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용가린 님의 서재입니다.

소도전기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용가린
작품등록일 :
2023.10.13 20:53
최근연재일 :
2024.05.13 19:00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1,422
추천수 :
1
글자수 :
196,938

작성
23.12.07 18:54
조회
56
추천
0
글자
11쪽

인연을 엮는 여정의 시작

.




DUMMY

흠차대신 경욱이 <천경보전>이 삼한지역에 있다는 소문을 덮기 위해 또 다른 소문을 만들어 퍼뜨리는 작업에 매진할 즈음, 탁 왕자는 진혁과 함께 경욱으로부터 건네받은 자료에 근거해서 고수들을 찾아가는 걸음을 부지런하게 옮겼다.


그들이 가장 먼저 도달한 곳은 마한의 왕실이 있는 월지국에서도 가장 번화한 지역인 직산마을의 가장 큰 저자거리인 목지시장 이었다. 듣기로 아라방은 그곳에서 외국의 이색 물건들을 소량으로 가져와 저자의 노점에서 판다고 했다. 그러나 실상은 천문점을 쳐서 손님의 운세를 봐주고 그 복채를 받는 것이 주업일 정도로 많은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과연, 이 넓은 시장에서 그를 쉽게 찾을 수 있을까요? 일정한 거처를 정해놓지 않고 장사를 하고 있다니 자칫 온종일 헤매지나 않을까 걱정되긴 합니다.”

진혁이 탁 왕자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시장이 너무 넓어 어디서부터 시작할지가 막막했던 것이다.


“사실 지금 이곳에 있다는 보장도 없고 해서 자칫 넓은 저잣거리에서 제법 헤맬 수도 있을 게요. 그래도 주어진 정보가 있으니 그것을 믿고 최대한 온 신경을 집중해서 정성껏 찾아봅시다. 흠, 일단은 가장 빈번하게 나타난다는 장소부터 가봅시다.”

진혁이 앞장섰다. 잠시 후 그들은 예상외로 쉽게 아라방을 찾을 수 있었다.

가장 빈번하게 나타난다는 큰 포목점 옆에서 아라방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혼례를 앞둔 여자들이 옷을 만들기 위해 천을 사러 와서 점을 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흠차대신은 역시 정보를 수집하여 취합한 후 이를 우선순위로 구분해서 제공했는데 꽤 정확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소문대로 아라방은 두드러지게 잘생긴 미남자였다. 많은 인파들 속에서 돋보이는 큰 키를 가졌으나 마른 체형이어서 고수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파리하게 여윈 몸매로 미루어 그가 무공을 익힌 고수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 정도였다. 사전에 정보를 받지 않고 우연히 길거리에서 보았다면 연약한 샌님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그것이 오히려 탁 왕자에게는 부담을 덜어내는 계기로 작용했다. 처음 접촉할 고수가 우락부락하고 강인한 신체의 사내였다면 말문을 터기가 자칫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자칫 험악한 인상으로 주목을 받는다면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받아서 진솔하게 대화하는 것이 힘들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 때문이었다.


자리를 펴고 앉아서 점을 보는 아라방 앞에는 몇 사람이 도열 해 있었다. 멀리서 그를 발견한 탁 왕자 일행이 말에서 내렸다. 아라방이 눈치채지 못하게 할 요령이었다.천천히 다가간 그들은 줄을 선 사람들의 뒤쪽에 서서 순서를 기다렸다. 얼마 후 앞에 선 진혁의 차례가 돌아왔다.


진혁은 자신의 운세를 예언해 달라는 주문을 넣었다. 무심한 눈빛으로 진혁을 슬쩍 본 아라방이 하늘을 쏘아 보았다. 맑고 청명한 하늘엔 구름 한 점도 없어서 거리낄 것이 없었다. 한참을 쳐다보던 아라방은 잠시 후 두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가 두 눈을 부릅뜨며 마주하고 있던 진혁을 쏘아 보았다. 찰라지간 푸른 눈동자에서 강한 안광이 쏟아졌다가 이내 사라졌다. 일순간 서먹한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아라방이 긴장을 날리는 유쾌한 웃음으로 분위기를 전환하며 말했다.


“창창한 앞날이 보입니다. 앞으로 많은 발전 이루실 것입니다. 하하하,”

기분 좋은 웃음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묘하게 끌린 첫 대면이었다. 뒤에서 이들을 바라보던 탁 왕자도 빙긋이 미소 지었다.


진혁의 차례가 끝나자 다음으로 탁왕자가 아라방의 맞은편에 앉았다.

“내 앞날은 또 어떨 것 같소이까?”

잠시 그의 얼굴을 보던 아라방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저 만큼이나 많은 사연을 가지신 듯합니다. 아니, 그 이상인 듯합니다. 저와 같이 지나온 과거 이야기를 하자면 대략 석 달 열흘은 걸릴 듯합니다.”

아라방이 기분좋은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열심히 노력한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저쪽 하늘에서 그 보상으로 꿈꾸는 것들을 다 이루어 주신다고 대답해 주시네요, 정말 좋은 운세입니다. .. 지금부터 하실 일들은 잘 풀릴 것이니 편하게 수행하십시오. 다만 ... 너무 진지하다 보니 자칫, 일을 그러치실까봐 우려됩니다. 하하하,”

아라방은 은연중에 두 사람의 목적을 아는 듯했다. 흰 피부의 잘생긴 아라방이 힘써 웃으니 그 주변이 한껏 밝아진 듯 화사한 분위기가 되었다.


“옜소, 오늘 좋은 기운을 많이 받은 것 같아 기분이 무척이나 좋소이다. 그래서 더 드리는 것이니 부디 사양 말고 받아 주시오.”

탁왕자가 철전 다섯 냥을 건내며 말했다. 철전은 구리로 된 동전에 비해 열 배의 가치가 있었다. 통상 한 냥의 동전을 복채로 받고 있었기에 상당한 가치의 돈이었다. 물론 먼저 점을 본 진혁의 복채까지 포함된 것이었으나 그래도 무척 많은 돈이었다. 머뭇하던 아라방이 탁 왕자와 눈빛을 교환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흔쾌히 돈을 받은 그는 치아가 드러날 정도로 크게 웃었고 실룩거리는 눈가로 보아 뭔가를 느낀 것이 분명했다.


아라방과 첫 대면을 마친 탁 왕자와 진혁은 상점들이 줄지어 이어진 혼잡한 골목의 어귀까지 되돌아 걸어 나왔다. 저자가 시작되는 입구 쪽에서 처음엔 그냥 지나쳤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만날 고수인 아라방을 만나기 전 긴장해서 보지 못했던 풍경이었다. 그들의 눈앞에 한적한 평지에 듬성듬성 서 있는 큰 나무 사이로 잘 정돈된 논밭이 균형있게 자리 잡은 완만한 평지였다.


“이곳에 앉아서 기다리시죠,”

둥글고 납작한 반듯한 큰 돌덩이 두 개를 발견한 진혁이 탁왕자를 바라보며 권했다. 얼핏 탁자 같기도 하고 의자 같기도 한 모양새였다. 무엇보다 편하게 앉을 수 있는 편한 모양새였다. 탁왕자가 긴 돌에 먼저 앉자 진혁이 그 옆쪽 돌에 앉았다.

“이곳으로 오는 게 확실하다고 보겠지만, 혹시라도 ... ”

탁 왕자가 말하며 의구심을 내 비췄다. 약속을 하지 않았기에 온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래도 영업을 마친 아라방이 이쪽으로 온다는 확신이 들었다. 듣기로 앉아서 백리를 본다고 했으니 그들을 못 찾는다면 그 말은 거짓이 될 것이다.


“아라방은 반드시 이쪽으로 올 것입니다.”

사전에 주도면밀하게 시장 주위를 살핀 진혁에 의하면 시장 외곽 쪽엔 가게는 없었고 민가만 있기에 영업을 마친 상인이나 손님은 시장에서 나와야 했는데 맞은 편 출구쪽에는 민가가 거의 없어 그쪽으로 갈 확률은 희박했다. 진혁이 자신있게 대답한 근거있는 이유였다.


“사실, 절정 고수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인지 몰라도 아라방을 처음 보았을 때, 그 연약해 보이는 몸으로 고수의 반열에 들어갔다는 것 자체로도 무척이나 경이로웠소.”

탁 왕자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진혁에게 말했다.

“고수라면 우락부락한 거한을 떠올리게 되는 건 일반 백성들을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고정관념인 것 같습니다. 당연히 저도 그랬습니다. 소장도 먼 발치에서 처음 보았을 때 그가 과연 진정한 고수일까 하고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천문점을 보면서 그 생각은 확 달아나 버렸습니다.”

잠시 두 눈을 손으로 만지던 진혁이 말을 받았다.


“아까 제 눈을 녹일 듯 쏟아낸 아라방의 안광은 너무나 뜨거웠습니다. 제 눈은 물론온몸도 불에 데인 듯 했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 그런 무시무시한 경험을 하리라곤 꿈에도 생각못한 일이었습니다. 분명 아라방은 우리가 생각한 이상의 고수일 것입니다.”

진혁은 그 말을 하며 자신의 아랫배를 쓰다듬었는데 그 표정이 익살스러웠다. 여유가 묻어난 그를 보며 탁 왕자도 기분 좋게 웃었다.


그때 문득, 바위 옆에 우뚝 솟은 자작나무의 둥글고 넓적한 잎들 사이로 저물어 가는 햇살이 비스듬히 쏟아졌다. 화사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햇살이었다.

“무엇을 희망하든 다 이루어질 것 같은 햇살이 비치니 기분이 좋소이다. 해가 지기 전의 아련한 이 기운이 왠지 모를 여유를 가져다주는 데다 평화로운 이곳의 경치와 합쳐진 풍경이 마치 우리를 감싸고 있는 듯 하오이다.”

탁 왕자가 이례적인 분위기에 감탄해 감격하며 말했다.


“저기, 누군가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금세 해가 저물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할 때 희미한 후광을 드리운 인영 하나가 유유자적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주변의 공기흐름이 호젓하였기에 두 사람은 천천히 움직이며 그를 맞았다. 희미하게 다가온 인영은 놀라는 기색도 없이 약속 시간에 당연히 만날 사람을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에 온 것처럼 여유가 있었다.


“많이 기다리게 해서 송구합니다.”

아라방이었다. 탁 왕자 일행이 자신을 찾아온 목적을 벌써부터 꿰뚫고 있었던 그는 그들이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음을 벌써 알고 있었다. 탁 왕자와 진혁은 아라방의 정확한 예지력에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것이 첫 조우였다. 아라방을 만난 이후 앞으로 계속 만나야 할 고수들과의 인연에 첫 매듭이 기분좋게 지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우연히 만난 듯했지만 실상은 숙명의 만남이었다. 탁왕자와 고수들이 필생의 사명을 기꺼이 함께 짊어질 운명이 시작되는 역사적인 순간이기도 했다. 었다. 삼한을 덮쳐오는 비정한 운명의 순간들을 책임져야 할 영웅들의 끈끈한 인연이 처음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인근의 주루로 옮겨 마주 앉은 세 사람은 서로의 속내를 편하게 내보이며 말문을 이어갔다. 서로 호감을 가진 상태였기에 숨길 것도 없었고 내세울 것도 없었으므로 초면임에도 주고받는 술잔 속으로 속에 묻어두었던 깊은 얘기들을 허심탄회하게 주고받았다.


“흠, 이제부터 길고 깊었던 어린 시절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세월을 담금질했던 제 과거 얘기를 들려 드리지요. 아마, 두 분이 알고 싶은 궁금증도 해소될 테지요.”

탁 왕자가 찾아온 의도를 알고 있던 아라방은 먼저 자신의 얘기를 먼저 꺼냈다. 탁 왕자가 궁금해 하는 것을 알려주고 그가 원하는 답변을 주기 위해 배려하는 모양새였다.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소도전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2 살수왕 조도일 24.05.13 1 0 21쪽
21 소문을 타고 날아온 엽기 사건 24.04.24 5 0 15쪽
20 산골 소저가 맺어준 인연 24.03.04 20 0 21쪽
19 천하제일권 사마철을 만나다. 24.02.09 32 0 16쪽
18 드러나는 적들 24.02.01 41 0 25쪽
17 맹인 검객 선우이치 24.01.21 44 0 50쪽
16 삼한제일검 길태곤 24.01.05 51 0 45쪽
15 또 다시, 고수를 찾아서 23.12.22 50 0 15쪽
14 소도의 태동 23.12.14 53 0 12쪽
13 운명을 함께할 첫 궤를 걸다. 23.12.11 54 0 14쪽
» 인연을 엮는 여정의 시작 23.12.07 57 0 11쪽
11 고수 탐문 23.12.05 61 0 14쪽
10 소문에 대처하다 23.11.28 67 0 13쪽
9 사방천지로 퍼지는 소문 23.11.24 66 0 11쪽
8 삼한의 탄생 23.11.21 66 0 20쪽
7 위만, 진시황을 꿈꾸다. 23.11.16 70 0 12쪽
6 <천경보전> 23.11.14 74 0 14쪽
5 신선 이야기 23.11.10 77 0 9쪽
4 남부소국연맹 23.11.08 78 0 24쪽
3 뱃머리를 남으로 23.11.03 78 0 10쪽
2 회상 23.11.02 110 0 33쪽
1 악몽 +1 23.10.13 268 1 2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