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진출 (3)
에릭슨이 잉글랜드 정부와 협의하는데 성공하고 이후 일년 동안 서울상회는 꾸준히 런던을 오가며 미국 상품을 팔았다.
모두의 예상대로 잉글랜드 상인들은 미국 상품을 더 높은 가격으로 유럽시장에 판매하기 시작했고 매우 값이 비쌌음에도 불티나게 팔려갔다.
서울상회는 추가로 인도한 금강산급 증기선 2척을 더 운용하여 런던에 물품을 쏟아 부었는데 고가의 물건 뿐만 아니라 미국령 지역에서 생산된 커피, 설탕, 후추등도 팔아 치우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판매한 후추의 가격은 아프리카를 돌아 들어오는 포르투갈 상인들의 후추 가격보다 더 저렴했고 그 가격에 약간의 웃돈을 얻어서 잉글랜드 상인들이 팔아도 프랑스나 신성로마제국의 입장에선 저렴한 가격이었다.
처음에는 영문도 모르고 잉글랜드 상품을 사들이던 프랑스, 네덜란드, 신성로마제국의 상인들도 오래지나지 않아 모든 물품의 출발은 미국이란 것을 인지했고 각국의 정부는 앞다퉈 대표단을 서울로 보냈다.
"황제 폐하께서 입장하십니다!"
서울의 백악관 접견실에는 네덜란드, 프랑스, 포르투갈, 베네치아, 스웨덴등 다양한 유럽 각국의 대표단이 모여있었다. 물론 전부다 온 것은 아니었다.
미국에게 신대륙을 통째로 빼앗기고 잉글랜드에게 패해 국가의 위신이 말도 못하게 쪼그라든 스페인은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았고, 아직 부동항 확보가 되지 않아 해상 무역이 여의치 않은 러시아 대표도 오지 않았다.
건흥의 늠름한 등장에 각국 대표들은 고개를 숙이면서도 힐끔힐끔 그의 모습을 살폈다. 소문대로 황제는 동양인의 외모를 하고 있었고 덩치가 건장했다.
"고개를 들라"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
각국의 대표단은 자신들의 언어로 이야기 했고, 건흥은 미국어로 이야기 했지만 접견실에 모인 통역단들은 각자 맡은 국가 대표 옆에 붙어 즉각적으로 건흥의 말을 통역해 대표들에게 전달했다.
"나는 바쁜 사람이다. 너희들을 따로 만날 시간이 없으니 이 자리에서 모두를 동시에 만나는 것을 이해해라."
"예 폐하."
"가장 먼저 네덜란드 대표"
"예. 폐하!"
"용건은?"
"먼저 네덜란드를 대표하여 미국이 이룬 눈부신 발전을 축하드리는 바입니다."
네덜란드 대표 사신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미국을 추켜세웠다. 네덜란드 대표를 포함한 대표단 대부분은 서울항에 입항한 뒤, 기차를 타고 황도까지 이동했는데 그 과정에서 눈부시게 발전한 미국의 모습을 모두 목격할 수 있었다.
'충격적인 모습이구나...'
그들은 높게 솟은 건물들과 빠르게 달리는 기차, 끝없이 펼쳐진 농경지와 매연을 뿜어내는 공장등 미국의 어마어마한 국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고맙다. 자네 내가 왜 네덜란드에게 가장 먼저 기회를 줬는지 아는가?"
"아무래도 폐하의 명에 따라 미국 대륙에서 물러났기 때문 아닐까 생각됩니다"
네덜란드는 미국-스페인 전쟁이 시작 될 때, 남미에 있던 자신들의 거점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미국에 넘겼었다.
현대 세계에서는 수리남이라고 불리우는 네덜란드령 그 땅은 지금 미국령 쿠스카의 일부가 되어있었다.
"그것도 있지. 하지만 그것 말고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소신이 거기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알려주시면 경청하겠습니다"
"미국의 처음 시작이 너희들이 세운 뉴암스테르담에서부터였다."
"아...."
네덜란드 사신도 미국이 개척촌을 규합하면서 성장한 나라이고 그 시작이 뉴암스테르담인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보면 개척촌의 독립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정확하게 말해 건흥이 네덜란드령을 침략한 일이었는데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꺼내는 것에 조금 당황했지만 그는 표정을 관리하며 말을 이었다.
"미국의 뿌리에 네덜란드가 함께 했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본국의 총독이신 빌럼 3세께서도 네덜란드와 미국이 아주 오래 전부터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 온 나라이니 황제께서 우리의 의견을 잘 들어 주실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야지 열린 마음으로 들어 볼 것이니 말해보거라"
"네덜란드가 미국에 건의하고 싶은 것은 시장 개방입니다. 네덜란드도 잉글랜드와 마찬가지로 미국과 통상하고 싶습니다"
"어렵지 않지. 잉글랜드와 동일한 조건으로 시장을 개방해 주겠다"
"아.... 가..감사합니다"
네덜란드 사신은 단번에 시장을 개방해 주겠다는 건흥의 말에 조금 당황했다.
스페인과 전쟁을 해 식민지를 다 빼앗은 것으로 모자라 강한 스페인의 해군까지 괴멸 시킨 미국이라면 분명 외교에서도 고압적인 자세로 안건 하나하나마다 조건을 달 것이라 생각했었다.
"또 원하는 것이 있느냐?"
"미국에 유학생을 파견하고 싶습니다. 서울에서 목격했던 미국의 우수한 기술을 배워 갈 수 있게 해주시면 네덜란드 모든 국민들이 황제 폐하의 은혜에 감사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 유학생의 규모와 분야는 이후 실무자들과 협의 하도록"
"아!.. 감...감사합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시원시원하게 요구를 들어주는 건흥의 모습에 네덜란드 대표를 비롯한 각국의 대표들은 굳었던 얼굴이 펴졌다.
'황제가 소문과는 다르게 아주 관대하구나!'
각국의 대표들은 이제껏 국제 무대에서 건흥이 일 처리 하는 방식을 듣고 왔기에 다들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그저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고 동의하지 않으면 전쟁으로 해결을 했던 건흥이었기에 외교적으로 일방적인 스타일이라도 소문이 나 있었다.
"네덜란드에게는 선물을 하나 더 주도록 하지. 교역 불가 물품으로 지정된 군수품을 구입 할 수 있도록 허가하겠다. 이 부분도 추후에 실무자와 협의 하도록"
"아...아! 가..감사합니다"
건흥은 네덜란드에게는 뇌우와 뇌격까지 판매 허가를 해줄 생각이었다.
그것은 옛날 암스테르담에서 총기 기술자들을 섭외(?) 해온 것에 대한 보답이었다. 지금의 뇌우와 뇌격이 탄생한 원천은 네덜란드 기술자들이었기에 이 정도 선물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렇습니다 폐하.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러면 나가서 실무진과 세부 사항을 협의하도록. 아 그리고 잉글랜드와 동일한 조건으로 시장을 개방해 준다고 했지만 특별히 네덜란드를 위한 선물 하나 더 주도록 하지. 너희들은 5% 수준의 최저 관세를 적용 시켜주겠다."
"아! 그러면 상호간에 5%의 관세를..."
"아니. 너희는 우리에게 15% 받아. 우리가 5%만 받겠다는 거다."
"감사합니다 폐하!"
네덜란드 대표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믿을 수 없는 조건에 혹시 황제가 장난을 치고 있나 싶기도 했지만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다.
"이제 진짜 나가봐라"
"예 폐하!"
건흥의 말이 끝나자 접견실 한쪽에 대기하고 있던 미국측 실무자들이 네덜란드 대표들을 마중 나왔다.
'네덜란드는 잉글랜드와 프랑스 훗날 프로이센까지 모두 견제할 수 있는 좋은 카드지'
건흥이 네덜란드에게 특약을 준 것은 유럽의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좁은 국토로 인해 필수적으로 해외로 진출해야 하는 네덜란드는 잉글랜드와 부딪힐 수 밖에 없었다.
실제 역사에서는 네덜란드가 분전하긴 했지만 훗날 대영제국이 되는 잉글랜드의 힘에 밀려 많은 부분을 양보했던 역사가 있었다.
건흥은 잉글랜드가 제 역할을 하는 것은 좋지만 대영제국이 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기에 네덜란드라는 훌륭한 제동 장치를 걸어두려는 생각이었다.
"다음은 프랑스"
"예 폐하!"
네덜란드가 나가고 두번째로 호명된 프랑스 대표는 얼굴에 웃음 꽃이 활짝 피었다.
'먼저 불릴 수록 좋은 것이다!'
가장 먼저 불려간 네덜란드가 황제에게 믿을 수 없는 특약을 받고 거의 날아가듯이 접견실을 빠져 나간 것을 본 프랑스 대표는 두 번째로 조국의 이름이 불린 것에 매우 기뻤다.
"폐하. 프랑스도 네덜란드처럼 폐하의 땅이신 이 미대륙에서 모두 철수했습니다"
"알고 있다. 그래서 너를 두번째로 부른 것이다"
프랑스도 처음에 망설이긴 했었지만 결국 남미의 식민지를 모두 미국에게 넘기고 신대륙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저희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퀘벡에 대하여 그 어떤 보상이나 권리를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것 역시 알고 있다"
프랑스가 양보한 것은 남미 뿐만이 아니라 무단으로 침공해 자신들의 개척지인 퀘벡을 점령한 미국에 대하여도 일정 배상이나 권리를 요구하지 않았다.
물론 프랑스가 처음부터 미국에 대해 유화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아니었다.
신대륙에서 미국이 거듭 자신들에게 무력행사를 하자 스페인과 연합하여 미국에 대항하려 했었다.
하지만 미국에 대한 여러가지 첩보에 루이14세는 결국 마음을 바꿔 스페인과 자존심을 버리고 신대륙에서 완전히 손을 떼었다.
아무래도 잉글랜드와 손을 잡은 미국이 스페인과 손을 잡은 자신들보다 훨씬 강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빨 빠진 호랑이인 스페인을 믿고 가기엔 프랑스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았다.
더군다나 루이14세에게 가장 급한 문제는 30년 전쟁 이후 획득한 알자스-로렌지방과 신성로마제국의 라인강 유역의 안정화와 완전한 프랑스 편입이었다.
"해서... 저희도 네덜란드와 같은 조건의 통상을 원합니다"
"시장은 개방해 주지. 하지만 관세는 잉글랜드 수준에 만족해라"
"폐하... 저희도 네덜란드와 마찬가지로 퀘벡과 남미의 개척지를..."
"그건 잉글랜드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개척지와 바하마등 미대륙의 많은 땅을 내놓았다"
"하오나 잉글랜드는 금전적으로 그 보상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가장 먼저 우리와 교섭했기에 그런 특전을 받을 수 있었던 것. 늬들은 스페인과 우리 사이에서 눈치를 보다가 이제야 나를 만나러 온 것 아니냐?"
"그...그건"
"더 말할 것 없다. 조건은 거기까지 더 원하는 것이 있는가?"
"관세 조정이 어렵다면... 저희도 군수품을 구입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불가"
군수품을 구입하고 싶어하는 프랑스 대표의 말을 건흥은 단칼에 거절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프랑스는 너무 커지면 안되는 나라였다.
지금 유럽에서 가장 중앙 집권이 잘되어있고 프랑스가 가진 국토 자체의 생산량도 매우 뛰어났다. 스페인이 무너진 지금, 유럽에서 가장 국력이 강한 나라는 프랑스였는데 미국이 프랑스를 견제하면 견제했지 굳이 도와줄 이유는 없었다.
"허면... 저희도 미국의 우수한 기술을 배울 수 있게...."
"그건 좋다. 유학생 문제는 실무진과 협의 하도록. 그럼 이제 나가 보거라"
"예 폐하."
첫 번째 순서의 네덜란드와 다르게 두 번째 순서인 프랑스 대표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실무진과 함께 접견실을 나갔다.
어쩌면 다른 나라의 협의 과정을 보지 못하고 각각 협의 했다면 통상 협의에 성공한 프랑스 대표의 표정을 훨씬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상대적인 것. 눈 앞에서 네덜란드가 엄청난 특약을 받아 가는 것을 다 지켜본 프랑스 대표였기에 자신의 소득이 초라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프랑스에 이어 스웨덴, 베네치아등과 협의했다.
그들은 프랑스나 잉글랜드보다 더 높은 수준의 관세로 통상이 허용되었고 유학생 파견은 수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은 포르투갈이었다.
"폐하. 안녕하십니까 저는 아폰수 6세 국왕전하의 명을 받아 미국으로 오게 되어..."
"아직 미국 대륙에서 식민 사업을 하고 있더군"
"아... 브라질은 정당한 포르투갈의 영역입니다. 신대륙은 넓고 광활합니다. 미국과 우리는 각자의 영역에서 신대륙을...."
"미국 대륙은 나의 것이다. 그 누구와도 나눠 가질 생각이 없다"
"......"
포르투갈 대표가 제대로 된 용건을 꺼내기도 전에 건흥은 그의 말을 모두 끊고 브라질을 언급했다.
현재 유일하게 미국 대륙에 남아있는 유럽 세력이 브라질의 포르투갈이었다.
포르투갈은 미국의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 브라질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브라질을 합병하려 했던 건흥은 그들에게 마지막 기회도 줄 겸 포르투갈 대표에게 말했다.
"포르투갈이 우리와 교역하고 싶다면, 브라질을 먼저 내 놓아야 할 것이다"
"브라질은 교섭에 대상이 아닙니다 폐하. 정당한 포르투갈의 영토입니다"
"지금 그 말은 포르투갈 국왕의 의견인 것이냐?"
"그렇습니다"
포르투갈 대표는 서울로 오기 전, 미국과 교역을 추진하되 절대로 브라질을 협상 테이블에 올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받고 왔었다.
포르투갈 왕실은 힘들게 개척하여 이제 서야 돈이 되는 브라질을 절대로 넘겨줄 생각이 없었다.
사실 포르투갈 대표가 받은 임무는 교섭의 성공이라기 보다 미국이란 나라를 정찰하는 것이 더 컸다. 서울에서 황도까지 오는 길에 충분히 정찰한 그는 오늘의 이 교섭이 조국의 심대한 위기임을 직감했다.
"잘 알았다. 그만 나가라"
건흥의 명령에 포르투갈 대표는 어깨가 축 쳐져서 접견실을 나섰다.
마음 같아서는 브라질을 떼어 주고 평화적인 협상을 진행하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자신에게 그럴 권한이 없었다.
그가 나가자 건흥은 비서실장 윤호선을 손가락으로 불렀다.
"말씀하십시오"
"덕만에게 브라질 원정을 준비하라고 일러라"
"예 알겠습니다. 폐하"
망설일 필요는 전혀 없었다. 바로 옆나라 스페인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포르투갈은 이제 그 대가를 치뤄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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