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펩티드 님의 서재입니다.

검 속에서 1000만 시간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펩티드
작품등록일 :
2019.04.19 16:14
최근연재일 :
2019.05.30 17:30
연재수 :
41 회
조회수 :
370,827
추천수 :
6,177
글자수 :
241,747

작성
19.05.20 17:30
조회
5,413
추천
121
글자
12쪽

31화-먹다

DUMMY

디홀의 작품... 아니, 이제 신누리의 작품이 된 것들은 모두 그녀에게 통제권을 넘기고 한도겸은 게이트 밖으로 다시 나왔다.

서로 알아서 잘 구를 것이다.


‘슬슬 이제 인내에 한계가 올 텐데.’


밖으로 나온 한도겸은 어딘가로 향했다.


...


으아아아!!! 놔!!! 놓으라고! 이 개자식들이 내가 누군지 알고!!


정신병동 중에서도 아주 깊숙한 곳에서 거친 쇳소리같은 목소리가 울렸다. 한도겸은 그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천천히 걸었다. 가까워질수록 괴성뿐만 아니라 몸을 뒤척이는 소리도 더욱 뚜렷하게 들렸다.


“너 이 새끼! 내가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누구에게 말하는 건지 모를 독백.

허공을 보며 계속 소리를 지르고 욕을 내뱉는 한유성의 모습에 한도겸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어렸을 때의 모습이었다.

닿을 수 없는 자들에 대한 분노를 끊임없이 토했던 바로 그때의.

잠도 자지 못해 충혈된 눈에 제대로 먹지도 못해서 피골이 상접해있는 처참한 모습을 한도겸은 어머니를 잃었을 때 경험했다.


스윽.


“...너, 넌!?!”


한도겸이 따로 기척을 낸 것도 아닌데 뭔가 이상함을 느낀 건지 한유성이 고개를 돌렸다. 피가 쏟아질 것 같은 붉어진 눈으로 한도겸을 보며 부릅뜨는데 악귀가 따로 없는 모습이다.


“어? 여기에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병실을 지키고 있던 하얀 복장의 남자가 한유성의 달라진 반응을 보고 한도겸의 존재를 눈치 챘다.


툭!


가볍게 하얀 복장의 남자의 뒷목을 쳐 기절시킨 한도겸은 천천히 한유성의 곁으로 다가갔다.


“한도겸!!! 너 이 개새끼! 너지!? 이게 다 너 때문이지!?”

“맞아.”


한도겸은 한유성의 말에 너무 쉽게 인정했다.

온몸이 구속된 한유성은 그의 말에 핏줄이 터질 것처럼 힘을 주며 들썩거렸지만, 그를 구속하고 있는 것들의 재질은 너무 튼튼했다.


“기억은 하려나 모르겠네.”


물고기처럼 펄떡펄떡 거리는 한유성에게 한도겸은 손을 뻗으며 말했다. 한유성은 한도겸의 말이 들어오지 않는 상태였지만 그는 계속 말했다.


“내가 이제 막 걷고 뛰고 말을 하던 어릴 적에 말이야. 어느 날 갑자기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나를 끌고 가더라고. 너무 무서워서 덜덜 떨고 있는데 사실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더라고.”

“무슨 개소리야! 손 저리 안 치워?!”

“내게 가해지는 고통보다 소중한 사람에게 가해진 고통이 더 아프고 무섭다는 걸 그때 알았어.”


한도겸의 혼잣말은 그의 과거였다.

낯선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와 일을 하러 나갔던 어머니가 파리한 안색으로 누워 모습을 보게 된 그의 어린 시절.


“나중에 안 건데, 어머니의 배에는 이렇게 검이 꽂힌 자국이 하나가 아니라...”

“!!!”


푹!! 푹!!!


“두 개, 세 개... 총 다섯 번의 검상이 있었더라고.”


어느새 한도겸의 손에 쥐어져 있던 부엌칼이 한유성의 복부를 다섯 차례 관통했다. 피가 튀고 내장이 쏟아지려는 모습에도 한도겸은 덤덤한 표정으로 한유성을 바라봤다.


“끄억!...컥!...”

“어떤 놈일까. 어떤 개자식이, 왜 우리 엄마를 이렇게 괴롭힌 걸까.”


괴로워하는 한유성의 모습, 그리고 피로 뒤범벅된 상태임에도 너무 담담한 한도겸의 모습은 하얀 병실과 어울려 지옥을 연출했다.

우발적 사고로 위장된 그 일의 진실을 알아챈 건 3년 전이었다.

그가 검을 잡기 전 그때, 한도겸은 알고 있었다.

한유성이 청부를 했다는 걸.

하지만 그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가 가진 힘으로는 한유성을 건드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가 그룹 본부에 초고속으로 자리를 잡긴 했지만 한유성은 이미 부회장의 위치를 단단하게 쌓아둔 상태였다.

결국 다음을 기약하며 한도겸은 이를 악물고 버텨내야만 했다. 어쩌면 그가 검 속에서 1000만 시간...아니, 2억 4천만 시간 동안을 버틸 수 있었던 정신력은 그 때문일 수도 있었다.


“갈기갈기 찢어서 죽여줄게. 너희 부자 둘 다.”


그리고 대현이라는 말을 남기며 한도겸은 뒤돌아섰다.

한유성의 복부에 있던 상처에는 이미 재생 포션을 부었기 때문에 피는 멎어 있었다. 갈기갈기 찢을 때까지 살아 있을 정도로 회복이 되었을 것이다.


***


스윽.


조 실장이 운전하는 차에 탄 한도겸은 창을 통해 하늘을 바라봤다.

‘허공의 게이트.’


게이트는 꼭 지상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하늘에도, 바다에도 게이트는 존재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가변 게이트가 아니라면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고정 게이트에서는 안에 있던 것들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니까.

하지만 그 말도 이젠 이미 꽤 바래진 사실이다.

한도겸의 시선에 보이는 허공의 고정 게이트가 이번 일의 중심이 될 것이다.

릴리스가 찾은 선봉 군주가 바로 저 게이트에 있었다.

선봉이라고 하지만 반쪽과는 차원이 다른 힘을 가진 놈이 곧 서울 한가운데에 떨어진다.

아마 피해가 적지 않을 거다.


“도착했습니다.”


잠깐 생각에 잠겼던 사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기서 잠깐 기다리고 있어.”

“예.”


목적지는 한강현이 입원해 있는 병원이었다. 온몸의 화상으로 입원했던 놈은 아직도 회복하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원래 단순 화상 정도는 재생 포션으로 간단히 회복이 가능한데, 한강현의 화상은 좀 달랐다.

세간에는 분신자살 시도로 얻은 상처라고 알려졌지만 사실 한도겸의 검에 탄 흔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포션으로 회복시킬 수 없다.


크으...크으...


기도까지 타버려 괴상한 숨소리를 내뱉고 있는 한강현.

한도겸은 그런 놈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뒤돌아섰다.

한강현은 이미 죽었다. 숨만 쉬고 있을 뿐.

한유성을 처리할 때 저 숨만 쉬고 있는 육체도 같이 처리할 생각이었다. 굳이 찾아온 건 일종의 보여주기일 뿐.

병원에 들어오면서부터 이미 죽치고 있던 기자 몇몇이 한도겸의 모습을 발견했을 것이다.


...


쿠우웅!


한도겸이 병원에서 나갈 때쯤, 하늘에서부터 묘한 울림이 터졌다.

게이트가 심장 박동하듯 뛰면서 내는 울림이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사람들은 모두 위를 바라봤고 동시에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오오오!!!


군주의 등장을 알리는 거대한 포효소리와 함께 거대한 날갯짓이 시작됐다.

하나, 둘, 셋...

끝도 없이 밀려 나오는 병사들.

천사와도 같은 날개를 등에 달고 나온 그 병사들은 사람과 실루엣이 비슷하게 생겼지만 결정적으로 머리가 달랐다.

조류의 머리들.


‘조인족.’


하늘을 가득 메우며 나타난 놈들은 바로 인간과 비슷한 두뇌를 지녔다고 알려진 유사인종 중 하나인 조인족이었다.

지상에선 이상 현상이 감지된 후 나름 빠르게 반응했다.

사람들은 급하게 건물과 방공호로 대피를 하고 서울 지역에서 활동하는 헌터들이 거리로 나왔다.

던전 관리국은 물론 헌터 관리국에서까지 출동을 시작했고 서울은 마치 전쟁이라도 일어난 듯 했다.


“조 실장.”

“예.”

“가서 회사 건물 단단히 지키고 있으라고 해. 이 팀장 가족, 네 가족 다 불러서 회사에 두고.”


대응이 나쁘지 않았지만 조인족들이 날뛰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지 뻔했다. 서울이 박살나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물론 거기까지 가게 두지 않겠지만 괜히 눈 먼 돌에 개구리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일이니 지켜야 할 대상은 확실하게 보호할 생가이었다.


“알겠습니다.”


조 실장의 한도겸의 뜻을 알아차리고 서둘러 차를 몰고 사라졌다.


“한 번 보자고. 얼마나 막을 수 있는지.”


한국의 헌터 랭커들 대부분이 서울에 밀집되어 있다. 과연 그들은 조인족들을 어디까지 막을 수 있을지 한도겸은 구경할 것이다. 결과는 뻔하겠지만.


끼아아아악!!!!


끝없이 쏟아지던 조인족들 사이로 심상치 않는 놈들이 나왔다. 다른 조인족들보다 두 세배는 크고 제대로 무장까지 갖춘 놈들. 그놈들이 나오자 조인족들이 소리를 지르며 군대처럼 정열하기 시작했다.

얼추 보이는 수만 1000마리 이상.

전투기처럼 빠른 속도를 자랑하면서 방향은 자유자재로 틀 수 있는 날개를 보유한 놈들이 덩치 큰 놈들의 지시 하에 지상으로 하강했다.


“싹 다 튀어나오라고 해!! 일성이고 선진이고 다! 저놈들 하나라도 빠져나가면 안 돼!”


누군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소리쳤다.


***


콰아앙!!!


도심 한복판에 미사일이 떨어졌다.

그리고 동시에 반으로 잘려버린 전투기가 건물과 부딪혀 폭발한다.

아비규환.

가용한 수단은 모두 동원해 조인족들을 상대하고 있는 한국이었지만 놈들은 어설픈 반쪽짜리 군주의 군대가 아니었다.

비록 선봉장이지만 진짜 군주의 군대였다.

그나마 선방하고 있는 건 랭커들이라는 헌터들인데,


화르르륵!!!

헌터 가문으로 유명한 화검문을 비롯해 그리고 선진과 일성의 헌터팀들... 관리국에서도 조인족들을 상대로 꽤 선방하고 있었다.

문제는 막기 급급하다는 거다.

이미 사방으로 조인족들은 퍼졌고 그들이 막을 수 있는 수를 벗어났다.

거기에, 아직도 상공에서 조인족들을 쏟아내고 있는 게이트.

전국으로 퍼지는 건 시간문제처럼 느껴졌다.


콰르릉!!!


“게이트부터 막는다!”


일성 그룹과 계약된 한국 헌터 랭킹 1위, 이동석이 소리치며 천둥소리와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조인족들이 그런 그를 막아서려했지만 지상에서의 지원이 다시 조인족들을 물리쳤다.


콰르르릉!!


게이트 근처까지 다다른 이동석은 온몸에 뇌기를 두르며 그대로 게이트로 돌진했다. 하지만, 그 앞을 지키고 있는 조인족들이 몸을 던져 이동석을 막아섰다.

지상의 지원도 닿지 않는 곳이라 이동석을 겨우 조인족 몇몇 만 재로 만들어버린 채 물러서야했다.


“젠장!”

이동석이 낮게 욕을 내뱉으며 게이트를 막아서고 있는 조인족들을 쳐다봤다.

그런데 갑자기 조인족들이 게이트를 향해 길을 내기 시작했다.


“설마...!”

이미 게이트가 어떻게 폭발하는지 본 적이 있는 이동석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


한편 한도겸은 그 모든 모습을 한강현이 입원한 병원 앞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어스웜에서 구르던 서이수 등등을 길드 회사로 복귀시키기 돌아온 조 실장도 그의 옆에 있었다.


“이 팀장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정부에서 서둘러 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하고 있답니다.”

“좀 더 기다리라고 해.”

“너무 계속 기다리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지 않겠습니까? 정부에서는 이제 알고 있을 겁니다. 대표님 힘이 필요하다는 걸.”


극적인 타이밍에 영웅처럼 등장하는 건 좋지만 그 타이밍이라는 게 참 애매했다. 조금만 더 늦어도 원성을 살 테고, 조금 더 빠르면 그냥 잘했다 수준으로 끝날 테니까.


서걱!!


병원을 향해 날아오는 조인족 하나를 그대로 반으로 가른 한도겸은 하늘에서 노란 뇌기가 터지는 걸 확인하고 발을 옮겼다.


“영감님 쪽은?”

“대현의 헌터들 다 그쪽에 있습니다.”

“기자들 잘 붙여뒀지?”

“예.”

“그럼 슬슬 가보자고.”


한도겸이 드디어 전투의 중심으로 뛰어들었다.

살육의 검...아니, 이제 탐식의 검이 된 검을 휘두르며 앞을 막아서는 조인족들을 모두 도륙하며 뇌기가 터지는 곳까지 단숨에 치고 올라간 그는 이동석을 비롯한 랭커들이 힘겹게 막고 있는 조인족 하나를 바라봤다.


크아악!!

별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조인족, 크지도 작지도 않았고 특별한 무장도 없었다. 매의 머리라는 게 조금 특이점이라면 특이점이었지만 얼핏 보면 장군급 조인족보다 약해 보인다.

하지만 놈이 가볍게 휘두른 날카로운 손톱에 랭커들의 육체는 두부처럼 베어지고 이동석 마저 이미 한 팔을 잃은 상태였다.


쇄애애액!! 콰아아앙!!!


한도겸을 발견한 놈이 그를 향해 손톱을 휘둘렀다.

가볍게 막아선 한도겸은 놈의 힘이 군주 살해자란 놈보다 훨씬 위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호오? 재미있는 인간이로구나.


자신의 공격을 막아선 한도겸에 놈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한도겸도 마찬가지였다.


“맛있겠네. 그렇지?”

-예, 아주 맛있을 것 같습니다.


한도겸의 말에 답한 건 탐식이라는 이름이 붙은 검이었다.


작가의말

즐거운 월요일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6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검 속에서 1000만 시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제목을 바꿨습니다. 19.04.30 1,646 0 -
공지 연재 시간은 오후 6시 입니다.(내용없음) 19.04.30 8,188 0 -
41 41화-건드린 대가 +10 19.05.30 3,220 75 12쪽
40 40화-먹고 먹히고 +7 19.05.29 2,977 79 12쪽
39 39화-파사트족 +5 19.05.28 3,211 81 13쪽
38 38화-어긋남 +10 19.05.27 3,420 80 12쪽
37 37화-박멸 +7 19.05.26 3,672 79 13쪽
36 36화-죽어버린 도시 +9 19.05.25 4,099 79 13쪽
35 35화-창궐 +9 19.05.24 4,441 88 12쪽
34 34화-태동 +11 19.05.23 4,905 84 12쪽
33 33화-혼란 +11 19.05.22 5,185 105 13쪽
32 32화-탐식 +8 19.05.21 5,118 108 12쪽
» 31화-먹다 +16 19.05.20 5,414 121 12쪽
30 30화-성장 +16 19.05.19 5,689 124 13쪽
29 29화-몰락 +10 19.05.18 5,937 118 13쪽
28 28화-군주 살해자 +12 19.05.17 5,946 118 13쪽
27 27화-스며든 것들 +11 19.05.16 6,190 123 14쪽
26 26화-인벨 경매장 +12 19.05.15 6,381 123 13쪽
25 25화-변하는 세계 +10 19.05.14 6,722 123 14쪽
24 24화-마담 +9 19.05.13 6,905 139 14쪽
23 23화-꿈에서 깰 시간 +10 19.05.12 7,695 134 13쪽
22 22화-악몽 +9 19.05.11 8,061 141 14쪽
21 21화-진짜 군주는 맞는데...(2) +12 19.05.10 8,449 133 13쪽
20 20화-진짜 군주는 맞는데... +9 19.05.09 8,786 143 12쪽
19 19화-망나니가 망나니하다 +10 19.05.08 8,986 146 13쪽
18 18화-얕은 수작의 대가(2) +16 19.05.07 9,111 158 15쪽
17 17화-얕은 수작의 대가 +10 19.05.06 9,424 151 14쪽
16 16화-싹을 틔우다 +7 19.05.05 9,869 154 13쪽
15 15화-넝쿨 째 들어온 +5 19.05.04 10,255 164 13쪽
14 14화-치열함을 잊은 세대 +11 19.05.03 10,527 163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