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久渗

MITT : 2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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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삼(久渗)
작품등록일 :
2019.07.10 12:43
최근연재일 :
2019.09.27 08:0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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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60,696

작성
19.09.25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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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증명의 시간 (4)

DUMMY

3회 초, 드디어 두용의 타석이 돌아왔다. 오늘은 8번 타순의 위치. 아쉽게도, 혹은 어쩌면 부담 없게도 주자는 없다.

목슬리는 제구가 아주 흔들렸던 지난 경기와는 달리 강력한 포심과 체인지업, 그리고 가끔 섞어 던지는 종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로 앞선 7타자를 모두 범타로 만들었다.

두용은 지난 타자와의 승부를 생각했다.

처음은 포심. 혹은 체인지업. 그러나 체인지업으로 카운트를 잡은 것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결국 초구가 어떻게 들어오느냐, 그리고 그것이 볼이냐 스트라이크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문득 두용은 자신을 아는 모두가 그는 패스트볼에 아주 강하다는 평가를 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상대도 마찬가지일까?

그렇다면 목슬리의 성격은 어떤가?

피하는 성격은 아니다. 정면승부로 끌고 가는 타입. 다양한 레퍼토리 없이 보통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의 투 피치 투수에 더 가깝다.

다만 오늘은 후반기에 장착한 슬라이더가 변수다.

두용은 자신이 떨어지는 공에 약하다는 지적을 받은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당장은 고치기 힘들다는 것도.

그렇다면 체인지업과 슬라이더 그 두 가지에 함부로 방망이를 내밀어서는 안 된다.

결국은 수 싸움. 그리고 과연 목슬리의 빠른 공을 (심지어 체인지업 마저도) 구분해낼 수 있을 것인가.


- 네 눈을 한 번 믿어봐.


영규의 말이 이럴 때 큰 힘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깜빡임. 포심과 슬라이더는 실밥부터 다르므로 깜빡임을 포착할 수 있다면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체인지업, 혹은 구속을 떨어뜨린 포심이다.

타이밍. 그것은 어떻게든 자신의 힘으로 맞춰야 하는 것이다.


“후우······.”


한숨을 크게 내쉰 두용은 천천히 어깨와 허리를 풀었다. 느낌이 좋다. 평소보다 더 유연한 것 같다.

목슬리의 얼굴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과연 초구부터 빠른 승부를 할 것인가? 그렇다면 초구를 노려야 한다.

빠른 공. 그게 온다면 넘길 수 있다. 그런 다짐을 하며 천천히 방망이를 매만지며 타석에 들어섰다.



- 아, 지금까지 양팀 모두 안타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 김두용 선수가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어떻게 보세요, 진 위원님? 처음 예상과는 다르게 김두용 선수. 호크스 타선에 큰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 예, 예. 놀라운 것은 역시 장타율이라고 할까요. 상당히 빠르면서도 부드러운 그런 스윙입니다. 마치······.


- 김정구 선수요?


- 아니요. 그것보다는 성민호 선수에 더 가까운 것 같은데요.


- 이야. 그거 대단한 칭찬인데요. 아, 저도 그런 말을 하는 관계자 분들을 뵌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 더구나 더 놀라운 것은 말이죠. 스윙 스피드와 후에 팔로우 동작에서의 그 신인답지 않은 경쾌함과 깔끔함입니다. 심지어는 축이 조금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말이죠.


- 덕분에 좌우로 빠지는 변화구도 아주 잘 쳐내죠?


- 그렇습니다만, 역시 김두용 선수가 지금까지 보여준 최고의 장점은 빠른 공에 대한 대처죠. 아주 무섭거든요, 이게. 더구나 목슬리는 빠른 공이 특기인 선수입니다. 지난 경기까지는 상당히 제구가 좋지 않았어요. 그러나 오늘은 일단 초반은 좋습니다.


- 네. 그렇죠.


- 이 상황에서 자신의 리듬을 유지하려면, 그러니까 이 경기 뿐만 아니라 다음 경기, 그리고 나아가 포스트시즌까지요. 그걸 유지하려면 결국 여기서 직구의 위력을 살려야 하거든요.


- 그럼 결국 빠른 공 승부를 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 시즌 초반에야 워낙 강력했으니 결정구로도 사용할 수 있었지만, 글쎄요. 어쨌든 카운트를 잡아야 하는 공은 패스트볼, 포심이니까요.


- 그게 김두용 선수에게 걸리면······.


- 깃발을 보니 오늘 바람도 타자에게 좀 유리하고요. 뭐, 큰 거 하나 날아 가는 거죠.


- 아, 말씀드리는 순간 목슬리 와인드업. 초구! 어, 어! 쳤다! 큽니다! 큽니다! 큽니다아아아! 어디까지!! 아! 장외! 장외 홈런입니다! 김두용! 잠실구장을 넘겨버리는 특대 홈런! 장외 홈런입니다!


초구 패스트볼. 두용은 딱 그렇게 마음먹었다. 해설진들이 말한 것처럼(물론 두용이 그것을 들을 수 있을 리가 없지만) 어쨌든 목슬리는 빠른 공을 위험한 결정구로 쓰기보다는 카운트를 잡는데 쓰고 싶었을 것이고 경기가 전까지 잘 풀리지 않다가 이번에 다시 좀 컨디션을 찾으려 하는 투수는 그 카운트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서 결국 빠른 공에 강하다는 두용에게 슬라이더, 혹은 체인지업 승부를 보기 위해 카운트를 패스트볼로 잡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150대 후반의 뛰어난 속도를 가지고 있었기에 잘만 노려서 낮게만 던진다면 두용이 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의 의도대로 패스트볼은 낮게 잘 들어갔다. 그러나 애초에 초구 포심을 노리고 있던 두용은 레벨 스윙과 어퍼 스윙 중간 정도의 정말 적절한, 절묘한 각도로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렇게 만난 방망이와 공은 두용의 손에 아무런 느낌을 주지 않았다. 정말로 완벽하게 맞았을 때의 그런 느낌 없는 느낌.

딱 그것을 두용이 전해 받은 것이다.


두용 본인은 물론 양팀 덕아웃, 그리고 관중들도 놀랐다. 높이 뜬 공이 도통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 하늘에 머무르며 경기장 밖으로 향했다.

한참을 날아가다가 마침내 경기장 밖으로 나가는 것이 확인되었을 때, 두용은 얼떨떨한 얼굴이 되었으면서도 일단 묵묵히 달렸고, 목슬리는 이제는 더 이상 공이 보이지 않는 하늘과 담장 너머를 허탈하게 보다가 이내 2루 부근을 도는 두용을 쳐다보았다.


‘헤이. 이거 98마일짜리였다고. 이걸 밖으로 보내? 미친놈. 이거 완전 괴물이잖아.’


분함이나 아쉬움보다는, 절로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괜히 마운드의 땅을 발로 한 번 스윽 쓸어볼 뿐이었다.



호크스의 덕아웃은 환호하며 두용을 맞이했다. 서감독은 두용의 등을 팍팍 두드리며 격려하면서도 물었다.


“초구 노리고 있었냐?”

“네. 포심으로 카운트를 잡을 것 같아서요.”

“하지만 낮게 잘 들어왔는데.”

“그래도 결국 포심이니까······, 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카운트를 잡으러 들어온 공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낮아도, 아예 낮게 던질 생각은 못할 거라는 예상을 했습니다.”

“그래······.”

“하지만 진짜 장외로 갈 줄은 몰랐습니다.”

“어쨌든 잘 했어!”

“감사합니다.”


안으로 들어가며 헬멧을 마구 난타당하고 있는 두용을 보며 서감독은 생각했다.


‘이거, 이거. 진짜 물건 아니야? 꼭 그때가 생각나는구만. 영규가 콜업 됐을 때.’


그때의 생각을 하며 서감독은 피식 웃었다. 물론 타석에서, 특히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의 믿음직한 면이나 투수를 리드하는 면은 결코 지금의 두용이 영규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적어도 이제는 서감독이 생각해도 타격 만큼은, 그의 갖춰진 재능은 영규가 가지지 못한 것이었다.


‘왼손. 왼손이라······. 왼손이면 뭐 어때. 불리할 때는 1루수나 지명으로 돌릴 수도 있으니까. 이대로만 자란다면······.’


이대로 남아서 팀의 레전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정말 지금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맞다면, 적어도 좀 더 큰물에서 경기를 하는 것을 바랐다.

아직은 아무도 입 밖에 꺼내지 않고 있지만, 그리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지만 서감독은 어쩌면 두용도 메이저라는 곳의 문은 두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영규야.”

“예.”

“넌 왜 메이저 안 갔냐?”

“뜬금없이 그건 왜 물어보십니까?”

“너 영어 못하냐?”

“저 영어 좀 합니다.”

“아, 참. 그래. 덕아웃 안이나 작년, 재작년에도 너 용병 투수들하고 그냥 대화 했었지.”

“네.”

“그런데 왜 안 갔냐?”

“제 타격으로 됐을까요?”

“역시 타격이 문제였지? 하지만 백업으로도 갈 수 있었을 텐데.”

“사실 연봉도 그렇게 차이 안 나고······.”

“인마. 그래도 선수라면 연봉 접고 큰물에서 놀 생각을 했어야지.”


서감독의 때늦은 타박에 영규는 멋쩍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때 애가 생겨서······.”

“아, 참. 그래도······.”


서감독은 영규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몹시 아쉬웠다. 앞으로 영규 같은 포수가 나올 수 있을까?

아시안게임. WBC. 그 어디에서나 영규는 상대 타자들을 농락했다. 물론 그것은 타고난 무엇도 있지만 국가대표에 올랐을 때부터 다른 나라 타자들의 데이터를 어떻게든 수집하고 비디오를 몇 번이고 돌려보며 미리 계획한 작전이나 배합에다가 경기 중간의 변화를 바로 감지하고 수정할 수 있는 판단력과 경험까지.

그 모든 것을 갖춘, 적어도 수비에서는 완전체라 할 수 있는 포수였다.


그런데 그런 서감독을 물끄러미 보던 영규가 말했다.


“아마 태영이 정도면 충분히 잘해낼 수 있을 겁니다.”

“태영이? 아, 그래. 녀석도 타격의 기복만 없다면야.”

“리드도 점점 좋아 질 거고요. 포구의 로케이셔닝에 문제가 있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다음 시즌부터는 컴퓨터 판정이잖아요? 그럼 로케이셔닝에서 손해 보는 것을 상쇄할 수 있겠죠.”

“완벽할 수는 없잖아.”

“거기서 심판을 속일 여지는 조금 남아있기는 하지만, 지금 정도는 아니겠죠.”

“음······.”

“수비는 지금도 잘 하고요.”

“그야 그렇지. 야, 근데 너 뜬금없이 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 저 은퇴한 후에 어쩌나, 하고 걱정하신 거 아닙니까?”


영규의 말에 서감독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가 다시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뭐? 이런 능구렁이 같은 놈.”

“하하. 그게 제 특기잖아요. 표정 읽기.”

“그리고 두용이는······.”

“두용이요? 음······. 두용이를 계속 포수로 쓰실 건 아니잖습니까?”

“그야······.”

“어깨가 좋으니 외야수도 볼 수 있고, 1루수도 볼 수 있을 겁니다. 포수도 당연히 가능하고. 어떻게 보면 수비에서도 상당히 유용한 자원이죠.”

“음······.”

“타격에 대한 재능은 말할 것도 없고요. 제가 저 재능 가지고 있었으면 2군에 그렇게 오래 안 썩었을 텐데.”

“인마. 네가 2군에서 썩었던 게 어디 그것 때문 만이었냐? 쓸데없는 고민을 그렇게 길게 끄는 놈이 어디 있어?”


그 말에 영규는 이번에도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지나고 보니 별 일 아니었는데.”

“별 일이 아닌 건 아니었지.”

“그래도 저희에게는 그렇습니다. 그리고······.”


영규는 두용이가 자신과 같은 고민, 혹은 분노와 같은 것에서 벗어났으면 한다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서감독은 진즉 눈치채고 말했다.


“저 녀석은 너하고 달라. 넌 혼자 끌어안고 있었지만, 저 녀석에게는 그 분노가 힘이 될 거다. 주저앉을 놈이 아니야.”

“네.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렇게 되도, 그러니까 그렇게 잘 풀리면 두용이는······.”

“너도 그 생각을 하는 구나.”

“예?”

“메이저.”

“그럼 감독님께서도······.”

“재능이 달라, 재능이. 대체 저런 걸 왜 썩혀두고 있었던 건지. 너는 이유 알지? 왜 그렇게 된 건지.”

“아, 네. 그게······.”

“나중에 말해, 나중에. 지금 그게 무슨 상관이야? 일단 여기서 터졌으면 되는 거지. 포스트시즌 진출로 머리 아프다. 딱 너 나타났을 때처럼.”

“하하.”

“그러니까 그냥 그건 시즌 후에 말해. 저 놈이 특별한 문제가 없는 이상.”

“네. 감독님. 감사합니다.”


홈런을 치고 나서 한진의 격한 칭찬을 받는 와중에 침착하게 포수 장비를 걸치는 두용을 한 번 다시 본 서감독이 말했다.


“저 녀석, 오늘 저 한 방으로 증명을 한 거야.”

“그렇겠죠.”

“오늘 하나만 더 치면, 확실하게 하는 거지.”

“네.”

“잘 챙겨줘라. 국가대표 같이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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