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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해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회귀자를 대신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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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해
작품등록일 :
2023.06.22 21:46
최근연재일 :
2023.08.03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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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3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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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길을 트는 자 (1)

DUMMY

지난 회의를 끝내고 삼일 뒤.


우리는 본격적으로 개척 사업을 시작하기 위한 자료를 모아 회의를 진행했다.


시작은 다른 루트에 대한 검토 작업이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항구를 정비해가면서 해로를 쓰는 건 힘들 것 같죠?”


내 말에 엘리자베스가 고개를 저었다.


“힘들 겁니다. 연료야 핵융합 엔진을 쓰면 해결된다고 해도, 해저에서 습격당하면 꼼짝없이 죽는 수밖에 없으니까요. 지금의 인프라로 조선시설을 설치하거나 배를 새로 건축하는 것도 무리일 거고요.”


거기까지 확인을 마친 나는 항로 개척 계획을 옆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남은 두 종류의 계획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면 남은 건 차도를 정비하거나, 철로를 정비하는 건데. 각자 일장일단이 있긴 하네요.”


차도를 정비하는 건 초기 투자 비용이 적게 들고, 소수의 인원 및 물자를 운반하기에 적합하다.


하지만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장애물과 야생동물, 이상체와의 충돌을 고려하기 때문에 속도가 제한된다.


무엇보다도 한 번에 대량의 물자 및 자원을 운송하기에는 상대적으로 효율적이지 않다.


“이쪽은 무엇보다도 연료 문제가 제일 크겠죠. 전기 연료든 디젤 연료든 핵융합 연료에 비하면 가성비가 안 좋으니까요. 게다가 디젤 연료 쪽은 영혼까지 끌어 쓴 모양이니, 이쪽은 전기 수급용 인프라가 천문학적으로 들겠죠.”


물론 이런 문제는 인류가 부활하면 언젠가 해결될 것이다.


22세기의 캘리포니아는 시제품으로 사용하던 핵융합 에너지를 제외하면 100%에 가까운 수준의 에너지를 친환경 전기로 충당했다고 하니까.


그러니 다른 지역 역시 인프라만 갖춰진다면 인류가 차량을 운용하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이쪽은 철로 계획인데, 이쪽도 비용을 무지막지하게 잡아먹는 건 마찬가지더라고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철로 정비에 관한 얘기를 시작했다.


“연료 쪽은 에리두에 비축된 초기형 핵융합 엔진을 개량하면 해결될 거예요. 열차는 운행 중단된 열차들을 수리해서 쓰면 될 거 같고요. 그러니까 문제는 철로의 수리랑 유지관리 쪽일 거예요.”


“유지관리 쪽은 이상체만 정리한다면, 노후화된 시설을 보수하는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보리스는 자료를 프로젝터에 띄우며 말했다. 22세기의 소방관 출신인 점이 어디 가지 않았는지 그가 조사한 재난 자료는 제법 유용했다.


“동면 직전 시대 열차의 탈선 사례 및 통계자료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상체의 습격으로 선로가 망가지거나 열차가 공격받는 사례를 제외하면 열차 사고의 가능성은 희박할 것으로 보입니다. 해당 자료는 이상체 활동 시기를 포함한 것이니, 지금은 그것보다 훨씬 확률이 낮을 겁니다. 놈들의 기세는 옛날 같진 않으니까요.”


보리스의 말을 들으며 재난 통계자료를 훑어봤다.


이상체의 습격을 포함한 열차 탈선 사고는 3년에 한 번꼴로 일어났고, 이상체의 소행으로 밝혀진 것을 제외하면 탈선 사고는 20년에 한 번 일어나는 수준이었다.


그마저도 당시에 전 세계에서 놀랐을 정도로 이례적인 일 취급받았으니, 철로 일대의 이상체를 소탕하고 포탑을 설치한다면 열차 운행 자체는 안전할 것이다.


옛 인류 역시 세상이 망하기 전엔 이런 방식으로 열차를 운행했으니 우리 역시 이를 따라 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위험하니까 하지 말자는 말은 안 할게요.”


체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열차를 타다가 탈선하면 다 죽는 건 마찬가지잖아요? 애초에 그렇게 하나씩 따지고 들면 자동차도, 함선도, 비행기도 운용 못 하니까요.”


그녀는 자료 화면에 떠오른 지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엇보다도 길을 만든다는 목표를 생각하면, 열차는 임시 보급소로 쓰기에도 좋은 편이에요. 중요한 경로마다 베이스캠프 공사를 해야 할 때도 유용할 거고요. 여차하면 간이 포탑을 탑재해서 열차포처럼 쓰는 방법도 있겠네요. 그러면 레일을 달리는 레일건이 되겠죠.”


나는 물 흐르듯 끼어들어 온 체리의 개그 욕심을 무시하며 생각했다.


도로 정비와 철로 재건.


이 중 빨리 끝나는 건 도로 정비일 것이다.


극단적인 예시이긴 했지만, 오프로드 차량으로 평탄한 경로를 찾기만 해도 오프로드용 도로를 확보하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22세기의 북미대륙은 툭하면 폐차로 인해 도로가 끊기던 환경이었기에 오프로드용 차량 역시 대중적인 편이니 이런 루트 역시 고려할 만한 선택지였다.


그렇게 한동안 차도와 철로 중 어느 쪽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게 나을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고, 논의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결론을 내렸다.


“차도 쪽도 언젠가 정비하면 괜찮겠지만, 역시 철로 사업 쪽이 더 안전하긴 하겠죠. 그러는 쪽이 여차하면 노아를 탐색할 일이 생겼을 때 준비하기도 좋을 거고요. 그리고, 저번에 말했던 것도 철로를 염두에 두고 했던 말이긴 했거든요.”


철로 사업이 안전한 이유는 북미대륙의 광활한 크기 때문이었다.


체리의 말대로 요충지마다 베이스캠프를 건설하면서 이동할 수 있다면 가까운 대도시나 방주도시에서 추가로 물자를 확보하러 가기도 쉬울 것이고, 그러다가 운이 좋다면 다른 각성자나 생존자를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운 좋게 성운석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면 각성자 인력 보충에 큰 도움이 될 테니, 큰 그림을 놓고 봤을 때 철로 사업이 주는 이득은 도로 정비 사업보다 우월했다.


여차하면 열차에 차량을 실어서 필요한 지역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은 덤이었다.


“그... 저기 궁금한 게 있는데.”


잠정적으로 결론이 났다고 생각한 그때, 캐시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여기서 나 말고 엔지니어 계열 전공한 사람 있어? 있지? 제발 그렇다고 해주라. 응?”


그 말에 모두가 딱하다는 듯이 캐시를 바라봤다.


[#4 캐시 해서웨이]

[코드명: Trickster]

[회원 등급: 블루(★★☆)]

[각성 능력: 기계 조작]

[권장 포지션: 스카우트]


그녀는 우리 중 유일한 엔지니어였고, 아예 그쪽으로 특화된 각성자였다.


그러니 로봇을 제외하면 우리 중 이번 사업에서 가장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그녀였다.


대부분의 일이야 로봇으로 해결할 수 있겠지만, 인간의 손을 거쳐야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녀의 혹사는 예정된 셈이었다.


“문돌이들아. 부탁인데, 제발 다 죽어주라. 제발.”


울상을 짓는 그녀를 향해 모두가 시선을 피했다.


그나마 보리스가 간단한 납땜과 배관 수리 정도를 도와줄 수 있다고 했을 뿐.


내가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그저 번갈아 가면서 당번을 정해 조수를 배정해주겠다는 것과 전투 작전에서 가능하면 예비군으로 열외 시켜주겠다는 약속 정도였다.


물론, 그마저도 급하면 언제든 깨질 수 있는 공수표에 불과하다는 것은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당장 사람이 죽게 생긴 상황에서도 휴일이니 규칙이니 따지고 들 수는 없는 법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우리는 단 한 명의 공순이가 울상을 짓는 것을 뒤로한 채 다음 의제로 넘어갔다.


사업이 결정됐으니 이를 진행할 물자와 로봇을 확보할 계획을 세워야 했기 때문이다.


“저번에 회장님도 언급한 부분이지만, 로봇 쪽은 실리콘밸리 쪽을 탐색하면 추가 생산에 필요한 부품을 구할 수 있을 거예요. 대부분은 고장 났겠지만, 에리두의 재활용 기술을 활용해서 쓸만한 부품을 분해하거나 수리하는 건 가능하니까요. 핵융합 열차 개량에 필요한 부품도 마찬가지로 마찬가지일 거고요.”


체리는 실리콘밸리의 로봇 연구시설 및 생산시설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하며 말을 이었다.


“로봇 자원은 에리두의 수비 보강에도 쓸 수 있고, 베이스캠프 수비 및 정비에도 쓸 수 있으니 최대한 확보하는 걸 추천할게요. 레일건 장비를 추가 제작할 수 있는 건 덤이고요.”


레일건이라는 말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포탑에 설치된 레일건 한 방에 들개 형상의 이상체 무리가 폭사하는 걸 자료 화면을 통해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전기를 잡아먹는 괴물이란 걸 빼면, 완성된 레일건 시스템은 화력과 가성비를 모두 챙긴 22세기의 걸작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었다.


“재활용 기술이 발달해서 다행이네요. 그러면 실리콘밸리 탐색과 실리콘밸리를 오가는 보급로 확보를 다음 목표로 잡죠. 그리고 작전 개요를 짜는 회의는 희망자만 참여하는 걸로 할게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말이 없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메이는 회의가 길어지자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세츠나는 무언갈 열심히 적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해하기 쉽지 않은지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내용은 얼추 정리된 것 같으니, 오늘 회의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회의에는 희망자만 참여하게 하는 걸 고려하며, 나는 쓴웃음과 함께 회의를 끝냈다.


“다들 회의 참여해주셔서 감사해요. 실리콘밸리로 출발하는 건 준비가 끝나야 가능할 테니, 그동안 체력 관리에 신경 써 주세요.”


그 말과 함께 다른 회원들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고, 세츠나는 옆에 있던 메이를 콕콕 찔러서 깨웠다.


“아, 졸았네.”


메이는 잠을 깨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제 가도 되는 거야?”


“뭐, 궁금한 게 없으면 그래도 돼.”


그러자 메이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알지?”


“그래, 그래.”


메이는 기지개를 피면서 회의실을 떠났고, 그 모습을 보면서 세츠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못 말리겠네요.”


“내버려 둬. 속 편한 것도 장점이지 뭐.”


나는 목을 돌려 스트레칭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우리 아가씨께서는 무슨 일로 남으셨습니까.”


“별 것 아니에요. 그냥 좀 답답해서요.”


“모르는 용어가 많아서?”


“네. 그나마 말하는 도중에 나오는 건 문맥으로 어떻게 넘겨짚을 수 있는데, 자료는 봐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사실 몰라도 돼. 나도 다 알고 가져다 쓰는 건 아니거든.”


“그래요?”


“애초에 핵융합 엔진이 뭔지도 잘 몰라. 그냥 쓰면 좋다니까 대충 주워들은 거로 인용하는 거지. 이것도 사실 설국열차라고, 옛날 영화에서 본 적 있어서 겨우 알게 된 거야.”


그녀는 못 미덥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고, 나는 그녀의 오해를 풀기 위해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자기 전공 분야가 아니면 잘 모르는 게 당연한 거야. 필요한 것만 배우기도 바쁜 세상이잖아. 요령껏 살아야지.”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녀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했고,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이 끝나길 기다렸다.


“그러면 실리콘밸리 쪽 이상체 자료를 좀 골라주실 수 있으세요? 저도 미리 알고 가면 더 좋을 것 같아서요.”


좋은 현상이다. 세츠나가 공부를 하면 메이도 공부에 흥미가 좀 생길 테니까. 그 녀석은 머리가 나쁘다기보단 공부 자체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 게 문제였다.


“지금 키워드만 추려서 보내줄게. 나머지는 비서 로봇이나 정보망으로 검색하면 될 거야. 체리도 이런 쪽으론 나름 잘 아는 편이니 모르는 건 그쪽에 물어봐도 되고.”


나는 단말기로 키워드를 전송하며 말했다.


“그리고 보내준 키워드 중에서 도플갱어 부분은 대처법까지 한 번 읽어봐. 나중에 회의 때 말하긴 할 건데, 예습하면 좋으니까.”


“아, 그건 알아요.”


세츠나는 아는 게 나오자 표정이 밝아졌다.


“제 세대에도 도시 괴담으로 유명했거든요. 그래서 생각해 둔 게 있는데, 말해도 될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주변을 살핀 뒤 도플갱어 괴담과 이에 대한 구분법에 대해 속삭였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자 나는 그녀 앞에서 똑똑한 척을 했던 자신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다.


헛똑똑이라는 게 이런 거겠지. 역시 사람은 겸손하고 볼 일이었다.


그녀가 만든 구분법은 두고두고 유용하게 쓰였으니까.


여러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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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회장, 회귀, 회상 (1) +2 23.07.25 484 2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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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기억술사 (2) +2 23.07.23 439 26 13쪽
35 기억술사 (1) +1 23.07.22 443 31 12쪽
34 아침 해 23.07.21 460 35 12쪽
33 새벽녘 (3) +1 23.07.20 466 34 15쪽
32 새벽녘 (2) +3 23.07.19 526 34 13쪽
31 새벽녘 (1) +1 23.07.18 529 33 13쪽
30 불면의 밤 (2) +5 23.07.17 564 40 15쪽
29 불면의 밤 (1) +4 23.07.16 569 33 13쪽
28 길을 트는 자 (4) +5 23.07.15 591 39 13쪽
27 길을 트는 자 (3) +5 23.07.15 599 39 13쪽
26 길을 트는 자 (2) +5 23.07.14 732 5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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