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광천광야 님의 서재입니다.

청세빛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광천광야
작품등록일 :
2011.01.28 13:23
최근연재일 :
2011.01.28 13:23
연재수 :
49 회
조회수 :
63,730
추천수 :
209
글자수 :
212,876

작성
09.12.20 17:59
조회
1,128
추천
1
글자
11쪽

제 3장, 카이젤. 1

DUMMY

내 이름은 아니었다.


이름으로 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남자는 책을 '보고' 있다. '읽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낡디 낡아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책장. 그곳에 꽂혀 있는 책을 그저 보고 있을 뿐이다. 먼지를 털어내며 이제는 팔리지도 않을 너무나도 낡은 책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언뜻 보면 아무런 생각 없이 반복적인 작업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생각 없이? 아니다. 그의 머리는 다른 이의 몇배는 복잡한 생각들이 쉴 세 없이 교차하고 있다.

하나하나가 제목만으로도 그 내용이 머릿속에 생생히 떠오르는 것들이다. 물론 통째로 암기 했다라고 할 수는 없다. 몇 장 째에 몇 줄을 외라고 한다면 결코 해내지는 못한다. 다만, 무슨 내용인지에 대해 설명하라거나, 간추리라 한다면 지금 이 남자보다 제대로 할 수 있는 이는 세상에 몇 안되리라.

쉴 세 없이 눈이 돌아가면서도, 그리도 빠르게 머리가 돌아가고 있으면서도, 남자의 표정은 어딘가 살아 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아무런 자아를 지니지 않고, 당연히 해야 할 것을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방아와도 같은 행동.

뒤에서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남자의 눈동자가 멈췄다. 생각도 멈추고, 남자의 눈에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한다.

"무엇을 하고 있느냐. 블랙."

블랙. 거지에서 한 고서점의 점원이 된 소년, 아니 이제는 청년이라 불러야 할 나이대가 된 그가 노인에게 고개를 숙인다.

표정이 없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어느 순간부터 전혀 알 수가 없다. 어렸을 때부터 블랙을 보아온 노인도 이제는 전혀 파악하지 못한다.

하얀 얼굴에 깨끗한 피부. 그럼에도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외타를 그다지 하지 않았던 때문이랄지. 멋지다기 보다는 병약하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일견, 외견으로만 보자면 그렇다. 하지만 눈을 보면 또 그런 느낌은 사라진다.

병약하다기 보다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전혀 파악 할 수 없는 눈. 인형과도 같이 느껴져서 보고 있으면 무서워 질 정도다. 하지만, 노인만은 알고 있다.

생각이 너무 많아, 머리속에서 떠돌고 있는 알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아 오히려 아무런 것도 떠오르지 않는 눈동자. 그렇기에 노인도 가끔은 의문이 든다. 대체 녀석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뭘 하고 있는 게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책을 좀 정리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정리라, 하하하. 정리할게 무엇이 있다고."

이곳은 커다란 영지가 아니다. 손님이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온다면 잘 온 편이고, 한 달에 한번 책이 팔리기라도 하면 또한 잘 팔리는 셈이다.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조차 드문 시점이니까.

그런 곳에서 정리라니.

노인의 웃음 소리에도 블랙은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다. 이런 작은 고서점이건만, 실로 주인을 앞에 두고 있는 듯 한 정중함.

건방지게 왁자지껄 떠들며 손을 휘두르던 거지 소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예의를 잃지 않는 한 청년이 있을 뿐이다.

어쩐지, 옛날이 그리워지는 모습에 노인은 빙그레 웃는다.

"이제는, 나에게조차 미소를 보여주지 않는 게냐?"

노인이 일부러 밉쌀 맞게 묻자, 비로소 그의 얼굴에 표정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감돈다. 다만, 미소가 아닌, 난처한 듯한 얼굴이었지만 말이다.

"그런 것은 아니고, 다만, 최근에 그다지 웃을 일이 없어서 그런가 봅니다. 결코 불만이 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흐음........."

노인이 볼 때에 결코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본인이 그렇다는데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래. 그래도 그렇게 냉정하게 말하니 섭섭하구나."

"아니, 그런 것은 아니라......."

"하하하하하."

난처해 하는 모습을 보니 여전히 어린 애다. 아니, 자신만이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고서점에서 일한지 벌써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참으로 운이 좋게도, 그 동안 이 영지는, 아니 이 주변은 전란에 휩싸인 적이 없다.

아무런 변화가 없는 고요한 삶. 비록 영주가 제대로 된 인물은 아니라 살기 좋다고는 말 할 수 없으나, 그 폐해가 이런 작은 고서점에까지 올 정도는 아니었다.

'녀석도 슬슬 가족을 가져야 할 텐데.......'

훤칠하게 자라난 블랙을 보며 노인은 그리 생각한다.

이런 좁은 곳에 있으니 한참 끓는 청년대의 나이로서 여자를 찾을 만도 한데, 블랙에게는 그런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한층 더 노인은 안타깝다.

주변에 여자아이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블랙에게 목숨을 구한 계집애, 아리시아의 경우만도 그렇다. 늙은이의 안목으로 봤을 때는 아리시아도 분명 블랙에게 마음이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녀석은 어디까지고 서점의 오빠라는 위치를 고수했다.

하도 안타까워서 물었을 때, 블랙은 이리 대답했었다.


-그저, 저와는 안 맞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러냐, 그럼, 너에게 어울리는 여자는?-

-그런 것, 생각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말이 잘 통하면 그걸로 되는 거겠지요.-

-아리시아는 말이 안통하더냐?-

-물론 동생으로서는 귀여워하고 있었습니다만, 솔직히, 반려로 보기는 힘들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성향이 있는 법일 테지요. 누군가에게는 매력적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는 보일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냐.-


이미 시집 가버린 아이를 두고 미련을 두어봤자 의미는 없지만.

그리고 블랙은 그저, 옛날의 노인과도 같이 서점의 앞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는 삶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 슬슬 한계인가......

아니, 혼인에 대한 한계가 아니다. 다른 것에 대한 한계다. 블랙의 지식은, 더 이상 이런 고서점에 머물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본인은 아무런 티도 내고 있지 않지만, 노인의 눈에는 그게 확실히 보였다.

녀석이 뭔가를 더 알고 싶다 하면, 더 이상 이런 허름한 서점의 앞을 지키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어떻게 해서는 세상에 내보내서, 더 많은 것을 알게 하고 싶은 것이 노인의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방법을 모르겠다. 그저 한 서점을 꾸려왔던 노인네로서는 저 녀석을 밖에 내보내줄 방법도, 인맥도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블랙에 대한 안타까움만이 한층 더 심해질 뿐이었다.



"여, 블랙, 영감님은 건강하시냐?"

옛날에는 몽둥이를 들고 쫓아오던 식료품점의 상인. 이제는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줄 정도로 친숙해진 사람이기도 하다. 간단히 장을 보고 들어가던 블랙은 고개를 숙이며 답한다.

"예."

짧막하게 대답하는 그였지만 상인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피식 웃으며 가볍게 손을 흔든다. 그러다 무엇인가 생각 났다는 듯 손가락을 튀기며 가계 옆의 벽을 가리킨다.

"아, 마침 잘 왔다. 물어 볼 것이 있었는데, 저기 저 벽보, 뭐라고 적혀 있지? 아침에 병사 하나가 붙이고 가던데."

"저것 말입니까?"

그렇게 말하며 눈을 가늘게 모으는 블랙. 눈이 안 좋은 것이 아니다. 워낙에 자야하게 적혀 있기에 제대로 알아 보기 힘들었던 것이다.

"마(馬)관 서기관 모집, 이라고 적혀 있군요. 글을 아는 사람이라면 아무라도 괜찮다고 합니다."

"마관? 마구간을 말하는 거야?"

"그런건가 봅니다."

"뭐야, 그럼 쓸모 없는 거잖아."

혹시 무슨 대단한 일인가 싶었던지, 상인은 맥이 빠진 다는 듯 한숨을 푹 쉰다. 하지만 블랙은 오로지 노인만이 알아 챌수 있을 정도로 슬쩍 눈꼬리가 올라간다.

마관직 서기관? 그런 관직은 애초에 없다. 대충 마구간에서 일할 사람이 필요하나 본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없다거나 하는 단순한 이유로 만들어낸 것일 터다.


지극히 혼란스러운 시대, 성스러운 드래곤 에스티니의 영하에 있기에 여태까지 이 영지는 커다란 전쟁 한번 겪어 본 적이 없다고 하지만.........

애초에, 에스티니의 가호가 있으니 아무런 전쟁이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은 오로지 영주가 자신을 높이기 위해 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 문헌에 이르면, 드래곤은 자신의 영역, 즉 레어에 접근하지 않는 한 아무런 피해를 끼치지 않는 다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 영지는 즉, 에스티니의 영역 안에 들어가지만 않으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성산 에스티니가 근처에 있을 뿐, 오로지 그것 뿐이었다.

아무런 쓸모도 없는 땅이기에 이토록 내팽겨 쳐 진체로, 이 곳의 영주의 독재하에 이리도 유지해온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에 달했을 터. 시장에서 떠도는 소문이나 듣는 블랙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슬슬 위기감이 다가오고 있다.

흔히, 남방 육국이라 불리는 6개의 소국의 연합체. 그 중에서도 블랙이 살고 있는 곳은 왕권이 가장 약하다고 알려져 있는 노이로 왕국의 한 남작의 영지다. 왕권이 가장 약하다는 것은, 그만큼 귀족들 끼리의 패권 다툼이 심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제는 국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북동쪽으로는 신성국가 다크우드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고, 남쪽으로는 해상 국가로 이름 높은 프룬트 왕국. 서쪽으로는 저 그랜드 마스터, 오시마르 야크람이 대신관으로 있는 자나툴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이래저래, 악재의 악재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원체 남방 육국은 대륙의 삼대 강국중 하나, 먼 옛날, 저 지략가로 유명했던 색마 공작 아르게르스를 탄생시켰던 에르나 왕국을 경계하기 위해 맺었던 동맹국들이었지만.

그들 간의 동맹의 의미도 서서히 색이 옅어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음, 사람 이름만을 소제목으로 하고, 마지막까지 가볼까 생각중이니다. 등장인물이 굉장히 많으니까요.


혹 전작인 농부를 보셨다면, 꽤 낯익은 이름들이 몇 나왔습니다. 물론, 농부는 이 시대의 한참 뒤의 이야기이므로, 크게 관련은 없지만 말이죠 긁적.


그럼 다음에 또 (__)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8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청세빛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2 제 3장. 카이젤. (완) +7 10.02.20 1,047 9 7쪽
21 제 3장. 카이젤. 6 +6 10.02.16 938 4 11쪽
20 제 3장. 카이젤. 5 +9 10.02.02 991 3 13쪽
19 제 3장. 카이젤. 4 +8 10.01.31 948 1 8쪽
18 제 3장. 카이젤. 3 +9 10.01.27 981 1 12쪽
17 제 3장, 카이젤. 2 +9 09.12.24 1,023 1 8쪽
» 제 3장, 카이젤. 1 +8 09.12.20 1,129 1 11쪽
15 로이안. +13 09.12.16 1,265 2 9쪽
14 제 2장. 기르넨. (완) +17 09.12.12 1,244 4 11쪽
13 제 2장. 기르넨. 6 +17 09.11.09 1,270 2 9쪽
12 제 2장. 기르넨. 5 +14 09.10.20 1,317 2 9쪽
11 제 2장. 기르넨. 4 +10 09.10.06 1,306 2 8쪽
10 제 2장. 기르넨. 3 +11 09.09.26 1,399 2 14쪽
9 제 2장. 기르넨. 2 +12 09.09.22 1,439 1 10쪽
8 제 2장. 기르넨. 1 +12 09.09.15 1,706 2 9쪽
7 제 1장. 블랙. (완) +15 09.09.13 1,756 4 17쪽
6 제 1장. 블랙. 5 +7 09.09.07 1,731 3 10쪽
5 제 1장. 블랙. 4 +9 09.09.02 1,766 2 9쪽
4 제 1장. 블랙. 3 +8 09.08.29 1,923 1 9쪽
3 제 1장. 블랙. 2 +8 09.08.27 2,182 3 8쪽
2 제 1장. 블랙. 1 +13 09.08.25 3,297 2 9쪽
1 프롤로그. 청공을 가르는 세줄기의 빛. +16 09.08.25 6,431 1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