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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가린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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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용가린
작품등록일 :
2023.10.13 20:53
최근연재일 :
2024.05.1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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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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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1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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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삼한의 탄생

.




DUMMY

위만이 조선의 왕으로서 입지를 굳힐 때, 남부소국연맹의 맹주인 월지국 신지 준도 탁월한 영도력을 기반으로 군왕의 위엄을 세우고 있었다. 큰 나라 조선의 왕이었던 그의 경험이 녹아든 세련된 통치력에 백성들은 환호하고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연맹의 체계가 일원화된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큰 부분엔 하나였으나 작은 부분에 있어서는 독자적인 체계였으나 그 경계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국방이나 대외교역 등은 큰 부분이었고, 먹고사는 일들은 작은 부분으로 지켜져왔으나 그 경계를 맹주국의 신지인 준이 무너뜨린 것이었다.


준은 그것을 통해 실질적인 군왕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했다. 준의 탁월한 통치력은 연맹국 모든 나라들은 월지국을 중심으로 일치된 하나의 나라, 한 갈래의 백성이라는 인식을 가지는 계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게 준은 빠르게 연맹국들의 왕이 되고 있었다. 더 이상 맹주국 월지국의 신지에만 머무를 이유도 없어 보였다.


그렇게 연맹국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며 입지를 굳힌 지 오 년 여의 세월이 흐른 늦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아니, 벌써 낙엽이 지나 ... 곧 겨울이 다가오겠군. 풋 ...`

겨울을 재촉하는 바람이 스산하게 불어와 후원에 앉아 차를 마시던 준의 어깨에 낙엽 하나가 떨어졌다.


`흐응 ... 이, 이런 ...`

가는 세월을 아쉬워하듯 새빨갛게 물든 낙엽을 무심히 집어 들던 준이 갑자기 흠칫했다. 억겁에 걸친 악몽같은 조선에서의 피난길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무심한 듯 흘러가는 세월 속에도 결코 흘려보낼 수 없는 지난날 지극한 고통의 기억이었다.


그 기억은 준을 몹시 힘들게 했는데 자존감이 나락으로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두 번 다시 조선의 왕이 될 수 없다는 그 기억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천형이었다. 낙엽이 조선을 수복하는 것은 아득히 먼 까마득한 희망에 불과하니 포기하라며 온몸을 불사르며 악다구니하는 것 같았다.


그 기억이 되살아나면 준은 무척이나 힘들어했다. 애써 다져놓은 소국연맹 군주의 위엄에도 저해가 될 것임은 자명했다. 조속한 해법이 필요했고 하루빨리 극복해야 할 과제였다. 다만, 누군가와 나눌 수 없는 개인적인 문제였기에 오직 스스로의 의지와 끈기로만 해결이 가능한 내밀한 문제였다.


`그래, 피난길의 그 아픈 옛 기억은 닻에 매달아 저 깊은 심연의 바다 맨 밑으로 던져 두변 다시는 올라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 반드시 그리 해야 해, 꼭! 꼭!`

다시는 보고싶지 않은 기억을 파훼할 의지를 담은 준의 악다문 입술이 굳게 닫혔고 눈에서는 불같은 안광이 쏟아졌다.

`그래, 이 아픈 기억 또한 조선을 수복하면 자연스레 없어질테지만 말이야,“

아픈 옛 기억만큼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준의 의지는 나날이 강해지고 있었다.


”신지께 아뢰옵니다. 내비국과 자리모로국이 월지국과 통합되기를 희망하오니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흠차대신 경욱이 보고했다. 월지국과 인접하여 같은 생활권을 구성하고 있던 소국들이었다. 맹주국으로써 명실상부한 지위와 권세를 얻기 위한 큰 그림의 첫 단추였다.


연맹이 일원화된 정치체제로 나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상명하복의 관계가 정착되어야 했기에 시행한 사전 포석이었다. 최종적으로는 부족국가들을 통합해 고대국가로 나아가는 형국이었다. 조선과 맞서려면 그에 걸맞는 막강한 국가의 형태를 갖추어야 했다.


월지국은 그때부터 어느 연맹국가보다 우월적 지위와 권력을 행사했다.

압도적인 영토와 백성들을 가지자 다른 소국들은 맹주국에 대해 경외심을 느꼈다. 그 배경 속에서 흠차대신 경욱이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는 장소와 시간 속에서 각 소국의 지도자들과 면담을 하며 여러 사전 조치를 추진하자 소국연맹은 급격하게 맹주국을 중심으로 한 단일국가로 변모되어 갔다.


그즈음 습관처럼 준을 찾아오던 악몽도, 피난길의 아픈 기억도 찾아오지 않았다. 준의 의지가 꾸준히 불태운 투지의 결과였다.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는 일만 남은 것 같사옵니다. 이곳의 힘을 모아서 북쪽 조선을 수복하러 가는 길 말입니다. 무엇보다 아버님의 병환이 고쳐진 것은 참으로 좋은 징조인 것 같습니다. “

그해 겨울 신지의 침전을 찾은 탁왕자가 말했다. 부친인 준이 고토 수복을 위해 흘린 피땀을 가까운 발치에서 보며 함께 한 세월을 보낸 그였기에 감회가 남다를 수 밖에 없었다.


탁왕자와 소국연맹의 힘을 한데 모으기 위한 얘기를 나눈 며칠 후,

월지국에서 연맹국의 모든 수장들과 고위 신료들을 모두 불렀다. 수장들만 참석하던 `연맹 회의`에서 확장된 `확대 연맹 회의`였던 것이다. 연맹이 결성된 이후 단 한번도 개최된 적없던 회의였다. 이례적이었다.


변화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회의장 좌석 배치도 이전과는 판이한 형태였다. 이전에는 비단이 덮인 사각형 탁자의 중앙에 월지국의 신지가 먼저 앉으면 나머지 좌, 우 및 맞은편 탁자에 견지, 험측, 번예 등 명칭을 달리하는 각 소국 수장이 세력의 크기와 영향력에 따라 순서대로 앉는 방식이었다.


”아니! 회의장 모양이 왜 이렇지?“

백제국의 견지 도로몽이 머리를 돌려 뒤를 따르던 고랍국 진지 제갈태원에게 물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모양이 많이 다르군요. 허, 참!“

회의장의 앞쪽 공간에 웅장한 좌석이 설치되어 있었다. 매우 큰 규모에 화려했다.

그곳의 좌우 옆면에는 시건장치가 된 서랍장이 있었다. 흡사 조선 왕의 집무실을 축소해서 옮겨놓은 듯했다. 가히 제왕의 풍미를 방출하는 구조물이었다. 좌측으로 왕을 상징하는 쌍용의 문양을 새겨놓은 계단을 설치해 놓은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이거야 원, 저 웅장한 좌석을 보니 위화감이 강하게 드는군,“

소위건국 험측인 편한돌이 궁시렁거렸다.

”거 좀, 말 조심하십시다. 저 뒤쪽에 있는 신하들도 보고 듣고 있으니 말입니다. 혹시라도 소란으로 이어진다면 크게 망신을 당할 수 있을 것 같소이다.“

편한돌의 얘기를 들은 초리국의 번예 두루감이 소리를 죽여 조심스레 말했다.

”어서 회의가 시작되었으면 좋겠는데 ... 저기 저 신하들도 죽을 상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허허“

두루감이 긴장하며 혼자 말을 내뱉었다.


각 소국 수장들이 앉은 탁자는 각각 곰과 호랑이 문양이 새겨진 두꺼운 비단으로 둘러쳐진 채 마주보고 있었는데 상호 대화를 할 수 있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또한, 앉는 순서도 이전처럼 세력순에 의한 것이 아니고 좌석마다 미리 정해져서 앉도록 지정되어 있었다. 신하의 신분에 따라 순서대로 도열해 정사를 논의하는 조선 왕실의 대전과 흡사한 모양새였다. 각국 수장들이 긴장한 이유이기도 했다.


회의는 월지국 신지 준이 입장한 후 시작되었다. 엄숙한 분위기였다.

“오늘부로 월지국 신지인 나 기준은 기씨 성을 버리고 한준으로 살 것이오.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겨 이곳까지 피난을 온 치욕을 나 스스로 벗길 원하여 조선에서 있었던 모든 수치스러운 것들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요.

한을 성씨로 쓰고자 하는 것은 하늘의 자손으로 대대로 살아온 조선을 예전부터 대륙에서 한으로 불렀기 때문이오. 조선보다는 한이라는 이름이 편하게 다가오는 이유요.”

준은 좌우의 수장들을 천천히 둘러본 후 천천히 말을 이었다.


“또한, `한`을 성씨로까지 삼고자 하는 것은 하늘의 자손인 조상들이 대대로 다스려 왔으나 못난 후손인 나로 인해 이방인에게 빼앗긴 조선의 땅을 복토하기 위한 나의 처절한 다짐이라고 생각해주시기 바라오.”

준은 회의 시작부터 진중한 결의를 엄숙하게 전달했다. 격동의 세월을 보내며 결단한 시간의 흔적들이 역력한 표정은 누구라도 꼼짝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


“또한 오늘부터 `한`을 우리 연맹을 하나로 통일한 이름으로 통칭해서 부를 것이오. 대륙이나 왜 등 외국과의 교역이나 대외적 외교사에는 한국이란 국호를 사용하시오.

무릇, 나라에는 왕이 있어야 하는 법, 한국의 수장은 왕으로 불러야 할 것이오.”

준은 모든 소국들에게 큰 목표를 보여줌으로써 명실상부한 하나의 국가로 나아가자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근엄한 그의 표정 앞에서 기세에 각 소국의 수장들과 그 신하들은 그저 고개를 숙였다. 회의에서 이처럼 일방적인 진행은 이례적인 모양새였다.


맹주국 신지가 스스로 왕을 참칭한 후 각 소국들에게 하명하는 얘기를 스스럼없이 함에도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낯선 모습이었으나 당연한 귀결의 모습이기도 했다.

준의 통치기간 백성들의 생활은 월등히 나아졌고, 조선이 국경을 막아 중단되었던 중국 대륙과의 교역도 해상 항로 개척으로 활발하게 운용되었다. 바다 건너 왜국과도 새롭게 교역을 엶으로써 많은 부를 쌓았기에 모든 백성들의 기대와 믿음은 하늘을 찔렀다. 각 소국의 수장들이 경외심을 가지고 월지국 신지 준을 대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유였다. 민심은 천심임을 그들도 알고 있었다.


“다만, 연맹국 모든 국가에서 갑자기 일시적으로 통일된 국호를 사용하기엔 문화적, 지리적 동질감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의견을 사전에 받은 바 있소이다. 해서 그 점을 고려해서 ... 하나의 국가로 가는 과도기로써 우선 세 권역으로 구분하고자 하오.”

준은 사전에 철저히 준비된 계획을 차분하게 풀어 나갔다.


“오늘부터 한은 하나의 통일된 나라이면서, 세 개의 독립된 나라가 될 것이오. 모든 나라가 때로는 서로 도울 것이고, 어떤 때는 발전을 위해 경쟁도 하면서 어느 순간 하나의 큰 나라로 변해있을 것이오.”

연맹국들에겐 역사적인 결정이었다. 많은 수장들은 긴장했으나 이낸 고개를 끄덕였다.그들을 압도하는 준의 힘찬 맹세같은 말에 배인 위엄은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예로부터 삼이라는 숫자는 상징적으로 완전함을 의미해 왔소. 하늘 세계에서는 항상 인용되는 신령스런 기호인 것 또한 아실 터,...해서, 한을 세 개의 국가로 나눈다면 하늘의 보호를 받을 것이오. 따라서, 지리적 여건과 문화적 동질감을 감안해서 오늘부터 남부연맹을 세 개의 한국으로 분리할 것이오.”


잠시 숨을 고른 준이 자신의 왼쪽에 앉을 국가들의 이름들을 천천히 부른 후 말했다.

“이들 우리 지역의 동쪽에 위치한 열 두개 나라들은 예로부터 진나라 유민들이 많이 이주하여 토착민들과 어울려 잘살고 있는 국가들이오. 여러모로 동질감이 강한데다 상호 우호적인 나라들이어서 한 나라로 어울려 잘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오.”

그제서야 함께 일렬로 앉았던 좌석 배치를 이해한 각 수장들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 나라들에는 진나라 유민들이 많으니 그들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진한으로 불러 널리 통합의 의미를 심었으면 하오.”


그 말과 함께 각 수장들을 천천히 바라본 준의 시선이 사로국에서 멈추었다.

“본 왕이 바라건대, 진한의 구성국들은 그 지역에서 가장 큰 사로국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주시길 바라오. 사로국의 진지는 진한의 왕이 될 것인 바, 하나의 나라를 이루어 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될 것이오. 더불어 나와 뜻을 같이하면서 독자적으로 진한을 다스려 더욱 발전시켜 주시길 바라오.”

준의 발언에 미동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그 고요함은 어느새 확립된 그의 절대적 권위에 기인한 결과였다.


잠시 후 준은 단호하고 결의에 찬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옛 월지국의 신지였다가 현재는 모든 대신들의 수장인 상대신의 신분으로 나를 보필하고 있는 우도공을 진한의 왕으로 임명하고자 하오... 현재 사로국의 진지이신 구속공의 양해를 바라겠소이다”

준은 자신의 왼쪽 첫 번째 좌석에 앉아있는 사로국의 진지 구속을 근엄하게 바라보았다. 결단을 촉구하는 메시지였다. 구속은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머리를 숙였다.

“하명하신대로 따르겠나이다.”


그러자 준의 뒤쪽에서 날카롭게 수장들을 흟어보던 경욱이 안도하는 표정이 보였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사전에 해당 수장들에 대해 결단을 촉구한 바 있었으나 자칫당일에 이르러서는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반발을 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한 나라를 만들려는 그의 노력은 어떤 일이든 온전히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었다.


“새로이 진한의 왕이 되신 상대신 우도공에게 본 왕이 새로운 성씨를 하사하겠소. 삼한이 상호 일체감을 가지고 함께 한다는 의미이니 부디 사양하지 마시오.”

준왕이 상대신 우도를 자신의 앞으로 나오도록 하자 우도가 그 앞에 엎드렸다.

“본 왕은 진한왕 우도공에게 선우라는 성씨를 하사하오. 본왕이 이전에 다스렸던 조선의 선자와 우도공의 성씨인 우자를 합해 선우씨가 되었느니, 이는 본 왕의 조선 수복을 도우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것이오. 앞으로 선우왕은 대업을 이룸에 있어 큰 족적을 남기도록 협조해 주시기 바라오. 부탁하오.”


우도는 최근까지 준과 나라를 잃은 울분과 수복 의지를 공감했고 그 생각은 가끔씩 신하들 앞에서 준왕의 의지를 관철하는 모양새로 나타나곤 했었다. 그런 진심을 아는 준이었기에 그를 진한의 왕으로 선택함에 주저하지 않았다. 선우도는 자신을 믿고 함께할 동지로서 자신을 선택해준 한준왕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다음으로, 남쪽 바다와 접해 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과 빈번하게 교류하며 활발한 무역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나라들로 본 왕의 오른쪽에 있는 열두 개 나라를 묶어 변한이라 할 것이오. 예로부터 변진이란 하나의 나라로도 불렸던 적이 있었으니 금번부터 다시 하나로 된다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오.”

말을 마친 준이 근엄한 표정으로 좌중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변한에 속한 국가들은 가장 큰 나라인 구야국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길 바라오. 구야국의 척지는 변한의 새로운 왕이 될 것인 바, 소속된 나라들을 위해 노력해 주시오.준의 시선이 구야국의 척지 남궁갈태에게 멈추어 선 뒤였다. 준의 눈길을 받은 남궁갈태가 천천히 일어나 준을 머리를 조아렸다. 자신의 지위와 역할이 오늘 이 자리, 여기까지임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백성들이 희망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늘 고민하는 훌륭한 지도자였으나 노쇠에 따른 병약으로 인하여 스스로 사퇴의 길을 택할 정도로 건강에 약점이 있는 수장이었다.

“소신, 새로운 왕을 받들어 변한의 번성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나이다!”

그의 굳은 얼굴에서 고향의 발전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굳은 의지가 보였다.


“고맙소, 구야국의 척지로서 그동안 솔선수범해서 많은 일들을 처리해준 데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 드리오. 삼한 전역에 널리 퍼진 그 지혜를 언제든 사용할 수 있도록 변한왕의 옆에서 늘 자문해 주시길 부탁하오.”

그의 지혜를 아끼는 준의 희망이 묻어났다. 그도 선우도처럼 자신을 낮춤으로서 더욱 높아지는 위상을 만들어가는 지도자였다. 또한, 그들이 더욱 빛나는 건 큰 인물을 알아보는 준의 용인술 덕분이었다.


“변한의 왕은 본왕의 아우인 기풍공이 맡았으면 하오. 그는 조선에 있을 때에도 크고 번창했던 지역인 아순달을 다스린 경험이 있어 변한에 속한 국가들을 통합하고 발전시키는데 최적의 지도력을 보일 것으로 판단하오.”

준이 동생 풍을 바라보았다. 그도 형님의 숙원을 알기에 숙연한 표정으로 형의 눈빛을 받았다. 형제간의 숙원이 일치하는 지점이었다.


“공은 몇 해 전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긴 그 치욕스러운 패배의 책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소. 모든 것은 내부의 적을 제대로 막지 못한 본 왕의 온전한 책임이므로 공은 성씨를 그대로 유지하라. 당시의 군왕으로서 모든 책임을 져야 할 본 왕과는 입장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오.”

변한의 왕으로 선택된 기풍은 감격해하며 좌석에서 벌떡 일어나 준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조선을 수복하기 위한 대업에 동참할 수 있는 지위에 오른 것은 참으로 감개무량한 일이었기에 그의 감개무량은 남다른 것이었다.


“이곳 월지국을 비롯한 나머지 오십사 개의 나라들에 대하여는 마한이라는 이름으로 통합하겠소. 마한은 달의 아들을 의미하는 이 월지국과 같은 의미이외다. 한국의 중심이 될 마한의 왕인 나 한준이 변한과 진한의 모든 나라들과 힘을 합쳐 명실상부 조선까지 뻗어갈 수 있는 큰 나라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담았소이다. 오늘부터 우리 삼한은 형제국이면서 군신의 예를 다하는 연합국이 되었소. 본 왕은 여러분들과 생사고락을 반드시 함께 할 것이오.”

천천히 삼한의 명칭과 구성 국가 등을 결정해 발표하는 준왕의 비장한 표정에서 엄숙함과 경건함이 넘쳤다. 이젠 남부소국연맹이 아니라 하나의 큰 국가인 한이 탄생된 것이었다.


“다만, 진한과 변한의 왕들은 조선처럼 부자지간이나 형제간 세습을 불허할 것이오. 왕은 세습되지 않는 대신, 마한에서 왕을 결정하여 왕위에 오르도록 할 것이오. 이는 삼한이 우리 마한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하나의 큰 나라, 큰 한국으로 대동단결되어야 하기 때문이오.”

준왕이 남부연맹에 도착한 이래로 강력한 영도력이 있어야만 조선 수복의 꿈을 이룰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결정이었다. 혹시나 예기치 않은 세습사태가 벌어진다면 자칫 내분의 소지가 있어 이를 원천 제거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니 각 왕들께서는 재임 중에 오로지 백성들이 편히 살 수 있도록 혼신의 능력을 발휘해 주시오. 만약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이는 백성들의 민심을 배반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오. 그리 된다면 ... 천심을 저버리는 일이 될 것이므로 당연히 왕위를 내려놓게 될 것인바, 백성들을 섬기는데 최선을 다해 주시오.”


준왕은 세 개의 한국이 하늘의 뜻을 이어가는 천신의 자손이 되었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했다. 좌석에 앉아 준왕의 원대한 결정을 듣는 각국의 수장들은 생경한 회의장에서 시작된 알 수 없는 불안감들이 점차 사라지고 대신 하늘의 자손이 되었다는 자긍심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남부연맹은 이제껏 부족 단위 소국들의 연맹에 머물러 있어 대외적으로 왜소했기에 국가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렇기에 어떤 문제가 생겨도 큰 국가들의 뒷전에 밀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것은 연맹 전체의 공통적인 문제였다. 주변국들의 상습적인 천대를 극복하는 것은 몹시도 시급한 현안이었다. 그 문제를 새로운 왕, 특히나 천신의 자손으로 알려진 한준왕이 왜소한 그들을 일거에 주변의 나라들과 동등한 큰 나라의 백성들로 지위를 격상시켜준 때문이었다.


준왕은 변한과 진한의 왕들에게 통치의 자율성을 최대한 부여했다. 다만, 조선에서의 경험으로 인해 마한에서 유고가 있을시 대피 장소로 진한과 변한으로 가서 해결하기 위해 할 두 곳 모두 성곽을 축조하여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도록 하였다.


다만, 마한지역에는 성곽을 쌓지 않았다. 두 나라에 비해 매우 넓은 영토를 가진데다 많은 소국과 그 백성들로 이루어진 마한에서는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 가끔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반란의 경험으로 인해 또 다른 변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확실한 보장이 없는 한 미래는 항상 대비해야 한다는 우려에서 기인한 조치였다.


부족 단위의 작은 나라들인 연맹국에서 일시에 왕을 중심으로 한 통일적인 정치 체계 구축으로 큰 나라로 발돋움한 삼한의 행보는 재기를 노리는 준왕의 노력도 있었지만 노구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각 소국들을 돌며 수장들과 신하들에게 군신의 예를 갖추도록 설득한 경욱의 숨은 노고도 있었다. 거기에 더해 준왕은 토착민들에게 천손의 자손이 되었음을 만천하에 공표함으로써 백성들의 환심을 얻은 것은 무엇보다 든든한 응원군을 등에 업는 천운을 얻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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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살수왕 조도일 24.05.13 1 0 21쪽
21 소문을 타고 날아온 엽기 사건 24.04.24 5 0 15쪽
20 산골 소저가 맺어준 인연 24.03.04 20 0 21쪽
19 천하제일권 사마철을 만나다. 24.02.09 32 0 16쪽
18 드러나는 적들 24.02.01 41 0 25쪽
17 맹인 검객 선우이치 24.01.21 44 0 50쪽
16 삼한제일검 길태곤 24.01.05 51 0 45쪽
15 또 다시, 고수를 찾아서 23.12.22 50 0 15쪽
14 소도의 태동 23.12.14 53 0 12쪽
13 운명을 함께할 첫 궤를 걸다. 23.12.11 55 0 14쪽
12 인연을 엮는 여정의 시작 23.12.07 57 0 11쪽
11 고수 탐문 23.12.05 61 0 14쪽
10 소문에 대처하다 23.11.28 67 0 13쪽
9 사방천지로 퍼지는 소문 23.11.24 66 0 11쪽
» 삼한의 탄생 23.11.21 67 0 20쪽
7 위만, 진시황을 꿈꾸다. 23.11.16 70 0 12쪽
6 <천경보전> 23.11.14 75 0 14쪽
5 신선 이야기 23.11.10 77 0 9쪽
4 남부소국연맹 23.11.08 78 0 24쪽
3 뱃머리를 남으로 23.11.03 78 0 10쪽
2 회상 23.11.02 110 0 33쪽
1 악몽 +1 23.10.13 268 1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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