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의 세계44
얼떨떨하게 있던 내가 다시 정신을 차린 곳은 내가 두 번 다시 안 들어오겠다고 큰 소리까지 쳤던 내게 익숙한 곳이었다.
하지만 다시 자세히 보니 익숙하다고까지 말할 곳도 아닌 오히려 처음 보는 곳이라고 해도 무방할 곳으로 변해있었다.
철커덩 철커덩 거리는 기분 나쁜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동시에 문을 감싸던가 싶더니 곧 크게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반복되어 버린 곳이 되어 있었다.
만일 내가 이곳에 처음 왔었다면 그냥 그런가보다. 또는 희안한 곳이구나 하고 넘겼겠지만은 지금은 망연자실하게 볼 수 밖에 없었다.
저 문안에 있는 것은 분명 누군가의 소중한 꿈으로 차있을 것이다. 지은이의 흑백의 소녀들처럼 혹은 누군가의 숲처럼 혹은 누군가의 아름다운 도시처럼 물론 좌절과 절망으로 조금씩은 변형이 되었을지언정 망가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붙잡아두고 있던 것처럼.
“이……이게 무슨……?”
어처구니가 없어 말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을 때 엘릭서스 누나가 음울하게 말했다.
“드림씨커스 녀석들 짓거리야”
“드림씨커스요?”
그 순간 내 머릿 속에 떠오르는 한마디가 있었다. 그것은 그 누구나가 각기 다른 연설을 하면서도 똑같이 강조하는 것이었다.
[꿈을 포기하고 자유롭게 하는 것에서부터 꿈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하게 이뤄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뭐야? 꿈을 진짜 포기해버리고 그 이상한 단체의 말에 속속들이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거야? 믿을 수 없어!’
“그렇다면 꿈을 사람들이 포기했다는 건가요? 단기간에? 그것도 이렇게 많이라고요? 농담이죠? 그런 건 믿고 싶지도 않아요.”
내 말에 엘릭서스 누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미안하지만 예전부터 사람들은 꿈을 포기해왔어 그게 몇 명이 되든 간에 이 세계는 어떤 부작용 없이 버텨왔지 꿈을 포기한 사람들만 바보 취급받는 그런 시스템이라면 앞으로 몇 명이 더 포기하든 변하진 않을거야.”
엘릭서스 누나의 말에도 나는 납득 할 수 없었다. 아니 처음부터 모든게 잘못됐다고 믿고 싶었다. 그거라도 없다면 나는 마치 붕괴될 것 같았으니까. 그대로 믿으라고 강요받는다고 해도 난 무엇을 위해 그 수많은 꿈들을 여행에 가깝게 체험했어야 했는지 그에 대한 해답도 못 찾은 채 무마된다면 결국 꿈을 포기해야 한다는 미래밖엔 그 어떤 것도 안남을 것 같은 공포심에 나는 발악하듯이 말했다.
“그렇다면 뭐예요?! 지금까지 거짓말 하신 건가요?! 어떻게 그러실 수 있어요?!”
내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신념이 천천히 산산조각 나는 기분이었다. 그 어디에도 내가 꿈꿔왔던 이상은 없었다. 갖가지 색으로 물드는 아름다운 세계는 현실이란 이름 안에서 녹이 슬고 그 색을 바랜지 오래됐다고 그렇게 느껴졌다.
“거, 거짓말이 아니야!”
내 말에 엘릭서스 누나는 애써 부정하듯 외쳤지만 이미 그런게 내 눈과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아니 들어오는 게 더 이상했다.
“저짓말이 아니면, 그럼 뭔데요? 꿈을 포기하고 현실에만 맞게 안주하는게 최선이란 건가요? 그럴거면 애초에 제게 왜 꿈을 보여주신건데요?”
내 말에 그때까지 가만히 듣고 있던 벨케르 형이 대답했다.
“노력했어! 우리들도 노력해왔다고! 꿈을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잡으려고 한다면 그 성과가 있을거라고! 하지만 아무도 우리 말을 들어주려 하지 않았어!”
벨케르 형의 말이 끝나자 문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전까진 들은 적 없었던 음울한 목소리였다.
[그래 이미 나보다 잘난 사람은 수도 없이 널렸는데 고작 나 한명 사라진다고 무슨 별일이야 있겠어? 그냥 쓰레기 치우는 거지 뭐]
모든 걸 포기한 듯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맞아 더 늘어난다고 해봤자 그건 고통만 될 뿐이야 최고로 잘난 사람들만 남겨놓고 미래설계를 만들어라, 그럼 충분히 신세계잖아?]
이번엔 몽롱한 여자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파사삭 하는 소리들이 들리더니 문 몇 개가 부서지면서 가루가 되던가 싶더니 곧 형체도 남기지 않았다.
“아…….”
나는 더 이상 어떤 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살아도 산 것 같지가 않았다. 그저 빨리 이 순간으로부터 도망쳤으면 좋겠다는 생각만이 천천히 온 몸을 침식해왔다.
이 무력감에, 이 좌절감에 나는 어떤 것도 대응할 수 없었다. 내가 가만히 있은지 어느정도 됐을까? 벨케르 형이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미안해 못볼 걸 보여줘서 하지만 우리들이라고 해서 이런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가지고 자기합리화만 시켜대는 걸 볼 수 만은 없었어. 꿈의 자질을 보는 건 우리 드림워커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무한 경쟁에서 반드시 이겨야지만 정품이고 한번이라도 지면 불량품 취급받는 이 꿈을 우리들도 보고 싶진 않단 말야!”
벨케르 형의 말에 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피로함이 온 몸에 몰려왔다
생각해보면 이런건 쉽게 알 수 있지 않았나 싶다는 생각에 헛웃음만 나왔다.
어렸을 땐 공부만 잘하면 됐고 좀 커서는 대학교만 잘 나오면 됐고 그다음엔 취직만 잘하면 됐고 이런식으로 갑갑하게 짜여진 인생 스케쥴이 내 인생 내가 하고 싶은 걸 압박하고 있었다.
소설을 쓴다거나 그림을 그린다거나 게임을 하는건 전부 비정상의 영역에 있었고 오직 공부만이 정상의 영역에 있었다.
이유? 단지 잘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안다. 목적같은건 없었다. 그저 그것만이 길처럼 강요받아왔으니까.
이 생각이 끝나기 전에 문들이 전부 떨어졌다. 거대한 먼지 폭풍 후에 남은 건 출구로 보이는 원래 문 딱 한곳 만이었다.
“응 무슨 일이지?”
“열지 마!”
엘릭서스 누나의 발악에 가까운 말 한마디만이 울려퍼졌지만 이미 내 손은 그 목소리가 퍼지기 전에 잡고 연 상태였다.
“이, 이건.”
그리고 동시에 내 눈앞에 펼쳐진 상황은 끔찍한 지옥이라고 밖엔 형용할 수 없는 사태였다.
도로 가득히 채운 자통차 거리를 1cm라도 더 차지하려는 듯 꽉꽉 채운 기운없는 사람들 만이 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 작가의말
오랜기간 잠수끝에 돌아왔습니다. 기다려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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