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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메카 파일럿의 2회차 게임 공략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SF

완결

유신언
작품등록일 :
2023.05.20 06:14
최근연재일 :
2023.08.25 07:30
연재수 :
1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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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31
추천수 :
845
글자수 :
558,048

작성
23.08.2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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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끝이 아닌 끝 (5) 1부 完

DUMMY

끝이 아닌 끝 (5) 1부 完


수많은 빛이 있었다.

수많은 영혼이 있었다.

수많은 기억이 흘렀다.

그건 시간이었고 존재였고 0이자 1이었고 무한대이자 무한한 빛이었다.

무엇보다 의지였다.

수많은 빛의 교차점에서, 무수한 우주의 얼굴들이 태형을 봤다.

그리고 레나를 보고.

블레 패트리를 봤다.

태형은 레나와 한 손을 잡고, 나머지 한 손으로 블레 패트리를 잡았다.

둥글게 원을 그리듯 선 세 사람의 영체靈體가, 곧 구름 아래로 떨어졌다.

펼쳐진 세계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

그리고 태형이 어릴 때 살던 집과 가족, 김정도 박사가 조종실처럼 꾸며놓은 게임룸과 모니터 속 게임 로드(ROD)가 차례대로 흘러갔다.

이어 교통사고도 병원에 홀로 남겨진 어린 태형도 보였고.

따스한 빛을 내는 할머니도 나타났다.

태형이 다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태형이 기억하는 모든 것들이 세 사람 앞에 촬영해둔 영상처럼 차례대로 재생됐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다 만난 국방과학연구소 최형인 대리와의 대화도, 박창국 팀장과의 대화도.

마지막으로 아버지처럼 메타버스에 들어가기 위해 코쿤에 누운 태형의 모습까지.

그 모든 것을 보고 난 태형과 레나, 블레 패트리의 영체는 다시 빛의 통로에 섰다.


“······허망하군.”


모든 걸을 알아버린 블레 패트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엘리엇 프로스트, 로드와 동귀어진을 각오하고 우주까지 올라온 그였다.

그런데 이 세계가 진짜가 아니고, 그저 정해진 설정에 따라 움직이는 가상세계였다니.

지금껏 자신이 해왔던 것들의 의미가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이 빛을 보기 전 까지만 해도, 난 확신에 차 있었다. 무엇이 옳은지, 뭘 해야 하는지. 하지만 지금은 그 무엇의 옳고 그름도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되는군. 내 예상이 전적으로 틀렸어.”

“옳고 그름은 아직 존재합니다. 그저 블레 패트리, 당신의 신념이 무의미했을 뿐.”

“꽤 뼈 아픈 말이지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겠군. 엘리엇. 아니 태형이라고 불러야 하나.”


블레 패트리가 픽 웃으며 태형을 바라봤다.

그는 이미 태형이 바깥 세상의 인간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태형은 고갤 저었다.


“······지금 저는 자신을 엘리엇이자 태형이라고 생각합니다. 편한 대로 부르세요.”

“그게 맞아.”


조용히 있던 레나가 태형의 말을 거들었다.

태형의 영체는 여전히 엘리엇 프로스트의 모습이었으니까.

블레 패트리는 그런 레나의 생각을 읽고 받아들였다.


“본래 그 게임 설정대로라면, 엘리엇. 너와 나 우리 둘은 정말 둘 중 하나가 죽어야만 끝나는 싸움을 했겠지. 이 허망한 우주에서.”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우리가 이렇게 서로 이해할 수 있다는 걸.”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싶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태형은 진심 그대로를 말했다.

이 이야기의 끝.

그리고 가상세계에서 깨어나, 자신의 아버지김정도 박사와 함께 할머니에게 돌아간다.

그게 태형이 원하는 일이었다.


“행복한 결말······인가. 또 덧없이 되풀이할 비극과 절망을 모른 채 말이야.”

“······아버지가 이 세계를 그렇게 설정한 건, 저 역시 유감입니다.”

“그래도, 좋은 꿈을 꾸었다. 꿈인 것을 안 이상 억지 부리진 않겠다, 엘리엇.”

“그렇······습니까.”


참으로, 블레 패트리 다운 말이라고.

태형은 생각했다.

블레 패트리가 그런 태형을 보며 싱긋 웃어보였다.


“이걸 알았다면 나 역시······ 그때 보니의 말을 들었을 텐데. 아쉽군.”


-그냥······ 저와 작은 해변 마을에서, 작은 집을 구해서, 우리 둘이 조용히 남은 삶을 보내면 안 되는 거예요?

-나쁘지 않겠지.

-그럼요?

-내게 남겨진 사명이 끝난다면. 그렇게 하자, 보니.


태형도 기억하고 있는 장면이자 대화였다.

라티에르 재르간 주둔군 기지에서.

블레 패트리와 보니 프하리브가 슬프게 나눴던 말들.

블레는 그걸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후회했다.

태형은 그런 블레의 감정을 느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도 늦은 건 아닙니다. 보니 씨는 좀 다치긴 했지만, 큰 문제 없이 소크즈 기지에 있으니까요.”

“후후, 뇌만 남은 내가 곁에 있어 봐야, 보니에겐 상처만 되겠지.”

“글쎄요. 강제로 기계 몸이 돼서도 사람들을 위해 살려는 형제도 있었습니다.”


태형은 포브르 레티 소위의 동생, 프란츠와 롤랑을 떠올리며 말했다.

로봇이 돼 버린 둘.

그들은 포브르의 뒤를 이어 리베르테와 함께하기로 했다.


“아름답군.”

“그러니 당신도······ 그런 결말을 맞아보는 건 어떨까요.”

“······그들처럼 기계 몸이 되라는 건가.”

“미안하지만 당신은 이미 기계 몸입니다.”

“하하하하! 한 방 먹었군.”


블레 패트리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다 다시 진지한 얼굴로 태형에게 물었다.


“그래서 코어라는 건, 결국 뭐지?”

“······저도 잘은 모릅니다. 하지만 레나를 통해 대충은 이해했습니다.”


태형이 레나를 보자, 그가 대신 블레에게 설명했다.


“코어가 사람들의 의지를 이어주고 있어.”

“의지라······”

“의지가 강할수록, 더 많은 우주의 바람을 만들수록, 살아있는 혼들과 멀리 떠나간 혼들이 응답해주는 거야. 여긴 그들과 직접 만나는 통로고.”

“그렇군······ 어렴풋이 알겠어. 고맙다. 소녀.”

“응. 블레 패트리 님.”


블레 패트리와 레나의 인사가 끝나고.

블레는 다시 태형에게로 고갤 돌렸다.


“그럼, 엘리엇. 네 뜻대로······ 끝맺음을 하러 돌아가야겠군.”

“보니 프하리브 양을 만나러, 갈 겁니까?”

“아니, 재르간으로 먼저 간다. 아무리 허망 된 세계라 해도······ 나는 내 나름의 정의를 실천한 뒤 끝내고 싶다.”

“······루트비히 프로스트에게?”

“뭐, 녀석에게 오랜만에 친우로서 갚아줘야지. 재르간의 사람들도 행복한 결말로 끝나는 게 좋을 것 같으니.”

“그런 결말은 처음이지만······ 상관없겠죠.”


통로의 빛이 점차 옅어지고.

태형과 레나의 시야는 다시 로드의 조종석 안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로드의 메인 디스플레이 너머, 가페 Mk2가 천천히 추진체에 불을 뿜기 시작했다.


[그럼 또 보자, 엘리엇. 그리고 소녀.]


블레 패트리가 빠른 속도로 가페 Mk2를 몰아 떠난 후.

태형 역시 로드를 조종해 내려가려 했다.

그러나 이미 [오버드라이브]로 인해 과열된 로드의 추진체는 불을 뿜지 못했다.


“음······”


하지만 태형은 당황하지 않았다.


*


테르뒤번 함.

동력이 어느 정도 돌아왔지만, 출력은 불안정했다.

고도가 유지되다, 다시 추락하기를 반복.

승무원들은 동력실 앞에서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아 에너지 추출에 힘을 보탰다.

티나는 함의 후미에서 추진체의 제어기, 스로틀 기어 여러 개를 직접 조절하며 함의 균형을 맞추고 있었다.


“제발······ 조금만 더······”


티나는 간절하게 중얼 거렸다.

조금만 더 안정적으로, 천천히 추락할 수 있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뛰어나 코어 링커 없이, 일반인들만으로 에너지 추출이 얼마나 유지 될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우우우웅.


그리고 그런 불안함이 현실로 닥쳐왔다.

추진체의 소리가 줄어들며, 내뿜던 불꽃도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티나는 스로틀 기어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죽더라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어떤 희망도 버리지 않고, 꿋꿋하게.

그런 리베르테로 남고 싶었다.


“빛이! 내려옵니다!”

“네?”


근처에 있던 승무원 하나가, 구멍 난 함의 후미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티나도 긴장을 유지한 채 그곳을 봤다.

그러자 흰 빛무리가 보였다.

태양을 등지고 반짝이는 입자들과 함께 내려오는 무언가.


“로드······?”


분명 로드였다.

그리고 로드는 테르뒤번 함 가까이로 내려왔고, 함체에 손을 댔다.

그 손을 타고, 로드와 함께 있던 흰빛들이 테르뒤번 함으로 옮겨왔다.

곧 테르뒤번의 추진체가 다시 필요한 출력을 내기 시작하고.

로드는 또 추락하고 있던 다른 함으로 날아가 그들에게도 빛을 나눠줬다.

그렇게 죽은 자들과 살아남은 자들의 의지가 모여, 추락하던 함들을 안전히 착지시켰다.


*


[콜의 국민 여러분! 그리고 세계 시민 여러분!]


리베르테 위원장, 쿠 시옹의 목소리.

그게 전세계 방송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방송을 송출하고 있는 곳은 시유르의 공영 방송국, 제1 스튜디오.

쿠 시옹은 그곳 카메라 앞에 서서 사람들에게 외쳤다.


“저희 리베르테는, 방금 콜의 수도 시유르를 재르간으로부터 해방했습니다. 주둔하고 있던 재르간 군인들의 항복도 받아들였습니다. 앞으로 리베르테는 남아있는 모든 콜의 지역을 회복하고, 세계 각국과 함께 평화의 시대를 논할 것입니다.”


촬영을 진행하고 있는 리베르테 대원 중에는, 에만 알뒤에르 중령도 있었다.


“얼마 전, 연합은 제가 연합을 배신하고 파렐 하븐 주둔 기지를 점령하려 했다는 내용의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밝힙니다. 그 영상 속 인물은 진짜 제가 아닙니다.”


쿠 시옹의 말이 끝나기 전.

에만의 지시에 따라, 영상 송출 장비를 조작하던 대원이 영상 화면을 전환 시켰다.

곧 연합이 공개했던 쿠 시옹과 에만 알뒤에르의 영상이 틀어졌다.

하지만 원본은 아니었다.

해당 영상이 AI로 만들어졌음을 검증하는 수정본이었다.

영상에 남은 아티팩트, 흔적들을 세밀하게 찾아내고 분석한 자료였다.


“이처럼 이 영상 속 저는 AI로 만들어진 정교한 가짜이며, 함께 등장하는 에만 알뒤에르 중령의 말투 역시 실제와 다릅니다.”


다시 쿠 시옹의 모습으로 송출 화면을 전환하고.

에만은 긴장한 얼굴로 쿠를 바라봤다.

사전에 어떤 내용을 발표할지, 들었지만.

에만은 쿠가 마음을 바꾸길 바랐다.


“한 가지 더······ 리베르테는 콜이 영토와 주권을 모두 회복한 후에 해체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저는 향후 해방된 콜을 운영할 생각이 없습니다! 콜의 정치는 오로지 콜의 국민들이 선택한 자들에 의해 이뤄질 것입니다. 과거 민주주의의 꽃을 피워내던 때로 돌아갈 것입니다!”

“······”


하지만 에만의 바람과 달리, 쿠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독립한 콜은······ 분명 선생님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쿠가 원치 않더라도, 무너진 콜을 세우고 뜻을 모을 수 있는 사람은 그 뿐이라고.

에만은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이 과한 욕심을 부리고 있음도 알고 있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선생님, 쿠 시옹의 뜻에 따라 움직일 터였다.


“과장님! 첩보입니다. 재르간 상공에 가페 Mk2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때, 조용히 다가온 정보과 대원이 에만에게 속삭였다.

에만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방송실에서 나가려는 찰나.

정보과 대원이 한 명 더 들어와 크게 소리쳤다.


“속보입니다! 재르간 황제가! 콜의 지배를 포기하고 독립시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


평화로운 세계가 도래했다.

재르간 황제는 루트비히 프로스트와 빌 코흐 장군 등을 유배지에 보냄과 동시에, 프로스트 가에 이어지던 공작 작위를 박탈했다.

잔혹한 생체 실험과 무리한 군 작전과 운용 등.

루트비히가 저지른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해, 유배지에서 강제 노역을 하게 했다.

그리고 황제 역시 전 세계를 향해 사과문을 읊고, 황제의 정치적 역할을 포기하겠다고 천명했다.

재르간은 처음으로 의회를 수립했고, 의원들이 나라를 운영하게 됐다.


“모두가 행복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진짜 재르간을 만들어볼 수는 있겠지.”


이 모든 건 가페 Mk2, 블레 패트리의 의지였다.

블레 패트리는 우주서 태형과 헤어진 후, 재르간 황제가 기거하는 궁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황제에게 자기 말을 따르지 않으면, 재르간 군을 모두 파괴하겠다고 말했다.

가페 Mk2의 위력을 잘 알고 있던 황제는 바로 이에 굴복하고 따랐던 것이다.

연합 역시 태세를 전환해, 리베르테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그리고 연합은 군 정보관리실장 칸샤스 리스 준장을 정보 조작 혐의로 체포, 징역형에 처했고.

스케숄라, 키리거 슈의 어린이 생체 강화 훈련 사실이 공개되며, 연합군 사령관 하든 타프 장군과 휘하의 장성들도 군복을 벗고 재판을 받았다.

그리고 몇 주 후.


“거참, 그럴 거면 도대체 왜······”


콜 동부 도시 소크즈.

해안가 모래사장 위에 커다란 가페 Mk2의 몸체가 앉아 있었고.

옆엔 보니 프하리브가 있었다.

루에거 모스타슈는 그 광경이 멀리 내려다보이는 한 카페의 야외 테라스에서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렇게 자신이 하고픈 대로, 재르간이고 황제고 휘두를 수 있던 거였으면 우린 왜 공격한 거야?”

“사정이 있었겠죠. 나름의.”


대답한 건, 맞은 편에 앉아있던 티나 올랑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한 그림자가 다가왔다.


“음료는 어떠세요?”


다가온 서빙 로봇, 롤랑 레티가 티나에게 물었다.

그는 로봇 몸체에 맞춘 종업원 옷을 입고 있었다.

레나는 앞 테이블에 놓인 두 개의 음료 중, 자신의 것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 스무디, 맛있어요. 잘 마실게요.”

“하하, 다행이네요.”


롤랑 로봇의 웃음소리가 기계의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입은 옷에 적혀있는 글자는 ‘카페 카이트’.

롤랑과 프란츠 로봇이 일하고 있는 카페의 이름이었다.


“엘리엇 도련님은 안 오셨군요.”


카페의 주인, 트레그 베르터.

그가 한껏 마른 몸으로 나타나 루에거에게 물었다.

리베르테의 도움으로 소크즈에 정착한 트레그는, 카이트의 이름과 취지를 되살려 가게를 운영하게 됐다.

콜 국립 감옥에 있는 칼테 크리거들과 다르게.

그는 건강상의 문제와 엘리엇의 보증으로 사면받아 나올 수 있었다.

애초에 시한부 판정을 받아 참작된 부분도 있었다.


“음, 아직도 엘리엇은 바빠.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게요. 엘리엇 씨 덕분에, 세상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평화로워졌는데······ 정작 엘리엇 씨는 아직도 뭔가에 쫓기는 느낌이에요.”


티나가 엘리엇을 생각하며 말했다.

이 세계에 평화의 빛을 내려다 준 로드.

그리고 그 로드의 파일럿 엘리엇.

그는 콜 아이엔 기지에 있었다.

레나 슈타인, 앤 소담 중위와 함께.

뭘 하는 것인지 말해주지 않았기에, 알 수 없었지만.

그리 행복해 보이는 얼굴은 아니었다.


“다들 조금씩, 슬픔이 남아있겠죠.”


롤랑이 기계 목소리로 티나에게 말했다.

자신도, 형 프란츠도, 트레그도.

리베르테 대부분이 가진 슬픔.

티나는 공감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을 대신해 죽은 텅킬 루네트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곳의 밝은 분위기를 충분히 망칠 것 같았으니까.


“리베르테도 해체 중이고. 다들 각자 살길을 찾아 떠나는군.”

“루에거 함장은 이제 어쩌시려고요?”

“나? 쿠아라즈로 돌아가야지. 쿠아라즈 재건 사업이나 하면 딱 맞겠군! 핫핫핫!”

“레드 과장님하고 에만 과장님은······”

“쿠 선생님을 따라다니겠지. 선생님께서 새로 단체를 만드실 모양이더군.”

“그 환경단체요?”

“그래. 뭔가 좀 황당하긴 한데. 콜에 국한된 단체가 아니라 세계를 위한 단체를 만들고 싶다고 하셨더군······ 역시 선생님이랄까.”


*


전쟁이 끝난 후.

태형과 앤은 아이엔 기지에서 거의 나오질 않았다.

태형은 에크트 팔, 김정도 박사의 죽음을 받아들였고.

그가 남긴 힐튼 버덴스에 관한 이야기도 믿기로 했다.

자신이 힐튼을 깨울 수 있다는 말.

그래서 앤과 함께 계속해서 연구와 실험을 진행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엔딩을 맞이하고도 게임, 이 세계는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으니까.

김정도 박사의 말대로 힐튼만 깨우면, 뭔가 답이 보일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1달이 지나고, 2달이 지나고 반년이 지나고, 1년이 지나도 성과는 없었다.

태형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레나가 발작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시나무 떨듯, 두려움에 가득 찬 상태로 꿈에서 깬 레나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아무것도 없던 밤하늘에, 붉은 유성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마치 이 세계를 멸망시킬 듯, 크고 많은 유성이었다.

로드에 빨리 타라고 외치는 레나의 말.

태형은 급히 움직여 레나와 앤, 힐튼을 데리고 기지 격납고로 향했다.

어째서인지 힐튼을 태형에게 맡기는 레나.

태형은 레나의 뜻에 따라 힐튼의 신체를 들고 로드 조종석에 탑승했다.

앤과 레나도 로드 앤 전용기에 들어가자.

곧 유성들이 아이엔 기지에 추락하며 모든 걸 파괴하기 시작했다.


“······이런 이야기는 없었는데······”


태형은 로드(ROD)의 엔딩을 기억했다.

가페를 물리치고, 평화로워진 콜.

그리고 권선징악이 실현되는 재르간과 연합.

그렇게 모두 행복하게 끝나는 게, 무수한 게임 속 엔딩 중 진정한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뒤에 이런 사건이 또 벌어질 줄은 전혀 몰랐다.

운석에 맞아, 땅이 붕괴하고, 세상이 불타 없어지는 동안.

로드와 로드 앤 전용기는 추진체로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우주를 날았다.

우주에는 커다란 우주 전함 여러 척이 있었다.

콜의 것도, 재르간의 것도, 연합의 것도 아닌 함.

외계의 함.

함이 부서진 지구의 조각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어 함에서 출격한 무수한 무언가가 로드를 향해 날아왔다.

그건 손에 창을 들고 우주복을 입은 괴물들이었다.

태형과 앤은 그들과 싸웠다.

하지만 [시간 동기화]도 [오버드라이브]도 [에너지 프리즘]도.

이전처럼 오랫동안 쓸 수 없었다.

마치 그 힘의 기원을 잃은 것처럼.


[의지의 힘을······잃었어······]


앤 전용기에 타고 있는 레나의 통신.

태형은 그걸 듣고 이해했다.

별을 잃었다.

사람들을 잃었고.

그들의 힘을 저 외계인들이 가져갔다.


[도망쳐······엘리엇······]

[그래! 도망쳐! 힐튼하고 같이! 여긴 내가 막아!]


적진으로 뛰어드는 앤 전용기를 보면서.

태형은 그제야 직감했다.

이게 진짜 엔딩이었음을.


*


“허억······!”


슈우우웅-


닫혀있던 코쿤의 유리관이, 공기를 배출하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렸다.


“김태형 씨!”


누워있던 태형의 머리 위로 나타난 건, 국방과학연구소 박창국 팀장과 최형인 대리의 얼굴이었다.


“대단합니다! 성공했어요!”

“허억······허······”

“김태형 씨? 괜찮으세요? 여기 한국입니다. 메타버스에서 나오셨어요, 지금.”


박창국 팀장과 최형인 대리가 차례대로 말했다.

한 명은 들뜬 목소리로, 다음 한명은 걱정되는 목소리로.


“김정도 박사님도 비슷하게 깨어났습니다. 지금 안정을 취하고 계세요.”

“······후······그런······가요······”


태형은 너무도 오랜만에 말하는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그의 육체는 입을 움직이지 않은 지 4시간이 지나 있었으니까.


“하지만 안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


태형이 코쿤에서 몸을 일으키는 사이.

박창국 팀장은 표정을 심각하게 바꾸곤, 다시 말을 이었다.


“1시간 전에 러시아와 일본이 우리에게 선전포고했습니다.”

“전투는요?”

“아직······ 하지만 곧 벌어질 겁니다. 문제는 로드에 탑재한 군중 AI는 여전히 반응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저희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깨어나신 김정도 박사님이 태형 씨에게 말하면 도움을 줄 거라고······”


태형은 최형인 대리의 말을 들으며, 코쿤에서 몸을 뺐다.

생각을 정리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일 시간은 있었다.

메타버스가 종료되기 전, 그가 경험한 시간은 짧지 않았고 오히려 너무도 길었다.

그 덕분에 자신의 정체와 코어가 이곳 지구에 당도하기까지의, 모든 진실을 알 수 있었다.


“코쿤을 로드에서 분리해주세요. 제가 출격하겠습니다.”

“······네?”


태형의 말을 들은 최형인 대리가 당황한 듯 반응했다.

하지만 박창국 팀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휴대전화를 꺼내 누군가와 통화했다.

그리고 통화를 끝낸 뒤, 최형인 대리에게 지시했다.


“김태형 씨 말대로 진행해. 코쿤 분리하고, 로드 탑승 절차 개시해.”

“어······예, 알겠습니다.”


태형은 그렇게 다시 로드 조종석에 탑승했다.

자신의 존재가 뒤흔들릴 만큼, 많은 것을 알게 됐지만.

이 순간, 이 상황.

태형은 여전히 김정도의 아들이었고, 할머니의 손자였다.


‘할머니······곧 갈게······’


이 나라를 지키고, 이 세계를 지켜서.

당신에게.

아버지를 데리고.


1부 完


작가의말

지금까지 메카 파일럿의 2회차 게임 공략을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못나고...... 

부족한 작품을 끝까지 봐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도 한 19화까지 쓰고, 

연재하고 나서야 잘못된 부분들을 많이 깨달았고.

어차피 망한 작품, 포기할까도 싶었습니다.

하지만 주변 분들의 조언을 듣고

오랜만에 복귀하면서 

연재 감각을 다시 새기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계속 썼습니다.


하고 싶었던 장르이고, 쓰고 싶었던 내용과 장면들이지만.

또 막상 쓰면서 저의 부족함을 여실히 느끼고 

많은 아쉬움이 남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해보고 싶은 것들을 시도하면서, 

제 안에 쌓여 있던 감정이나 욕망들이 많이 해소가 된 것 같습니다.

좋게 보면, 저는 이 작품으로 좀 나아간 것 같습니다.

읽어주신 여러분께는 이런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웹소설을 내놓게 돼 

다소 죄송한 마음입니다.


매일 읽어주시고 추천을 눌러주신 독자님들,

사랑합니다.


다음엔 제 욕심을 좀 버리고

좋은 웹소설로 찾아뵙겠습니다.

모두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길!


유신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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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끝이 아닌 끝 (3) 23.08.23 74 3 14쪽
97 끝이 아닌 끝 (2) 23.08.22 84 2 11쪽
96 끝이 아닌 끝 (1) 23.08.21 88 2 12쪽
95 남은 자들, 나아갈 자들 (4) +1 23.08.20 91 4 12쪽
94 남은 자들, 나아갈 자들 (3) 23.08.19 82 2 12쪽
93 남은 자들, 나아갈 자들 (2) 23.08.18 84 2 11쪽
92 남은 자들, 나아갈 자들 (1) 23.08.17 88 2 12쪽
91 나의 생명, 나의 동생들 (7) 23.08.16 84 2 12쪽
90 나의 생명, 나의 동생들 (6) 23.08.15 88 2 11쪽
89 나의 생명, 나의 동생들 (5) 23.08.14 87 2 11쪽
88 나의 생명, 나의 동생들 (4) 23.08.13 98 3 12쪽
87 나의 생명, 나의 동생들 (3) 23.08.12 88 2 11쪽
86 나의 생명, 나의 동생들 (2) 23.08.11 89 2 12쪽
85 나의 생명, 나의 동생들 (1) 23.08.10 103 2 11쪽
84 희망의 빛 (5) 23.08.09 97 2 12쪽
83 희망의 빛 (4) 23.08.08 95 2 12쪽
82 희망의 빛 (3) 23.08.07 94 3 11쪽
81 희망의 빛 (2) 23.08.06 99 2 12쪽
80 희망의 빛 (1) 23.08.05 99 3 12쪽
79 광기의 데뷔 (6) 23.08.04 102 2 12쪽
78 광기의 데뷔 (5) 23.08.03 99 2 12쪽
77 광기의 데뷔 (4) 23.08.02 96 2 12쪽
76 광기의 데뷔 (3) 23.08.01 107 2 12쪽
75 광기의 데뷔 (2) 23.07.31 102 2 11쪽
74 광기의 데뷔 (1) 23.07.30 121 2 11쪽
73 해방 전선 (7) +1 23.07.29 115 2 12쪽
72 해방 전선 (6) 23.07.28 110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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