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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해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회귀자를 대신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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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해
작품등록일 :
2023.06.22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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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3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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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8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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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별바라기 (2)

DUMMY

회의가 끝난 뒤.


혹시나 싶은 마음에 다시 유진의 회원증에 능력을 사용했다.


혹시라도 내가 놓친 게 있나 싶어서 기억을 되짚었고, 성운석에 대한 기억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지는 않은지 심혈을 기울여 찾아냈다.


다행히 정보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이를테면 성운석의 파편이 대도시의 어딘가에서 발견되었다던가, 폐허가 된 방주도시의 지하에서 성운석의 잔해가 일부 남아있었다는 식이다.


그가 살아온 2000년이 넘는 세월에서 이런 기억들은 모호하고 사소하게 남아있었다.


인류를 구해야 한다는 사명. 별바라기라는 사기적인 능력. 끊임없이 반복되는 시간과 사람과 괴물이 죽어나가는 세월.


이런 시간 속에서 그가 그나마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망각이었으니, 나는 구태여 그를 책망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성운석이라는 게 이 땅에 남아있다는 건 알았으니까.


비록 이를 찾으러 가는 여정이 이상체와 이상현상으로 오염된 지옥도로 가는 길이라 해도, 한 조각의 성운석이라도 얻어서 한 명이라도 더 각성자를 깨울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희망이 되었다.


“먼저 와 계셨네요?”


1월 1일 새벽.


미리 본부의 옥상에 올라와 차를 마시고 있으니 뒤에서 세츠나가 말을 걸어왔다.


“응. 그래도 해돋이 정도는 보는 게 어떨까 싶어서. 고민도 많이 해결됐고.”


우울함은 여전했다. 아무리 능력으로 자아를 보호할 수 있다곤 해도 회귀자의 광기를 전부 막아낼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헤아릴 수 없는 세월 끝에 정련된 그 우울증은 설령 내 능력이 완전히 성장해도 온전히 막아낼 수 없을 것이다.


“다행이네요. 그래도 좀 밝아지신 것 같아서.”


“그 사람 기억에서 희망적인 것도 좀 봤거든. 다른 골드 등급 친구들이 꽤 대단했지.”


“거기에 저도 있었어요?”


“글쎄.”


나는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었다. 계속 우울할 순 없으니, 자주 웃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아서였다.


“어땠을 거 같아? 내가 없는 세상에선?”


“음...”


그녀는 잠시 뜸을 들였다.


“더 강하긴 했을 것 같아요. 전 회장, 각성자를 강화시키는 능력도 있었잖아요.”


“맞아. 장난 아니더라. 너도 꽤 살벌했고.”


동이 트기 전이었기에 주변은 어둠으로 자욱했다. 나는 쌀쌀한 새벽바람을 맞으며 말을 이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대괴수를 단칼에 베어서 떨어트리는 걸 봤어. 그 양반도 그걸 보니까 깜짝 놀라더라고.”


“진짜요?”


“이런 걸론 거짓말 안 해. 그 사람이 만난 그 많고 많은 각성자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항상 꼽혔어. 이 세상이 뽑기 게임이면, 너는 당첨 캐릭터였던 거지.”


“그건 좀 기분 나쁘네요.”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당첨 캐릭터를 뽑고도 도망쳤다는 거잖아요. 욕심이 많아도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나름의 사정이 있었던 거니까. 너무 욕하지는 마. 여러모로 복잡한 사람이었거든.”


회귀자의 사정에 대해선 대략적으로 설명해 두었다. 승천나비가 우리에게 위해를 가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는 내용과 무한회귀를 하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 과정에서 일어난 비극은 대부분 생략했고, 동료들 역시 이를 깊게 캐묻진 않았다.


그가 겪은 수천 번이 넘는 실패는 수천 번이 넘는 죽음을 암시했으니까.


“희소식. 저도 하나 가져왔어요.”


“뭔데?”


“맞춰 보실래요?”


동이 틀 무렵이 되었는지 슬슬 날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동료들이 하나둘 해돋이를 보러 옥상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사이에 나는 그녀의 희소식이 무엇인지 짐작했다.


“승급했어?”


“네. 잠재능력은 아직이지만, 하진 씨 말을 들으니 그것도 곧 일 것 같아요.”


뒤에서 동료들이 인사를 건넸다.


메이는 자기도 승급을 했고, 잠재능력까지 각성했다며 자랑했다.


메이를 제외한 다른 동료들도 슬슬 어떤 식으로 능력을 완성할지에 대한 구상이 끝났다고 했고,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며 희소식을 전했다.


해돋이를 바라보며 세츠나가 말했다.


“더 강해질 거예요. 이미 승급을 끝낸 메이도,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고요. 하진 씨가 항상 말했던 것처럼, 자료가 만들어 둔 틀에 갇히면 안 되는 거니까요.”


나는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해돋이를 바라봤다.


지난번에 짜둔 관을 없던 것으로 만들 생각은 없었지만, 세상을 저주하려던 마음은 한결 사그라들었다.


이런 동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니, 조금은 덜 미워해도 될 것만 같았다.


1월 1일. 한 해의 시작.


이 정도면 썩 괜찮은 시작이었다.




*****




1월 3일.


희소식이 추가로 들어왔다.


앞으로 보름 정도 뒤면 열차가 완성될 것 같다는 소식이었다.


그사이에 나는 다른 동료들에게 회귀자의 지식을 기반으로 성장을 돕기로 했다.


“체리 씨는 지금처럼 미리 꽃을 피워두는 쪽으로 계속 연습해주세요. 더 많이, 더 강한 꽃을 피울 수 있으면 돼요.”


“보리스 씨는 조만간 훈련에 적합한 환경을 제작해 드릴게요. 가혹한 환경이겠지만, 성장에는 확실히 도움 될 거예요.”


“캐시, 너는 아티펙트로 정신을 옮긴 상태에서 다른 기계를 제어하는 쪽으로 능력을 써 봐. 그러면 굳이 직접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다른 기계를 제어할 수 있을 거야.”


세 사람에게 충고와 지도를 마친 뒤. 나는 엘리자베스를 따로 휴게실로 불렀다. 그리고 그녀가 ‘1회차’ 때 죽은 원인인 ‘여섯 탄환’에 대해 물었다.


“엘리자베스, 혹시 저한테 뭐 숨기는 거 없어요?”


그 말에 엘리자베스는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재차 확인한 뒤 쓴웃음을 지었다.


“알고 계신 게 있으시면, 편하게 말씀하시죠.”


“아티펙트 이름. 다시 보여줄래요?”


그 말에 그녀는 자신의 아티펙트인 머스킷을 꺼냈다. 머스킷에는 영어로 ‘The Marksman’이라 적혀있었다.


“잠재능력, 혹시 이미 개발한 거면 마지막까지 아껴둬요. 써도 다섯 발만 쏘고요.”


보통은 ‘명사수’라는 뜻이지만, 그녀의 능력인 ‘마탄 사격’을 고려하면 ‘마탄의 사수’라고 해석하는 쪽이 옳았다.


백발백중의 여섯 탄환. 그리고 반드시 사랑하는 사람을 맞추게 되는 일곱 번째 탄환.


탄환을 쏘는 횟수는 갱신되지 않았고, ‘1회차’의 그녀는 여섯 번째 탄환을 쏘는 순간,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곧바로 일곱 번째 탄환을 자신의 머리에 발사했다.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엘리자베스는 그렇게 말하며 휴게실을 떠났고, 그녀가 떠난 걸 확인한 나는 이어서 메이를 불렀다.


“무슨 일이야? 요즘은 얼굴도 보기 힘들더니?”


“좋아할 것 같은 소식이 있어서.”


나는 테이블의 맞은 편에 앉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도룡선생. 네 스승님. 아직 살아계신 것 같아.”


“뭐?”


메이는 그 말에 헛웃음을 흘렸다.


“살아있었구나. 진짜 질긴 양반이야.”


메이는 그렇게 말하며 키득거렸고, 곧이어 살벌하게 눈을 빛냈다.


“이상체지? 아니면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있거나.”


예리한 반응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회귀자의 기억에서 봤던 도룡선생에 대해 말했다.


“맞아. 파수꾼 계열인 것 같아. 노아로 망명을 갔다가 그대로 이상체가 된 거겠지.”


“쌔겠지? 지금까지 살아있으면?”


“괴물 중의 괴물이지. 시가전이랑 대인전으론 세츠나 수준이니까. 무슨 예지력이라도 있는 것 같더라.”


“그거 잘됐네. 정정하셔서.”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회원증을 보였다.


[#6 메이 첸]

[코드명: Lancer]

[회원 등급: 블루(★★★)]

[각성 능력: 신체 강화]

[권장 포지션: 스트라이커]


[#3. 도룡]

[-정신을 집중해 대상의 움직임을 예측합니다.]


짧고 굵은 텍스트. 까맣게 칠해진 세 개의 별.


이론상으로는 고점에 도달했다고 보는 게 맞았지만, 그녀는 여기서 수련을 그만둘 위인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의 회원증을 보며 말했다.


“도룡지기라는 말. 나는 마음에 들어 해. 이름이 멋있잖아.”


도룡지기의 일화를 떠올렸다. ‘용을 죽이는 기술’이라는 화려한 뜻과는 달리 속뜻은 ‘세상에 용이 없는 데 용을 죽이는 기술이 무슨 소용이겠냐’는 의미였다.


“나도 마찬가지야.”


메이는 시원스레 말하며 웃었다.


“용으로 취급할 만한 게 넘쳐나는 세상이잖아? 전부 잡아 죽여줘야지.”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나는 그녀가 어떤 식으로 수련했을지를 상상하며 말을 이었다.


“수련할 때 용으로 삼은 거, 세츠나였어?”


“일단은 그랬지. 근데 이젠 안 그러려고.”


“왜?”


“더 하면 둘 중 하나 죽겠다 싶어서. 아무리 그래도, 우리 언니를 죽일 순 없잖아.”


무서운 여자들.


새삼스럽지만, 여기 여자들의 싸움은 물리적인 의미로 무섭다.


“더 할 말 없지? 이만 갈게!”


메이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 손을 흔들어 주었고, 나 역시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 배웅했다.


남은 사람은 세츠나뿐이었지만, 내가 그녀에게 해 줄 충고는 더이상 없었다.


그녀가 나중에 공간감을 무시하고 칼을 휘두른다는 것을 이미 알려주었으니까. 하늘을 나는 괴물을 떨어트렸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니까.


그녀가 각성할 당시에 태양을 향해 칼을 휘두른 것을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으니, 그녀는 언젠가 스스로 답을 찾아낼 것이다.


“보름이라...”


성운석 수색 계획은 이미 대략적인 구상이 끝났다.


인류가 지금까지 성운석을 거의 찾아내지 못한 이유는, 인간이 갈 수 없는 지역에 성운석이 있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초롱부름처럼 공중에 떠 있는 유랑도시라던가, 철인교회처럼 대도시 하나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리는 재앙이 펼쳐진 지역에서 성운석을 수색하는 건 종말 시대의 인류에겐 엄두도 내기 힘든 일이었다.


에리두가 우리를 깨울 정도의 성운석을 확보한 것도 사실상 천운에 가까운 셈이다.


“아, 생각할수록 화나네.”


나는 죽은 회귀자의 욕을 하며 혀를 찼다.


아무리 그의 기억을 유용하게 쓰고 있다곤 해도 그의 능력만큼은 아니었으니까.


빌어먹을 자식.


하다못해 능력이라도 주고 갈 것이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나는 내가 보름 사이에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로스앤젤레스.


그곳에 있는 ‘이상체 시장’과 ‘하얀평화’였다.


이상체 시장에는 온갖 종류의 이상체들이 모여 온갖 것들을 거래하고 있다는 정보가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되어있었고, 그런 이상체 시장의 치안을 유지하고 있는 게 하얀평화였다.


그렇기에 그곳에 있는 이상체들은 대부분 ‘치안’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렇지 못한 이상체들은 하얀평화가 전부 죽여버렸으니까.


둘 사이의 상관관계를 고려한 끝에, 나는 세츠나를 휴게실로 불렀다. 문자를 보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휴게실로 찾아왔다.


“문자, 엄청 오랜만에 보냈더라고요.”


“섭섭했어?”


“아니요. 그럴 리가.”


그녀는 차갑게 대답하며 내 옆의 의자에 앉았다.


“그래서 무슨 일이예요?”


“별건 아니고, 데이트나 하러 가자고 불렀지.”


“싫어요.”


그녀는 질색이라는 듯이 곧장 대답했고, 나는 굴하지 않기로 했다.


“싫어도 같이 가야 돼. 혼자 가긴 무서운 곳이라.”


“하아...”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로스앤젤레스에요?”


“아니. LA야.”


“나가 죽어주세요, 제발.”


그녀의 말에 나는 쓰게 웃었다.


애써 가볍게 말하긴 했지만, 사실 그녀와 LA에 가는 건 사심 때문이 아니었다.


성운석을 찾으려면 괴물의 소굴로 가야 했으니까.


그리고 '하얀평화'가 다스리는 그 ‘천사의 도시’에서 여차하면 가장 빨리 도망칠 수 있는 게 그녀와 나뿐이었으니까.


"살벌할 거야. 달콤하지도 않을 거고. 거긴 괴물들이 득실거릴 거거든."


나는 괴물이 이룩한 평화 따윈 믿지 않았다.


괴물의 손으로 이루어진 평화 따윈 괴물의 변심으로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는 법이니까.


그렇기에 나는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이번에도 잘 부탁할게. 지난번처럼."


이는 내게 평화가 아닌, 칼이 되어 달라는 뜻이었다.


"그래요..."


그녀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악수를 받아주었다.


"내가 아니면 누가 챙겨주겠어요. 이것도 익숙해 져야겠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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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회장, 회귀, 회상 (1) +2 23.07.25 484 27 13쪽
37 기억술사 (3) +1 23.07.24 440 33 12쪽
36 기억술사 (2) +2 23.07.23 439 26 13쪽
35 기억술사 (1) +1 23.07.22 443 31 12쪽
34 아침 해 23.07.21 460 35 12쪽
33 새벽녘 (3) +1 23.07.20 466 34 15쪽
32 새벽녘 (2) +3 23.07.19 526 34 13쪽
31 새벽녘 (1) +1 23.07.18 529 33 13쪽
30 불면의 밤 (2) +5 23.07.17 564 40 15쪽
29 불면의 밤 (1) +4 23.07.16 569 33 13쪽
28 길을 트는 자 (4) +5 23.07.15 591 39 13쪽
27 길을 트는 자 (3) +5 23.07.15 599 39 13쪽
26 길을 트는 자 (2) +5 23.07.14 732 5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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