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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가린
작품등록일 :
2023.10.13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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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3 19: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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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38

작성
23.11.16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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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위만, 진시황을 꿈꾸다.

.




DUMMY

”저 나라는 마치 낙원같군 ... 다툼도 없고, 지긋지긋한 일상도 없으니 말일세“ 연나라 대장군 위만이 그의 부관을 바라보며 말을 붙였다.

”소장의 생각으로도 맘 편히 살 수 있는 곳 같아 보입니다... 이 곳 연나라에도 곧 한나라 왕실의 군사들이 들이닥칠 터이니 참으로 고단한 삶이긴 합니다.“

부관의 답변을 들은 위만은 다시 한번 눈을 크게 뜨고 동쪽 나라를 바라보았다.


”말로만 떠들어 대는 위정자의 눈치를 보는 것도 이젠 ... 정녕 지겹군, 후웃,“

위만이 현실에 진저리를 느끼며 머리를 저었다. 대륙의 혼란기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악착같이 전공을 세울 수밖에 없었기에 하층민 출신인 그는 극도의 생존본능에 따라 맹렬하게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 그가 이제 대륙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저곳, 조선에는 어쩌면 신선이 살 것 같지 않나? 너무 가고 싶은 이상향같군,“

부관을 보며 말은 했으나 답변을 구하는 말이 아님은 부관도 알고 있었다.

”저 나라에서 왕이 되어 살아보는 건 어떨까? ...가만, 왕이라? ... 그래!“

자문자답하던 위만이 혼자서 되뇌이다 무심코 터져 나온 본심에 깜짝 놀랐다. 숱한 싸움을 거친 그의 심연 깊은 곳에 새겨진 경험에 의하면 권력을 가지지 않으면 허상인 세상에서 유일하게 진짜 누리고 싶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왕이 되는 것뿐이라고 새겨져 있었던 것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었다.

`그래, 왕이 되자, 조선의 왕,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낙원의 땅으로 가자,”


그렇게 조선으로 들어와 서쪽 변경의 박사로 임명받아 조선인으로 살아오다 채 2년도 되지 않은 어느 가을 날, 부지런히 양성한 군사들로 조선 왕위를 찬탈한 위만은 마침내 꿈에 그리던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직위, 왕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런데 왕이 된 그에게 신선이 되는 방법이 있다는 구리달의 제안은 사람다운 삶 이상을 성취할 수 있다는 희망을 던진 것이었다. 한편으론, 안개처럼 아련했던 어린시절 꿈같은 얘기들의 잔재들이 뭉게뭉게 피어나 그의 의지를 자극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어린 시절을 진나라에서 보낸 위만은 만리장성 부역 작업에 차출된 부모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또래들과 떠돌아 다녔다. 그때 여러 소문을 들었는데 가장 지배적인 것이 진시황이 신선이 되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는 것이었다. 각박한 세월을 지나온 위만은 자신과는 딴 세상의 얘기라 치부했기에 곧 기억에서 사라진 얘기들이었다.


당시 불사불노초를 찾기 위해 서불을 다른 나라로 파견했다거나, 진시황 자신이 직접 신선을 만났다는 말을 신하들에게 했다는 내용들이 백성들에게 사실처럼 퍼져있었다. 절대 권력자인 황제가 신선의 존재를 확신하다 보니 백성들이 당연히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어린 위만도 부모로부터 소문이 풍문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암묵적으로 교육을 받았던 터였다.


그러나, 지극한 현실주의자였던 위만은 자신의 신분으로는 신선이 되기는 커녕 불사불로초 마저도 구경못할 초라한 처지임을 알았기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관심을 두는 것 자체가 현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것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었다. 모두가 치열하게 살 길을 모색하는 혼란한 시대였기에 장수들 간의 대화시에도 소재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고 여겨지면 용납받지 못하는 풍조였기 때문이었다. 살기 위해서라도 주의를 기울여야만 했기에 당대에 유행하던 불사약이나 신선설에 대해서는 남들과 대화할 수준의 정보는 있어야 했다. 자비없는 살벌한 사회 풍토가 만들어낸 매섭기 그지없던 시대였다.


“중대신! 왕명을 통해 준왕이 빼간 <천경보전>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라고 했거늘 왜 아직도 아무런 결과가 없는 것인가? ... 이유를 설명하라!”

위만이 중대신 구리달을 닦달하며 결과가 나지 않는 일의 진척에 대해 채근했다.

“내, 경에게 많은 인력을 지원하고, 때마다 적지 않은 금원을 풀었네, 또 남쪽에서 암약하는 간자들의 정보망까지도 중대신이 총괄하도록 해주기까지 했지 않은가!”


위만왕은 답답한 속을 금세 터뜨리기라도 할 듯 불같이 고함을 쳤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왜 아직껏 내 귓전으로 날 만족시킬 정보가 안 들어오는가? ... 이 큰 나라 조선에서 그것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단 말인가? 나는 그것이 화가 난단 말이야!”

"......“


“도대체가... 뭐라도 가져와서 내 눈앞에 보이란 말이야!... 왜 말로만... 실체도 없는 말만으로 말의 성찬을 쌓고, 말로 만리장성을 쌓느냔 말이야!”

"......"

겁에 질린 구리달이 계속 함구하자 분기탱천한 위만의 고함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무슨 말이든 해보란 말이다! 중대신!"

위만은 구리달에게 변명의 말이라도 듣고 싶었던지 즉시 대답을 요구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분골쇄신하여 최대한 빠른 시간내에 전하께서 원하시는 결과를 대령하겠나이다. 통촉해 주시옵소서!”

왕 앞에 바짝 엎드린 구리달이 굵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머리를 조아렸다.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왕이 원하는 결과물을 대령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일단은 이 순간을 무사히 헤치고 난 후에야 다음 일을 도모할 수 있음도 아는 구리달이었기에 납작 엎드린 것이다.

특유의 비굴한 표정을 지으며 최대한 온몸을 접고 계속하여 머리를 조아린 구리달은 왕의 비위를 맞추고 현재의 위기를 타개할 방법을 찾기 위해 온 정신을 가다듬었다.


아첨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가끔씩 입안의 달콤한 혀처럼 상황에 맞춰기분 좋은 웃음을 만들어주는 중대신 구리달에게 위만왕은 책임을 지워야 할 중대한 일은 억지로 맡기지 않았다. 말로써 존재의 가치를 만드는 능력이 있는 그에게 굳이 탁월한 업무처리 능력을 기대할 이유는 없었다. 일처리의 효율이 필요한 때에는 그에 적합한 신하에게 적절히 배분하면 되었다.


그것이 대륙에서 건너온 이방인이자 절대적 권력자인 위만이 신하들을 통제하고 신뢰를 얻는 방식이었다. 국정은 업무능력 위주로, 군신간의 소통은 눈치 빠르고 말을 잘 하는 신하를 통해 운영했는데 그것은 왕권의 확립에 꽤 유용하게 작용했다. 구리달은 후자에 속하는 대표적인 신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만이 업무능력의 미숙을 이유로 이렇게 크게 화를 내는 것은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구리달이 자청한 일이었다. 왕의 신임을 더 많이 얻기 위해 <천경보전> 얘기를 먼저 꺼낸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자신이 책임지고 가져오겠노라 맹세한 때문이었다.


위만이 구리달에게 힘을 실어준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적어도 신료들 안에서는 누구라도 말은 하지 않지만 <천경보전>을 되찾는 일에 대한 최종 책임자라는 공감이 폭넓게 형성되어 있었다. <천경보전> 관련 일의 결과에 대해서만은 온전히 혼자만의 책임일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천경보전>을 되찾아오는 일은 경의 전속 업무인 것을 모르는 신료들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일 터, 내년 가을 천신제 전에 진짜 청동함과 그 속에 들어있는 <천경보전>을 짐의 앞에 반드시 대령하라, 알겠는가!”

험악한 표정의 위만이 추상같이 지시를 내렸다.


“내, 두고 볼 것이야, <천경보전>을 내 앞에 대령해서 화려한 꽃길을 걸을 것인지, 아니면 빈손으로 험난한 가시밭길을 걷게될 지를 말일세,”

구리달이 거듭 머리를 조아리자 위만이 분기를 가라앉힌 음성으로 말했다. 왕의 기분이 조금 풀린 것을 느낀 구리달의 표정이 밝아졌다. 계산 빠르고 앞뒤 일의 관계를 잘 꿰는 구리달이 긍정적으로 마무리되는 단계임을 모를 리 없었다.


잠시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던 위만이 예의 냉정함을 되찾은 음성으로 담담하게 말을 꺼냈다.

“이렇게 화를 내고 있지만 ... 실상, 짐이 경에게 처음 <천경보전>에 대한 얘기를 꺼냈을 때 솔직히 믿지 않았었지, 살아있는 사람이 아무리 수련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신선이 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얘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흠.”

위만은 의외로 담담하게 자신의 얘기를 들려줬다.


“처음 경에게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천신제를 주관했던 직후라 심신이 피곤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도 있어 ... 그런데, 경이 언급한 이후 여러 가지 현실적인 여러 증좌들을 보고했기에 짐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던 것이 사실이야,”

윽박지르는 것 같기도, 달래는 것 같기도 한 밀당을 계속하는 위만의 속을 종잡을 수 없는 말에 구리달의 눈치도 흔들렸다.

어차피 왕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었고 일은 어차피 자신이 해야한다는 것을 아는 구리달의 속만 타들어 가는 와중에 왕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 어느 순간, 짐이 신선이 되는 꿈이 앞산에 휘황하게 떠 있는 무지개처럼 선명해지더군, 당장 확인되는 것도 있었지 ... 짐이 어렸을 때 들었던 얘기중에 진시황이 불사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보낸 서불이 찾았던 곳이 대륙의 동쪽에 있는 은둔의 나라에 있는 삼신산이라고 알려져 있었지. 지금 생각해보니 그 나라는 이곳 조선이었지. 당장 이곳에는 삼신산 몇 개가 실제로 존재하고 있고 말이야, 그렇지 않나?”

냉정한 위만은 그가 그저 구리달의 달콤한 혓바닥에 놀아나지 않다는 것을 증빙가능한 사실로써 반증해 주었다. 구리달의 표정을 슬쩍 훔쳐 본 위만이 말을 이었다.

“여러가지 검증 가능한 자료들로 볼 때, 시간이 흐를수록 경이 얘기한 <천경보전>이 확실히 신선으로 가는 비급이라는 것에 대한 확신이 커지고 있어, 그 말인 즉은 ...짐이 신선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는 것이지,”

위만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원하는 것을 빨리 구하지 못한 아쉬움의 발로였다.


“짐은 이미 삼신산으로 불리는 모든 산들을 샅샅이 뒤져서 불사불로초를 구해오라고 명을 내린 것을 경도 알것이고 ... 짐의 식탁에는 그 곳에서 채취된 온갖 약초들이 다양하게 요리되어 매일 제공되고 있음도 또한 알 터이니,”


위만이 눈에 힘을 주어 구리달을 노려보며 말했다.

“<천경보전>을 당장 보고 싶다면 억지겠지만 짐이 경에게 준 기한내에는 대령해야 할 것이야 ... 그때까지 성과가 없다면 경의 말발과 그럴싸한 설명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알게 해줄 것이야,”

구리달은 갈팡질팡하는 위만의 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며 고개만 떨구고 있었다.


“경의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땐 금방이라도 <천경보전>이 짐의 앞에 대령될 줄 알았지,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손에 잡히는게 없단 말이야 ... 짐의 손에 아직까지 아무것도 쥐어져 있지 않는게 경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가? 불사불로초든 <천경보전>이든, 보이는 실물이 아무것도 없단 말이세, 그게 문제일세,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위만의 표정이 차갑게 돌변했다. 냉혈한을 떠올리게 하는 그 표정은 신하들의 죄를 논할 때 나타나는 표정이었다.


“약속한 기한내에 <천경보전>을 내 손에 쥐여주지 못한다면 용서치 않으리라. 특히, 그 요망한 입꼬리로 두 번 다시는 헛소리를 지껄이지 못하게 할 것이니 그리 알라!”

서슬 퍼런 왕의 일침이 떨어졌다. 구리달은 사색이 되어 알겠사옵니다만을 거듭 읊조렸는데 마음은 벌써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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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또 다시, 고수를 찾아서 23.12.22 49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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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고수 탐문 23.12.05 61 0 14쪽
10 소문에 대처하다 23.11.28 67 0 13쪽
9 사방천지로 퍼지는 소문 23.11.24 66 0 11쪽
8 삼한의 탄생 23.11.21 66 0 20쪽
» 위만, 진시황을 꿈꾸다. 23.11.16 70 0 12쪽
6 <천경보전> 23.11.14 74 0 14쪽
5 신선 이야기 23.11.10 77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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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뱃머리를 남으로 23.11.03 78 0 10쪽
2 회상 23.11.02 110 0 33쪽
1 악몽 +1 23.10.13 265 1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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