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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가린 님의 서재입니다.

소도전기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용가린
작품등록일 :
2023.10.13 20:53
최근연재일 :
2024.05.13 19:00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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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96,938

작성
23.12.1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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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소도의 태동

.




DUMMY

“이런! 이런! 저기 짙은 먹구름이 떼로 뭉쳐 밀려오고 있습니다.”

변한으로 향하는 탁 왕자 일행이 접도국에 있는 우봉산 자락에 이르자 안개가 자욱했다. 그리 높진 않았지만 기상의 변화가 변덕스럽기로 이름난 곳이었다. 인적도 드물어 주변엔 비를 피할 인가도 없었다.

“그렇군, 이렇듯 시야 확보가 힘든 것을 보니 곧 큰 비가 내리겠군,”

서둘러 말을 멈춘 진혁이 앞에서 멈칫하자 뒤따르던 탁 왕자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흠 ... 이를 어쩐다? ... 먼저 변한으로 가서 두 사람을 만난 후에 함께 되돌아가려 했더니 날씨마저 이렇게 발길을 잡으니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것 같긴 하군 ... 참 나! 그렇지 않소?”

탁 왕자가 진퇴를 고민하다가 옆에서 하늘만 쳐다보던 진혁에게 말했다. 진혁은 그저 어떤 결정이든 내리면 따르겠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쯔쯧 ... 할 수 없지, 일단 돌아갑시다.”


탁 왕자가 변한으로 향하던 말머리를 멈추고 왕궁으로 발길을 돌렸다. 오늘 아침녘에 경욱이 보낸 전서구에 의하면 삼한 전체에 적용할 중요 정책 처리를 위한 회의를 열기에 가급적 빨리 왕궁으로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가급적` 이라는 단서로 미루어 그리 급하지는 않다고 생각해서 변한에서 일을 빨리 끝내고 가려고 했는데 이쯤에서 중지해야 할 것 같소이다. 고수들도 우리가 비바람과 함께 방문하면 분명 좋은 인상을 가지지 못할 게 분명하니 일단 급한 일부터 마무리하고 갑시다.”


우봉산을 뒤로하고 마한 쪽으로 발길을 돌리는 두 사나이의 모습이 이내 안개에 잠기면서 멀어졌다. 그로부터 얼마 후, 마한과 변한의 평탄한 접경지역에 두 마리의 날랜 준마가 세찬 바람을 일으키며 마한의 왕실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곳 삼한의 각 소국들이 아직도 혈연에 기반한 정치체제가 유지되는 관계로 인해 여러 문제점들이 보고되고 있소. 그래서 일전에 짐이 조선에서 시행한 <팔조금법>을 시행하였으나 아직도 그 법이 백성들의 생활에 정착되지 못하고 있소이다. 더구나, 그 문제들이 점점 발생빈도와 횟수가 커져가고 있으니 필시 조속한 개선책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이오.”

준왕이 여러 핵심 중신들을 한자리에 모은 이유를 먼저 알렸다.


“짐은 이 상황에 대해 경들의 의견을 듣고자 하오. 허심탄회하게 말해 보시오.”

준왕이 주재하는 집무실에는 탁왕자와 흠차대신 경욱, 진한 왕 선우도, 변한 왕 기풍이 원형 탁자에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왕의 하교를 듣고 있었다.


“소신의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왕의 고언을 듣고 한참을 생각하던 진한 왕 선우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씀하셨다시피, 소국들은 혈연을 기반으로 한 부족 집단이 기반입니다. 씨족 마을 여러 개가 합쳐진 공동체다 보니 사건이 생기면 오랜 기간 쌓여온 친족이나 가문의 전통을 내세워 원칙없이 그때그때 편의에 따라 입맛대로 처리하는 게 현실입니다.”

선우도는 준왕이 제기한 문제점을 부연해 설명하고선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러한 원인으로 인해 엄격한 도덕률의 적용이 헛도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전하께서 시행한 <8조금법>이 백성들의 생활속에 녹아들지 못하는 원인이기도 할 것입니다. 당연히, 사건이나 사고는 늘어나는데 공정한 잣대를 들이댈 수 없으니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지요. ... 그냥 이대로 방치한다면 삼한 전체에서 가장 큰 사회 부조리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입니다.”

선우도는 현재의 문제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을 예상한 듯 얼굴을 찡그렸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팔조금법> 의 적용에 대해 각 소국 지도자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사옵니다. 온정주의와 처벌주의로 나뉜 각 씨족사회 내부에서의 여론이 팽팽하게 대립중이기 때문입니다.”

경욱이 그동안 살핀 민심의 결과를 설명하면서 준왕을 바라보았다.


“다만, <팔조금법>의 시행 후에 범죄 발생이 많이 준 것은 사실이어서 일단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으나, 줄어든 것과 없어지는 것은 명확히 다른 것이옵니다. 결국,발생한 범죄를 쉬쉬하더라도 언젠가는 공개되어 그 문제가 공론화될 것이옵니다. 최근, 몇 년간 숨겨져 있다가 노출된 범죄 몇 건을 소신의 선에서 적의 처리한 바 있사옵니다. 이번 기회에 범죄자 처리 기준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정립했으면 합니다.”

경욱은 <팔조금법>의 확실한 적용을 통한 해결책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전하께서 삼한을 세우기 이전부터 오랜 기간 이곳 삼한에서 살아오며 많은 것들을 지켜봐 온 저의 소견을 말씀드리면 <팔조금법>을 더욱 강력하게 적용하거나, 아니면 폐지하더라도 지금 흠차대신께서 언급하신 문제들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한때, 마한의 신지로서 삼한 전역을 통솔했었던 선우도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삼한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상황에 대해 오래 살아왔던 토착민으로서의 책임과 애착으로 이번 기회에 기어이 그 문제의 해답을 강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음성이었다.


“이번 기회에 소신이 예전부터 생각해왔던 방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선우도가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예로부터 삼한에서는 각 나라 별로 수호신에 대한 제사를 시행해왔고 현재도 그것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자체적으로 추진하다 보니 그 양태가 천차만별일뿐 아니라 제사주관자의 지위 또한 천양지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는 지명직 관리가 하는가 하면 어떤 곳은 백성들이 매년 한 장소에 모여 거수로서 선출하기도 합니다.”


<팔조금법>의 시행에 대한 얘기중에 뜬금없는 제사 얘기가 나오자 나머지 사람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선우도의 표정이 진지해서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계속하여 구체적인 예시를 들며 설명하던 선우도가 잠시 말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긴 얘기를 들으며 궁금증이 생겼을 나머지 사람들이 기다리던 답을 할 때가 된 것임을 알리는 신호였다.

“범죄와 제사, 얼핏 보기에는 전혀 상관없는 각각의 별개 사안으로 보입니다만 왠지 말씀하시는 것으로 봐서는 이들 두 사항을 엮어 <팔조금법>의 효과적인 시행을 도울 복안이 있으신 듯합니다만,”

경욱이 무언가 짚이는 게 있는지 넌지시 말을 던졌다.


“역시, 흠차대신의 예지력은 따를 수가 없소이다 그려. 허허”

경욱의 말을 들은 선우도가 속마음을 들킨 듯 빙그레 웃으며 말을 받았다.

“어차피 혈연에 기반한 각 소국들의 문제들이니 이번에 이를 한데 묶어 해결할 방법을 찾은 것 같습니다.”


“먼저, 제사와 관련하여 각 소국마다 수호신에 대한 제사를 그대로 존치하되, 제사장은 삼한의 각 왕들이 임명하여 별도로 관리하면 제사장의 권위는 어느 곳에서든 존중받게 될 것입니다. 또한, 제사장이 다스리는 지역에 신전을 짓고 관할구역을 구획해 별도의 경계표시를 하고 신성한 지역으로 삼는다면 누구도 제사장을 함부로 하지 못하고 그 권위를 함부로 넘보지 못할 것입니다.”

선우도가 생각하고 있던 해법을 구체적으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다만, 각 왕들이 제사장을 임명은 하되 그 외의 사항은 일체 관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제사의 개최나 신전의 운영과 관련해서 인력이나 물품 등을 지원한다면, 관여하는 만큼 간섭하게 될 것은 세상사 인지상정일 터이니 말입니다. 결국 신성 지역을 설정한 목적에서 벗어나 서서히 그 권위를 잃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자 곰곰이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준왕이 오른손을 들며 천천히 물었다.

“제사장의 권위를 위해 일체 지원하지 않는다면 ... 제사장도 할 일이 적지 않을텐데, 혼자서 어떻게 그 많은 역할을 할 수가 있는 것이오?”


“충분히 공감이 가는 질문이옵니다. 소신도 그 부분에 깊이 고민한 적이 있었는데 소신이 내린 방안을 말씀드리자면, 제사장에게 사람과 물품에 대한 권한을 일임하면 될 것이옵니다. 스스로 신전을 찾아 들어오는 자들에 대한 거취 결정권을 제사장이 행사하면 그곳의 백성들은 누구든 제사장에게 복종하게 될 것이옵니다. 그들에게 신전 내의 넓은 농토를 경작하게 하거나, 필요한 물품을 만들게 한다면 제사장은 각 소국 군장들의 통치권에서 벗어난 별도의 구역에서 역할을 하게 될 것이옵니다.”

선우도는 차분히 자신이 생각한 해법안을 설명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신전을 스스로 찾아올 사람이 적어 진다면 그 제사장의 일이 많아지는 것은 아닐런지요?”

잠자코 듣고있던 기풍이 고개를 두어 번 갸우뚱하더니 선우도에게 물었다.

그러자, 선우도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팔조금법>과 범죄의 발생과 제사 행사가 상호 교차되는 지점에 온 듯했다.


“신전에 들어가는 사람의 경우 자의로 들어갈 사람도 있겠지만 그 숫자가 많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족한 인력의 보충을 위해 새로운 정책의 시행이 필요할 것입니다. 바로 <팔조금법>을 어긴 사람들이 신전의 경계구역 안으로 들어갈 경우에는 더 이상 추적하지 않고 그들이 신전에서 새롭게 살도록 갱생의 기회를 부여하는 제도를 시행하는 것입니다.”

선우도는 모두의 동의를 구하는 듯 일일이 눈을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제사를 지내는 신성 지역을 적극 활용한다면 자의든 타의든, 혹은 누명을 쓰고 범죄자로 낙인찍혀 도망을 다니던 여러 사정들에 의해 처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면책하기 위해 스스로 들어간다면 그곳에서 전권을 가진 제사장에 의한 교화나 제사업무의 보조, 신전 경비 등 다양한 업무를 지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으론, <팔조금법>에 적시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가 혈연 중심 사회에서 선처를 받기 보다는 추방이 되어 <팔조금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면 공정하게 법을 지키자고 하는 여론이 강하게 일어 법에 의한 지배를 지지하는 풍조가 강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선우도의 논리는 그럴듯했고 논리적이어서 다들 긍정적인 표정이었다.


“말씀을 듣고 보니 삼한 지역 최대의 화두 세 가지를 동시에 해결하는 좋은 방안인 듯 합니다. 제사장의 실추된 권위를 회복하는 것과 <팔조금법>에 대한 씨족사회의 실효적인 적용으로 범죄자가 된 이들에 대한 갱생의 기회 부여 등 여러 문제들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멋진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와우!”


오랜 기간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선우도의 제안에 기풍이 감탄하며 말했다

“각국 제사장의 권위 실추를 해소하기 위해 군장에 의한 통치와 제사장에 의한 제사를 각각 분리하는 방안을 소신도 고민해본 적이 있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는데 진한 왕께서 일거에 해소해 주신 듯하여 적극 동의한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경욱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함을 표했다.


“다만, 이견은 없습니다만 제사와 관련해서 한 말씀 드리자면, 각국의 수호신에 대한 제사와 달리 하늘에 지내는 천신제에 대한 말씀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조선에서 해마다 지내던 천신제는 백성들의 민심을 모으는데 큰 역할을 했기에 이곳 삼한에서도 각 맹주국에서 주관하여 행한다면 삼한의 백성들이 하나로 뭉쳐지는데 지대한 효과가 있으리라 판단됩니다. 천신제는 당연히 관내 소국들의 제사행사와는 확연히 차별되는 성대한 규모로 실시되어야 할 것입니다.”

경욱은 큰 고민을 해결하기라도 한 듯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두 왕께서는 각 소국의 제사와 관련한 신전의 건설, 경계 표시 방법, 제사장의 명칭과 권한 등을 세세히 검토하고 여러 의견들을 수렴해 오시기 바라오. 이곳 마한에서도 여러 의견들을 모으리다. 조속한 시일내로 다시 보도록 하십시다. 경들의 의견은 어떠하오? ”

준왕이 회의 내용에 크게 만족해하며 말했다.

“뜻대로 따르겠사옵니다.”

흡족한 결론을 도출한 참석자들도 서로를 바라보며 희미하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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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맹인 검객 선우이치 24.01.21 44 0 50쪽
16 삼한제일검 길태곤 24.01.05 51 0 45쪽
15 또 다시, 고수를 찾아서 23.12.22 50 0 15쪽
» 소도의 태동 23.12.14 5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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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고수 탐문 23.12.05 61 0 14쪽
10 소문에 대처하다 23.11.28 67 0 13쪽
9 사방천지로 퍼지는 소문 23.11.24 66 0 11쪽
8 삼한의 탄생 23.11.21 66 0 20쪽
7 위만, 진시황을 꿈꾸다. 23.11.16 70 0 12쪽
6 <천경보전> 23.11.14 74 0 14쪽
5 신선 이야기 23.11.10 77 0 9쪽
4 남부소국연맹 23.11.08 77 0 24쪽
3 뱃머리를 남으로 23.11.03 78 0 10쪽
2 회상 23.11.02 110 0 33쪽
1 악몽 +1 23.10.13 267 1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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