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펩티드 님의 서재입니다.

검 속에서 1000만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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펩티드
작품등록일 :
2019.04.19 16:14
최근연재일 :
2019.05.3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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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747

작성
19.05.09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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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20화-진짜 군주는 맞는데...

DUMMY

한도겸이 못마땅한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펼친 검은 완성도 하지 않은 검이었다. 그런데도 검이 버티질 못하는 것이다. 화기를 담는 성질이 강한 마그마 골렘 핵을 포함한 검이었는데도 그랬다.


“이, 이걸 제가 하라고요? 아니, 이건 내가 알고 있는 화검이 아닌데...”


정신을 차린 오혜주가 한도겸에게 물었다. 한도겸이 보여준 검은 그녀가 알고 있는 화검과는 너무 달랐다. 화검문의 문주이자 화검으로 가문을 세운 그녀의 할아버지도 이런 건 보여주지 못한다. 물론 뭐가 더 나은지는 직접 붙어봐야겠지만 겉으로는 일단 한도겸의 검술이 압도적으로 우위였다.


“유물을 통해서 얻은 화검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그것보다 이게 나을 겁니다.”

“...”

“50억에 이 정도면 혜자님이죠?”


한도겸의 말에 서이수도, 오혜주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혜자 수준이 아니었다. 가문을 통째로 들고 바쳐도 얻기 힘든 것이었다.


“왜죠?”


화검에 대해 알려달라고 한 건 오혜주였지만 오히려 본인이 납득이 안 됐다. 이런 걸 가르쳐주려는 이유가 도대체 뭔지.


“별로 대단한 건 아닌데, 굳이 이유를 대자면 저는 사업가입니다.”

“...계속 해보세요.”


저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을 사업가라고 말하는 한도겸이 어이가 없었지만 오혜주는 계속 말하라고 했다. 지금 한도겸이 사업가든 뭐든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사업가는 기업과 추구하는 가치가 같습니다. 바로 이익이죠.”

“그러니까 궁금하다는 거예요. 당신이 알려준다는 그거, 내가 줄 수 있는 어떤 이익보다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이익은 항상 상대적이죠. 제게는 별로 필요 없지만 그쪽에게는 아주 필요할 수도, 그쪽에게는 필요 없지만 저한테는 무척 필요할 수도 있는.”


한도겸에게 방금 오혜주에게 보여준 검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수많은 시간들 중에서 아주 잠깐 만들어봤던 것에 불과했으니.

하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만들어진 검은 오혜주에게 무척 필요한 것이었다.


“제가 뭘 줄 수 있죠?”

“그쪽.”

“...네?”

“그쪽을 전부 주시면 저울이 균형을 이룰 것 같습니다.”


한도겸의 검 정도면 저울 반대편에 올릴 오혜주 본인과 같다고 보면 된다.

적어도 한도겸에게는.


“그게 무슨!”


오혜주에게 그 말은 즉 노예가 되라는 말처럼 들렸기에 당연히 반발했다. 얼핏 들으면 고백이라고 생각할 순 있지만 그건 분명 아니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얻고 싶은 검이라고 해도 노예가 되면서까지 얻고 싶진 않았다.


“싫으면 계약은 없던 게 되겠네요.”


한도겸은 아쉬울 게 없었다. 그가 봤을 때 오혜주의 재능은 확실히 뛰어났다. 하지만 그에겐 그 재능을 뛰어 넘을 방법이 존재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조 실장에게도 적당한 것을 선물 할 생각인데, 아마 그때가 되면 오혜주는 지금을 엄청나게 후회를 할 것이다.


“아니, 잠깐만요. 계약이라는 게 원래 밀고 당기고 하는...”

“저는 할게요.”


한도겸이 미련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자 오혜주가 급하게 그를 붙잡으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서이수가 직구를 던졌다.


“뭐?!”


한도겸보다 더 놀란 오혜주가 서이수를 보며 미쳤냐고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서이수는 오혜주는 완전히 무시하고 한도겸만 바라봤다.


“저를 올려두면 되는 거죠?”

“그렇긴 합니다만...”


이쯤 되니 한도겸이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오혜주는 이미 어이가 상실된 상태였고.


“근데 방법이 있나요? 단순히 계약서를 쓴다고 해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꼭 계약서대로 따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한도겸이 말하기도 전에 오히려 먼저 자물쇠를 말한다. 여차하면 스스로 수갑을 차고 손을 내밀 것 같은 기세였다.


“없을 리가 있겠습니까? 일단 계약에 관한 건 나가서 자세히 얘기 하시죠. 어떻게 전해 줄 건지도 그때 가서 얘기해드릴 테니.”

“네. 그럼...”


서이수가 무표정 눈에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꾸며 한도겸을 바라봤다. 저런 눈도 할 줄 하는 여자였다.

한도겸은 그런 그녀를 위해서 적당한 검을 준비했다.


“자, 잠깐!! 저도, 저도 할게요!”

“원래 늦으면 가격이 더 올라가는데...”

“아니 여기서 더 걸 게 뭐가 있다는 거예요!? 노예계약이나 다름없는데.”


오혜주의 말이 틀리진 않았다. 걸고 싶어도 저쪽은 더 걸게 없었다.


“어쩔 수 없죠.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일단 알겠습니다.”

“!!!”


태연한 한도겸의 말에 오혜주는 당했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지만 이미 뱉은 말이었다. 아직 진짜 계약을 한 건 아니니 지금 굳이 주워 담는 소리를 할 필요는 없었다.

한도겸은 오혜주가 무슨 생각하는지 훤히 보였지만 신경 끄고 서이수에게 보여줄 검을 펼쳤다.


쩌저적!...


이전과는 다르게 검에서부터 냉기가 피어올랐다. 뜨겁게 달궈졌던 모래가 순식간 얼어붙기 시작하고, 서이수와 오혜주는 다시 뒤로 물러나 각자의 마나를 사용해 냉기로부터 몸을 보호해야 했다.


서이수는 일전에 날카로움을 선택했었다. 유물의 주인과는 반대의 선택이었다. 북부의 철벽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유물 주인은 두터운 냉기를 사용했다. 하지만 그 두터운 냉기는 결국 군주들에게 뚫렸고 유물만 남긴 채 산화했다.

아마 서이수의 선택에 그 점이 많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둘 중 뭐가 좋다고 얘기할 순 없지만... 적어도 후회하진 않을 겁니다.’


두텁게 냉기를 쌓은 검도 한도겸은 만들어 봤다. 하지만 그의 타입에는 맞지 않았다. 이미 느리고 두터운 검은 태산으로 완성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날카롭게 벼른 검을 좀 더 오래 만들었다. 물론 결과적으로 날카로움은 냉기가 아니라 삭월과 광풍으로 넘겼지만...


서걱!


한도겸의 검이 부드럽게 사선으로 베어진다. 그러자 그 검로를 따라 그대로 새하얀 선이 그려졌다. 냉기로 인해 공기가 얼어붙는 소리가 나고 잠시 후, 한도겸이 벤 검로를 따라 얼음으로 된 검이 예리하게 공간을 베었다.

한 번, 두 번... 계속 이어지는 한도겸의 베기에 사방이 얼음으로 만들어진 검으로 베어지기 시작하고, 투명한 얼음 검은 사라지지 않고 공간을 벤 상태로 남겨졌다.

검이 검을 베고, 또 검이 검을 베고.

보기만 해도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날카로운 검들이 세상을 조각내고 있는 것 같았다.

오혜주에게 보여줬던 검이 화려함의 극치였다면 이쪽은 간결함의 극치였다. 얼음검에 반사된 빛 때문에 공간 자체가 조각조각 나며 예술조각처럼 반짝였지만 아름답기보다는 섬뜩했다.


질끈!


급기야 오혜주는 두 눈을 감아버렸다.

계속 보고 있으면 얼음 검속에 맺힌 섬뜩하고 오싹한 살기에 자신의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조각조각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이수는 오히려 눈을 부릅떴다.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내가 가야할 길의 끝이야. 놓치면 안 돼.’


한도겸의 모습은 서이수, 본인이 가야할 길의 끝이었다. 그렇기에 온몸이 조각날 것 같은 섬뜩함에도 눈을 감을 수 없었다.


후우-.


불타올랐던 공간을 서늘한 냉기로 가득채운 한도겸은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골랐다. 그리고 흘깃 서이수를 봤다가 만족스런 미소를 속으로 짓고 마지막 검을 내질렀다.

여태까지의 검이 모두 베기를 이용한 날카로움이었다면 이번엔 한 점에 모든 것을 찔러 넣는 날카로움이었다.


쇄애애액!!!


공간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압축된 검 끝이 서이수와 오혜주가 있는 방향반대로 내질러졌다.

얼음으로 만들어진 점이 공간을 찢고 송곳처럼 뻗어나가며 굉음을 터트린다. 한 번으로 끝날 것 같은 내지름이 두 번이 되고, 세 번... 계속해서 이어진다. 먼저 휘둘러진 검과 달리 정제되지 않은 난폭함이 펼쳐지고, 한 점으로 시작한 얼음송곳은 어느새 불규칙적으로 사방을 향해 그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그 모습은 마치 얼음 송곳니가 허공을 찢어 삼키는 듯했다.


‘제법 재미있네.’


본인이 해놓고 스스로 재미를 느끼던 한도겸은 금세 정신을 차리고 마지막 검을 내질렀다.

상어의 이빨처럼 모든 것을 물어뜯을 듯 공간을 찢고 있는 얼음송곳 사이로 찌른 검은 그대로 일직선으로 길을 만들며 가로 막는 것을 모두 부숴버렸다. 그리고 단 하나의 얼음송곳만 허공에 잠시 머물다 검과 함께 빛으로 변해 흩날렸다.


‘···!!’


마지막까지 부릅뜨고 한도겸의 검을 보던 서이수의 눈으로 흩날리던 빛이 파고들었다. 순간적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서이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지만 이내 서늘한 공기에 시려진 눈을 깜빡거리며 이성을 되찾으며 깨달았다.

머릿속에 알 수 없는 기억이 자리 잡았다는 것을.


“계약금입니다.”


기억의 편린을 확인하며 부르르 떨고 있는 서이수를 보며 한도겸이 말했다.


“아아...”


한도겸의 말을 듣고 정신을 차린 서이수의 눈에는 묘한 열기가 머물다 사라졌다. 그가 일부러 넘겨준 기억을 읽고 더욱 안달 났음에도 금방 감정을 추스르는 걸 보면 확실히 보통이 아니었다.


“계약금?”


반면 눈을 감고 있어 아무것도 보지 못한 오혜주는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만 지었다. 이쪽은 확실한 계약을 해야 되기 때문에 일부러 기억을 보여주지 않았으니 눈을 뜨고 있었어도 몰랐을 것이다.


“자, 그럼. 어떤 일을 해야 되는 건지 보여드리죠.”


한도겸이 부서진 검을 버리고 다시 새로운 검을 꺼내며 말했다.

이 게이트에 이걸 보여주려고 데려온 건 아니었다. 군주가 있을 확률이 높아서 일부러 여길 찾아 온 거였다.

모래사막일 뿐인 곳이지만 미개발이라고 측정된 이유가 있었다.

실종.

바로 이 게이트에 입장한 헌터들 중 일부가 실종이 된 것이다. 모래밖에 없는 곳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사람들은 당연히 바닥에 뭔가 있는 게 아닌가 해서 땅을 팠다. 하지만 얼마나 될지 모르는 넓은 땅을 모두 팔 순 없었고 결국 미개발 게이트가 된 것이다.

한도겸의 기억에 이런 짓을 하는 군주가 하나 있었고 자료를 보자마자 바로 이곳에 군주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또 뭘 하시려...?!?”


한도겸의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보려던 오혜주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한도겸이 검을 다짜고짜 모래에 박았는데, 그 검을 중심으로 마치 모래지옥처럼 모래가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순식간에 서이수, 오혜주는 물론 모래들까지 그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한도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잠시 후, 모래사막은 다시 원래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갔다.

...


사르르륵...


모래가 떨어지는 소리가 점점 희미해질 무렵 한도겸은 눈을 깜빡거리면 주변을 훑었다.

기억에 있던 곳이었다.

모래 속에 숨겨진 군주의 레어.

보통 방법으로는 찾을 수 없다. 레어 주변에 펼쳐진 결계를 깨야 찾을 수 있기에


“에퉷퉷! 에잇!”

“퉷.”


오혜주와 서이수가 입에 들어간 모래를 뱉어내며 한도겸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당신 도대체...”

“쉿!”

“...”


뭔가 따지려던 오혜주의 입을 막고 한도겸은 조용히 희미한 소리에 집중했다.

분명히 자신들이 여기 왔다는 걸 알아차렸을 것이다.


사락...사락...


아니나 다를까, 어두운 공간 저 너머에서 아주 희미하게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울렸다.

한도겸이 그 소리에 집중하는 동안 서이수와 오혜주는 눈에 마나를 집중한 뒤 주변을 훑었다. 바닥에는 그들과 함께 빨려 들어왔던 모래가 깔려 있었지만 생각보다 많지 않은 걸로 봐선 꽤 넓은 공간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기둥이 보이는 걸 봐선 인공적인 장소 같았는데, 뭔가 알고 있는 듯한 한도겸이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물어보진 못했다.


“저쪽으로 갑시다.”

“???”


놈의 위치를 확인한 한도겸은 어리둥절한 표정의 둘에게 말하고 먼저 앞장섰다.

빛 한 점 없는 어둠 속이었지만 길을 찾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그렇게 얼떨결에 한도겸을 선두로 두 사람이 따라가고,


사르르륵!


그들과 함께 떨어졌던 모래가 갑자기 하나의 형체를 만들며 방금 사라진 세 사람을 쫓아갔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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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1화-먹다 +16 19.05.20 5,413 121 12쪽
30 30화-성장 +16 19.05.19 5,689 124 13쪽
29 29화-몰락 +10 19.05.18 5,937 118 13쪽
28 28화-군주 살해자 +12 19.05.17 5,946 118 13쪽
27 27화-스며든 것들 +11 19.05.16 6,190 123 14쪽
26 26화-인벨 경매장 +12 19.05.15 6,380 123 13쪽
25 25화-변하는 세계 +10 19.05.14 6,722 123 14쪽
24 24화-마담 +9 19.05.13 6,905 139 14쪽
23 23화-꿈에서 깰 시간 +10 19.05.12 7,695 134 13쪽
22 22화-악몽 +9 19.05.11 8,060 141 14쪽
21 21화-진짜 군주는 맞는데...(2) +12 19.05.10 8,448 133 13쪽
» 20화-진짜 군주는 맞는데... +9 19.05.09 8,786 143 12쪽
19 19화-망나니가 망나니하다 +10 19.05.08 8,985 146 13쪽
18 18화-얕은 수작의 대가(2) +16 19.05.07 9,111 158 15쪽
17 17화-얕은 수작의 대가 +10 19.05.06 9,424 151 14쪽
16 16화-싹을 틔우다 +7 19.05.05 9,869 154 13쪽
15 15화-넝쿨 째 들어온 +5 19.05.04 10,255 164 13쪽
14 14화-치열함을 잊은 세대 +11 19.05.03 10,527 16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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