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se 3 (1)
동호는 법인을 설립했다.
HS투자라 이름 붙인 회사에 동호는 대표로 취임했다. 물론 내 지분 100% 회사였다.
그는 스톡옵션을 요구하지도 높은 연봉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지금 로펌에서 받고 있던 보수 보다 낮은 금액을 지급 받는 계약서를 스스로 작성해 왔다.
연봉이 줄었는데 괜찮냐?는 내 물음에 그는 돈은 생활할 만큼만 있으면 된다는 말과 함께 나중에 회사 더 커지면 그때 조금 더 챙기던지 하겠다고 말했다.
HS투자는 미국 워랜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나 일본 손정의의 비전펀드같은 투자 전문 회사를 모티브로 설립되었다.
물론 다양한 회사를 인수 합병 하게 되면 간접적 지배 방식으로 사업을 할 수 도 있다고 했다.
회사에 내가 가진 돈 거의 전부를 쏟아 부었다.
조금 겁이 나기도 했지만, 혹시나 동호가 나에게 사기를 친 것이면 따라가서 죽여버리면 된다는 텔아브의 말에 작은 고민까지 털어버리고 그를 믿어주기로 했다.
회사 설립을 위해 사흘 정도 동호가 올리는 결재들과 인증을 충실히 마친 나는 이제 좀 쉬는가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검은 구체는 새로운 미션을 영상을 통해 공지했습니다. 핵심을 요약해 드리자면...
"형석! 섭리가 새로운 미션을 공지했다!"
티비를 보고 있던 폴드링의 호들갑으로 검은 구체가 새로운 미션을 하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디 봅시다.... 이번엔 던전이 아닌 건가?"
뉴스에는 벌써 주요한 내용이 다 지나가고 패널들이 나와 분석을 하고 있었다. 나는 확실히 공지된 내용을 보고 싶어 유튜브 [대한민국]채널에 들어갔다.
채널에는 4시간 정도 남은 카운트 다운이 내려가고 있었으며, 새로운 미션에 대한 영상과 설명이 나와있었다.
-국가별 미션. 구슬 막기.
-모든 국가에 동일한 구슬이 생성된다. 크기는 지름 50m.
-구슬은 출발 지점부터 도착 지점까지 100km 를 이동한다.
-출발 지점과 도착 지점은 국가마다 다르며, 모든 구슬은 48시간 뒤 도착 지점에 도달한다. 현재 시간 기준 4시간 뒤, 구슬이 지면에 떨어지면서 미션이 시작된다.
-구슬은 동일한 내구도를 지니고 있으며 일정 수준 이상의 데미지가 누적 되면 소멸한다. 소멸에 기여한 상위 10인은 보상을 받는다.
-구슬을 소멸 시킨 순서에 따라 국가 영토(영공)의 대기 수준이 정해진다.
-도착 지점까지 구슬을 소멸 시키지 못하면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된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내용을 보며 새로운 미션이 어떤 형태인지 감을 잡았다.
다시 뉴스로 돌아와 나름 전문가라는 자들이 분석한 내용을 보려고 했는데 웬 걸, 거대한 검은색 구체가 조선 시대 양식으로 지어진 조령 관문 앞에 멈춰 서 있었다.
-기자님 지금 계신 위치가 어디죠?
-예 저는 지금. 문경새재 앞에 나와있습니다. 정확하게 조령제1관문 앞인데요 보시는 바와 같이 거대한 구체가 관문 위에 떠 있습니다.
이것을 검은 구체는 구슬이라고 표현했는데요. 떠 있는 높이는 대략 5m 정도이며, 마치 물리 법칙의 작용을 받지 않는 것처럼 전혀 흔들리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춰 있습니다.
-조령제1관문 앞에서 부터 이어지는 붉은색 선은 무엇인가요?
-예. 마치 증강현실처럼 붉은색 선이 조령제1관문에서부터 출발해 아래로 쭉 이어지는데요. 정확히는 문경새재 서쪽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 붉은색 선은 경기도 화성시의 아산만까지 이어져 있다고 합니다. 지도로 측정해 보면 이곳 조령제1관문에서 아산만까지는 정확히 100km로 구체의 미션 거리와 일치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화면을 전환해 화성시 아산만 연결하겠습니다. 아산만에 나와 있는 이진호 기자?
-예! 이진호입니다.
-그곳 상황 설명해 주시지요.
-예. 저는 지금 정확히 경기도 평택시, 평택항의 기아자동차 수출 전용 부두에 나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붉은색 선이 바로 이곳에서 끝나기 때문인데요. 아산만을 끼고 있는 이 부두가 검은 구체의 마지막 종점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저기 까지 공이 굴러가기 전에 때려서 부셔 버려야 하는 거군」
"그러게요 생각보다 간단하네요"
「흐흐 섭리가 아주 재미 붙였나 보다. 색다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말이다. 앞으로 이런 짓을 한참 더 할 것 같단 말이지」
"하하... 진짜 무슨 게임 하는 것 같네요"
"일정 수준 이상의 데미지를 받으면 소멸한다라.... 꼭 물리데미지가 아니라도 다 계산 되는 건가?"
어느새 거실로 나와 내가 보는 채널을 함께 보던 카드가가 말했다.
"마법데미지가 적용 되지 않을까봐요?"
"구슬 생긴 것이 꼭 마법면역은 기본으로 깔고 가는 것처럼 생기지 않았느냐?"
"그렇긴 하네요. 검고 둥글고 맨들맨들 해 보이는 것이"
"저 위치에 멈춰 있다는 것인가?"
"예. 공중에 멈춘 듯 가만히 있다고 하네요"
"가서 보자. 재질도 확인하고 미리 계획도 세우고"
「좋다. 적을 알아야 공략을 세우지. 어서 가자」
"그럴까요? 그러면 잠시 연락 좀..."
나는 그래도 진철에게 언질은 줘야 할 것 같아 그에게 전화를 했다.
[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음성사서함으로...]
그의 전화는 현재 매우 바쁜 상태였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구슬이 생기자 마자 여기저기서 연락을 해 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선조치 후보고 해야겠네요. 갑시다"
내 말이 떨어지자 마자 카드가는 거실에서 자신의 방의 컴퓨터를 원거리로 조작했다.
염력마법으로 입력을 하니 이런 일도 가능하구나 싶었는데 몇 번의 검색으로 좌표를 알아낸 그가 바로 게이트를 열었다.
"와 생각보다 엄청 크네..."
게이트에서 나와 비행마법으로 공중에 떠 있는 구슬에 접근했다.
지름이 50m이다 보니 상업용 저층 건물 3개 정도를 합쳐 놓은 듯한 거대한 크기의 구슬이었다.
"역시 데이터에 없는 물질이다"
구슬에 바짝 접근한 카드가가 말했다.
그는 보는 것 만으로도 구슬의 재질이 기존에 있는 물질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탕!
"......!?"
갑자기 구슬에서 뭔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 고개를 돌려보니 폴드링이 계곡에서 돌을 하나 가지고 와 구슬에 있는 힘껏 던진 소리였다.
돌은 구슬에 부딪히고 바닥에 떨어졌는데 구슬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고 흔들리지도 않았다.
"하하하 그냥 큰 공인 것 같은데. 뭐 그리 분석이니 뭐니.....!"
돌을 던진 뒤, 별 일 아니라는 듯 웃고 있던 폴드링의 신체가 흐릿해 지기 시작했다.
"우욱!"
그와 동시에 누군가 내 머리를 둔기로 강하게 내리치는 듯한 두통과 내장이 뒤틀리고 구토가 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 5초 정도 눈 앞이 캄캄하고 어지러웠다가 조금 상태가 회복되어 고개를 들자 눈 앞에 흐릿해졌던 폴드링이 사라져 있었다.
「역소환 되었다.」
"허..허헉.... 역...소환..되면... 저도 충격을..."
「충격을 받지. 소환과 동시에 연결되어 있으니까. 그래도 죽진 않으니 걱정 마라. 조금 있으면 회복된다.」
"역...소환이 된 거.... 맞겠죠? 설..마 소멸이 된... 건 아니....겠죠?"
「글쎄. 나도 확신은 못하겠다. 몸을 좀 회복 하고 다시 소환해 보자」
제발 소멸이 아닌 역소환이길 바랬다.
폴드링은 내 소중한 전력이었다.
사실 카드가 만으로도 대부분의 적들은 처리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하나보다 둘 이 더 나은 법이었다.
"괜찮나?"
"아 예...."
카드가가 유유히 다가와 물었다.
사실 그도 구슬에 뭔가를 접촉 시켜보려고 생각 하던 참이었는데 좀 더 행동이 빨랐던 폴드링에게 생긴 일을 보고 그 생각을 접었다.
"시간 되기 전에 건들면 죽는다는 건가? 섭리 다운 방식이군"
"그런... 것 같네요.."
"일단 외형은 다 확인했고. 여기 온 이유는 충격을 가해 보면서 데이터를 미리 확보해 보려 했던 것인데 그건 하면 안되겠다"
"예...예...."
"더 여기 있을 이유가 없다."
"갈....까요? 지금 좀 힘드네요..."
"그래 너도 좀 더 편히 쉬고. 폴드링의 상태를 확인해봐야지"
"가시죠"
카드가의 말에 겨우겨우 대답할 때마다 구토가 올라올 것 같았다. 괜찮아 지나 싶었는데 다시 어지러움이 몰려왔다.
머리도 핑 돌고 시야도 흐릿했기에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좀 쉬고 싶었다.
우린 다시 게이트를 열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후들거리는 몸을 이끌고 푹신한 소파 위에 쓰러졌다.
내가 오락가락 하는 상태로 돌아오자 노집사님이 얼른 집안에 상주하고 있는 간호사를 불렀다.
-혈압이 많이 떨어졌어요... 수축기가 80이 안되네요. 그리고 혈중 산소...
간호가가 빠르게 확인한 내 몸상태가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3분 단위로 재확인 할 때마다 몸 상태가 빠르게 회복되었고 15분 정도 휴식을 취하니 어지러움도 많이 나아져 있었다.
"나와 계약된 영혼을 부르노니...."
몸이 회복되자 마자 폴드링을 재소환했다.
천만 다행으로 그는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났다.
"뭐 어떻게 된 거냐?"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듯 나에게 물었다.
"기억 안 나세요?"
"별 일 없다고 말하던 것 까지...... 역소환 된 건가?"
"맞습니다. 이거 생각보다 충격이 좀 있네요"
"그렇군. 어쩐지 형석. 눈 밑이 검게 물들었다 했다. 나로 인한 데미지 때문이었군"
"이럴 땐 미안하다고 하는 겁니다"
"미안하다. 경솔했다"
"괜찮습니다. 사실 폴드링님이 먼저 했을 뿐, 저나 카드가도 뭘 던져보거나 했을 것 같아요"
「폴드링은 역소환 되었지만, 다른 존재들은 죽을 수도 있겠다」
텔아브의 말을 듣고 보니 그랬다.
혹시 모를 희생자를 줄이기 위해 어서 진철에게 알려야 할 것 같았다.
[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음성사서함으로...]
하지만 여전히 그와 전화는 어려웠고 나는 문자라도 남겨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리고 텔레그램 단체방에 오랜만에 글을 남겨 혹시나 오마르나 니콜라가 구체를 미리 건들이지 않도록 주의시켰다.
-방금 들어온 속보 전달 드립니다!
중국 우한에 생긴 검은 구체를 공격한 중국 공군 조종사들이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조종사를 잃은 기체는 우한 시내 인근에 추락하여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소식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아니나 다를까 틀어 놓은 티비에서 속보가 흘러나왔다.
성격 급한 중국군이 미션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앞선 위치를 선점할 목적으로 폭격 명령을 내렸다.
폭격이 구체에 닿고 몇 초 뒤, 공군 조종사들이 모두 소멸해 버렸고 통제를 잃은 비행기는 빙글빙글돌며 우한시내에 추락했다.
5기가 출격하였기에 시내 이곳 저곳에 추락한 비행기가 빌딩과 도로에 쳐박히면서 거의 재난 영화를 방불케 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전세계에서 비슷한 일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터키 이즈미르에서 호기심에 드론을 날려 구체에 접촉한 민간인이 소멸 되었습니다. 인도 첸나이에서는 공중 부양을 할 수 있는 능력자가 구체에 손을 대는 순간 소멸되어....
모든 나라에 구슬이 생성되었기에 곳곳에서 사고가 터질 수 밖에 없었다.
세계 곳곳에서 연이어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고 뉴스는 대문짝 만한 자막을 만들어 위험성을 경고했다.
-절대 구슬에 접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슬에 접촉하는 모든 생명체는 소멸되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알립니다...
「폴드링이 먼저 건드려서 다행이군」
"그렇게 되나요..."
「너가 먼저 건드렸으면 우리 모두 끝이었다. 너도 사라지고 나도 사라지고.」
"그렇네요..."
「이번에 폴드링이 큰 역할을 했군」
사실 나도 구슬을 건드려볼 마음이 좀 있긴 했었다.
만약 폴드링이 돌을 먼저 던지지 않고 카드가가 좀 더 여유롭게 관찰했다면 가장 먼저 구슬에 타격을 입힌 사람이 나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아찔했다.
[아버지께서 미리 알려주신 덕분에 화를 피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
니콜라와 오마르에게 메시지가 왔다.
그들에게 별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니 다행이었다.
-띠리리리리 리리리
진철이었다.
이제야 나에게 전화할 시간이 생긴 모양이었다.
"예 청장님"
"형석씨! 무사하신 거죠? 방금 경북경찰청에서 보내준 CCTV 영상 봤습니다."
진철은 다른 관계자와 통화 하다가 급히 상황실로 올라온 CCTV영상에 전화를 끊고 바로 형석에게 전화한 것이었다.
영상에서 갑자기 폴드링이 사라지고 상태가 나빠 보이는 형석이 다시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까지 확인한 진철은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 듯 했다.
"예 괜찮습니다."
"민수님은?"
"무사합니다"
"아이고... 다행입니다.... 보내주신 문자 모든 능력자들에게 공지했습니다."
"예..예..."
"일단 좀 쉬시지요. 아직 3시간 정도 남았으니 그 때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진철과의 전화를 끊고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잠시 눈을 감았다.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는데 아무래도 한 숨 자고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집사님?"
"예. 회장님"
동호가 며칠 집에서 일을 보고 간 뒤, 노집사님도 나를 회장님이라고 호칭했다.
처음엔 좀 민망하긴 했지만, 나를 형석씨라고 부를 수는 없다는 노집사의 말에 그냥 회장님으로 하도록 합의를 봤다.
"2시간 30분 뒤에 좀 깨워주세요"
"알겠습니다. 쉬시지요"
노집사님의 마지막 말을 듣자 마자 마치 필름이 끊기듯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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