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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가린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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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용가린
작품등록일 :
2023.10.13 20:53
최근연재일 :
2024.05.31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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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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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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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살수왕 조도일

.




DUMMY

“조 대협이 사용하는 무기가 뭐라고 하던가요?”

우유국의 초입에 들자 길태곤이 탁 왕자를 향해 물었다. 문득 궁금해진 것이다.


“듣기로 언월도를 주로 사용했다 하오. 물론 살수왕으로 불렸던 만큼 온갖 무기들을 사용했으니 그 종류를 다 아는 사람이 없다 들었소. 다만, 언월도는 그가 상대에게 보여주며 싸우는 유일한 무기였고, 대륙의 강호인들에게 깊이 인식될만한 큰 활약에 기인한 큰 훈장같은 사건으로 인해 각인된 것이라 들었소.”

탁 왕자는 흠차대신에게 전달된 전문의 무척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조선의 전래 검술을 취합하여 완성했던 그가 보다 발전된 무공 연마를 위해 중국대륙의 강호로 진출하여 악인만을 처단한다는 명분을 세운 후 실력있는 살수로 활약한 시절의 얘기로 전해오는 일화 중에 조 대현의 언월도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알려주는 사건이라 할 것이오.”

탁 왕자의 언변은 듣는 사람을 납득시키는 음색으로 인해 더욱 신뢰를 주었다. 깅태곤에 이어 진혁도 귀를 쫑긋 세우며 다음 얘기를 기다렸다.


“제나라 왕실을 등에 업은 노회한 탐관오리로 인해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한 어느 충신 가문의 유족이 피 맺힌 원한을 갚아달라며 청부하자 그 사연의 진실을 수소문해 억울함을 확인한 조 대협이 이를 무상으로 처리해 주겠다고 승낙한 뒤, 때를 보아 저자거리의 사거리에서 행패를 부리던 그 간신을 공개적으로 쳐 죽일 때 일어난 상황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 대협이 간신의 잘못을 훈계하자 뒤에 있던 호위 장수가 타고 있던 전투마로 위협하며 달려들었다 하오. 그때 그 달려드는 육중한 말과 함께 장수또한 언월도 단 한 칼에 두 동강으로 베였다하오 ... 길 대협, 지금 강호에서 그 정동의 위협적인 칼질을 할 수 있는 고수가 있소이까?”

탁 왕자가 길태곤에게 물었다.


“아마도? ... 힘과 기술은 둘째 치고 일반적인 언월도는 그 길이가 그리 길지 않아서 말을 탄 무사를 말과 함께 베는 것은 조금 어려울 듯 합니다만 ...”

길태곤이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 아무튼, 그때의 얘기가 대륙 전역으로 퍼져나가면서 조 대협은 세인들에게 언월도의 달인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하오.”

탁 왕자가 길태곤의 물음에 전해들은 얘기를 복기하며 대답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볼 터이니 사전에 서로를 조금이라도 더 아는 것은 중요한 요소라 생각한 탓이었다.

“아! 아! ... 조 대협의 언월도가 특이하다는 말을 들었소, 팔십여 근에 달할 정도로 무거운 조 대협의 언월도는 평소 다른 도검류에 비해서도 길이가 짧았다고 했소. 키가 작은 조 대협이 특별 주문 제작한 것이라 하오. 엄청나게 압축된 철제를 제련하여 만들었기에 그 강도는 가히 천하무적의 병기에 버금가는 것이라 했다 하오. 또한, 필요에 따라서는 길이도 크게 늘어났는데 아마 그 전투마를 탄 장수를 벨 때 그 위력을 보여준 것이란 소문도 있다하오.”


“흠, 역시나 전대의 고수다 보니 약간의 과장이 섞인 얘기들도 많은 것 아닐까요?”

진혁이 의심스런 표정으로 대화 내용을 전환하려고 했다.

“지금의 조 대협에게서 옛날의 모습을 찾기 힘들뿐더러, 자취를 감추고 살고 있을 것인데 어디서 부터 시작하여 찿을 지를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

진혁이 현실적인 얘기를 하며 마을 입구를 가리켰다. 어느새 인가가 조금씩 시야로 들어오고 있었다. 우유국에 진입한 것이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조 대협이 말 대신 과하마를 타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다 하오,동예국 출신인 조 대협은 동예의 특산물인 과하마를 타고 유유자적하게 일상을 보내며 강호 은퇴자의 생활을 보낸다고 들었소.... 아! 하나 더! ...마을에서는 나름 실력있는 목공기술자로 알려져 있다 했소.”

탁 왕자가 외워 온 정보들을 복기하며 말을 이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고수들에 대한 탐문 정보는 모두 외운 뒤 소각했기에 철저하게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에 자칫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위해 탁 왕자는 머리를 짜내는 중이었다.


“목공일을 하는 조 대협을 찾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많이 붐비고 생활하는 곳을 찾아 가구나 가재도구를 제작하거나 수리하는 일이 많은 곳을 찾는 것이 우선일 듯하군요? 수요가 많은 곳이 탐문에 있어 불문가지의 추정 장소일테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진혁이 대충 먼저 찾아 둘러볼 곳을 좁히자는 듯 말했다.


“마침 시장기도 돌고 있으니 가까운 주루에서 요기를 하면서 탐색하기로 합시다.”

탁 왕자가 배고픈 듯 아랫배를 잡고 웃으며 말했다.

마침 눈앞에 그리 크지않지만 저자거리 입구 쪽에 있는 허름한 주루가 보였다. 일행이 안으로 들어서자 밖에서 보던 것과 달리 깨끗하고 넓어 보이는 실내가 보였다. 게다가 제법 많은 탁자임에는 삼삼오오 모인 손님들이 쑥덕거리면서 술과 안주를 먹거나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손님이 많이 없을 것이라 편히 생각하며 들어온 탁 왕자가 황급히 구석진 곳의 빈 탁자를 찾아 재빨리 자리를 잡았다. 길태곤은 신경을 곤두세워 주변인을 경계하며 뒤를 따랐다. 여락루에서 시작해 갈태기 장군의 수하들까지 보이지 않게 숨통을 노리는 적들이 있음을 의식한 이후로는 인파가 있는 곳에서는 지극히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습관이 어느덧 몸에 익은 탓이었다. 천장을 살피듯 하며 각 탁자의 손님들을 살핀 길태곤이 위험한 정황이 없자 고개를 끄덕이며 탁자를 똑똑 두드리며 웃었다.


“네, 부르셨어요?”

주근깨가 두드러질 정도로 깊이 박힌 점소이가 쪼르르 달려와서 음식 주문을 받을 자세를 취했다. 앳되보였으나 이미 오랫동안 주루에서 접대일을 한 듯 손님의 응대에 이골이 난 듯 여유가 있었다. 살살거리며 주문을 기다리는 눈매와 손님의 행색을 살피는 폼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이곳 별미가 소고기볶음 반찬이라고 하던데 ... 그 반찬을 포함한 식사와 술 두 병.”

진혁이 대충 주변을 둘러보고는 빠르게 주문했다. 한눈에도 외지 손님으로 보였기에 무언가 물어볼 줄 알았는데 기대와 달리 부수입이 기대되지 않는 손님이란 판단이 들었는지 호감을 접은 점소이가 머리를 조아려 인사하고는 급히 주방으로 돌아섰다.


“여전히 우리들을 신경쓰는 시선은 없는 것 같습니다. 마음을 편히 하십시오.”

길태곤이 전음으로 말하듯 조용히 말했다.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점소이가 음식들을 차례로 들고 나와서 상을 차렸다. 상차림을 마무리한 점소이가 막 뒤돌아설 때였다.


“짤랑! 땡그르르!”

몸을 돌리던 점소이가 진혁의 품에서 나온 동전 한 냥이 탁자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자마자 반색하며 돌아섰다. 이윽고 바닥으로 떨어기 직전의 동전을 재빨리 낚아채며 이내 헤헤거리면서 말했다.

“무엇이 궁금하신지요?”

이런 상황이 무척이나 익숙한 듯 점소이는 차분히 서서 무엇이든 물어보라는 표정을 지었다.


당초, 자신의 촉이 틀렸다고 생각했던 어린 점소이였기에 틀린 것이 아니란 확신이 들자 기분이 좋아진 것이었다.

“이 아저씨가 볼 때 이곳 주루의 식탁이며 의자의 품질이 무척이나 고급지구나, 해서 이것들을 누가 만들었는지 알고 싶어서 네게 물어보는 거란다. 혹시 그 기술자가 누군지 알려줄 수 있겠니?”

진혁은 점소이가 조도일의 이름을 말해주길 바라며 에둘러 물어보았다.


에상치 못한 뜬금없는 질문에 점소이가 곰곰이 생각하다 대답했다.

“제가 이곳에서 제법 일을 했지만 누가 만든 것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전 이곳이 완공된 후부터 일했으니까요. 다만, 말씀드릴수 있는 건 얼마 전 손님으로 왓다 시비가 붙은 무사들 간에 칼부림이 난 적 있었어요. 그때 많은 기물들이 파손되었는데 그분이 오셔서 새로 만들었거나 보수를 해 주신 적이 있기는 합니다.””


“그래? ... 어떤 분이지? 혹, 이름은 아느냐?”

동전 한 냥의 가치에 걸맞는 답변을 위해 골똘한 표정까지 지은 점소이의 대답에 진혁이 머리를 끄덕이며 편한 눈빛을 점소이에게 보냈다. 이럴 땐 차분히 기다리며 재촉하지 않는 게 점소이를 도와주는 것이었다.


“그 할아바지 말씀이세요? 과하마를 타고 다니셔서 이 마을 사람들은 다 알걸요. 우리 주루에서 일하실 때 작은 체격에 나이 드신 분이 고생하시는 것 같아 제가 물도 가져다 드렸어요. 제가 볼 땐 힘든 일 하시기에는 제법 연로하신 분이셨어요.”

“그래? 나이 드신 분은 챙겨드려야지, 참 잘했네, 후후후!”

진혁이 웃으며 대답했다. 두 사람도 소리없이 웃었다. 그들이 들은 조도일의 공력을 생각하면 결코 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 것일 터였다.

“하긴, 그만큼 강호인의 때를 벗어버린 지 오래되어 그리 보일 수도 있을테지만 ...”

맞은편 탁자에 앉은 탁 왕자가 혼잣말로 조용히 중얼거렸으나 곧 허공으로 사라졌다.


“혹시, 그분이 어디에 사시는지 아느냐?”

“사시는 곳은 잘 모릅니다만 ... 아참!”

진혁의 질문에 즉각 대답하지 못하던 점소이가 다른 답을 찾은 듯 다시 말을 이었다.

“여기서 나가셔서 왼쪽 편으로 계속 가시다보면 맛있는 교자가게가 나옵니다. 그 가게 주인 할머니랑 부부라고 알고 있어요. 제가 아는건 그 정도입니다.... 혹, 더 물어보실 게 없으신지요? 없다면 저는 여기서 이만...”

탁자 앞에서 잠시 머뭇거린 점소이는 진혁이 탁자에 놓아둔 동전 한 냥까지 조심스레 마저 집어 들고서 정중히 인사하며 뒤돌아섰다. 그 정도면 동전 두 냥의 가치에 상당하는 정보를 제공했다고 판단한 것인지 돌아서는 얼굴 표정에 한가득 웃음이 머물러 있었다.


잠시 후, 탁 왕자 일행이 식사를 마치고 주루 밖으로 나왔을 때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를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가을의 끝자락으로 향하는 계절인 데다 초저녁쯤이어서 바람과 함께 흩날리는 빗방울들이 스산했다. 오가는 행인들의 발걸음도 한산해서 괜스레 을씨년스러운 풍경이었다.


‘일단, 왼편으로 가십시다.“

탁 왕자가 앞장서서 발걸음을 옮겼다. 점소이가 말한 교자 가게가 금방 눈에 띄었다. 규모는 작았지만 깨끗해 보이는 가게 앞에 교자를 담아 내놓은 진열 그릇들이 형형색색으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게 앞쪽에 나이가 많은 듯 아닌 듯한 부인이 작은 접의자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분이 무슨 재미있는 대화를 나누시는 듯하군요,“

죽립으로 얼굴을 가린 탁 왕자가 빠른 걸음으로 스치듯 지나며 조용히 말했다. 언 듯 보이는 가게 안쪽에 조도일로 보이는 사내가 열심히 교자를 빗으며 바깥에 있는 부인과 즐겁게 대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화목한 모습이군요,“

진혁이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평범한 교자 가게였고 눈앞에 보이는 부부의 모습은 저자거리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인상들이었다.


“왕자님, 제법 멀리 지나온 것 같습니다만 ...”

두 번째로 교자 가게를 지나 골똘히 앞으로 나가갔을 때 길태곤이 차분히 말했다. 그도 왕자가 생각을 다듬고 있다고 느꼈지만 거리가 멀어지자 말을 꺼낸 것이다.

“조금만 더 걸으면서 생각해보십시다.”

탁왕자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런저런 상념으로 인해 고민한 탓인지 목소리가 잠겨있었다. 조도일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자 부담감이 밀려온 것이다.


‘정말 평범하기 그지없지 않은가...’

흠차대신에게 전해 들은 정보를 세세히 복기하던 탁 왕자의 표정이 자못 당황스러운 지경이 되었다. 아무리 세월이 지났다고 하더라도 조도일의 외양은 탁 왕자가 생각한 한계치를 벗어난 전형적인 장사치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에게서 티끌만한 강호인의 모습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얼핏 스치며 보았을 때는 약간의 실망스러움만 있었소, 그런데 ... 두 번째로 살피며 보았을 땐 정보가 잘못되었다는 확신이 들었소, 어찌 생각들 하시오?”

탁 왕자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회의적인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 본 것만 가지고 판단한다면 저도 충분히 감안해 볼만한 상황이 아닐까 합니다.아무리 그래도 전설적 고수의 반열에 올랐던 절정고수였다면 오래전에 강호를 떠났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기운은 느껴져야 할 것인데 지금 눈앞의 장년인에게서는 기운은 고사하고 약해 보이기만 한 평범한 장사치의 모습, 그 자체이니 말입니다.”

진혁이 탁 왕자와 같은 생각을 했던지 적극 동의하며 대답했다.

“어쩌면... 저분이 조 대협이 아니거나, 설사 맞다 하더라도 심하게 과장된 정보일 수있다는 생각이 언 듯 드는군요.”

진혁은 아예 조도일에 대한 정보의 정확도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두 분의 고민과는 별개로 제가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조 대협은 어느 한 시대에 천하를 호령했던 풍운아였습니다. 그저 일천한 무사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진면목을 숨기고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해서, 당장 눈앞의 보이는 모습에 연연하시지 말고 한번 만나보셨으면 합니다. 현재의 외모만으로 평가해서 실망하여 만나보지도 않고 돌아선다면 자칫 두고두고 후회할 큰 실수를 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저 모습이 위장이라면 말입니다.”

길태곤이 모든 문제의 해결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직접 만나봐야만 해결할 수 있다고 강권했다.


“그래!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미심쩍은 부분이 많이 보여도 반드시 확인해봐야 할 터더구나, 조 대협은 다른 어느 고수보다도 먼 길을 돌아 만난 것이니 만큼 마주보고 얘기라도 나누어 봐서 그때도 아니란 확신이 들면, 그냥 비로소 돌아서도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소이다.”

탁 왕자가 내심 결심을 굳힌 듯 입술을 깨물며 주먹을 쥐었다.


‘내 마음이 잠시 흔들렸던 건 이 혼란스런 날씨 탓일거야, 암!’

무겁게 내려앉은 부담감을 가볍게 하기 위해 탁 왕자는 멀리 하늘을 바라보며 어지러이 흩날리는 비바람을 탓하는 것으로 생각을 편히 가지고자 했다.

`이 문제는 오로지 나만 할 수 있어! 다른 누군가가 결코 해결해 줄 수 없는 일이지,“

탁 왕자는 내심 조도일로 추정되는 장년인을 만날 결의를 꾹꾹 다지고 있었다.


탁 왕자는 씩씩하게 뒤돌아선 후 눈을 한번 강하게 감았다 뜬 다음 씩씩하게 교자 가게로 향했다. 진혁과 길태곤은 그 곳에 있는 소나무 밑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어디든 뭉쳐서 다니는 것은 위험했다. 좁은 교자 가게 안은 더욱 그러했다.


탁 왕자는 조도일의 부인에게 인사를 한 후 양해를 얻어 가게 안에서 조도일과 독대했다. 좁은 교자 가게 안에 두 사람이 겨우 마주 볼 정도의 비좁은 공간이 검은 가림막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 ... ... “

그렇게나 굳게 다짐하며 마주 앉았지만 막상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가 망설여지는 탁 왕자였다. 혹여나 지금 눈앞에 앉은 나이 든 범부에 대한 정보가 잘못된 것이라면 자칫 이들 부부가 왕자를 노리는 적들에 의해 심각한 위험이 닥칠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왕자 일행의 방문 사유를 알아내려 고문을 포함하여 가할 수 있는 최대한의 해악질을 벌일 게 분명했다.


`만약, 조 대협이 아니라면? ... 이 화목한 가정은 일순간에 무너질 게고, 1하아!`

탁 왕자가 머리를 좌우로 세게 흔들었다.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는 심각한 이유였다.


“왜 왕자님같이 고귀하신 분이 이 먼 촌 지역까지 와서 저같이 평범한 늙은 나부랭이를 보자고 하시는 것입니까?”

탁 왕자가 신분을 밝히고도 계속 말없이 허공에 시선을 응시하고만 있자 답답했는지 마주앉아 있던 조도일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것, 그럴 리는 없겠지만 ... 정보의 내용이라도 확인해보자 ...`

바로 눈앞에 마주 앉은 중늙은이가 전대의 살수왕 조도일은 결코 아닐 것이라 확신한 탁 왕자는 그래도 속는 셈 치고 그가 알아 온 정보들을 차분하게 물었다. 그 질문은 조심스러웠고 신중했다. 그러나 잠시 후, 탁 왕자는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탁자 뒤로 벌렁 나자빠지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 헉! .... 지금까지 하신 말씀, 그게 진정 다 사실입니까?”

예상외로 조도일은 탁 왕자의 질문에 담담하게 그렇다며 시인했다. 어떤 때는 그 질문의 내용을 보충했고, 어느 경우에는 틀린 것을 바로잡아 주기까지 한 것이다.


“하늘 위에 하늘 있고, 사람 위에 사람이 있다고 하더니 ... 진정 세상 너머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함을 실감할 판입니다.”

탁 왕자가 놀라워하며 경외의 눈빛으로 바라보자 조도일이 손사래를 쳤다.

“왕자님이 보시는 이 중늙은이 모습은 그저 세상과 어울리기 위한 겉치레의 거죽에 불과하지요. 어쨌거나 왕자님까지도 깜빡 속았으니 아직은 쓸만한 듯 합니다. 허허,”


“전설로 남은 전대의 살수왕이란 별호로도 모자란 느낌이 듭니다.”

탁 왕자는 진정한 본 모습을 숨긴 조도일의 무공에 대한 확신이 차올랐다. 해서, 그동안의 탐문 여행을 통해 동참하기로 한 아라방, 길태곤, 선우이치, 사마철을 찾아 다닌 것과 <천경보전>을 지키기 위해 동참을 결정한 것까지 자세히 설명했다.


“다만, 그들은 언제든 그 자리에서 툴툴 털고 일어나 저를 따라 먼 곳으로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만 ... 조 대협께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보다 보니 감히 저와 함께 대의에 동참해주십사 하는 부탁을 드리기가 망설여 지는군요. 흐음!”

탁 왕자가 바깥쪽에 시선을 두며 말했다. 그의 부인을 의식한 것이었다.


“왕자님, 제가 출신도 비천하고 많이 배우지도 못해 대의나 명분도 잘 모르지만, 젊은 날 넓은 세상을 주유하면서 많이 보고 듣고 경험했기에 세상의 이치는 조금 압니다. ...... 무릇, 나라가 굳건해야 백성이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믿기에 왕자님 말씀의 진정성을 믿어 볼까 합니다.”

긴 침묵 후에 입을 연 조도일은 탁 왕자의 물음에 담백하게 그의 결심을 내비췄다.


“...... 왕자님과 뜻을 함께 하지요. 저기 저 사람은 요즘 장사에 재미를 붙여 저를 뒷방 늙은이 취급한지 제법 되었습니다. 다행히 말년에 운이 좋아 얻은 외동 아들도 올해 초 넓은 세상에서 뜻을 펼치고자 제나라로 유학을 간 지라 부양의무가 없어졌다 할 것입니다. 다만, 왕자님과의 동행은 목숨을 담보해야 하는 것을 알기에 혹시나 하여 이틀 정도는 주변을 정리해야 할 듯 합니다. 흠! ... 처자식 생각하는 마음은 어느 사내나 똑같겠지만 그래도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이기에 적어도 양해는 구해야 할 것 같군요. 허허허,”

다시 한번 자신의 결심을 내비친 조도일의 얼굴에서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대협께서 내려주신 크나큰 결단에 경의를 표하며 향후 부인의 생계와 자제분의 출세는 삼한의 왕실 차원에서 최우선으로 고려할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탁 왕자는 <천경보전> 수호라는 대의를 위해 의기투합한 두 사람의 속내를 확인하는 순간 기쁜 마음으로 최선의 보답을 약속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순간이었다.


“평범한데다 완벽한 중늙은이의 모습으로 인해 꼬박 속았습니다. 과거 넓은 강호의 세계에서 냉혈한이라 소문났던 진정한 상남자의 면모는 눈을 몇 번이나 씻고 보아도 알수가 없군요. 과연 대단하십니다.”

긴장이 풀린 탁 왕자가 새삼 조도일의 변화에 놀란 당시 상황을 재차 언급했다.


“완벽한 변신이라? ...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다른 이들이들에겐,”

조도일은 탁 왕자의 질문에 별 다른 반응없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실상은 이런 변신조차 수련의 일종이라고 봐야지요. 강호에서 습득한 오랜 무공의 기운을 배출하지 않고 체내에 숨긴 상태로 매일같이 심신을 단련하면 그 정기가 축적되고 커지게 되지요. 해서 허약한 중늙은이의 모습으로 위장했던 것이지요. 강호의 경험에 비추어, 중늙은이의 모습이 강호인들의 의심에서 벗어나는 최적의 방안이더군요. 지금껏 어느 누구로 부터도 의심을 받은 적이 없으니 말입니다. 허허,”


“헉! 이럴수가 ... 이토록 고강한 고수일 줄이야 ...”

상대가 무공의 기운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정체를 감출 수 있는 경지란 그 상대보다 무공이 높아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있는 탁 왕자였기에 그 놀라움과 안도감은 무엇보다 큰 기쁨으로 돌아왔다.


“자! 그럼, 이만 장사를 접고 집으로 가셔서 식사하며 얘기를 이어가도록 하시지요.” 추가적인 용건이 없음을 감지한 조도일이 일어서며 말했다. 이틀간의 말미를 달라고 했으니 그도 제법 마음이 바쁜 듯했다.

“왕자님은 어서 나가셔서 같이 오신 일행들과 함께 제 집으로 가도록 하시지요.”

먼저 일어난 그가 바깥으로 가 얘기를 하자 눈 인사를 한 탁 왕자가 조심스레 교자가게를 빠져나와 기다리는 일행들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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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천하제일권 사마철을 만나다. 24.02.09 35 0 16쪽
18 드러나는 적들 24.02.01 43 0 25쪽
17 맹인 검객 선우이치 24.01.21 47 0 50쪽
16 삼한제일검 길태곤 24.01.05 54 0 45쪽
15 또 다시, 고수를 찾아서 23.12.22 52 0 15쪽
14 소도의 태동 23.12.14 5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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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사방천지로 퍼지는 소문 23.11.24 69 0 11쪽
8 삼한의 탄생 23.11.21 69 0 20쪽
7 위만, 진시황을 꿈꾸다. 23.11.16 72 0 12쪽
6 <천경보전> 23.11.14 78 0 14쪽
5 신선 이야기 23.11.10 80 0 9쪽
4 남부소국연맹 23.11.08 82 0 24쪽
3 뱃머리를 남으로 23.11.03 82 0 10쪽
2 회상 23.11.02 113 0 33쪽
1 악몽 +1 23.10.13 285 1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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