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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천광야 님의 서재입니다.

청세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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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천광야
작품등록일 :
2011.01.28 13:23
최근연재일 :
2011.01.28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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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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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12,876

작성
09.08.27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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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제 1장. 블랙. 2

DUMMY

몇일 후.

블랙은 굶주린 배를 잡고 쓰레기를 뒤지고 있었다. 한번 도둑질을 당한 장사치들의 경계가 심해졌는지, 도무지 빈틈을 찾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속으로 투덜거리며 오물 덩어리를 뒤치적 거리고 있자니 골목 저편으로,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는 것이 그의 눈에 보였다. 다른 곳에서 극단이라도 온 것일까? 사람이 많다면 한푼이라도 떨어질지 모르는 일. 블랙은 즉시 그들이 있는 것으로 비척비척 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그가 기대하고 있던 상황은 아니었다. 오히려 엄숙하다고 할 정도로 진지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는 가운데, 건물의 넓직한 벽면에 무언가를 한가득 붙여놓고, 한 관리가 크게 외치고 있다.

"최근에, 살인 사건, 아니 식인 사건이 늘어나고 있다. 범인은 한명이라고 생각했으나, 그 수를 보아서는 한 집단임이 틀림없다! 이에 영주님은 이 사태를 더 이상 방관 할 수 없다고 판단하셨다! 이 식인귀 집단에 현상금 100골드를 건다! 발견해서 경비대에 알리는 자에게도 10골드의 금액을 지불하도록 하신다 말씀 하셨다! 단순히 집히는 것이 있는 자라도 좋다! 즉시 경비대에 알려라!"

블랙은 인파에 가려져, 벽보의 내용은 보지도 못하고 관리의 목소리만을 듣고 있었다. 아니 애시당초 벽을 본다고 하더라도 글을 읽을 줄 모르니 본다는 것에 의미는 없었을 터이지만.

'진짜 있었나 보네, 식인귀라는 녀석이.'

단순히 뜬소문은 아니었는가 보다. 아니, 그렇다 하더라도 이건 너무 늦다. 블랙이 그 얘기를 들은 것은 벌써 몇 달도 전의 이야기이가 아닌가. 그와 같이 생각한 자들이 많았는지, 관리의 이야기가 끝나자 그들의 사이에서는 비난의 수군거림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아니, 소문에는 이미 많이 먹힌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늦게 알리는 거지?"

"쳇, 알게 뭐야. 누가, 이제야 귀족 나리들에 관련된 사람이 먹혔으니까 이러는 거 아니겠어?"

"그런데, 한둘이 아니라 집단이라니, 그게 더 무서운데."

"거지 놈들이 틀림없어. 그 놈들을 죄다 죽이거나 내쫓아 버리면 해결될 문제라고."

애석하게도 이 영지에 거지들이 많은 것은 영주가 굉장히 관대한 사람인 탓은 아니다. 오히려, 다른 영지보다 경계가 몇배나 허술하기에 도둑, 다른 범죄자, 혹은 거지들이 머물기에 좋은 환경인 것이다.

그리고, 블랙 자신도 그런 이유로 이 영지에 머물고 있는 만큼 순간 몸을 움츠린다. 사람들의 시선이 흉흉해지기 시작하고, 그들 중 몇몇은 이미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설마, 누가 이런 작고 빼빼 마른 거지 소년을 식인귀라고 생각하겠냐만은, 그것은 사람에게 이성이 남아 있을 경우다. 대중이라는 것이 한번 폭발하기 시작하면 죄가 있건 없건, 불쾌한 시선을 줄만한 이들에게 그 불만은 쏟아지기 마련이니까.

몸을 움츠리고, 최대한 그들에게서 시선을 피하며 뒷골목의 아무의 눈에도 띠지 않는 곳으로 걸음을 옮긴 블랙.

아무도 없는 곳에 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고 벽에 걸터앉는다.


이제, 한동안은 돌아다니는 것도 주의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절로 앞날이 막막해져 온다. 식인귀인지, 빨리 잡혀가버렸으면 좋겠다. 돌아다니고, 사람들의 사이에 있어야 그날 하루 연명할 먹을 것을 구할 수 있거늘, 이래서야 정말 도둑질 밖에 할 것이 없이 없지 않은가.

"후우......."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놀란다.

흠짓.

아니, 사람이 있다. 작은 숨소리조차도, 인기척조차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한 노인이 마치 벽과 같이 앉아 있다. 벽이라고 생각했던, 아니 아무것도 의식조차 하지 못했던 곳에 떡하니 간판이 달린 곳이 있다.

조그마한 가게, 안에는 먹지도 못할 종이쪼가리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는 곳.

책이라는 것을 파는 곳이다. 물론, 글을 전혀 모르는 블랙에는 전혀 인연이 없던 곳이기도 하다. 아니, 그보다 이 골목 자체를 처음 들어 와본다.

이런 곳이 있었나.

조금만 더 가면 자신이 자주 어슬렁거리던 길가가 나온다. 그가 언제나 길의 표식으로 삼고 있는 신전의 뾰족한 지붕이 바로 눈 앞에 보일 정도다. 방금 전, 사람들의 시선에서 무서움을 느낀 블랙은 노인을 힐끗힐끗 바라보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거긴 길 없다."

블랙은 음칫 걸음을 멈춘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노인의 목소리에 놀라기 보다는 의문이 먼저 떠오른다. 분명히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길이 있는데? 그러자 노인은 마치 혼자서 말하듯 작지만서도, 뚜렷한 목소리가 블랙의 귀에 생생히 이어진다.

"이 고목은 미로 같은 곳이지. 이어져 있을 것 같다, 누구나 그리 생각하고 걸음을 옮기지만 곧 다들 투덜거리면서 되돌아가는 광경을 몇 번이나 봐왔다. 그리니 그 곳에 길은 없을 것이야."

과연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목소리는 분명 들려오고 있건만, 워낙에 노인의 존재감이 없다보니 마치 벽이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저 노인, 아까부터 의자에 앉아 있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도 불편해 보여서 상체를 반쯤 숙이고 지팡이 하나에 의존해 있다.

약자.

거지인 자신보다도 약자.

번듯이 자신의 가게를 가지고 있고, 특히 아무나 할 수 없는 서점의 주인이라는 것은 보통이와는 다른 지식을 가진 이라는 뜻이건만, 블랙에게 있어 강자란 오로지 강한 힘과 육체를 가진 자이다.

종이 쪼가리들 앞에서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 노인 따위........

그리 여긴 블랙의 움츠려진 어깨를 펴진다.

"가봤어요?"

"아니."

"아니, 가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요?"

블랙은 괜히 시비조로 말한다. 자신보다 약한 이에게 이러쿵저러쿵 말을 듣고 싶지 않다는 오기일까. 그러나 노인은 아랑곳 하지 않고 전과 같이, 조용히 말을 이어 나간다.

"다리가 불편해서 말이지. 가보지도 않고 어떻게 아느냐, 라고 했느냐? 하지만 꼬마야.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다. 그 짧디 짧은 인생, 모든 것은 겪을 수는 없다. 그러니, 주위를 보고, 사람들을 보고, 지식을 넓혀야 하지.

보지도 않은 것을, 겪지도 않은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오랜만에 사람이 찾아온 것일까? 여타 노인네처럼 말이 많다. 주절주절 늘어놓는 노인을 향해 블랙은 콧방귀를 뀌고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긴다.

다리도 불편해, 이제 갈 날만 새고 있는 주제에 무슨 충고야? 앞날이나 걱정하시지. 나도 앞날이 걱정 돼서 노인네의 시답잖은 얘기를 듣고 있을 틈은 없다 이거야.

그리고. 조금 더 걸어 나가자.

벽이 있다. 큼직해서, 성인 어른도 쉬이 넘어 갈 수 없을 것 같은 크고 든든한 벽이.

"이런 젠장!"

욕설이 터져 나온다. 왜, 이런 곳에 이렇게 의미 없는 벽을 새워두었단 말인가.

블랙은 투덜투덜 거리면서 되돌아 나온다. 저 거리로 돌아가려면 원래 왔던 길을 되돌아 가는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다. 그 노인네를 다시 만나면 비웃음을 받을 텐데. 하고.

아니다 다를까, 노인의 낮은 웃음 소리가 들려온다.

클클클.

노인의 웃음소리에 저절로 신경질이 난다.

"뭐가 그리 웃겨요!"

"'가보지도 않은 나'는 그 길이 막혀 있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말도 듣지 않고 '가봐서야' 막혀 있는 것을 알게 된 바보가 눈앞에 있으니 웃는 거다."

"칫."

뭐라고 반박을 해주고 싶었지만, 노인은 분명 말했었다. 앞에는 길이 없다고. 괜히 마음이 상한 블랙은 빨리 이 곳을 뜨고자 걸음을 빨리한다.

그런 블랙의 등 뒤로, 다시 노인의 목소리가 박힌다.

"'알았으면', 다음부턴 실수하지 마라 꼬마."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 블랙은 소리를 빽 지른다.

"다시 이 곳에 올 일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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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 1장. 블랙. 4 +9 09.09.02 1,766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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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 1장. 블랙. 1 +13 09.08.25 3,297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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