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se 2 (1)
게이트를 열고 나온 형석의 일행의 모습은 달라져 있었다.
물론 형석의 모습은 큰 차이가 없었지만, 카드가와 폴드링의 모습은 완전 바뀌어 있었다.
"오랜만에 왔군"
시퍼런 안광을 뿜어내는 리치!
로브로 몸을 완전히 가리고 공중에 떠 유유히 움직이는 카드가가 말했다.
물론 입에서 내는 소리가 아닌 그가 마법으로 공기를 진동 시켜서 낸 소리였지만 의사소통에는 아무런 문제 없을 정도로 또렷하게 들렸다.
"티비를 좀 봐야겠다"
완벽히 갑옷을 갖춰 입은 데스나이트!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검을 등 뒤에 맨 폴드링 역시 마력을 이용해 말을 할 수 있었다.
『이름 : 이형석 (텔 아브)
레벨 : 22/235』
형석은 집에 돌아오자 마자 상태창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의 레벨은 20이 넘어서 있었다.
진철의 예상대로 그는 시베리아에 다녀온 것이 맞았다.
시베리아부터 출발해 몽골을 거쳐 오호츠크에서 알류산 열도까지. 긴 여정을 하는 동안 많은 우두머리들을 죽이고 경험치를 쌓았다.
식량도 대부분 현지에서 조달 했는데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싶어 게이트를 열고 돌아왔다 다시 가고 싶었지만, 흐름을 탔을 때 다 해결해버리자는 마음으로 참고 버텼다.
"어디 가요?"
집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를 향해 스르륵 움직이는 카드가에게 물었다.
"컴퓨터.... 쓸 것인가? 아니면 내가 좀 하려고 한다"
"아이고.. 우리 대마법사님 컴퓨터 중독이네"
"중독되었다면 2주간의 여정에서 금단 증세를 보였겠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 알고 있지 않나?"
"하긴 그건 맞죠"
"그리고 내가 중독이라면 저 놈도 중독이다"
벌써 티비를 켜고 영화 채널을 검색하고 있는 폴드링을 가리키며 카드가가 말했다.
"그래요. 둘 다 고생 많았는데 하고 싶은 거 해야죠. 하세요"
카드가는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컴퓨터 앞으로 갔다.
이제는 앉을 필요도 없는지 공중에 뜬 상태로 컴퓨터를 조작했다.
염력 마법으로 클릭과 타이핑까지 다 해내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이 조금 괴기스럽기도 했다.
가만히 서서 모니터를 응시하는데 빠르게 조작되는 키보드와 마우스라니... 심령특급에 소개될 만한 이야기였다.
「밥 먹자.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
"그래야죠. 김치찌개 얼큰하게 어떠십니까?"
「더할 나위 없지! 어서 배달 시켜라」
"배달 말고 직접 가서 먹죠? 밑반찬도 맘껏 리필 해서 먹게"
「좋다. 출발!」
허기를 느끼지 않고, 식사도 할 수 없는 폴드링과 카드가와는 다르게 나의 감각을 공유하는 텔아브는 오자마자 밥타령을 했다.
러시아에 머무는 동안, 백팩에 잔뜩 챙겨간 쵸코바나 현지에서 구한 짐승의 고기를 구워 먹으며 버텼었다.
물론 요리는 폴드링과 카드가가 다 하고 나는 먹기만 했을 뿐이지만, 그래도 허기도 못느끼고 추위도 못 느끼는 둘과 달리 텔아브는 내 감각을 모두 공유했으니 답답할 만도 했다.
나는 배터리가 다 나간 폰을 충전하고는 간단하게 샤워를 했다.
2주간의 노숙으로 인해 심각하게 더러워진 내 몸을 씻어내는데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샤워를 마친 후, 고속충전된 폰을 켜 봤더니 많은 연락이 와 있었다.
그중 가장 먼저 연락해야 될 곳에 전화를 하며 집 밖으로 나섰다.
"여보세요"
"형석아! 니 어디고!"
"방금 서울에 왔어요. 러시아에 있었어요"
"아이고마... 니는 미리 문자라도 하나 하고 가라 좀.... 온 동네 사람들이 니 무슨 일 생긴거 아니냐고..."
엄마는 약간 울먹이며 말했다.
3-4일이면 될 줄 알았던 러시아행이 본의 아니게 점점 길어져 버려 생긴 일이었다.
"담엔 문자 하고 갈려고 할게요. 그리고 걱정 마세요 저 안 죽어요"
"니 데리고 다니는 그 해골들도 별 일 없제?"
"하하하 없어요. 다 멀쩡해요 걱정마세요"
엄마마저 내 전투력의 원천이 카드가와 폴드링인 것을 알고 그들을 걱정하니 웃음이 나왔다.
엄마와 통화를 하며 마당을 지나 집 대문을 여는 순간! 수많은 취재진들이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플래쉬 세례를 퍼부었다.
"이형석씨!"
"야! 빨리 생방 준비해! 어서!"
진철이 배치한 군인과 경찰들은 밀고 들어오는 기자들을 막는데 온 힘을 쏟았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정장을 입은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왔다. 낯이 익었다.
나는 급히 엄마에게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고 그의 인사를 받았다.
"형석님 안녕하십니까. 능력자지원청 소속 지승우입니다."
"지원청? 뭐 아무튼.... 우리 예전에 병원에서 만났었죠?"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확실히 기억이 났다.
예전 VIP병실에서 진철의 지시로 내 폰의 정보를 복구해준 그 요원이었다.
"기억하시는군요. 맞습니다. 지금 보시면 아시겠지만.... 외출이 어려우십니다"
"그러게요... 난리가 났네요"
내가 승우와 대화 하는 도중에도 기자들은 마이크를 들이밀며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물론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것과 동시에 그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어디로 가시려고 하셨습니까?"
"식사를 좀 하려고 했습니다...."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승우는 대위 계급장을 찬 군인을 손짓으로 부르더니 차량을 준비 시키라 명령했다.
"이형석씨! 2주 동안 러시아에 있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형석씨! 뉴욕타임즈 선정 주목해야 할 능력자 TOP5안에 들었는데 소감이 어떠십니까?"
차량을 기다리는 동안, 내가 대답을 하지 않는 것에 아랑곳 하지 않고 기자들은 거듭 질문을 퍼부었다.
「뉴욕타임즈? 그게 뭐냐」
'신문입니다. 제법 권위있는'
「아아... 그 뉴스를 종이로 발간하는?」
'예. 물론 요즘에는 인터넷에 기사를 올리는 것이 주류긴 하지만'
「그나저나 김치찌개 먹으러 갈 수 있는 것이냐? 아니면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게이트를 열고....」
"통제해! 길 뚫어!
텔아브가 말하는 도중, 승우가 부른 차량이 도착했다.
연예인들이 타는 거대한 벤이 몰려든 기자들 사이로 천천히 진입해 들어왔다.
군인과 경찰들은 벤이 우리 집 앞까지 올 수 있게 기자들을 밀쳐냈고 곳곳에서 비명이 들렸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이러다 사람 깔려!"
"그러니까 물러나세요! 버티지 말고!"
몇 번의 실랑이 끝에 벤은 기어이 내 앞에 멈춰 섰다.
승우는 친절하게 문을 열어 줬고 마치 비지니스 클래스의 좌석 같은 벤 안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출발하겠습니다"
함께 차에 오른 승우는 나에게 공손히 말을 한 뒤, 운전석의 부하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벤은 몰려드는 기자들을 뚫고 천천히 도로로 나갔고 우린 국도로 진입 할 수 있었다.
"일단 교외로 가서 식사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혹시 원하는 곳이 있으십니까?"
"김치찌개 잘하는 집이 있을까요? 2주간 외국에 있었더니 김치찌개가 제일 먹고 싶네요"
"알겠습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승우는 진지한 얼굴로 김치찌개 맛집을 찾았다.
"이곳 어떠십니까? 우면산 인근이라 좀 걸리긴 하지만 한적하고 맛도 좋다고 합니다"
"그리 가시죠"
조금 걸린다는 점이 아쉽긴 했지만, 어차피 내가 운전하는 것이 아니니 좀 쉬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저.. 형석님?"
"예"
"혹시 청장님과 통화는 하셨습니까?"
"청장님이요? 그게 누구죠?"
"아... 박진철 팀장님이 이제 청장이 되셨습니다. 능력자지원청이라고 정부가 새로운 기관을 만들었고 사람들은 줄여서 능지청이라 부릅니다"
"아하... 잘 되었네요. 그런데 능지청이라니... 어감이 영..."
"하하하 그렇지요? 그런데 그게 너무 입에 착 감기는 어휘라 다들 그렇게 부르더군요"
"그렇긴 하네요. 청장님과 통화는 아직입니다. 지금 할까요?"
"예. 많이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진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미 내 상황을 보고 받았는지 연결음이 들리자마자 그는 전화를 받았다.
"별 일 없으셨습니까?"
"예 다행히.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제가 미리 말씀을 못 드렸네요"
"아닙니다 그럴 수 있지요. 사실 러시아에 가 계신 것 알고 있었습니다. 미국측에서 정찰 위성으로 형석씨가 사냥하고 있는 모습을 촬영해 저희 측에 보내 줬었거든요"
"하하하 다 보고 계셨군요"
"예. 우리 뿐만 아니라 러시아도 형석씨가 우두머리들을 죽이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을 겁니다. 알면서도 그냥 놔둔 것이지요"
"제가 가지 않았으면 그 놈들 더 많은 사람들을 죽였을 겁니다"
"맞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러시아는 알면서도 모른척 하고 있었습니다. 내심 좋아했을 겁니다. 하지만..... 베이징도 가셨지 않습니까?"
"예. 베이징에서 만난 그 놈이 제일 강했습니다. 시베리아에도 그 놈 만한 강자는 없더라구요"
"그게 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문제요? 어.... 그 베이징에서 만난 중국인이 다친 것은 저 때문이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티라노와의 전투 장면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확인했으니까요"
"그럼 문제될게 뭐가 있을까요?"
"그 부분은 만나서 직접 설명 드리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지금 가시는 김치찌개 식당에서 뵙죠. 저도 오랜만에 김치찌개 먹고 싶네요"
"예 좋습니다"
김치찌개 식당에 간다고 진철에게 말하지 않았는데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마 승우가 미리 보고했거나 이 차량 전체에 도청장치가 되어있거나 할 텐데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이후 20분 정도를 더 달려 우면산이 보이는 식당에 도착했다.
진철이 미리 손을 쓴건지, 원래 그런 건지 손님이 하나도 없었고 주차장에는 검은색 차들만 가득했다.
"바로 드실 수 있도록 준비해 뒀습니다. 들어가시죠"
차에서 내리자 진철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식당 안에는 이미 맛있게 끓은 김치찌개가 있었다.
공기밥과 김치찌개 달걀말이를 번갈아 가며 맛있게 먹었고, 진철은 일단 식사 다 하고 난 뒤에 이야기 하자고 말하며 내가 충분히 먹을 수 있도록 기다려줬다.
"배 부르네요"
"하하 많이 드셨습니다"
김치찌개도 바닥을 드러내고 공기밥도 두 개나 먹었더니 배가 터질 것 같았다.
그래도 오랜만의 식사 다운 식사에 나도 만족하고 텔아브도 만족했다.
"그럼 이제 이야기 좀 나눠볼까요?"
"예 말씀하세요"
"일단 중국 정부에서...."
진철은 중국측이 내가 티라노를 잡을 것을 문제 삼고 있다고 알려줬다.
국가 차원에서 항의가 제대로 먹히지 않자, 유엔 총회에서 중국 대사가 한국의 도를 넘은 행위를 엄벌해야 한다며 열변을 토했다고 했다.
"그들은 타국의 던전을 함부로 공략하거나 하는 행위를 국제법으로 막아야 한다고 떠들어 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형석씨의 불법적인 행위에 한국의 사과를 요구한다며 억지를 부리고 있지요"
"설마... 저를 중국에 보내실 건 아니죠? 그럼 저 도망갑니다"
"하하 절대 아닙니다. 정부도 이 안건에 대해서는 강경대응 하고 있습니다. 무역 보복을 하겠다는 중국에 우리도 똑같이 보복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래도 됩니까? 중국이 필수적인 물품들 수출 안 해주면 위험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그... 뭐더라... 요소수? 그런 것들 수출 안 해줘서 불편을 겪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럴 수 있죠. 하지만 그건 다 옛날 말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자원 부국입니다. 던전 공략 보상으로 받은 다양한 자원들을 국내에서 소비하는 것도 모자라 요즘엔 수출까지 하고 있습니다."
"다행이네요"
"다 형석씨 덕분이지요. 특히 우리나라에선 거의 쓰지 않는 석탄도 상당히 많이 확보가 되었는데 전량 중국으로 수출하고 있습니다. 만약 중국이 무역 보복을 한다? 그러면 우리도 석탄을 수출하지 않을 겁니다"
"이야... 세상 많이 바뀌었네요"
"맞습니다. 중국은 자국 던전의 보상만으로는 발전소가 필요한 자원을 다 충당하지 못하고 있는데 지금 석탄 수출이 가능한 나라는 손에 꼽습니다. 사실상 한국 뿐이죠. 중국 화력 발전소 문 닫을 생각이 아니라면 강하게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럼 문제 없네요. 앞으로 중국에 종종 가면서..."
"아.... 그런데 중국이 던진 화두에 공감하는 국가들이 꽤 많아서요.... 앞으로 타국 던전이나 던전에서 나온 우두머리를 공략하시는 건 저희와 꼭 협의를..."
진철의 이야기처럼 다른 나라들도 자국에 생긴 던전은 자국에서 처리 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었다.
지하자원이 없어진 세상에서 이제 던전이 곧 지하자원이었다.
형석의 사례 같은 일들이 생겨나면, 강한 능력자들을 보유한 국가가 전적으로 유리했고 그것을 우려하는 국가들이 더 많았다.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이거 괜히 청장님을 곤란하게 한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것보다.... 레벨은 많이 올리셨습니까?"
진철의 물음에 드디어 올 것 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현재 레벨은 22.
사람들에게 거짓말로 이야기 한 오른쪽 레벨인 20을 뛰어넘는 수치였다. 언제까지 거짓말을 할 순 없었다.
"청장님 제가 비밀 이야기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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