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는 게 값 (1)
"크으~ 시원하다"
구슬을 파괴 하고 집으로 돌아 온 뒤, 시원한 맥주 한잔과 치킨을 먹었다.
물론 쉐프님의 음식도 맛있었지만 가끔은 프랜차이즈의 맛이 생각날 때가 있었다.
"그렇게 맛있나?"
치킨과 맥주를 먹는 내 모습을 바라보던 폴드링이 물었다.
"끝내주죠. 텔아브도 아스트라한 음식보다 한국 음식이 훨씬...."
별 생각 없이 폴드링의 말에 대답하던 나는 뭔가 슬퍼 보이는 그의 모습을 보며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언데드되면... 식욕이 사라지는 거 아닙니까?'
「맞다. 하지만 폴드링과 카드가는 영혼이 지닌 모든 것을 온전히 유지한 언데드라 일반 언데드와는 다를 수 밖에 없지. 아무래도 식욕이라기 보다 호기심인 것 같다」
'호기심인데 왜 슬퍼 보이죠?'
「음식을 즐겼던 자신의 과거가 떠올랐겠지. 기억이라는 것은 때론 자신을 찌르고 아프게 만드는 흉기가 되기도 하지.」
'음식을 먹으며 행복했던 인간 시절 기억이 지금을 불행하게 느끼게 하는 이유라는 겁니까?'
「그렇다. 아주 역설적인 일이지」
텔아브와 이야기를 주고 받는 동안, 멍하니 치킨을 바라보던 폴드링이 손을 내밀어 닭다리 하나를 집어 들었다.
"바삭한 닭튀김.... 고소하다는 느낌 이었던 것 같군"
"예... 그렇죠 고소하고 뭐.. 그런데 느끼합니다"
"느끼하다? 으음 그 느낌도 기억 날 것 같다. 뭐 이젠 다 부질없는 기억이지만 말이다"
"혹시 모르지요. 언젠가 다시 인간의 삶을 살 수 있을지 세상일은 모르는 거잖아요?"
"그래? 내가 다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날이 올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단 우리가 이 테이블 앞에 모여 이야기 하고 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지금 이 세상은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곳이에요"
"하하 그렇지. 그래.... 그런 날을 기대해 보자고 형석"
가까스로 폴드링을 달랜 나는 치킨보다 티비에 집중했다.
때마침 세계 각국의 구슬 공략에 대한 뉴스 특집이 방송되고 있었다.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우리나라에 이어 두번째로 중국이 구슬을 소멸 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시간은 11시간 34분 21초로 기록되었으며...
중국이 구슬을 소멸 시키는데 성공했다.
물론 한국과 기록 차이는 제법 났지만 그래도 2등이었기에 중국인들의 자부심에 불을 붙였다.
-중국은 정예 맴버를 위주로 공략을 진행했던 우리나라와 다르게 모든 능력자들 총동원해서 구슬을 공략했습니다.
준비된 주요 장면을 통해 중국의 공략 전략에 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엄청난 인구를 소유한 중국은 당연히 능력자의 숫자도 많았다.
물론 형석처럼 독보적인 인물은 없었지만, 웨이를 필두로 30레벨 이상의 능력자들 숫자가 상당히 많아서 던전 공략팀을 10개나 운영하고 있었다.
구슬 공략을 위해 모든 능력자들이 우한에 모여들었다.
각 구간마다 최소 20명 이상의 능력자들이 포진해 있었기에 번갈아 가며 공격을 쏟아 부은 결과 구간마다 2시간 내외의 기록으로 모두 돌파해 낼 수 있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중국 능력자들은 같은 차원의 능력자들을 3팀으로 나눠서 번갈아 공격을 할 정도로 규모가 상당히 큽니다.
⌎와ㅋㅋㅋ 중공군의 인해전술 명불허전이다 정말
⌎쟤네 진짜 능력자들 많긴 하다.
⌎골고루 많이 데리고 있어서 안정적으로 공략 했네
⌎와 중국 하늘 맑아 지는 거 봐라
⌎좀 얄밉네 ㅋㅋㅋ 중국 놈들 맑은 공기 마시는 거 ㅋㅋㅋ
⌎그러게 ㅋㅋ 오염물질 없애 주는 거 웰케 킹받지 ㅋㅋ
방송 화면에서 미세먼지와 오염물질로 가득찼던 베이징의 하늘이 남태평양의 휴양지처럼 맑아 지는 것을 보고 한국의 네티즌들은 왠지 모를 심술이 났다.
-수십년만에 맑은 하늘을 가지게 된 중국 시민들은 모두 거리로 쏟아져 나와 깨끗한 공기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이번 공략은 위대한 중국의 승리라고 말하며 나라를 위해 노력한 능력자들이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 선포했으며...
뉴스는 시진핑과 함께 중국의 능력자들이 천안문 광장에서 군중들에게 환호 받는 장면이 나왔다.
능력자들의 모습은 상당히 피곤해 보였지만, 공산당의 명령을 어길 수 없으니 모두 참석 한 것 같았다.
「저 놈이 중국의 대통령인가?」
"예. 엄연히 말하면 주석이라고 조금 다릅니다. 텔아브님이 아시는 왕의 개념에 좀 더 가깝죠"
「얼마 전에 네가 죽인 김정은인가 한 놈처럼?」
"맞습니다. 선거로 뽑힌 자가 아니에요. 독재자라고도 하죠"
「그렇게 보인다. 시진핑 옆에 있는 웨이의 표정이 모든 걸 말해주는군」
"하하하 쉬고 싶을텐데 억지로 끌려 나온 표정이네요"
웨이는 시주석의 권유에 마지못해 군중들에게 손을 흔들어 줬다.
그 모습을 보며 내심 시진핑이 생각보다 오래 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니콜라의 사례처럼, 능력자들이 지금은 본색을 드러내지 않고 권력자들의 비위를 맞춰주고 있어도 언제 돌변할 지 모를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왼쪽 레벨이 점점 더 올라가면 갈 수록 이세상의 진정한 '갑'은 능력자들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추가로 들어온 소식입니다! 미국과 인도도 구슬을 소멸 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미국 12시간 14분 51초, 인도 12시간 33분 7초의 기록입니다. 따라서 미국이 3위, 인도가 4위를 기록하며...
속속들이 구슬이 소멸한 소식이 들려왔다.
애런이 없어도 뛰어난 능력자들이 많은 미국과 중국 보다 더 인구가 많은 인도가 연이어 구슬 공략에 성공했다.
미국과 인도 모두 구슬 공략을 자축하며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특히 인도는 심각한 대기오염이 사라지고 맑은 공기로 대기가 가득 차자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감명 받은 모습이었다.
-미국과 인도에 이어 다음 순서로 가장 유력한 국가는 브라질, 러시아, 일본, 이집트 순서입니다. 말씀드린 4국은 현재 가장 마지막 구간인 자유 공략 구간에 돌입했습니다.
위 국가들은 모든 차원의 능력자가 골고루 많은 중국, 미국, 인도와 다르게 능력자가 부족한 차원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공략 영상을 참고하여 그 방식을 그대로 차용했습니다.
카드가가 썼던 일명 '힘 실어주기' 방법이 영상을 통해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우리나라처럼 능력자의 숫자가 부족한 차원을 카드가의 방식으로 도와주며 다른 나라들도 취약 구간을 돌파해 낼 수 있었다.
⌎뭐야 ㅋㅋ 저작권 받아야 되는 거 아니냐?
⌎역시 선구자의 길을 모두가 따라오게 되는 것이다
⌎일본도 거의 다 왔네. 일본에도 능력자가 많았나 봐?
⌎우리나라 세 배임. 일본은 시뮬레이션 4920 능력자들이 적어서 해당 구간 돌파가 오래 걸렸음.
⌎ 우리나라 영상 보고 다른 차원 능력자들이 도와줘서 방금 돌파 함.
⌎이집트 영상에 저 놈. 자기가 텔아브라고 난리 치던 그 놈 아님?
⌎맞음 ㅋㅋㅋ 오마르 ㅋㅋ 근데 얼마 전에 자기 뱀파이어라고 밝혔음
⌎그래? 그 피 빨아 먹는 뱀파이어?
⌎맞음. 우리나라에도 뱀파이어 결합영혼 받아 들인 사람이 있더라 그 사람들 다 오마르 휘하로 간다며 이집트행 비행기 탔다
⌎헐.... 뱀파이어면 피 빨아 먹어야 됨?
⌎그건 아니라고 하긴 하던데 ㅋㅋ 모르지 ㅋㅋㅋ 몰래 밤에 나와서 취객들 피 빨아 먹으러 갈지 ㅋㅋ
뉴스와 실시간 댓글을 읽으며 오마르와 니콜라도 잘 공략하고 있는 모습에 안심이 되었다.
아무래도 인구 대국들은 공략 속도가 빠를 수 밖에 없는 듯 했다.
이름만 들으면 알 법한 나라들은 대부분 제한 시간 안에 구슬을 충분히 공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뉴스를 보던 나는 살짝 눈이 감기는 느낌이 들어 시계를 봤다.
벌써 자정에 가까워 지고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거실에서 안방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먹던 치킨과 맥주를 그대로 두고 일어났는데 내가 일어나자 마자 노집사님이 직원들과 함께 내 자리를 치웠다.
혼자 살 때는 아무리 피곤해도 내가 다 치우고 자야 했지만, 지금은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나는 뭐 하나 직접 할 필요 없이 그냥 내 일에만 집중하면 되었다.
청소, 세탁등 잡다한 집안일은 더 이상 내 몫이 아니었다.
* *
푹 자고 일어난 나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샐러드와 커피가 곁들여진 식사를 시작했다.
식탁에서 태블릿으로 뉴스를 보고 있었는데 구슬 공략에 대한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속보입니다. 방금 일본이 7번째로 구슬을 소멸 시켰습니다.
일본의 기록은 19시간 55분 27초로 기록되었으며...
자고 일어나니 일본까지 구슬을 소멸 시켰다.
그런데 문득 생각해보니 이제 남은 시간은 하루였는데 전세계 약 200개국 중에 아직 7개의 나라만 구슬을 공략한 것이었다.
-띠리리리 리리리
진철의 전화였다.
"예. 청장님"
"형석씨...아니 이회장님 잘 쉬셨습니까?"
"회장님이요?"
"저도 소식 들었습니다. HS그룹 만드셨다고요 축하 드립니다"
"하하하 그렇긴 한데... 아직 회장님이라 불릴 정도는 아니라서"
"아닙니다. 이제 곧 국내 최고의 회사가 될 것인데 미리미리 회장님께 잘 보여야지요 하하하"
"예 뭐... 편하신데로 하세요"
"몇 가지 논의 드릴 일이 있는데 어제는 피곤하실 것 같아 따로 연락 드리지 않았습니다."
진철은 지친 상태였지만, 구슬 공략에 관한 보고도 올리고 피해 지역에 대한 지원 방안도 건의하는 등 바쁜 하루를 보냈다.
국내의 일을 처리하는 것 만으로도 바빴는데 그에게 생각지도 못한 문의가 쏟아져 들어와 밤새 거의 한 숨도 자지 못한 진철이었다.
"저보다 청장님이 더 피곤하시죠 고생 많으십니다. 말씀하세요"
"예. 다름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구슬 공략 지원을 요청이 쇄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겠네요. 지금 여유 있는 나라는 우리니까요"
"맞습니다. 중국과 미국, 인도에도 문의가 가고 있는 걸로 아는데 우리에게 가장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보여준 것이 있으니까요"
"하하 그렇지요. 그럼 출장 한 번 가는 겁니까?"
"오오 회장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에 대한 요청이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회장님을 초빙하는 거니까요"
진철은 쉽게 승낙해주는 형석이 고마웠다.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과 인도의 능력자들은 휴식과 치료를 이유로 타국에 출장 가는 것을 꺼리고 있다고 했다.
다들 자국의 구슬 공략에 전력을 쏟아 부은 상태라, 몸이 많이 피곤했고 최소한 하루의 휴식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심지어 국가의 입김이 가장 쎈 중국의 능력자들도 해외 파견에는 부정적인 의견들이 많아 팀 구성이 쉽지 않았다.
일부 참여 의사를 밝힌 각국의 능력자들도 상당한 수준의 보상을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다.
천문학적인 금액을 따로 지급해 주지 않는다면, 참여하지 않겠다는 능력자들이 많았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수요는 많지만 공급은 적은 지금 상황에서 공급자가 부르는 것이 곧 시세였다.
비싸다고 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걸 모두가 알고 있었고 공급자가 한정되어 있었기에 누군가가 계약을 하면 나머지 공급자들은 더 높은 가격을 부를 수 있었다.
"가야죠. 대신 받을 건 다 받아야겠죠?"
"물론입니다. 납득할 수 있을 만한 금액을 제시하는 쪽과 협상할 생각입니다. 우선 아랍에미레이트연합측에서 회장님을 초빙하는 조건으로 우리 돈 50조 가량을 제시했습니다. 싱가포르는 그보다 적은 30조. 그리고 브루나이 왕국에서 25조...."
눈이 휘둥그레 지는 금액들이 연신 언급되었다.
우리에게 제안을 넣은 나라는 부유하지만 능력자의 숫자가 부족해 구슬 공략에 애를 먹고 있는 나라들이었다.
"저희가 조건을 세세하게 따지고 있습니다. 일단 아랍에미레이트 쪽은 현금 지급 능력이 없어서 채권으로 지급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일단 우선협상에서 제외 했습니다. 싱가포르는 계약 성사 직후 선입금으로 30조원을 바로 넣어 주겠다고 해서..."
진철이 말하는 것은 해당 국가와 우리나라와의 계약 조건이었다.
그 금액이 내가 가질 금액이 아니란 이야기였다.
여기서 또 그냥 넘어가면 분명 텔아브가 재주는 곰이 어쩌고를 할 것이 분명했기에 나는 진철의 말을 끊고 내 의사를 전달해야 했다.
"청장님. 그런데 그 금액을 전액 제가 받는 건 아니지요?"
"그...그건 아무래도 협의가 좀 필요한..."
"제가 얼마 전에 법무와 재무를 전담할 사람을 뽑은 거 아시죠?"
"예 알고 있습니다. HS그룹의 경영도 책임진다고 했던 그 분이... 서동호님이셨던가요?"
"맞습니다. 제가 동호님께 말해서 청장님께 연락 드리라 하겠습니다. 협의는 동호님과 부탁드릴게요 청장님"
"예...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연락 부탁 드립니다"
진철은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까지 형석이 동네 구멍 가게 방식으로 일을 해 주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긴 했지만 막상 그런 시간이 이렇게 다가오니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이제 이야기 잘 들어주고 인간적인 청년이 아닌, 업계에서 알아주는 협상 전문 변호사와 상당히 불리한 협상을 시작해야 했다.
"예 청장님. 바로 연락 갈 겁니다"
형석과 통화를 끊은 진철의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았다.
허상영 국장과 대통령은 그저 성과급 몇 푼 쥐어주고 형석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시점에 '갑'이 누구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윗선과 슬슬 정당한 이득을 챙기려 하는 형석 사이에 낀 진철의 고심이 깊어질 수 밖에 없었다.
정부와 형석 사이에서 조율을 하는 진철 포지션의 난이도가 점점 상승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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