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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천광야 님의 서재입니다.

청세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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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천광야
작품등록일 :
2011.01.28 13:23
최근연재일 :
2011.01.28 13:23
연재수 :
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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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735
추천수 :
209
글자수 :
212,876

작성
09.09.07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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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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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0쪽

제 1장. 블랙. 5

DUMMY

"뭐? 살 찐 사람?"

평소에 제대로 말도 안하고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났다는 듯 하고 다니던 블랙. 그가 말을 걸어오자 노상에 엎드려 있던 거지는 어이없다는 듯 되묻는다. 보통 이런 녀석이 말을 걸어오면 자기 패거리에 끼워 달라거나 하는 건데. 괴상한 것을 물어 온다.

"몰라, 임마. 꺼져."

'쳇.'

역시, 그나마 낫다고 생각되던 녀석이기에 말 한번 걸어 봤더니 제대로 된 답은 주지 않는다. 아마, 그 자신도 자세히는 모르는 것일 테지. 알고 있는 자라면, 어딘지 이러쿵저러쿵 떠들게 되었을 테니까.

거리를 터벅터벅 돌아 다녀 보았지만 도무지 눈에 띠지 않는다. 그렇게 큰 영지도 아닌데, 맘 잡고 뒤지고 돌아다닌다 하더라도 반나절이면 돌 수 있을 정도의 규모인데 이리도 눈에 띠지 않다니.

그래, 눈에 띠지 않는다. 밭에 일을 하러 가는 농노도 아닐 테고, 간판을 걸고 가게를 차린 상인도 아니라는 뜻이다.

역발상. 생각을 뒤집어 본다. 원래, 사람의 눈에 안 띠는 직업이니까. 거리에도 잘 돌아 다니지 않는다. 그리고 딱히 차림새에 신경을 안 써도 되는 일이라. 거야 상인들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러하지만 서도.

뭐가 있을까.......

'.......고기?'

이건 문뜩 떠오른 생각이다. 그야, 먹고자 하자면 아무렇게나 뜯어 먹는 것은 가능하겠지. 하지만 사체들은 끔찍하게도, 살이 전부 발라져 있는 상태라고 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눈에 잘 띠지 않는다. 그렇다면?

"푸줏간이라거나."

생각이 절로 입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말하고 보니 그럴싸했다. 푸줏간을 운영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다른 이들은 그리 생각하고 있겠지만, 그 고기의 대부분은 윗대가리들의 입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그들은 대부분의 고기에 손도 되지 못한다. 전에 거리에서, 영주의 성에서 나온 관리들에 의해 고기들을 전부 빼앗겨 울고 있던 푸줏간의 남자를 본 적이 있기에 기억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범인은 한명이 아니라고 했지.'

관리가 외쳐 되었던 것이 기억 속에 떠오른다. 푸줏간은 영지에서 공용으로 운영되는 곳이니 사람들도 한명만 있을 리도 없다. 그들 사이에 공범이 있을 수도 있으니, 그 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눈에 띠어서 좋을 것은 없을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 찾아간 성 외곽의 푸줏간. 비릿한 피냄새가 블랙의 코에 스며들어 온다. 원래, 푸줏간이라는 것이 좋은 이미지가 있는 곳이 아니라 이 근방은 사람들도 잘 돌아 다니지 않는다. 블랙은 코를 부여잡고 벽의 뒤에 숨어, 조심스럽게 안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 둘씩 살핀다.

'찾았다.'

묵묵히 칼을 갈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 칼에 비친 남자의 웃고 있는 얼굴은 어딘지 섬뜩해 보이기도 한다. 선천적으로 굳어진 웃는 듯한 얼굴의 저 남자. 더 두툼한 모습. 그를 범인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탓일까.

그 남자뿐만이 아니다. 다른 이들도 옆에서 울고 있는 돼지를 욕설과 함께 끌고 오고 있거나, 혹은 도축된 고기들을 강철의 고리에 푹 걸어 올리고 있다.

'하지만, 저 자 외에 그리 살찐 자는 없군.'

고기를 먹는다 한들 반드시 살이 찐다는 보장도 없건만, 그것 하나 만으로 저 살찐 남자를 찾아온 블랙에게는 저 남자의 단독범행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 녀석!"

그렇게 몰래 훔쳐보고 있던 블랙의 등 뒤에 갑자기 그림자가 진다. 그리고 옷의 바지직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하늘로 올라간다.

"어이, 뭐야?"

"거지 새끼가 고기를 훔쳐 가려고 하고 있어!"

푸줏간 앞에서 얼쩡거리고 있는 거지 소년을 보면, 그리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리라. 갑작스런 일에 얼어 있던 블랙은 남자의 말에 놀라 허둥거리며 반박한다.

"아, 아니에요!!"

"아냐? 그럼 뭐야!"

당신들 중에 식인귀가 있을 지도 몰라서! 라고 외치려 했지만, 그 살찐 남자와 눈이 마주한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다물고 만다. 혹시 진짜라면,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블랙이 아무런 말도 못하자, 그를 들어 올렸던 남자는 콧방귀를 끼면서 벽에 내던진다.

"것봐! 이 더러운 거지가!"

"아악!"

파악!

벽에서 바닥에 내쳐지는 블랙. 그러자 남자들이 화난 얼굴로 다가와 그를 일제히 밟기 시작한다.

"꺼져!!"

"어딜 쓰레기 같은 녀석이!"

남자들의 발길질 속에서, 머리를 감싸 쥔 팔의 틈새로, 블랙의 눈은 오로지 그 살찐 이만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발길질에 가담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흥미 없다는 듯 다시 슥슥 칼을 갈고 있다.


"어디서 그렇게 맞고 왔느냐?"

노인의 말에도 답하지 않고 담벼락에 쭈그려 앉는 블랙. 대꾸하기도 귀찮았다. 세상에 대한 원망? 그거야, 태어났을 때부터, 누군지도 모를 부고가 자신을 버린 순간부터 이어지고 있을 테지. 아니, 평소에 살아가고 있는 것 자체가 바로 원망이라고도 할 수 있다.

대꾸가 없는 일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나, 오늘은 뭔가 달랐다. 평소보다 더 더러운 꼬라지도 온 적은 있었으나 이렇게 만신창이로 돌아온 것은 없었다. 말없이 블랙을 바라보던 노인은, 이윽고 혀를 끌끌 차면서 지팡이에 기대어 가게의 안으로 들어간다. 이윽고, 손에 약초를 으깬 것 같은 통을 가지고 나와 그의 상처에 문지른다.

상처가 쓰라리고 아팠다. 하지만, 블랙은 노인의 손을 뿌리치지 않는다. 이게, 약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리고, 상처를 빨리 낫게 한다는 것도.

쭈글쭈글한 손이 블랙의 빰에 닿자.

"왜........"

닫혀 있던 블랙의 입이 열린다.

"왜 이렇게, 저에게 잘해주죠?"

"잘해준다라, 욕심 없는 녀석이로다."

그럭저럭 먹고 사는 입장으로서, 그저 남는 빵 몇조각을 건내 주었을 뿐이고, 그저 자신이 심심했기에 몇 번 말상대감으로 삼았을 뿐이고, 오늘도 집에서 남아도는 외상용 약초를 조금 발라 주었을 뿐인데.

이 것만으로도 녀석에게는 그리 잘해주는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특별히 너라서 잘해주었던 것은 아니다."

통을 아래 내려놓고, 노인도 블랙에 마주 앉아 그의 눈을 바라보며 바닥에 털썩 주저 앉는다.

"그저, 이 한적한 거리에 꼬마 거지가 터를 잡았기에, 이 늙은이의 말상대가 되어주었기에 몇 번 동정을 했을 뿐이지."

동정.

"난 동정 받고 싶지 않아.........."

나라고, 나라고 한들.

이러고 싶을 리가...... 두들겨 맞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을 리가........

몸을 부르르 떠는 블랙을 노인은 지긋이 바라본다.

"바뀌고 싶으냐?"

"당연하죠! 거지 따위, 좋아서 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나도, 나도 그냥........."

거리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처럼, 그저, 평범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서, 밭이나 갈면서 평생을 보내고 싶었는데. 그러고 싶었는데.

상황이 이래서인지, 거칠게 먹었던 마음이 서글픔으로 가득 물든다.

"하지만 그리는 못되었지."

노인이, 블랙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말을 자른다.

"일단, 너는 자신의 상황을 인정해야겠구나. 너는 거지 아이고, 어떤 일인지는 모르지만 한참 두들겨 맞고 왔구나. 그래, 무엇 때문이지?"

"........돈."

"허허허허! 그거 멋진 이유로구나!"

블랙은 처음으로 보는 노인의 웃음 소리. 언제나 한결 같이 무표정으로 있었기에, 노인의 다른 표정을 짓는 것을 보는 것 자체가 처음이다.

"도, 도둑질 아냐!"

"누가 도둑질이라고 했더냐? 너를 보면 안다. 굶을 지언정, 도둑질은 하지 않을 녀석이지."

그렇게 말하니, 찔린다.

"........사실, 전에.........딱 한번 한 적은........ 아니, 많아.........."

"흐음. 솔직한 녀석이로다."

"하지만, 하고, 하고 싶지 않았어. 한 다음에, 배는 부르고, 기분은 좋아졌었지만. 아니, 좋아지지 않았어. 오히려, 어딘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어."

그건 마치, 두발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던 한 인간, 네발로 기어가는 듯한 치욕. 하지만 그것은 처음에만 그랬을 뿐이다. 도둑질이라는 것에, 점차 점차 익숙해져 가는 자신. 사실은 그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기에, 훔친 다음에는 마치 정해진 것처럼 중얼 거릴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갚아준다고, 할 수 밖에는.......

나는, 거지인 고작, 그런 말이나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알았으면' 됐다."

처음에 만났을 때와 같은 말을 하면서, 노인의 손이 블랙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래, 그래서 이번에는, 정당히 돈을 벌어 보자고 하는 거구나?"

"응."

"말해보려무나. 이 늙은이가 뛰어다는 것은 못해도, 가벼운 꾀 하나 정도는 빌려줄 수 있을지 모르지."

하지만 블랙은 건뜻 이야기 하지 못한다. 그가 머뭇거리자, 노인은 입꼬리를 쓰윽 올린다.

"위험한 일이냐?"

"아주, 위험해요......우, 운이 나쁘면 주, 죽을지도 몰라요."

"사람은 언제 어느 때더라도, 운에 걸면 안 된단다."

노인은 헐헐 웃으면서 검지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톡 찍는다.

"자신의 머리에 걸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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