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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천광야 님의 서재입니다.

청세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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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천광야
작품등록일 :
2011.01.28 13:23
최근연재일 :
2011.01.28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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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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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글자수 :
212,876

작성
09.10.20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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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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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9쪽

제 2장. 기르넨. 5

DUMMY

"아쉽네요. 당신들이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이곳에 있는 지,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죽음을 안겨 드려야 옳건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아쉬운 부분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녀는 정말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기르넨을 향해 검 끝을 흔들거리고 있다. 마치, 막대기 하나를 들고 강아지를 놀리는 듯한, 아니 그녀의 말 대로라면 곰을 가지고 노는 듯한 느낌이다.

기르넨의 이가 뿌득 갈린다. 물론 진정한 강자를 느껴본 적은 없다. 천성적인 감이랄지, 자신보다 강한 이가 있을 것 같은 전장에서는 한번도 서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러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강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나 강자로서 살아온 기르넨. 그가 언제 이런 대접을 받아 보았겠는가.

동료들을 버리고 살아남는 길을 택할 정도로 자존심이란 것은 없는 모양이라고 생각했건만, 자신도 모르는 어떤 것이 가슴 속에 조금은 남아 있던 모양이다.

그 조금 남아 잇던 불씨가, 지금은 가슴속을 가득 채우는 거대한 불길에 뒤에 이성을 뒤덮는다.

"하! 하하하! 지금 그걸 나에게 묻는 거냐 망할 년아!"

온 힘을 다해 횡으로 그녀의 목을 노리며 검을 휘두른다.

챙!

물론, 아주 간단히 막힌다. 여전히 한 손으로 검의 방향만을 바꾸는 그녀. 올려쳐오는 기르넨의 검을 내려치고 있다.

그녀의 고개가 갸웃 거린다.

내려치는 것이 아니라, 올려친다? 어째서 이런 어색한 공격을?

가가가각!

검의 날들이 마주하는 거친 소리가 들려온다. 검을 힘으로 밀어 붙이면서, 그녀와 얼굴을 맞대는 기르넨. 힘에서 부터가 차이가 큰 듯 그녀의 검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오기로 얼굴만이라도 드리내민다.

"눈 똑바로 뜨지 못하겠냐, 이 기집애야. 눈 앞에 있는 게 널 저 세상으로 안내할 서방님이시다."

"어머나, 서방님이라니. 그런 부끄러운 소리를."

어쩐지, 얼굴까지 붉히면서 검을 쥐지 않은 손으로 볼을 감싼다. 죽을힘을 다해 검에 힘을 주고 있기에 얼굴에 핏줄의 솟아 오른 기르넨의 얼굴과는 대조적이다.

"그래, 네가 죽을 때까지 사랑해주마."

바로 금방 말이야!

기르넨은 그녀와 마주하고 잇던 검을 비스듬히 틀어버린다.

팔 하나, 아니, 네 년을 죽이기 위해, 생명 정도는 걸어 주마!

파파팟!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오른다. 여태까지 기르넨의 검을 지지대로 삼고 있던 그녀의 검이 그의 몸을 향해 파고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도 어지간히 놀란 듯, 처음으로 표정이 흐트러져 있다. 검이 파고 들고 있는 쪽이 오른쪽이라면 모를까, 왼쪽이다. 이 기색이 멈추지 않는다면 심장을 반으로 가르고 허벅지 쯤에서 멈출 터. 뭘 한다고 하더라도 죽음을 피해가기는 힘들 터다.

쇄골뼈를 가르고, 어깼죽지의 근육을 가르며. 심장을 향해 나아가던 그녀의 검.

탁.

하지만 어째서인지, 아슬아슬한 위치에서 그녀는 검을 멈춘다. 망설이고 있다, 라는 것은 거짓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말에 조그마한 희망이나마 걸어 보았던 것도 사실이다.

'어쨌건 그건 네년 사정이고!"

"하앗!"

기르넨은 오른손으로 그녀의 목을 향해 검을 찔러간다. 이 기회야 말로 그가 노리고 있던, 아마도 생애 마지막의 공격이 될 터. 그녀가 허둥거리는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가슴속 깊이 희열을 느낀다.

파아아악!

결국 그녀가 선택한 것은 반대편 손으로 그 검을 막는 것이었다.

"정말.........놀랍군요. 당신은 곰이 아니군요."'

투둑. 투둑.

손바닥을 관통한 검. 터져나온 피가 땅을 적시고, 목에 다다라서야 기르넨의 검에서 힘이 빠진다. 더 이상 들어갈 힘도 남아 있지 않다. 그리고 왼쪽 어깨에서 지독한 고통이 밀려 온다.

그래도, 기르넨은 웃는다.

"헤헷, 그것을........ 이제 알았냐 이 기집애야."

생명을 빼앗지는 못했다. 그래도, 마치 자신을 약올리는 것 같은 오른 손에 상처를 줬다. 낫기야 하겠지만 손바닥을 관통했으니, 상처 자국은 평생 남을 것이다. 엘프는 수명이 길다고 했던가. 그래, 그 평생동안 말이다.

저 멀리, 토막 나 어떻게 죽은지도 모를 표정을 하고 있을 다른 용병들에 비할 수 없는 쾌거다.

"헤, 헤헷........."

심장에 검이 닿지는 않았지만, 이런 상처론 어차피 오래 가지도 못할 터. 고작해야 이 정도에 만족해야 하는 자신의 약함을 처음으로 통감하면서도, 왼쪽 어깨가 죽을 듯이 아프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통쾌함을 느낀다.

그녀의 얼굴에서, 그 느긋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얼굴에서, 동요가 가득했던 그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 졌다. 신기한 느낌이다. 얼굴에서 감정을 지우니 이번에는 마치 한 그루의 거목 같은 느낌을 준다.

기르넨은 문뜩 떠올린다. 원래, 엘프의 이미지란 저런게 아니었을까, 하고. 죽음을 마주하고 있어서인지 그녀의 모습이 한층 더 아름다워 보인다.

묵묵히 그를 향해 있던 그녀의 얼굴에서, 입술이 벌어진다.

"원래대로라면."

그래, 원래대로라면?

"당신을 당장 베어야 하겠지요. 하지만 어딘지, 당신의 눈은 저들과 틀리군요. 그래요. 저들의 길에는 분명히 탐욕이라는 것이 담겨 있었어요. 하지만, 당신은......."

살고자 하는 욕구. 그리고, 어딘지 미지의 세계를 원하는 같은, 따분함으로 가득한 눈. 그리고 지금,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눈. 그는 알지 못하겠지만.

원하던 것을 이룬 듯 한 어린 아이의 눈 처럼 반짝이고 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죽어 가고 있다.

"하..... 엘프란 것들은, 제법 말이 많군...... 그렇게 떠들 여력이 있으면 당장 내목을 치는 게 좋을 거야......"

슬슬 의식이 흐릿해져 간다.

스륵.

그녀는 그제야 감고 있던 눈을 뜨며, 달을 등 뒤로 하고 기르넨을 내려다 본다.

빛이 없는 눈동자. 기르넨과 눈이 마주하면서도.

이 여자, 아니 여엘프, 눈이 보이지 않는 건가.

왜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인지 알게 된다. 어차피 그게 그거였을 테니.

그리고. 분노가 치민다.

지금, 그러면서 눈에 탐욕이니 어쩌고 하고 떠들었던 거야?

"하! 눈도 먼 주제에, 잘도 떠드는군!"

"마음의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웃기는군."

"이번 일은 불문이 부치겠습니다. 당신도 돌아가도록 하세요."

"웃기지...마... 어차피.......죽을 텐데........ 지금....내가, ...어딜 돌아갈....몸처럼 보이나......"

"흠. 그렇군요."

차분히 하늘을 올려다 보며 그녀는 펑퍼짐한 로브의 가슴팍으로 손을 집어 넣어 뒤적거리기 시작한다.

"그럼 이렇게 하죠. 당신의 눈동자에, 무엇인가가 담기게 되면, 그때 다시 오도록 하세요. 아마 그때까지는 전 여기 있을 것 같으니까요."

죽을 것 같다니까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냐.

"눈동자에 무엇을 담아? 멋들어지게 말하는 군. 엘프라 이건가. 하하하 웃기는..... 소리 하고 앉았네...... 그딴 게 어딨어? 이봐, 아가씨가 지금 나에게....... 할 짓은 단 하나야........ 멋들어지게 말하는 게 아니라, 그 칼로, 내 목을 찌르는 게 지금 아가씨가 할 일이라고........."

파앗.

그녀가 품에서, 알 수 없는 가루를 꺼내 기르넨의 상처의 뿌린다.

"크아아악!!"

베였을 때의 몇 배는 될 것 같은 지독한 고통이 몰려온다. 그리고, 그 와 동시에 하나를 깨닫는다.

이건, 약이다. 엘프가 어떤 약초를 사용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혈의 효과라도 된다면, 죽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 제가 가고 난 후에 스스로 목을 매세요. 그것까지 관여하지는 않습니다."

"오, 그 말은........ 좀 멋있군...... 진짜 반해버리겠는데?"

왼쪽 어깨를 부여잡으며 큭큭 웃는 기르넨을 보며, 어딘가 생각이 잠긴 듯, 여 엘프는 고개를 갸웃 거린다.

"잠깐. 당신, 언제 태어났죠?"

"몰라, 그딴 거, 기억하고 있을 것 같아?"

"중요한 질문이에요. 언제 태어났죠?"

"몰라, 그딴 거."

갑자기 기르넨 앞에 쪼그려 앉는 여엘프. 동공에 빛을 띠지는 않았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눈동자다.

"생각이 바뀌었어요."

털썩

힘도 좋은지, 제법 덩치가 큰 기르넨을 단번에 짊어진다.

"이, 이 망할년이, 뭔 짓 거리야!!"

"전 키우는 것을 좋아하죠. 꽃도, 동물도. 하나하나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꽤 보람 있는 일입니다."

그러니.

"이번엔, 인간을 한번 키워볼까 하구요."

흐릿해져 가는 의식의 마지막으로 남아 잇는 기르넨의 심정은 이랬다.


이런 젠장할!







연재가 늦어서 죄송합니다.(__)


11월에 큰 시험을 앞두고 있어서,나름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흠흠. 그래도, 연중 공지를 띠우지 않은 것은, 이번 연재는 접을 생각이 없기 때문이죠.


(긁적) 워, 월간 연재는 되지 않았으니 용서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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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제 3장, 카이젤. 2 +9 09.12.24 1,023 1 8쪽
16 제 3장, 카이젤. 1 +8 09.12.20 1,129 1 11쪽
15 로이안. +13 09.12.16 1,266 2 9쪽
14 제 2장. 기르넨. (완) +17 09.12.12 1,244 4 11쪽
13 제 2장. 기르넨. 6 +17 09.11.09 1,270 2 9쪽
» 제 2장. 기르넨. 5 +14 09.10.20 1,318 2 9쪽
11 제 2장. 기르넨. 4 +10 09.10.06 1,306 2 8쪽
10 제 2장. 기르넨. 3 +11 09.09.26 1,399 2 14쪽
9 제 2장. 기르넨. 2 +12 09.09.22 1,440 1 10쪽
8 제 2장. 기르넨. 1 +12 09.09.15 1,706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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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제 1장. 블랙. 5 +7 09.09.07 1,732 3 10쪽
5 제 1장. 블랙. 4 +9 09.09.02 1,767 2 9쪽
4 제 1장. 블랙. 3 +8 09.08.29 1,924 1 9쪽
3 제 1장. 블랙. 2 +8 09.08.27 2,182 3 8쪽
2 제 1장. 블랙. 1 +13 09.08.25 3,298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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