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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가린
작품등록일 :
2023.10.13 20:53
최근연재일 :
2024.05.1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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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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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38

작성
23.11.03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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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뱃머리를 남으로

.




DUMMY

“갈 곳을 일러 주십시오!”

깊은 흐느낌으로 급격히 수척해진 준왕의 눈을 차마 마주보기가 민망했던 경욱이 머리를 조아리며 물었다.

“... 경의 생각은 어떠하오?”

힘없는 목소리로 답하는 준왕의 대답은 또 다른 물음이었다.


“신의 소견으로는 남쪽으로 가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전하께서도 아시듯 남쪽에는 칠십 여덟 개의 부족국가가 연맹을 맺어 함께 살고 있사옵니다. 그중 예로부터 가장 강성한 월지국이 나머지 소국들을 거느리고 있으니 일단 월지국으로 납시어야 의미있는 정착이 될 수 있을 것이옵니다. 후일의 일은 그곳에서 논의하시면 될 것입니다.”


“흐 ,,, 음!, 하아!”

신음같은 한숨을 거칠게 내뱉은 준왕의 표정은 담담했고 눈빛은 건조했다.

“경의 생각에 일리가 있는 듯 하니, 경의 뜻대로 하오. 나는 최대한 빨리... 조선을 벗어나고 싶으니, 조속히 정착할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해 주오.”


“명, 받들겠나이다.”

준왕의 심경을 간파한 경욱이 피난선의 방향을 지시하고 배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황급히 돌아서자 그의 뒤에서 그림자처럼 서 있던 무사 하나가 쏜살같이 뛰어올라 다음 배로 향했다. 뒤따르는 배들에게 행선지를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심신이 피폐해진 준왕은 탁왕자의 부축을 받아 별도로 마련된 방에 쓰러지듯 누웠다.

곧 반란을 진압하고 속히 데리러 가겠다며 안전지대로 피신시킨 왕비는 물론 병상에 누워계신 어머니조차 모시고 갈 수 없을 정도로 우왕좌왕한 지경으로 급히 피난을 올 수밖에 없던 진정 황망한 이 상황이 제발 꿈이길 빌었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하면 할수록 의식만 더욱 또렸해져 괴로움의 무게만 못 견디게 짓눌렀다.


눈을 감았지만 위만에 의해 죽어가는 군사들과 불타고 있는 왕검성에서 그를 부르는 왕비와 어머니의 모습이 뚜렷하게 교차되었다. 그가 꿈쩍 놀라며 번쩍 눈을 뜰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모습이었다. 눈을 뜨지도 감지도 못하는 준왕의 안쓰러운 표정을 바라보는 탁왕자는 꾸역꾸역 우러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피가 나게 입술을 깨물었다.


피곤에 지쳐 겨우 잠결에 든 준왕을 확인하고서야 왕자 탁은 선실을 빠져나왔다. 뒤따르는 어느 배에서 망국의 설움에 겨운 신하들이 흐느끼는 통곡소리가 메아리치다가 이내 잦아들었다. “일거에 터전을 빼앗긴 저들도 주체하기 힘든 온갖 감정이 뒤섞여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그 상태로 한동안 긴장하며 피난길에 올랐으니 아마 탈진했을 것입니다.”


왕검성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굳은 눈길을 거두지 않는 탁왕자가 통곡소리를 듣고 생각에 잠기자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경욱이었다.

“그럴테지요? 나름 대비를 했던 우리도 이런데 하물며 하루아침에 경천동지할 날벼락을 맞은 저들의 심정은 오죽 하겠습니까?”

탁왕자가 애써 하늘을 우러러보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다른 모든 것들이 우리를 버렸지만... 천만다행으로 일기 하나만은 손에 꼽을 만큼 좋군요, 천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경욱이 애써 웃으며 탁왕자를 바라보았다. 아닌게 아니라 바다가 무척 잔잔해서 항해 속도는 무척이나 빨랐다. 벌써 조선을 벗어나 먼 바다로 접어들고 있었다.

“다행입니다. 남쪽까지 무탈하게 가야 할 텐데요.”

탁왕자가 안도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언제까지 비탄에만 젖어 있을 순 없지요 ... 바쁘게 걸음을 재촉하면 빠른 시일 안에 남쪽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허허어 ...”

탁왕자를 위로하는 표정의 경욱이 빠른 시일내 재건의 초석을 다질 수 있다는 희망을 던졌다.

그렇게 두 사람이 진지하게 앞날에 대한 얘기를 하는 뱃머리의 앞쪽에서 보이는 수평선 너머로 석양의 그림자가 막 바다 밑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휘 ~ 익”

바람을 가르며 날아온 비둘기 한 마리가 앞으로 뻗은 경욱의 손바닥 안쪽에 쏟아져 내렸다. 늘상 해온 일인 양 자연스레 비둘기를 받은 경욱은 비둘기의 발에 동여매어진 작은 서신을 확인한 후 빠른 동작으로 그 서신을 능숙하게 푼 다음 빠르게 읽기 시작했다.


경욱이 서신을 읽는 사이 전서구는 뱃머리 위의 지붕에 걸터앉아 먹이를 먹기 시작했다. 서신을 읽기 전 경욱이 옷소매 속에 가지고 있던 주머니에서 곡류의 씨앗 한 웅큼을 꺼내서 그곳에 던졌기 때문이었다. 먹이를 먹으며 휴식을 취한 후에는 아무도 몰래 날아 왔던 곳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 보고드립니다. 이곳 월지국은 남부 연맹의 칠십 여덟개 부족국가들의 맹주국으로서 다른 소국들에 비해 위세가 대단합니다. 다만, 월지국의 현재 신지 우도는 연맹국 모두를 아우르는 권위와 존재감에 있어 이전의 신지들에 비해 떨어진다는 평이 돌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의 소견으로는 적정한 방안을 강구하신다면 최소의 노력으로도 월지국을 복속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월지국을 접수하신다면 나머지 연맹국들도 자연스럽게 복속될 수 있을 것이옵니다.


급하게 하명을 받아 허겁지겁 정세를 파악하다 보니 구체적인 내용을 싣지 못했지만 월지국 으로 오시는 동안 최선을 다해 상세한 정황을 보고하겠습니다. 무탈한 도착을 앙망하옵니다.진오 배상 -


진오는 경욱이 총애하는 간자였다. 지시사항에 대한 이해도가 빨라서 그것에 적합한 정보를 정확하게 수집하는 것에 일가견이 있는 유능한 인재였다.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친화력은 적재적소에서 필요한 정보를 발굴하고 있었다. 거기다 경지에 오른 무공을 보유한 고수였기에 긴박하게 지시한 이번의 자료 수집 지시에도 효용가치가 높은 정보를 적시에 보낸 것이었다.


“왕자님, 생각보다는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을 것 같사옵니다.”

경욱이 입가에 지긋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난을 겪은 후 지금까지 많은 상황들을 현장에서 지휘하며 그 부담을 온전히 짊어지던 그가 반가운 소식을 접한 때문인지 힘있게 말을 걸었다.


“남부연맹국의 맹주인 월지국만 복속시킨다면 나머지 국가도 함께 다스릴 수 있는 명분을 쌓을 수 있을 듯 합니다. 그곳에서 조선을 수복할 기반을 만들어야 할 것 입니다.”

당초 포구를 떠날 때는 목적지가 없어 피신에만 급급한 채 발만 굴렀으나 가야 할 방향을 잡으니 목적지가 보였고, 그곳에서 해야 할 목표까지 설정된 것이다.

“그렇습니까? 역시, 흠차대신께서는 치밀하십니다. 난을 겪어 힘든 그 와중에,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이런 의미 있는 정보들을 수집하셨는지 ...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하하 ~”

탁왕자 역시 오랜만에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진심으로 수고하셨습니다, 피곤하실 테니 이제 그만 주무시지요, 휴 ~ 요 근래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혹여나 과로하신 탓에 건강을 해치실까 우려됩니다.”

걱정스런 탁왕자의 눈길에 경욱이 머뭇거리며 주변을 스윽 한 번 훑었다. 아직 정리할 생각이 많은 것 같다고 판단한 탁왕자는 선실에 눈길을 한 번 주면서 말했다.

“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그후로도 한동안 암흑이 내려앉은 바다를 무심히 바라보며 이런저런 궁리를 하던 경욱의 뇌리에 불현 듯 진소의 얼굴이 떠올랐다. 진오의 쌍둥이 형이었던 진소는 위만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무공의 수위도 고강했지만 특히나 대륙어 전반에 능했다. 그중에서 위만의 출신국인 연나라 토어에도 능통했기에 연나라 유민들이 특히 많았던 서쪽 변경지역에서 활동하며 첩보를 수집하기가 용이했던 출중한 능력의 수하였다.


당초 진소로 부터의 서신은 일상적인 내용들이 주를 이루었으나 위만이 난을 일으키기 얼마전부터 이상한 동향들이 포착된다는 연통을 보낸 적이 있었다. 특히, 외부의 출입이 통제된 장소에서 수상한 일들이 발생한다는 정보가 있어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출입하겠다는 마지막 연통을 보냇으나 이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것이 마지막 연통이 된 것이었다. 오랜 경험상 위만에게 발각되어 변을 당했으리라 짐작만 할 뿐이었다.


“아! ... 어쩌면 이번 반란의 급작스런 발생에 진소의 역할이 촉매제 역할을 한건 아닐까?”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듯 경궁이 혼자말을 나지막히 읊조렸다.

‘위만이 전령을 통해 거짓 서신을 보낸 후 왕검성의 허락이 있자마자 성에 도착했음을 고했던 것부터 문제가 있었군 ...“

자문자답하듯 경욱이 혼자서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며 독백을 이어 나갔다.


”위만이 왕검성에 도달한 시간은 왕검성의 허락을 받은 후에 출발해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많이 이른 시간이었어 ... 그로 미루어 볼 때 위만은 급하게 거사를 추진해야 할 상황이 발생하여 속전속결의 각오로 반역을 도모한 게 아닐까?“

경욱은 뒤늦은 후회를 하며 결과를 중심으로 추리했다.


“위만의 실행이 빨랐던 원인 중에 혹시나 반역의 징후가 진소에게 발각되었기 때문이 아닐까?해서, 왕검성에서 그 사실을 알고 대비하기 전에 해결하고자 이판사판으로 결단하고 반역을 결행한 것은 아닐까?”

거기까지 추리했던 경욱이 갑자기 피식 웃으며 먼 하늘을 쳐다 보았다. 온통 암흑이라 조용히 출렁이는 물결만이 그의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어찌되었 건, 이미 상황은 끝이 나서 반역자 위만은 왕이 되었고, 우리는 쫒기고 있으니 이런 난리가 또 어디에 있을꼬? ... 휴우!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현실이 너무나 아프군 ... 엎질러진 물은 절대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말이야,”

경욱이 잠자리에 들기위해 선실로 발길을 돌렸다. 그의 뒷모습에 쓸쓸한 그림자가 따랐다.


고단한 시간들을 반추하듯 왜소했고 지쳐있었다. 그렇게 넓은 바다에 허허로이 떠도는 배들엔 단단히 허허로운 서글픈 밤을 지나며 깊어갈 것이었다.

선실 문을 열던 경욱이 갑자기 휘청거렸다.

“아아아! 정말로 아찔하군,“

문득 진소의 그 똘망똘망한 눈동자가 보고 싶어졌다. 깊은 탄식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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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살수왕 조도일 NEW 17시간 전 1 0 21쪽
21 소문을 타고 날아온 엽기 사건 24.04.24 5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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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삼한제일검 길태곤 24.01.05 50 0 45쪽
15 또 다시, 고수를 찾아서 23.12.22 49 0 15쪽
14 소도의 태동 23.12.14 52 0 12쪽
13 운명을 함께할 첫 궤를 걸다. 23.12.11 54 0 14쪽
12 인연을 엮는 여정의 시작 23.12.07 56 0 11쪽
11 고수 탐문 23.12.05 61 0 14쪽
10 소문에 대처하다 23.11.28 66 0 13쪽
9 사방천지로 퍼지는 소문 23.11.24 66 0 11쪽
8 삼한의 탄생 23.11.21 66 0 20쪽
7 위만, 진시황을 꿈꾸다. 23.11.16 69 0 12쪽
6 <천경보전> 23.11.14 74 0 14쪽
5 신선 이야기 23.11.10 77 0 9쪽
4 남부소국연맹 23.11.08 77 0 24쪽
» 뱃머리를 남으로 23.11.03 78 0 10쪽
2 회상 23.11.02 109 0 33쪽
1 악몽 +1 23.10.13 265 1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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