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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해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회귀자를 대신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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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해
작품등록일 :
2023.06.22 21:46
최근연재일 :
2023.08.03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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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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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4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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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기억술사 (3)

DUMMY

나는 새로 발급받은 회원증을 바라봤다.


[#8 남하진]

[코드명: Reminiscence]

[회원 등급: 퍼플(★★★☆)]

[각성 능력: 기억 회상 및 전이]

[권장 포지션: 서포터]


[기술 일람]

[#1. 기억 부여]

[-아티펙트로 대상에 기억을 부여합니다.]

[-부여한 기억은 아티펙트로 회수할 수 있습니다.]


승급은 예상대로 성공했다.


별이 하나 더 검게 칠해졌고, 그동안 능력을 연마한 덕에 숙련도와 완성도 역시 현저히 상승한 게 느껴졌다.


이제 웬만큼 기억을 읽는 것으로는 기절하지 않았고, 필요한 기억을 원하는 만큼 취사선택하여 읽어내는 것 역시 가능했다.


그러니 이는 분명 기뻐해야 할 만한 일이었으나, 막상 승급에 성공했음에도 이를 온전히 기뻐하긴 힘들었다.


이 능력이 사용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금기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핵무기에 대한 이론을 연구하는 것과 핵무기가 사용되는 것을 바라보는 게 전혀 다른 일인 것처럼.


능력의 개발을 구상하던 때의 기대가 무색하게도 지금의 심정은 착잡함에 가까웠다.


내 인격을 지닌 동물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


혹은 다른 사람의 인격을 지닌 동물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 어쩌면 내 인격을 지닌 이상체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본능적인 거부감을 자아냈다.


물론 이는 내가 능력을 절제하면 그만인 일이다.


인격과 기억, 기록을 구분해서 부여하면 될 일이었다.


애초에 나는 인격을 부여하는 식으로 능력을 쓸 마음이 없었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런 식으로 능력을 쓰게 된다고 하더라도 이는 심각하게 고민한 끝에 이루어진 일일 것이다.


그건 인간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인간으로서의 선을 넘는 일이었으니까. 인간다움을 잃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러한 고민은 이 능력을 떠올린 본래의 의도, 이상체의 정신에 간섭하는 것은 과연 인간다운 일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이상체는 물론 인류의 숙적이다.


초롱부름과 철인교회의 사례만 보더라도 그들의 주요 공격수단은 정신오염이었고, 이는 인류가 멸망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이상체가 인류를 살해할 의도를 지니고 태어난 것은 아니었다.


철인교회의 기억을 떠올렸다.


놈들이 부르는 성가는 인간으로서 저항할 수 없는 음색으로 사람을 이상체로 만들었다.


만약 나 역시 면역력이 없거나, 혹은 면역력이 손상된 상태였다면 그들과 마찬가지로 사이보그가 되었을 것이다.


철인교회뿐만이 아니다.


태풍을 맨몸으로 버텨낼 수 없고, 해일을 조각배 하나로 버텨낼 수 없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이상현상에 휩쓸려 이상체가 되었고, 이에 저항하는 것은 초인적인 정신력이 있어도 불가능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지금까지 보고 배워온 이상체는 하나의 생명으로서 오롯이 존재했다.


밴딧은 굶주림과 탐욕을 위해 사냥에 나선다. 이는 여느 야생동물과 다를 게 없다.


컬렉터는 호기심이 강해서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물건과 생물을 수집한다. 이는 여느 인간 수집가와 다를 게 없다.


철인교회는 인간이 사라진 도시에서 조용히 기도를 하며 보냈다.


초롱부름이 인간을 사육하는 것은 인간이 가축을 사육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대화가 가능하고, 지성이 있고, 하나의 생태를 지닌 생명체.


이들에게 능력을 사용할 명분은 생존을 위해서라는 것 말고는 없었다.


그러니 이러한 명분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나는 초롱부름과 다를 게 없어진다.


내가 처음으로 만난, 그토록 혐오했던 이상체와 나 자신이 본질적으론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숨통을 조여왔다.


문득 세상이 저주스러워졌다.


사방에 괴물이 돌아다니고, 언제 어떻게 불가해한 현상이 일어날지 모르며, 나 역시 이상을 탐하는 괴물과 마찬가지로 흉기를 휘두르며 살아간다는 게 새삼스럽게 실감이 났다.


주의를 돌리기 위해 나는 달력을 바라봤다.


12월 24일.


현재 시각은 새벽 2시.


아침이 되면 크리스마스 이브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연말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축제인 만큼 다들 들떠 있었고, 나는 이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내일 아침에 우울함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저들이 온전히 축제를 즐기게 하고 싶었다.


결론을 나오자 나는 지하층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사지가 잘린 채 잠든 철인교회의 ‘목자’가 격리된 곳으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놈을 처음 발견했을 때를 떠올렸다.


놈은 스탠퍼드 대학의 지하에 사지가 잘린 채로 감금되어 있었다.


주변의 기억을 발굴해 추측하건대 약 백여 년 전에 놈들 사이에서 세력 다툼이 있었고, 녀석은 이때 패배하여 다른 철인목자에게 보복을 당한 것으로 보였다.


놈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우리는 잠시 논의했다. 그리고 녀석이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라는 것을 확인한 뒤, 놈을 격리실에 가두고 연구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격리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지하의 최심부에 위치한 격리실에는 철인목자를 제외하고도 온갖 종류의 이상체 샘플이 보관되어있었다.


대부분은 살점이나 뼛조각 따위였고, 시체의 상태가 온전한 경우에는 박제 처리된 것도 있었다. 얼핏 보기엔 흉물스러운 괴물 박물관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놀라지는 않았다.


그들을 이용해 면역제 개발을 하자고 주장한 건 다름 아닌 나였으니까.


뻔뻔스러워져야 했다.


늘 그래왔다는 듯이 당연하다는 발걸음으로 나아가야 했다.


애초에 인간은 이런 식으로 진보해왔다는 듯이, 이제 와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는 듯이 능청스러워져야 했다.


철인목자가 갇힌 격리실이 눈에 보인다.


사방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새하얀 격실에 사지가 잘린 사이보그가 눈을 감고 벽에 기대고 있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놈은 일종의 뇌사, 혹은 가사상태였다.


면역제, 혹은 이상체 기술 연구를 위해 이보다 좋은 실험체는 살아있는 이상체 정도를 제외하면 아마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이를 알고 있었기에, 격리실의 문을 열고 아티펙트를 꺼냈다.


하얀 빛무리와 함께 단도가 손에 쥐어졌다.


숨을 골랐다.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 자체에는 변함이 없었으니까.


세상에는 끊임없이 재생하는 괴물도 있고, 하나라도 놓치면 끊임없이 서로를 부활시키는 괴물도 있으며, 끊임없이 체력과 정신력을 소모시킨 뒤 지쳐있을 때를 노리는 괴물도 있다.


세츠나의 칼로 벨 수 없는 괴물도 분명히 존재하고, 아예 예지력에 가까운 인지능력을 지닌 괴물마저 분명히 존재한다.


손 패를 하나라도 더 채워놔야 했다.


그리고 내 손 패를 과시하여 동료들 역시 하루라도 빨리 패를 채워둬야 했다.


언제까지고 상성 상 유리한,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적만 만나리라는 보장 따윈 그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아티펙트를 이상체에게 겨눴다.


어떤 기억을 떠올릴지 고민했다.


어떤 기억이 놈의 정신을 일깨우고, 이상체에게도 내 능력이 제대로 통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잠시 고민한 끝에, 나는 녀석이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됐는지를 떠올렸다.


놈은 패배자였다.


파벌싸움, 혹은 이념싸움에 밀려 다른 목자에게 사지를 잘리고 정신을 파괴당한 본보기였다.


따라서 나는 실리콘밸리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놈을 이렇게 만든 세력이 어떤 식으로 몰락했는지를 떠올렸다.


이에 대한 기억을 한 점으로 모아 칼끝에 먹물이 맺히게 했다.


집중이 끝났고, 칼이 놈의 어깨를 찔렀다.


기억을 흘려보냈다. 선명하게 퍼지도록 정신을 집중해 기억을 부여했다.


3초.


기억을 완전히 부여했다고 판단했기에 칼을 뽑았다. 놈의 어깨는 먹물이 퍼진 자국으로 자욱했다.


시선을 집중해 녀석을 바라봤다. 놈이 눈을 뜨는 게 보였다. 여차하면 놈의 목을 칠 기세로, 나는 긴장의 끈을 부여잡고 녀석의 반응 지켜봤다.


[전쟁은...]


놈이 입을 열었다. 삐걱거리는 기계음이 낡고 녹슨 성대에서 흘러나왔다.


[전쟁은... 끝난 겁니까...]


놈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기도문이 아니었다.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여 놈의 물음을 긍정했다.


“끝났지. 당신들과 하던 전쟁은. 우리는 스탠퍼드에서 당신을 발견했고.”


[인류는... 살점을 지닌 인류는... 얼마나... 남았습니까...]


특이하다 여겼다.


지금까지 보아온 철인교회의 괴물들은 전부 기도문을 외우기에 바빴으니까.


어쩌면 이것이 녀석이 축출된 이유는 아닐까 생각하며, 나는 일단 놈의 대화에 응하기로 했다. 이 또한 이상체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될 거란 판단 때문이었다.


“일곱 명. 동면한 사람을 제외하면, 내가 아는 한에선 일곱 명이 전부야.”


[아... 일곱... 일곱만 남았군요...]


놈은 생각에 잠긴 듯 말을 멈췄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고, 침묵 속에서 나는 녀석이 무슨 말을 할지 추측했다.


나를 이용해 탈출하려고 할까. 아니면 성가를 노래해 세뇌하려 할까. 그도 아니면 그냥 죽여달라고 눈물을 흘릴까.


[죄를 지었습니다.]


놈의 고해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신앙이란 이름으로 말미암아, 옛 이웃을 몰아내었습니다.]


또렷하고 맑은 목소리로. 치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놈은 눈을 감았다.


[부디. 자비를. 자비를 베푸소서.]


내가 모르는 새로운 능력이나, 이상현상을 일으킬 전조는 아닐지 의심했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놈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나는 방주의 인공지능을 불러내 녀석의 상태를 확인할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확인한 결과, 놈의 척추 부근에 해당하는 회로가 조금 전에 일어난 스파크로 인해 훼손되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다시 기억을 불어넣었다. 이번에는 크리스마스에 관한 기억이었다.


행적으로 보나 기도문으로 보나 그리스도교 계열 사이비인 것 같았으니, 크리스마스라면 반응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녀석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이 세상의 모든 고통과 자극에서 벗어나기라도 한 듯이, 굳은 몸으로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나는 격리실을 빠져나왔다.


최소한의 조명만이 빛나는, 깊고 어두운 통로를 지나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버튼을 누르고, 숙소로 향하며, 나는 이상체의 자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한때 인간이였던 존재의 말로를 동정해야 할까, 아니면 괴물을 자살시킬 방법을 알아냈으니 기뻐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없었던 일로 치부한 채 묻어둬야 할까.


만약 녀석이 정말로 속죄를 원해서 자살한 거라면, 나는 놈을 인간답게 죽었다고 평해야 하는 걸까.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발걸음을 옮겨 개인실로 향했다. 적막한 복도에는 내 발걸음 소리만이 들렸다.


개인실에 도착한 뒤 문을 열었다.


결론은 나오진 않았다. 다만, 나는 이 모든 걸 기억하기로 했다.


내 능력의 본질이 세뇌가 아닌 회상이라는 것을 곱씹었다.


내가 괴물이 아닌 인간으로 남을 수 있도록. 선을 넘지 않도록 경계를 그었다.


이제 남은 것은 전 회장의 기억을 보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때 만난 ‘나비’에 대해 더 깊게 파헤치는 일이었으니까.


호접몽의 일화를 떠올린다.


기억 속에서 나는 회귀자가 될 것이다.


이제는 능력이 충분히 강해진 만큼 더 깊은 기억을 보게 될 것이다. 능력을 통제할 자신이야 있었지만, ‘나비’라는 변수가 있는 이상 내 정신이 오염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회귀자의 기억을 엿보고도 내가 나로 남을 수 있길 바랐다. 회귀자의 기억에 휩쓸리지 않고 나로 있을 수 있길 바랐다. 새롭게 알게 될 진실을 보고서도 망가지지 않을 길 바랐다.


그의 기억 속에서 나비가 말했듯, 나는 그와는 다른 선택을 내리고 싶었다.


단 한 명의 희생도 죽음도 없이 안전하게. 온전히 인간으로서 사명을 다하고 싶었다.


애써 생각을 정리한 뒤 간단하게 몸을 씻고 침대에 누웠다.


다만, 잠이 쉽게 오지 않아 흘끗 시계를 바라봤다.


현재 시각은 새벽 네 시.


오늘은 여전히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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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회장, 회귀, 회상 (1) +2 23.07.25 485 27 13쪽
» 기억술사 (3) +1 23.07.24 441 33 12쪽
36 기억술사 (2) +2 23.07.23 439 26 13쪽
35 기억술사 (1) +1 23.07.22 443 31 12쪽
34 아침 해 23.07.21 460 35 12쪽
33 새벽녘 (3) +1 23.07.20 466 34 15쪽
32 새벽녘 (2) +3 23.07.19 526 34 13쪽
31 새벽녘 (1) +1 23.07.18 529 33 13쪽
30 불면의 밤 (2) +5 23.07.17 564 40 15쪽
29 불면의 밤 (1) +4 23.07.16 569 33 13쪽
28 길을 트는 자 (4) +5 23.07.15 592 39 13쪽
27 길을 트는 자 (3) +5 23.07.15 599 3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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