 있다는 것 자체가 그와는 신분이 틀리다.

블랙을 볼 때마다 쿡쿡 웃는 것이 기분이 나쁘지만, 전에 몰래 와서 사과를 하나 건내주고 간 이래, 차마 뭐라고 할 수가 없다.

"식인을 한다고."

"네. 거지들 중 하나라고들 하던데, 덕분에 요즘 나오기가 좀 무서워요."

"너도 조심하거라."

"에이. 전 작잖아요. 먹을 것도 없을 텐데요."

"그건 아냐."

여느 때와 같이 담 아래에 앉아 잇던 블랙이 불쑥 끼어든다.

"무슨 얘기야?"

"오히려, 작으니까 더 쉽다는 뜻이야. 그리고 아직 못 들었나 본데, 사실 사람을 먹는 거지가 있다는 건 꽤 오래전부터 돌았던 소문이야. 그리고, 그 중에는 딱 너 만한 소녀도 있었데."

"그, 그만해!"

아리시아는 소름이 끼친다는 듯 양팔을 문지르기 시작한다. 그러자 노인의 시선도 블랙에게로 향한다.

하지만, 노인의 눈에는 겁을 먹었다는 느낌은 없다.

"넌 그 얘기를 어디서 들었느냐?"

"헹! 난 거지라고. 거리에서 떠도는 소문 쯤은 알고 있어."

가슴을 쭉 내미는 블랙.

"흐음. 그래, 그렇게 오래 '육식'을 해왔단 말이지. 지금 쯤이면 배가 두툼히 불러 있으렸다."

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중얼 거렸지만, 순간 블랙의 머리 속에 불쑥 떠올랐던 것이 있었다.

그리 오래전 얘기도 아니다. 고작 일, 이 주 전의 일이다.

거리에서 한 거지와 마주쳤을 때 느꼈던 위화감.

도대체, 어떻게 해야.

거지가, 그리 살이 찔 수가 있지?

눈이 부릅떠진다. 병이라서? 아니다. 피부가 누렇지는 않았다. 안색도 좋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건 분명, 먹어서야. 하지만, 거지가 뭘 어떻게 그리 잘 먹을 수 있었던 건가?

"왜 그러지?"

"아, 아냐."

갑자기 허둥거리는 블랙을 보며 노인이 물었지만, 그는 고개를 팩 돌리고 태어나서 이리 처음으로 머리를 쓰는 것은 처음 있는 일 같다.

하지만, 상대는 큰 어른이다. 빼빼 말라빠진, 10살도 안된 꼬맹이가 그런 거지를 잡아 갈 수는 없다. 하지만.

'알, 알리기라도 하면.......'

10골드라는 얘기도 들었었지. 저 누런 것을 10개나 준다는 말이지.

"어디 가냐."

"잠깐 좀......

불쑥 일어나는 블랙을 보며 노인이 물었지만, 그는 얼버무리며 어슬렁어슬렁 거리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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