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는 게 값 (4)
던전이 터진 것보다 훨씬 잔혹한 패널티에 전세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마지막까지 구슬을 막지 못한 나라들은 지구에 속해 있는 다른 행성이 되어버렸다.
에버레스트 산 정상 보다 낮은 산소 농도라는 것은 일반인들이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산소 포화도를 높일 수 있는 특이한 신체를 가진 자가 아닌 이상 숨을 쉬면 쉴 수록 숨이 막혀오는 상황이었기에 점점 죽어갈 수 밖에 없었다.
-정부를 대신하여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아래의 국가에 아직 남아 계신 분이 있다면 지금 즉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아시아의 캄보디아, 몰디브....
김성주 아나운서는 구슬 도착 24시간 전부터 외교부가 철수 권고를 내렸던 44개국의 이름을 하나씩 언급하며 빠르게 대피할 것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각국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사람들의 개인정보 일부를 공개하여 친인척들의 연락을 유도했는데 생각보다 인원이 많았다.
방송에서 모두 공개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고 외교부 홈페이지에 추가로 공지가 올라왔음을 아나운서가 안내했다.
⌎기자님은 어떻게 되셨냐?
⌎산소 호흡기 달고 해변으로 도주. 이후 소식은 모름
⌎제발 살아 계시기를....
⌎아니 그런데 기자가 아닌 사람들은 철수권고 내린 나라에 왜 남아 있던 거야?
⌎몰디브 같은 경우에는 신혼여행가 있던 사람들이래...
⌎신혼여행이고 나발이고 지금 죽게 생겼는데 거기서 그러고 있어?
⌎몰디브에서 뜨는 비행기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고 하더라...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여행자들이 너도나도 돌아가겠다고 몰렸고.
⌎여행자만 몰린 게 아니라 몰디브 현지인들도 탈출한다고 난리였데... 그리고 몰디브로 들어오려는 비행기도 없었고
⌎사람들이 타겠다고 비행기에 몰려들어서 이륙이 안될 지경었다더라 유튜브에 영상 올라와 있음.
⌎나도 봤음 ㅋㅋ 거기 보면 제지하던 경찰도 은근슬쩍 비행기에 올라탐 ㅋㅋ 완전 난리 났음.
몰디브의 상황이 댓글로 전해지자 '거기서 안나오고 뭐했냐?' 하는 댓글은 사라졌다.
신혼여행을 갔던 한국인 부부들도 모든 일정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었지만, 몰디브는 이미 빠져 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 같은 곳이 되어버린 이후였다.
⌎아니 그럼 그 나라는 구슬 공략 안하고 뭐했어?
⌎인도가 해준다고 했다가 막판에 말 바꿨데
⌎헐.... 진짜? 왜?
⌎방글라데시가 조건 없는 합병을 전제로 인도에게 딜을 걸었고 인도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우선순위에서 밀렸다고 하더라. 그게 14시간 정도 남았을 때 일인데 인도가 이미 스리랑카 구슬을 공략 해주고 있던 상황이라 선택이 필요했데
⌎몰디브를 버리고 방글라데시를 선택 한거네
⌎그럼 용병이라도 써야지... 그 나라 정부는 플랜B가 없어?
⌎능력자 용병 비용을 조그마한 섬나라들은 감당할 수가 없어. 모든 능력자 단체는 선불로 돈을 받고 있고 제일 저렴한 단체도 최소 20억 달러부터 시작이야
⌎국가가 그 정도 돈도 없어?
⌎그게 다 현금으로 있어야 하니까 그렇지... 개인으로 봐도 자기 재산 전부다 현금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딨냐? 다 부동산에 묶여있지. 갑자기 급전이 필요해도 부동산이 팔려야 현금이 생길 것 아니냐
⌎맞지 ㅋㅋㅋ 그리고 어제 전세계가 다 패닉 바잉이었어 자산을 팔아 달러를 확보해 어떻게든 용병에게 돈을 지급해야 했기에 몰디브 같은 작은 나라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지
-국민여러분! 지금 몰디브에서 속보가 들어왔습니다!
인도양을 지나고 있던 한국 국적 상선에 몰디브에서 구출된 대한민국 국민들이 탑승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현장 영상 바로 보여드리겠습니다.
김성주 아나운서의 말이 끝나자 넓게 펼쳐진 인도양 한가운데에 솟은 회색 기둥이 보였다.
몰디브였다.
심각한 대기오염과 먼지들들로 영공의 색깔이 탁해진 모습은 마치 바다 한가운데 거대한 탑이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듯 했다.
그런 회색탑 사이에서 푸른 빛이 감도는 거대한 반투명 구체 안에 사람들이 갇혀서 바다 쪽으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구체와 함께 나오는 것은 형석과 카드가였다.
형석이 외교부의 요청에 의해 몰디브에 투입된 것이었다.
그가 도착하기 전, 외교부는 문자메시지로 모든 관광객들을 공항 앞 주차장으로 모이라고 지시했다.
문자 발송 시점은 몰디브의 구슬 공략 실패 3분 후였다.
왜냐하면 구슬 공략 실패 시점이 되어서야 외교부 - 능지청 - HS그룹 - 이형석으로 이어지는 승인이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관광객들은 대부분 공항에 모여있었고 다들 산소 부족으로 힘들어 하고 있었다.
몇몇은 쓰러지고 의식을 잃어버리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이형석이었다.
게이트를 넘어 밀려오는 대한민국의 맑은 공기는 그들을 다시 호흡하게 해줬고 메마른 대지에 물이 적셔지는 것처럼 사람들의 생기가 다시 돌아왔다.
이후 사람들이 모이자 카드가는 쉴드를 응용한 마법으로 그들을 구체에 담아 몰디브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미리 연락 된 상선에 인계했다.
- 보시는 바와 같이 이휘소의 마법이! 신혼부부들을 절망의 늪에서 구했습니다! 외교부의 정보에 따르면, 이번 구출 작전으로 124명의 한국인이 몰디브를 빠져나왔으며 이후 이들은 싱가포르에서 항공편으로 한국에 들어올 계획입니다.
⌎대형석! 대형석!
⌎대형석 강림!
⌎저 사람들 평생 이형석에게 고마워 해야 된다 진짜....
⌎ 제발 제 글 좀 읽어주세요. 제 소중한 동생이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피지에 갇혀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형석님이 이 글을 보실 수 있게 제발 공감을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시간이 얼마 없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제발 제 글을 읽어주세요. 지금 볼리비아에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갇혀있습니다. 볼리비아도 몰디브와 상황이 똑같아 관광객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형석님이 제 글을 보실 수 있게 제발 공감 부탁 드립니다.
형석이 몰디브에서 관광객을 구출한 뉴스 아래에는 그를 찬양하는 댓글들과 세계 각국에 고립된 한국인들을 구출해 달라는 글들이 쏟아졌다.
⌎볼리비아? 유우니사막 있는데 아님?
⌎맞음.... 거기 한국 관광객 많았을텐데....
⌎아니 많고 적고 간에... 철수 권고 지역이었잖아요... 몰디브랑 다르게 거긴 육로로 칠레나 아르헨티나 브라질로 빠져 나갈 수 있었는데 왜 제때 안 빠져나갔음?
물론 여론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다.
몰디브는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이 있었다고 해도 볼리비아는 육지로 다른 나라들과 연결되어 있는데 이해가 안된다는 반응들도 많았다.
⌎비행기는 물론 버스, 기차 모든 교통편이 마비가 되었답니다. 그 나라도 관광객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탈출한다고 난리도 아니었데요. 우리나라 사람들 외교부 메시지 받자마자 자전거라도 구해서 칠레쪽으로 도망가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고 해요...
⌎너무 무섭다... 48시간의 성과에 따라 국가의 흥망이 결정되어 버리네
⌎만약 우리나라에 형석이 없었다면... 대탈출 일어났겠지?
⌎교통 마비지 뭐.... 있는 놈들만 용케 빠져나갔을 거고, 사실상 섬나라인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숨 헐떡이며 죽어갔겠지.
⌎형석한테 돈 더 줘야 되는 거 아니냐? 이민이라도 가버리면 어떡하냐? 안그래도 미국이 눈독들인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다 줘야 됨. 이형석 없어지면 우리나라도 망함.
⌎아예 던전 공략 보상을 전부 이형석 주는 게 맞아. 그걸 왜 국고로 넣어?
⌎이형석이 가지는 비율을 차근차근 늘리고 있다고 듣긴 했음. 그래도 더 늘려야 될 것 같다. 오늘 보니까
몰디브 구출 작전이 마무리 된 이후.
형석은 외교부의 협조 요청에 몇 개국을 더 순회했다.
볼리비아, 우즈베키스탄등 한국인이 많이 있는 순서대로 투입되었다.
볼리비아까지는 그래도 생존한 한국인들이 제법 있었지만 우즈베키스탄부터는 이미 대부분 죽어 있었다.
산소는 그만큼 사람에게 필수적인 것이었다.
더 이상의 구출작전은 의미가 없다 싶은 이형석은 여기서 마무리하겠다는 뜻을 전달했고 정부도 받아들였다.
* * *
"조선업의 호황을 예상하여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투자 비중은 우리나라의 현대에 가장 많이...."
구슬 미션이 끝난 뒤 일주일이 흘렀다.
그 사이 던전이 새로 생기지도 않았고 섭리도 잠잠했다.
물론 이대로 모든 것이 종료될 일은 절대 없었기에 일종의 휴식기를 주는 것 같다고 모두들 예상했다.
덕분에 나도 집에서 잘 쉬고 있었다.
오늘은 동호의 자본 운용 계획 보고를 소파에 여유롭게 눕듯이 앉아 듣고 있었다.
"여객선이 이렇게 늘 이유가 뭐죠?"
동호는 여러 분야에 골고루 투자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전체의 20%에 달하는 큰 금액을 조선업에 투자하려고 했다.
조선에서도 특히 대형여객선과 고급요트등 사람을 운송하는 선박 건조 회사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려했다.
"전쟁 같았던 이번 미션에서 다들 느끼는 바가 많았지 않습니까? 다음 미션이 뭐가 되던지 100프로 안전한 국가가 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렇지요"
"하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벌써 비교적 안전한 곳이 어디인지 알아차렸지요"
"아하!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임자 없는 바다?"
"맞습니다. 국가별 미션이 이번과 똑같이 진행된다고 가정하면 검은 구체는 국가의 영역 판별에 UN의 기준에 따라 정해진 국제법을 참고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공해상은 패널티 대상이 아닌 것이죠"
"생각해보면 바다에는 던전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맞습니다. 남극에서 던전이 열렸던 곳도 빙하 아래에 육지가 있던 부분이었습니다."
"그럼 확실히 개인 여객선 수요가 늘 수 있겠군요"
"저는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비행기는 장기간 하늘에서 떠 있을 수 없지만, 배는 그게 가능합니다. 또다시 국가별 미션이 열리면, 크루즈 예약은 부르는 게 값일 겁니다"
"앞으로도 쭉 그런 추세가 이어질 것이고... 그럼 조선업에 투자할만 하네요. 역시 미래를 보십니다"
"하하 이건 예지 능력으로 파악한 부분이 아닙니다. 분석의 결과이지요. 그리고 지시하신 대로 충주에서 희생된 장병들에게 위로금 지급을 완료했습니다"
카드가가 준혁의 폭발형탄을 구슬에 충돌 시켰을 때 죽거나 부상을 입은 군인들이 있었다.
물론 국가 차원에서 보상을 하고 모두 국가유공자가 되었지만, 나는 그들에게 개인적인 미안함이 있었다.
카드가의 과실이 결국 내 과실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얼마씩 지급 했다고 했지요? 들었는데 잊어버렸습니다"
"전사자 30억, 부상자는 부상 정도에 따라 최대 20억 최소 2천만원입니다"
"좋습니다"
돈으로 목숨을 대신할 순 없겠지만 무언가 대신 해야 한다면 결국 돈 만한 것이 없었다.
유가족들의 슬픔을 위로하기에 30억은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그리고 해외에 출장 가시면서 벌어 들인 금액과 함께 가신 능력자 분들께 정산한 내역 보고 드리겠습니다"
내가 출장 간 곳은 싱가포르, 스위스, 노르웨이, 덴마크였다.
기본적으로 능지청과 대한민국 육군에 보수를 지급했는데 [지구] 구간을 공략할 때 사용한 자주포 및 각종 현대 화기들에 대한 대가였다.
그리고 작전에 동원된 장교, 부사관, 병사들에게도 출장비가 나올 수 있도록 추가적인 금액을 지불했다.
능력자들에게는 원래 경험치를 먹게 해주는 대가로 돈은 주지 않을 계획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경험치 때문에 그들에게도 금전적인 보상을 주기로 결정했다.
"비용 처리를 다 하고도 100조원 가까운 금액이 회장님 계좌에 고스란히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크으.... 이래서 전쟁이 나면 누군가는 부자가 된다고 했던거군요 그렇죠?"
"그렇습니다. 전쟁을 확실히 이겨줄 수 있는 용병은 부르는 게 값이니까요"
"하하 맞습니다"
동호의 말에 나는 웃으며 테이블에 놓인 과일 쥬스를 마셨다.
누군가의 위기가 누군가의 기회가 되는 것이 씁슬하긴 했지만 그에 맞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이 세상의 섭리였다.
- 작가의말
마지막 내용 지적해 주신 것 반영해 조금 수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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