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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가린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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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용가린
작품등록일 :
2023.10.13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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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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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8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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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남부소국연맹

.




DUMMY

“흐음, 경은 ... 월지국을 무력으로 복속시키자 ... 그 말인게요?”

남쪽 지역이 가까워지자 하선 후의 계획을 의논하던 준왕이 경욱을 향해 퉁명스럽게 물었다. 역정을 내는 것이다.


“황망중에 나라를 잃어 백성들조차 버려두고 피난처를 찾아 헤맨 요 며칠 동안 짐은 잠조차 제대로 이룰 수 없었소. 정말이지, 전쟁이란게 승자독식이어서 이기지 못하면 모든 것을 잃는 다는 것을 새삼 절절히 깨달았소, 패자가 되니 참으로 비참하고 허망하구려,”

월지국에 닻을 내리기 전, 준왕의 주재하에 경욱과 탁왕자가 모여 대책을 강구하는 자리였다.


다른 신하들을 배제한 것은 피난 와중이라 본질에 어긋나는 내용이 토론 될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고, 중요하지 않은 내용으로 중언부언이나 하면서 낭비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아직은 바다 위 피난선에 은신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걸린 결정을 해야 했기에 그 어느 때보다 비밀 유지가 절실히 요청되는 상황이었다.


“며칠동안 흠차대신께서 다양한 정보를 제공받아 앞으로의 행보를 결정하는데 도움을 준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외다 ... 그런데, 우리가 월지국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결국은 싸워서 이겨야 할 것인데 ... 그들이 우리에게 내친다면 그들 역시 지금의 우리와 똑같은 심정이 될 터, 그 점이 무척이나 신경 쓰이고 가슴이 아프구료... 우리가 그들에게 위만과 다름없는 침략자로 인식되는 것이,”

그 때 경욱은 대국 조선의 왕이었던 준의 큰 인품을 보았다. 왕위를 찬탈당한 위중하고도 먹먹한 상황에서도 지금 같은 이타심을 보여주는 것이 경이로웠다.


"그럼에도, 조선의 수복을 위해서는 우리의 세력을 키울 기반을 반드시 마련해야 하옵니다. 그 기반으로 조선과 접경한 남부연맹을 활용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연맹국들은 저마다의 작은 나라로 흩어져 있으니 우리가 그 틈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우려하시는 창칼없이도 그들 스스로 무릎을 꿇고 전하께서 통치해 주시길 간청하게 될 것입니다.“


싸우지 않고도 남부연맹을 통치할 수 있다는 말에 흡족해진 준왕이 두 사람의 표정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왕자와 흠차대신은 진중한 성격이었고 준비가 철저한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지금부터 이후의 모든 진행은 저와 왕자님께 맡기소서,“

경욱이 준왕의 만족한 표정을 보고 확신에 차서 윤허를 기다렸다.


”그대들을 못믿는 것은 아니나, 대강의 계획이라도 말해줄 수 있겠는가? 내가 좀 더 안심하고 기다릴 수 있게 말이야,““

그러자 탁왕자가 준왕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소자가 알기로 남부소국연맹은 군대가 없사옵니다. 부족국가인 소국들은 농사와 목축에 적합한 기후 아래 대부분의 백성들이 농사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춥고 열악한 땅이 많은 조선과는 차이가 많은 점이지요. 해서, 힘들게 영토를 뺏거나 식량을 약탈할 일도 없기에 군대를 조직할 필요를 못느낀다고 합니다. 물론, 백성들이 적어 군사로 내어줄 여력도 없다고 합니다.”

조곤조곤 설명하는 탁왕자의 얘기에 준왕이 반색했다.


“군대가 없다니 ... 조선이 북방 오랑캐들을 막아주는 위치에 있었으니 남쪽에서는 침략을 받을 일이 없었겠군, 그래 ... 이래저래 새로 시작할 명목이 많은 곳이로군. 허허허,”


“월지국 신지 우도는 집안 대대로 내려온 직책을 수행하는 책임감으로 연맹국의 맹주 역할을 무리없이 수행하고는 있지만 성격이 급하고 권위적이라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영민하다고 소문난 곽엽이라는 신하를 곁에 두고 중대한 결정을 할 때면 꼭 의견을 듣고 결행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월지국 신지 우도에 대한 얘기 도중 뜬금없이 곽엽을 얘기하자 준왕과 탁왕자가 생뚱맞다는 표정을 짓자 경욱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결국 우도의 항복을 받아내는 것은 곽엽의 역할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경욱이 확신을 가지고 말을 이었다.

“왕의 자문역을 맡은 신하인 상부 곽엽은 매사에 신중할뿐더러, 본인이 직접 확인하고 검증한 것만 인정하는 완벽주의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점을 잘 이용한다면 전쟁 없이도 월지국의 우도를 굴복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전쟁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경욱의 말을 처음엔 반신반의했던 준왕이 그 말의 의미가 구체화되자 더욱 관심을 가지고 경욱 쪽으로 몸을 당겨 들으려 했다. 피난선에 오른 이후 가장 화색이 도는 표정이었다.


“그래. 무슨 비책이 있소?”

들뜬 목소리의 준왕이 급하게 물었다.

“예. 생각해둔 방안이 있사옵니다.”

경욱도 준왕의 표정에서 한결 힘을 얻은 듯 듬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배에서 내리는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연맹국 전체가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것입니다. 당연히 상황 파악을 위한 관찰이 먼저 시작될 것입니다.”

경욱은 간자들로부터 받아 취합한 첩보 내용을 계속 설명했다.


“혹은 호기심으로, 혹은 불안감으로 보이지 않게 몸을 숨기고 우리를 주시하는 사람들 중에는 곽엽도 분명히 있을 것이니 그에게 우리의 뜻을 명확하고 확실히 전달만 하면 될 것입니다.”

“어떻게 말인가? 숨어서 있다면 찾기 어려울 텐데, 더군다나 얼굴도 모를뿐더러 혹 그가 우리의 예상과 달리 직접 오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은가?”

준왕이 빠르게 물어왔다. 그만큼 온 신경을 곤두세워 집중해서 듣고 있었던 것이다.


“전하, 소국연맹과 조선은 다르옵니다. 많은 백성들을 근간으로 한 중앙 집중식 행정체계와 발달된 도로망이 가동되던 선진국 조선과는 확연히 다름을 전제로 판단하셔야 합니다. 남부연맹은 작은 부족국가들입니다. 작은 나라는 그에 맞는 생활 형태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정한 방향으로 일이 마무리될 것입니다. 부디 소신을 믿어주소서.”

경욱이 확신을 가지고 강변하자 옆에서 경청하던 탁왕자가 그의 주장에 힘을 보탰다.


“제가 판단해도 흠차대신의 말씀이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생각하고 계신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말씀해 보시지요.”

“조만간 우리 배들은 월지국에서 가장 큰 포구인 아산포에 도착할 것입니다. 그 포구는 왜국과 대륙 쪽의 여러 나라들과의 해상교역을 하기 위해 만든 곳이라고 합니다.”

경욱은 잠시 뜸을 들인 후 말을 이었다. 며칠동안 고민하여 갈무리해놓은 전략이었다.


“포구에 도착하여 배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주변 가장 큰 산인 태봉산으로 갈 것입니다. 그 때 전하의 수레를 중심으로 왕의 행차에 걸맞은 화려한 행렬을 보여줄 것입니다. 태봉산 중턱에 위치한 넓은 평야인 상림숲까지 이어진 왕의 행렬은 많은 백성들이 보게 될 것입니다.


“흠, 그리곤 ... 또 무엇을 하게 되오?”

준왕이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경욱은 에상했다는 듯 준비된 답을 했다.

“최대한 많은 백성들에 자연스레 노출된 우리들은 위세를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특히, 군사들의 높은 무공과 사기를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 될 것입니다. 월지국에서 감당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완벽히 느끼도록 말입니다. 조선에 대해 이미 많은 것들을 알고 있을 터, 조선 군대의 강한 명성을 익히 들었다면 월지국 신지 우도는 스스로 신지의 자리를 양위하는 방법으로 화친을 요청할 것입니다. 자연스레 월지국을 필두로 연맹국 전체가 머리를 조아리게 될 것입니다.”


경욱의 계획은 대강의 흐름 예측과 핵심적 요소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어우러진 것이어서 이해가 쉬웠다. 준왕과 탁왕자도 먼 남부연맹국의 돌아가는 사정을 손바닥 보듯이 추리해 낸 경욱에 경의를 표했다.


“경의 빈틈없는 예지력에 그저 놀랄 따름이오. 정말 전쟁 없이, 일말의 다툼 없이 그런 결과를 만들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이까,”

준왕이 간절한 눈빛으로 경욱을 바라보았다. 탁왕자도 더불어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언 듯 무언가 떠오른 듯 경황없이 물었다.


“그런데, 만약에... 정말로 만약네 말입니다 ...가능성은 낮지만, 혹시나 만에 하나라도 우리 의도와 달리 반감을 가지고 덤빌 가능성은 없는지요?”

탁왕자는 거짓말처럼 예기치 않게 위만에게 패배한 후에는 세상사가 순리대로만 돌아가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실패의 대비책을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남쪽에서 조속히 정착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오랜 세월 조선을 다스리면서 내세운 하늘의 자손들이라는 정통성마저 온전히 잃어버릴 신세가 될 것임은 자명했다. 그래서 더더욱 절실하게 월지국에 안착하고픈 간절함이 일었다. 그것도 분쟁 없이 마무리된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었다,


“혹시나 일이 잘못되어 그들과 마찰을 빚게 된다면, 당연히 싸워야겠지요. 다만, 월지국만을 쳐야 하며, 최대한 빠른 시일안에 복속시켜야 할 것입니다. 나머지 연맹국들은 자연스럽게 복속될수박에 없으니 그들을 자극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망망대해 속에서도 와신상담하며 결기를 다지는 준왕은 새삼 믿음직한 신하에게 신뢰의 눈빛을 보내며 운명공동체의 운명을 느꼈다.


“조선의 준왕이 왜 이곳에 오는 것이오? 그것도 수천의 군사와 함께 말이오,”

준왕 일행이 먼 바다로부터 월지국으로 다가가며 상륙 이후를 고민할 때, 월지국의 신지 집무실에서는 남부연맹의 여러 소국 수장들이 조만간 상륙할 준왕의 도착을 놓고 논의중이었다.


“요지는 결국 준왕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파악하는 것 아니겠소이까? 그가 왕위를 찬탈 당하고 피난길에 올랐다는 첩보만 있었는데 불쑥 이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다니 말이오, 혹시 관련하여 아시는 것이 있다면 말씀들 해 보시오,”

월지국 신지 우도의 말에 모두들 골머리를 앓듯 한마디씩 말을 내뱉었다.


그야말로 장님들이 코끼리를 이리저리 만지고 저마다의 만진 느낌으로만 코끼리를 정의하는 것과 다름없는 무의미한 추측에 다름 아닌 아우성에 가까운 잡담이나 늘어놓는 수준이었다.

“흠, 조용히들 해보시오! 일단 세가지 정도로 요약을 해보십시다.”

우도가 회의에 참석한 각 소국의 신지, 견지, 읍차, 흠측 등 수장들의 얼굴을 찬찬히 둘러보며 말했다. 사태의 전말을 모르는 그들에겐 버겁고 힘든 회의임을 알기에 빠른 결단이 필요했다.

“우선, 이 지역에 정착해 우리와 공존하며 살 땅을 찾아 오는 것인지? 아니면, 싸워서 이곳을 점령하려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미리 정해놓은 다른 목적지 쪽으로 가다가 필요한 무엇을 확보하기 위해 잠시 경유하는 것 ... 그 정도의 범위 외에는 없을 것 같소이다.”


“준왕의 경로는 우리 연맹의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일대 사건이외다. 연맹을 결성한 이래로 이렇게 큰 사건은 없었소이다. 해서, 여러분들의 의견을 받아 사안별로 대책을 수립하고자 하니 의견을 내어주시길 바라오,”

우도는 자칫 독단적으로 결정했다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맹주국의 권위가 실추될 것을 두려워했다. 해서, 여러 의견을 받아 조금이라도 찬성 의견이 많은 쪽으로 결정을 내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준왕의 남하 이유를 아무도 자신하지 못하는 사유로 인해 다양한 추측만 난무하다 보니 의미 없는 고성만 커졌고 다람쥐 챗바퀴돌 듯 헛돌기만 했다. 그저 목소리 큰 쪽으로만 회의의 흐름이 흘러 다녀 계속 엇박자로 쩔뚝거리는 건 당연지사였다.


“월지국 신지님께서 결정하시는 데로 따르도록 하십시다.”

마침내 성질 급한 만로국의 읍차 황몽이 더는 기다릴 수 없다며 큰 소리로 제안했다.

“좋습니다. 우리 연맹의 맹주국인 월지국에 전권을 위임하겠습니다.”

만로국 옆의 고포국 읍차 공인이 거들었다. 이에 다른 소국의 수장들도 동의한다는 의사를 표명함에 따라 결국은 월지국 신지 우도의 결정이 남부연맹의 통일된 의견으로 채택되었다.


우도는 이번 사태의 대응책을 자신이 만들어내어야 하는 것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렇지만 연맹들국이 만장일치로 결정권을 모아주었으니 그 결과를 딱히 반박할 명분도 없었다. 권한을 위임해 주었는데 이의를 제기할 경우 맹주국의 권위만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도는 애써 여유로운 웃음을 보이며 그들의 결정을 수용했다.


“흠, 알겠소이다. 가장 현명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최적의 방안을 강구하겠소이다. 일단 오 일정도의 말미를 주시오. 들어온 첩보에 의하면 늦어도 삼일 이내에 그들이 탄 배가 포구에 도달할 예정이라 하오. 이후 이틀 정도의 기간동안 그들의 동태를 살피면 목적을 자연히 알게 것이니 정확한 대처방안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오. 흠 ... 오늘 회의는 여기에서 마치고 오 일 후의 저녁에 이곳에서 다시 만나도록 하십시다.”


그날 밤, 우도는 상부 곽엽을 불렀다. 정치 자문을 하는 고위급 보좌역이었다. 대대로 관료를 역임했고 대륙의 여러 나라를 유학해서 다양한 문물을 접한 박학다식한 신하였다. 게다가 항상 합리적인 방안을 제안했기에 누구보다 높은 신뢰를 주는 신하였다. 금번 사태의 대응방안에 대한 뾰족한 묘수를 발굴하기 위해 그를 부른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어찌하면 좋겠는가? 내 입장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최선일지 말일세,”

며칠 후, 곽엽을 부른 우도가 정답을 달라고 재촉하듯 급하게 물었다.

그러나 뜨거운 차를 음미하던 곽엽은 대답을 선뜻 내지 않으며 갈등하며 머뭇거렸다. 사실 그는 준왕의 남하 상황을 누구보다 먼저 아는 위치에 있었고, 그들이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선 가장 먼저 현장까지 다녀온 바 있었다. 월지국이 생긴 이래 처음 있는 많은 군사들의 상륙은 생소한데다 위험한 경험이었기에 해결방안을 강구하는 것 역시 어려운 문제였다.


모두에게 생소한 문제였기 때문에 결국은 자신이 해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곽엽은 직접 보고 들은 것을 기반으로 해결방안을 고민했고 결론은 누군가의 통 큰 희생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문제는 희생을 강요당하는 사람이 순응해야 하는데 그게 쉬울 것 같지 않아서 고민중인 것이었다.


“소신의 생각으로는 ... ”

피 말리는 장고 과정을 겪은 그가 막상 눈앞에서 답을 구하는 우도를 보자 망설여졌다.

“흠, 소신이 보기에는 ...”

곽엽은 잠시 공백을 두더니 결심한 듯 차분히 말을 꺼냈다.

“먼저, 신지께서 보다 전향적인 판단을 해 주실 것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도가 그 말에 담긴 의미에 의미를 두지않고 넘어가자 곽엽이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사실은, 이틀 전 준왕 일행이 아산포에 도착했다는 얘기를 듣고 도착지에 달려가서 그들을 살피고 왔사옵니다.”

현장을 벌써 다녀왔다는 그의 말에 우도는 속으로 ‘역시!’ 하며 감탄했다.

“신은 당연히 피난선을 타고 온 준왕 일행은 피폐해진 몰골에 지친 패잔병들의 모습이겠거니 예상을 했습니다만 ...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제가 목도한 광경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곽엽은 예상치 못했던 반전의 장면들을 다시금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들은 피난민의 행렬이 아니었습니다. 왕의 지방 행차시 잠시 휴식을 취하는 듯 편안한 모습이었고 행동 하나하나가 여유로웠습니다. 그들은 배에서 내린 후 마치 오래전부터 월지국을 잘 알고 있었던 냥 태봉산의 상림숲 넓은 평지로 가더니 자리를 잡고 잔칫상을 차렸습니다.


중앙에 앉은 왕의 좌우로 많은 신하들이 흥겹게 즐겼고 사방에는 온갖 종류의 병장기로 무장한 병사들이 사방을 호위하고 있었습니다. 연회 중간중간 수시로 무공이 뛰어난 병사들의 겨루기가 시연되었는데 장수들의 절도있는 날랜 동작들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많은 군사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마치 전쟁에 임하듯 일진일퇴의 공방을 거듭하는 장면에서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래 ... 결론이 뭔가? 내가 어찌 했으면 좋을지 말일세. 그 말을 해보게!”

성격 급한 우도가 급하게 채근했다. 우도는 처리 방안을 구체화하는게 무엇보다 급선무였다. 빠른 해답을 만들고 그에 따른 적절한 대응 방안을 강구해야 연맹 내의 소국들에게 맹주국의 체면을 세울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음이 바쁠수 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천천히 얘기를 풀어가던 곽엽은 자칫 성격 급한 우도가 불호령을 내릴 것을 알았기에 부득이 하던 얘기를 대충 마무리한 후 우도가 원하는 결론을 고할 수밖에 없었다.


“신지께서 조선의 준왕에게 자리를 양위하시고 그의 신하가 되는 것입니다.”

단호하게 말은 뱉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도 신지의 입장을 몇 번이나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생각해보았던 터라 곽엽은 그의 감정 변화가 무척이나 신경쓰였다.


곽엽의 답변을 들은 우도는 처음엔 잘못 들은 듯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재차 곽엽에게 틀림없음을 확인한 그는 이번엔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 때문에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울그락 불그락거리며 얼굴을 붉혔다.


그는 그것만은 절대 수용할 수 없는 방안이라고 궁시렁거리면서 집무실을 몇 바퀴나 왔다갔다했다. 간혹 욕설도 내뱉었는데 화를 진정시키기 위한 방편이었다.곽엽으로서는 이미 예상한 그림이었지만 그래도 우도의 불안한 얼굴을 보며 계속 얘기를 해야 하는 것이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다.


“무어라!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조상 대대로 월지국을 이끌어왔고 다른 연맹국들에 의해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우리 집안이 패망하여 피난이나 온 주제의 조선왕 따위에게 신지를 양위해야 한다니 ... ”

예상보다 격하게 반발하는 우도를 눈앞에서 바라보며 이해 시켜야 하는 것은 고역이었다.


“흠, 더군다나, 그의 신하가 되어야 한다니 ... 왜 하필 내가 그런 시련을 겪어야 하느냐!”

곽엽은 조용히 천장을 응시하며 수심에 찬 표정을 지었다. 주군과 신하의 관계였지만 지금은 서로를 위해 얼마간의 침묵을 필수적으로 동반하는 과정을 거쳐야 감정이 융화될 것이었다.


“소신은 그저 신지께서 겪는 생소하고 혼란스런 문제에 대한 답을 드린 것에 불과하오니 이를 채택할지 묵살할지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신지님의 몫이옵니다 ... 소신의 우매한 답변에 화를 내시는 것도 어찌보면 해결책을 구하는 과정인 것이고, 수긍하지 못해 반발하시는 것도 결단을 준비하는 과정인 것이옵니다 ... 이 모든 결정의 주인공은 오로지 신지님이오니 부디 현명한 결정을 하시옵소서,”

곽엽은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면 귀가하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우도가 손사례를 치며 이를 만류했다.


“상부의 얘기를 듣는 짧은 시간동안 참으로 많은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소이다.”

어느새 분기탱천하며 흥분했었던 우도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자리에 앉았다. 곽엽의 판단대로 그는 짧은 시간 많은 생각들을 했을 테고 마침내 그것이 최선의 대응책이라고 느낀 듯했다.


“비록 피난을 왔지만 준왕은 오랜 역사를 가진 큰 나라 조선을 오랜 기간 다스렸던 왕입니다.그와 함께 온 군사들 또한 비록 내전에서 패했다고는 하나 중국 대륙에서도 강하다고 소문난 정예군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곽엽은 자신이 파악한 내용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넉넉한 판단 자료가 될 것들 이었다.

“특히 필히 비교해야 할 것은 군대 조직입니다. 우리 연맹에는 군대 조직이 아예 없다는 사실은 우리 연맹이 급조하여 군사를 징발한다 해도 많은 전투 경험을 가진 조선군에 대항했다간 화약을 안고 불길로 뛰어드는 것과 같은 위험만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곽엽의 얘기는 냉정한 판단에 기초한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우도가 상황을 냉혹하게 인식하고 현실을 받아들이자 곽엽이 차분히 자신의 말을 이어 나갔다.


“준왕이 침략할 마음만 먹었다면 이곳 연맹국 전체가 위기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설사 대항하여 버틴다 해도 시간의 문제일뿐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 끝까지 싸워도 이길 수 없다면 차라리 현명하게 타협하는 것이 우리 연맹국 전체의 안녕과 평온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이 될 것이라 판단한 이유입니다.”

곽엽은 잠시 숨을 고른후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준왕이 이곳 연맹으로 온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진 후 일부 백성들이 전쟁의 공포로 인해 피난처를 알아보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불안해한다는 정황 보고도 있사옵니다. 하여, 현재 상황에서 최선의 방책을 고민하다 드린 제 소신이오니 노여움을 푸시고 신중히 검토해 주셨으면 합니다.”

문제에 대한 답변의 근거를 들려 준 곽엽이 숨을 고른후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마지막으로 신지의 직위를 양위하는 것 외에 신지께서 스스로 신하되기를 자청해야 하는 것에 대한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얼핏 자존심이 극도로 추락하는 일일 것입니다만 그것만이 연맹국 전체 백성들이 준왕과의 수직적 관계를 정립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진정한 화해에 의한 직책의 양위라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일체의 불안이 일거에 해소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로지 신지께서만 이루어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버안이기도 할 것입니다.”


우도는 개인적으로 심한 모욕을 감당해야 할 내용들을 들었으나 현실을 인정하는 담대함을 보여 주었다. 역시, 큰 사건이 벌어질 경우 개인의 자존심보다는 그를 따르는 백성들을 먼저 생각하는 뼈대 있는 가문 출신의 지도자였던 것이다.


“내게 쓰디쓴 결단을 촉구하는 아픈 얘기를 전해야 했던 그대의 심정을 이제야 알겠느니 ... 내심의 괴로움을 이기고 기어이 나를 깨우쳐준 그대의 대단한 혜안과 용기에 치하를 보내오,”

곽엽을 물리고 그날 저녁을 뜬 눈으로 지새운 우도의 침전에는 온 밤동안 슬프도록 침울한 기류가 흘렀다. 결단을 촉구하는 운명 앞에 책임지는 자의 고독은 할 말을 잃은 뒤였다.


기실, 곽엽의 판단은 어느 정도 경욱이 예정해 놓은 수순의 연장선에 있던 종착지였다. 당초, 배에서 내리기 전 경욱이 톱니바퀴처럼 만들어놓은 일련의 수순대로 매끄럽게 진행되었기에 월지국의 현실과 결합하여 판단할 수밖에 없던 곽엽이 이를 반영하여 판단했던 것이다.


다만, 처리될 시간만은 경욱이 예정할 수 없었다. 그 부분은 오로지 월지국 안에서 진행되어야 하는 우도와 곽엽, 그들만의 결정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준왕이 위만에게 찬탈당하듯 우도 역시 소국을 찾아론 대국의 지도자 준왕에게 모든 것을 내어줘야 하는 경천동지할 큰일을 맞이하는 운명의 소용돌이에 함께 휘말려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에서 오신 준왕을 뵙습니다. 아직 미천한 이 연맹국들을 잘 다스려 주옵소서!”

준왕 일행이 배에서 내린 사흘째 날의 저녁, 월지국 신지 우도를 비롯한 칠십 팔개 연맹국의 수장들이 모두 준왕의 앞에 다가와 읍을 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위만의 배신으로 나라를 잃고 치를 떨던 준왕은 그제서야 비로소 가까운 이국의 땅을 기반으로 다시 조선을 수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음을 느꼈다. 감개무량한 기적같은 일이었다.


위만에 의한 급변사태를 겪은 후 다시금 조선을 회복하기 위해 날카로운 재기의 칼날을 가는 의지의 사나이가 되자 하늘은 잠깐 방심한 그의 죄를 사하고 새로운 나라를 보내준 것 같았다. 흡사, 하늘이 그의 의지를 실험한 것 같은 역사적인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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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천하제일권 사마철을 만나다. 24.02.09 32 0 16쪽
18 드러나는 적들 24.02.01 41 0 25쪽
17 맹인 검객 선우이치 24.01.21 44 0 50쪽
16 삼한제일검 길태곤 24.01.05 51 0 45쪽
15 또 다시, 고수를 찾아서 23.12.22 50 0 15쪽
14 소도의 태동 23.12.14 53 0 12쪽
13 운명을 함께할 첫 궤를 걸다. 23.12.11 54 0 14쪽
12 인연을 엮는 여정의 시작 23.12.07 56 0 11쪽
11 고수 탐문 23.12.05 61 0 14쪽
10 소문에 대처하다 23.11.28 67 0 13쪽
9 사방천지로 퍼지는 소문 23.11.24 66 0 11쪽
8 삼한의 탄생 23.11.21 66 0 20쪽
7 위만, 진시황을 꿈꾸다. 23.11.16 70 0 12쪽
6 <천경보전> 23.11.14 74 0 14쪽
5 신선 이야기 23.11.10 77 0 9쪽
» 남부소국연맹 23.11.08 78 0 24쪽
3 뱃머리를 남으로 23.11.03 78 0 10쪽
2 회상 23.11.02 110 0 33쪽
1 악몽 +1 23.10.13 267 1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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