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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쿤1 님의 서재입니다.

처용과 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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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쿤1
작품등록일 :
2015.03.24 22:14
최근연재일 :
2015.03.29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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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29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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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쪽

변혁의 소용돌이 23

DUMMY

금성 외곽에 천경림이라는 숲이 있었다. 입구에서 한참을 들어가야 신사가 나온다. 좌우로 빽빽한 아름드리나무들이 수호하는 천혜의 신사는 국가와 왕실의 중요 행사는 물론 천제를 올리는 곳인데 이미 문무백관이 사당 안에 들어 차 있었고 제사를 담당하는 의관들은 즐비하게 신궁 안에 도열해 제왕 일행을 맞이하고 있었다.

곧 왕과 왕비의 행렬이 신궁으로 들어올 것이란 알림이 왔다. 의관과 백관이 모두 입구로 나가 행렬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왕과 왕비를 태운 어가가 입구에 서자 대기하던 시위군관들이 엎드려 절을 하고 신관과 의관들이 몸을 돌려 인사 채비를 갖추지만 직접 걸어 나오지는 않았다. 왕과 왕비가 가마에서 내려 여러 걸음을 걸어서 입구에 당도했다.

향이 피어오르고 주례의 의식에 따라 추도사가 낭독되고 마지막으로 왕이 향을 올리고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을 했다. 왕비들도 그의 뒤에서 절을 했다. 사당에는 단군, 한웅, 한인의 영정 그림이 나란히 안치되어 있었다.


“불교가 국가 지정 종교로 인정을 받았지만 우리 신궁의 전통을 배격할 수는 없소. 신교는 태곳적부터 내려오는 전통입니다. 불교보다도 수천 수백 년 오래된 우리 민족의 뿌리가 아니오. 그 뿌리를 잊는다면 불교도 뭐도 없는 것이오, 그리고 불교도 부처에게 절을 하는 것은 매한가지 아니오? 원효대사께서도 한낱 나무나 돌, 철 구조물에 지나지 않는 부처에 절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는데 불교의 도반들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그분 원효대사님을 존경하지 않소? 이 문화시중은 그것이 정도라고 알고 있소이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그른 게 있습니까?”


시중 위진이 화를 참으며 말을 했지만 누가 듣더라도 그가 호통을 치고 있음이 분명했다. 위진은 경문왕이 개혁정책을 하는데 가장 앞장서서 주도하는 대리인이었다. 앞으로 경문왕의 신임은 물론이고 뒤로 두 중전의 종애를 듬뿍 받고 있기에 골품의 서열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 사정을 알고 있는 불교계에선 함부로 상대하지를 못했다.


“신 현덕 아뢰옵니다. 부처에게 절하는 것은 한낱 석가모니 개인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를 주관하시는 절대적인 진리에 경배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진리에 순응한다는 의미를 가진 행위인 것입니다. 철 구조물이라 허셨습니까? 부처를 돌이나 나무를 깍은 것도 철을 녹여 끓여 부은 것도 다 본질을 만들기 위한 인간의 순응심을 보이는 과정일 뿐입니다. 그 결과물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과정에 개입되는 인간의 마음을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경문왕의 면전에서 그의 얼굴을 보며 말을 하지만 현덕에게 왕이 직접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모든 걸 대리인인 위진이 대신하고 있었다.


“마음이 중요하다고 자신할 수 있다면 그럼 불상을 치우시던가요. 왜 불상에 무릎을 꿇습니까? 그냥 허공에 절을 하면 그만이지. 같은 이치로 설명할 수 있겠군요. 우리 신궁에서 절을 하는 것은 우리 조상이신 단군님께 절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 보다도 더 근원적 삼신이신 한인천제, 한웅천제께 절하는 겁니다. 절대자가 아닌 우리 조상님께 절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은 말로 표현하자면 조물주이시고 조화주이신 우주를 주관하는 절대자입니다. 인간처럼 한분 두 분 셀 수 있는 그런 개념이 아닙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기 위해 한 사람의 인격을 가진 것처럼 설명하기 위해 영정이 필요한 것일 뿐입니다. 그분은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불교계의 대표인 현덕은 해동고승으로 정평이 나 있었고 위진은 경문왕의 대리인격이니 백관들은 좋은 구경거리라도 생긴 것처럼 불교계와 신교계의 일촉즉발의 대립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기엔 관심이 없었다.

찬바람이 훵훵거리며 몰아가는 사이로 잡초들이 죽지 않고 풀포기들이 색도 바라지 않고 푸릇한 기운이 남아있는 겨울이었다.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 이상기후가 생긴 것이었다. 함박눈이 땅을 덮지는 않았으나 사람들은 추운 줄 모르고 걸어 다녔다.


“엄마! 저기 좀 봐. 꽃이 피었어!”


“에~. 그럴 리가 있어? 지금이 한 겨울인데. 여기 눈도 내리고.......”


엄마는 손을 내밀어 손바닥으로 내리는 눈을 받아내며 아들의 눈을 바라보았다. 호기심이 가득한 눈망울을 보고 싶었던 거였다.


“아니야. 엄마. 여길 봐! 꽃이야. 진짜 꽃이야.”


아이가 땅에 있는 잡초의 꽃망울을 들어 보인다. 약하지만 꽃망울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어머나! 정말이네. 그것 참 신기하네. 어머. 강제로 그러지 마라. 곧 활짝 피겠다. 이게 무슨 조화냐? 한 겨울에 꽃이 피다니? 아니지. 지금이 한 겨울은 아니지. 늦가을인데 눈이 오는 게 오히려 정상이 아닌 거지.”


“그것 참! 해괴한 일이로구나.”


길을 걷던 노인은 눈이 오는 풍경과 꽃망울이 번지는 것을 번갈아 보면서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안 되나요? 겨울에 꽃이 피면........”


“이 세상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질서가 있는 법이야. 그 법을 어기면 그만큼 보답을 받는데 그 흉포한 보답은 우리가 생각할 수가 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정상이 아니란 거야.”


“왜 꽃이 피는 게 정상이 아니예요? 좋은 일 아닌가요?”


“눈이 오면 겨울이고 눈이 녹으면 봄이다. 겨울에는 만물이 몸을 웅크리고 죽어있지만 죽은 게 아니라 시기를 기다리는 거란다. 봄이면 만물이 소생하고 죽었던 기운들이 활짝 피어나지. 꽃은 그때 피는 거야. 그게 이치거든.”


“그럼 지금을 봄이라고 하면 되잖아요. 봄이 되면 꽃이 피는 거니까.”


“어머. 어르신. 애가 철이 없어서........그럼 우리에게 안 좋은 일이라도......”


애 엄마는 괜한 시비라도 생길까봐 뒤에서 아이를 끌어안고 잡아당겼다.


“딱히 그대들에게 하는 말은 아니야. 감당한다면 이 땅의 군주가 그 책임을 질 일일 테지. 시절의 변화는 자연의 이치이나 그게 적용되는 것은 군주의 덕으로 인정되고 있으니.”


“할아버지. 옛날얘기 하나 해 주세요, 네?”


아이는 더 적극적으로 노인에게 매달렸다.


“옛날이야기?”


“전에 해주신 거 있잖아요, 용 나오는 얘기.”


“그건 전에 한 거니까 됐고 새로운 이야기 하나 해줄까?”


“새 이야기요? 좋죠!”


“아는 분이시니? 아시는 애예요?”


“그래. 새로운 이야기 하나 해 주지. 지렁이 왕자 이야기인데.......”


“지렁이 왕자요? 야! 재미있겠다.”


노인과 소년은 이렇게 지렁이 설화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을 가졌고 저잣거리에도 이에 관한 이야기는 넘쳐났다. 장돌뱅이들과 시장 사람들로 북적이고 평상에 세 사람이 앉아 국밥을 먹는다.


“자네, 그 소리 들었나? 궁궐에 뱀이 그렇게 많다며?”


“아! 뱀 이야기! 나도 들었어. 정말 우리 같은 사람은 궁에 들어갔다가는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일이야. 뱀들이 혀를 날름거리면서 침상을 오르내리는데 어떻게 그런데서 잠을 잘 수가 있는지.”


“그게 무슨 소리야, 당최?”


“아니 이 친구! 깜깜이구만! 폐하께서 잠에 드실 때면 천장이고 벽속에서 검은 구렁이들이 나와 임금님의 옥체를 덮어 버린다고 하더구만.”


“구렁이가 용상을 덮어? 어떻게 그런 일이......”


“암. 그게 다가 아니고, 시위들이 뱀을 잡아 죽이지 않고 밖으로 던져버리면 다시 천장에서 내려오고 게다가 임금님은 그런 뱀들을 전혀 무서워하시지 않는다는 거야.”


“그런데 그게 그릴 흉악한 얘기는 아니라는 구만요.”


“뱀이 옥체를 덮었다는데 어찌 그게 흉한 게 아니야?”


“맞어. 뱀이 원래 몸이 차갑잖아. 임금님의 체열을 내려줄 수 있을 거야, 몸을 덮으면 열이 내려가 잠이 더 잘 온다는 거야.”


“그럼 우리 전하께서는 몸에 원래 열이 많으셨나?”


“그건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귀족들의 등쌀에 정치개혁을 하신다는데 쉽지가 않으니 열이 많이 나겠지. 그래서 뱀들이 몸을 덮어주면 시원하다는 건가?”


“뱀들이 그렇게 밤을 밝혀 전하의 몸을 지켜주니 안전하겠지. 아직까지 한 번도 역모를 겪지 않았으니 말이야. 아무래도 뱀은 요물이 아니라 성물인 거야. 임금님의 안위를 보호해 주는 영물이지.”


이야기의 전개는 뜻 모를 상황으로 돌아갔다. 주막의 평상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다른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지렁이 왕자에 대한 설화를 주제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래가지고 그 처자가 귀인의 옷자락에 바느질로 살짝 실을 꿴 거야.”


“그랬더니?”


“별 같고 달 같고 꿈같은 밤을 그렇게 보내고 아침이 되자마자 이불을 걷어보니 역시 또 그 귀인은 사라지고 아무것도 없는 거지 뭐야.”


“또 귀인이 사라진 거야? 그 처자는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겠군.”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부자리에 처자가 귀인의 옷에 바느질을 했던 그 빨간 실이 죽 늘어서 있는 게 아닌가!”


“그럼 귀인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겠네?”


“처자는 그 실오라기를 따라 가 보았어. 그랬더니 그 실오라기는 마당을 가로질러 부뚜막 쪽으로 난 뱀 굴로 들어가고 있는 거야.”


“그 구멍은 무슨 구멍인데?”


“처자는 그것을 확인해볼 엄두를 못 내고 아버지에게 알렸지. 아버지가 곡괭이로 그 구멍을 파대니 웬걸!”


“뭔데?”


“커다란 지렁이가 옆구리에 빨간 실을 꿰차고 죽어있는 거야.”


“그럼 그 구렁이가 사람으로 변신해서 그 처자하고 재미보고 그렇게 죽어버린 거야?”


“상황이 그게 다가 아니야.”


“처자는 몸이 자유롭게 되었고 이듬해 떡두꺼비 같은 옥동자를 순산했다는 구만요.”


“그래서 그 다음에 어떻게 됐어? 그 옥동자는 그럼 지렁이의 자식이란 말이지?”


대체로 지렁이나 용, 당나귀 귀에 관련된 유언비어는 경문왕을 노리고 유포된 이야기일 거라는 설이 지배적이었다. 그러자 제일 먼저 응렴의 친구인 5국선이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당나귀 귀이야기는 뭔가 노림이 있는 수입니다.”


“물론 나도 그렇게는 생각하네만 무엇을 노리는 것일까?”


“대충 감이 옵니다.”


숙종랑이 예의 그 낙천적인 성격을 앞세워 시류를 읽는 능력이 뛰어남을 밝혔다.


“오! 숙종랑은 감이 왔다고요?”


“우리 주군이 평소 개혁을 많이 논하시니 그게 눈에 거슬렸다는 놈들이 반대의 말을 만들어 띄우는 게 분명합니다 그려.”


“그럼 김윤흥 일파가 .............. 왜?”


“당나귀 귀는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게 많다고 놀리려는 수작입니다.”


“그놈들을 어떻게 혼내주지?”


“지금 공주님께서 위진 시중과 협력하여 좋은 작품을 기획하고 있으니 기다리면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고, 그냥 우리는 당나귀가 좋은 짐승이니 농사에도 보탬이 되고 짐을 부리는데도 매우 유용하다고만 말하는 것으로 합시다.”


“그 정도로 약하지 않겠소?”


범교사가 걱정스런 얼굴로 숙종랑을 바라보았다.


“그럼 이건 어떻소? 우리 주군을 모독하기 위해서 꾸민 거지만 반대로 우린 백성들의 원성, 그러니까 땅도 없고 세금도 많이 물리는 등 그런 고충을 충분히 잘 들어주기 위해서 귀가 커지는 바람에 당나귀 귀가 되었다고 만들어 다시 유포시키는 게.....”


5국선은 머리를 맞대고 숙의를 하는데 귀재라 소문난 숙종랑의 의견에 집중되고 있었다.


“허어! 과연 숙종랑은 이런 일에 귀재요.”


숙종랑은 한잔 기울이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런데 겨울에 꽃이 피는 것은 아직 뭔지 감이 오질 않습니다.”


“숙종랑도 그렇습니까? 나도 그건 무슨 뜻인지 파악이 되지 않고 있소. 과거엔 이상일기의 출현은 군주의 덕이 부족함을 상징한다고만 되어있을 뿐이어서.........”


일동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벌써 알아들었지만 짐짓 모르는 체 의뭉을 떨었다. 그래서 재빨리 화제를 돌리고 말았다.


“그럼 지렁이 이야기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건 용의 전설과 궤를 같이 합니다. 좋은 징조로 하는 말이죠. 지렁이를 토룡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럼 지렁이가 상징하는 건 누구란 말입니까?”


“그건 더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일단 그 이야기의 시발점이 어딘가를 찾아봐야 합니다. 그보다 오늘 결론을 얻은 말들은 지시를 통해서 전국적으로 유통이 되도록 합시다.”


5국선은 만족한 웃음을 머금고 각전을 나섰다. 아직도 신전에선 두 교파의 대두들이 회의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래요?”


현덕이 휘둥그레 눈을 뜨고 제대로 걸렸다는 듯 반격을 시작했다.


“불교의 대표이신 현덕선사님께서 대답해 보십시오. 석가모니 부처님이란 분이 우주를 만든 창조주도 아니고 이 세상이 돌아가도록 주관하는 조화주도 아닌데 사찰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에 모시는 이유가 무엇이오? 제대로 말하자면 전륜성왕을 절대 치자로 모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창조주나 조화주가 아닌 중생 틈에서 나신 분입니다. 하찮은 인간의 신분으로 태어나신 석가모니 부처님은 인간이 도달할 가장 높은 숭덕을 이루신 분이기에 기리는 것입니다.”


“절대 신이 아닌 인간을 인간의 완성태로서의 신으로 받드는 그런 의미란 거죠?”


“좋습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지만 도움이 되니 제가 한마디 풀어놓죠. 석가모니의 어머니이신 마야부인이나 그의 아버지이신 정반왕은 모두 구이족 사람입니다.”


백관들은 일제히 구이족이란 말에 호감이 생긴 모양이다. 탄성을 지르며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족이라면 바로 우리의 조상이십니다. 옛 수도인 신시에서 사방팔방으로 퍼진 이족은 인도접경까지 접근했습니다. 구이족은 단군선조께서 조선을 건국하기 수천 년 전에 존재했던 우리 조상의 이름입니다. 조선이 생기기 훨씬 이전에 있었던 배달국보다 더 오래된 12한국의 한 지류입니다. 그 나라가 인도에서 왕국을 이루었고 석가모니의 열반 후 그를 기리는 사람들의 원망이 모여 불상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필요에 의해 후에 생긴 것이지 처음부터 이를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닙니다. 불상도 지역마다 다르게 생긴 것을 보면 그 지역에 알맞은 얼굴이나 생김을 따른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거 근거 있는 말입니까?”


“그럼 불상에 드러나는 얼굴의 주인공은 싯다르타는 아니란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지역마다 다 차이가 있습니다. 그건 석가의 형상이 아닌 전래되어 내려오는 인물을 새긴 것으로 봐야합니다. 먼저 희랍의 군인들이 불상을 만들 것을 원했던 것이니까요. 바로 알렉산더 대왕의 후예들이 간다라에서 불교를 접하게 된 후의 일입니다. 그 전에 불상을 안치하지 않았었습니다.”


현덕은 자신 있게 당당한 말투로 계속 이어갔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바로 그와 관련된 것입니다. 일단 이야기가 애매한 구석이 있습니다. 석가모니를 기린다면 석가모니불이라고 명확한 명칭을 쓰세요. 우리 신궁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저 불상들은 한웅상과 다르다거나 다르지 않다거나 그 점을 분명히 하시기 바랍니다. 백성들을 우롱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위진은 지지 않고 바로 말을 받았다.


“신사에서는 그동안 주로 사용했던 한웅전을 비워주니 불교에서는 대웅이라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일반 사람들은 대웅전에 모신 분이 한웅이신지 석가모니인지 모를 것 아닙니까?”


“물론 저희 불도들도 그러고 싶습니다만 아직 우리가 독립적으로 쓸 만한 변변한 사찰도 없고요, 새로 창건한다면 국고가 허락할 수 없을 정도로 타격이 클 테니 신교에서 쓰시던 사찰을 개조만 하여 일단 사용할 뿐입니다. 그러니 함부로 한웅전에 흠집을 낼 수도 없지 않습니까, 한웅은 우리 민족의 조상님이신데. 헤헤헤.”


“어허~ 이거 눈 가리고 아웅 합니까? 불사를 단행하는 게 한두 군데도 아니고 전국토가 모두 절을 짓는데 파헤쳐지고 있습니다. 단군님은 실체가 있으니 영정으로 모실 수 있지만 한인님과 한웅님은 신이시기 때문에 불상처럼 존귀물로 모실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은 불교와 같은 집을 쓰고 있는 신교로서는 난처한 일입니다. 빨리 불교는 신교에서 분리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미 불교가 국교로 공인을 받았고 신교는 국가적인 제사나 기도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모든 절차는 불교식으로 진행할 겁니다.”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사이 전령(병부시랑)이 환수에게 귓속말로 전한다.


“폐하! 큰일입니다. 전령이 비보를 전해왔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런 호들갑이냐?”


“당나라에서 조공을 마치고 돌아오던 우리 세공선이 풍랑에 좌초되었다합니다.”


“좌초되었다고? 이런? 그래서 어떻게 됐어?”


“우리 토산품과 보물들을 모두 진상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답례품으로 많은 물건들을 실었다는데 모두 침몰해서 배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하옵니다. 망망대해라 수색할 수도 없고........”


“페하. 그 배에는 이찬 부량이 승선했고 당의 귀한 답례품이 상당수 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아! 이런~. 그럼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 품목이 뭔지는 알고 있느냐?”


“모르옵니다. 장마가 지나면 다시 답방을 보내 그 내용을 알도록 하겠습니다.”


“답방이 문제요? 지금 당장 당에서 보낸 답례품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게 문제 아닙니까?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요?”


“송구하옵니다. 폐하! 전에 없는 일이 생기니 그저 황망할 따름입니다.”


범교사는 따로 경문왕 응렴과 자리를 했다. 그 자리에 두 중전도 함께 와 참관을 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이야기는 폐하께 들은 이야기가 많다고 빗댄 것입니다.”


범교사의 설명이었다. 응렴도 개혁의 고삐를 쥐었다 폈다 하는 입장에서 그 뜻을 모를 리 없었다.


“내 진의가 아니라 남들의 훈수에 밝다는 말이렷다?”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닌 줄 아뢰옵니다.”


둘째 중전의 말이 이어졌다.


“백성들은 전하의 개혁의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기뻐하겠지만 훈구대신들은 그에 반하는 인물들이 태반이라 뭐라도 흠집을 내고 싶어 한다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허허! 그런가요?”


“중전마마께옵선 뱀의 이야기는 어떻게 보셨는지요?”


범교사는 자신들이 내놓은 해석보다 현화 중전의 풀이가 더 그럴듯하다는 생각에 먼저 의견을 물어봤다. 중전도 빼지 않고 당당하게 답을 내렸다.


“뱀은 사람들이 무서워할 것이라는 편견보다는 원래 지혜를 상징하는 신수 아닙니까? 그러니까 폐하의 주변에 그런 개혁을 담보할 인물들이 많다는 말에 백성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좋은 설명을 해야 할 겁니다.”


범교사의 입이 찢어지고 귀에 걸린듯했다. 자신들의 해석보다 탁월한 그녀의 선택에 기쁘다 못해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응렴 역시 그 견해를 듣고 만족해했다.


현화 공주가 따로 환수를 불렀다. 그녀가 별궁에 앉아 있고 환수가 들어와 무릎걸음으로 다가왔다.

“공주마마! 소신 문안드리옵니다. 불러계시옵니까?”


“내 그대를 들라 이른 건 다름이 아니라 돌아가신 선친께서 맡아하신 일을 현 주상께 고하는 마당을 지켜본 일이 있어서 이렇게 불렀다네.”


환수로서는 전혀 예기치 못한 부름에 사지가 부르르 떨려왔다.


“물론 자네의 충심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이왕 일은 크게 벌어졌어. 그건 아바마마께서도 원하시지는 않으실 거야.”


“공주마마.”


환수는 처분만 기다리는 자세로 고개를 숙이고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앉았다.


“왕국은 이런 것 때문이라도 개혁을 해야 해요. 더러운 피가 섞이면 반드시 그 값을 치러야하니까.”


공주는 중위적인 표현을 환수를 협박했다.


“공주마마. 송구하옵니다. 소인이 해야 할 일은 남이 알 필요가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입니다. 공주마마님은 물론이고 이 왕궁의 그 어느 누구라도 알아 선 안 될 일입니다. 제발 다신 이 일에 대해서 말씀이 없으시길.......”


“허어! 지금 폐하께선 개혁을 부르짖는 분이란 걸 잊었느냐? 새로이 보위에 올랐기에 개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하의 성품이 워낙 그러하시기에 변화를 꾀하시는 거라는 걸 잊지 말라. 당장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시더라도 언젠가는 칼을 빼 드실 분이란 걸!”


“개혁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정치적인 명분을 옳게 이끄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결코 보복이나 피의 숙정은 없을 줄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원칙적인 의미로는 숙정이지만 그게 말처럼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에는 숙청이 뒤따른다. 그 시기는 폐하의 마음가짐이 아니라 상황의 변수란 걸 알아야한다. 그대의 본심을 곡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크흑! 공주마마!”


“환수의 마음이 어떤지는 내가 충분히 알고 있다. 충심으로 맹세한 주군을 잃고 다음 군주를 위해 몸을 바치고 있다는 것을 왜 모르겠느냐? 하지만 그 성과를 생각해볼 때 가능한 다른 방법을 모색해 보아야한다. 그대만의 힘으로 부칠 때는 더 힘이 좋은 사람에게 의존하는 게 좀 좋으냐? 게다가 지금 군주는 개혁을 부르짖는 분이시니 오죽 잘 대처하시겠느냐.”


결국 환수는 공주의 양온 전략에 손을 들고 자신의 비밀을 고스란히 고해 바쳤다. 처음부터 궁예를 보호할 마음도 없었지만 응렴 경문왕이 올바른 개혁의 장도에 들 수 있을지 모르는 처지에 선왕의 유언에만 매달렸던 그로서는 중전마마의 언질에 감화를 입었다고 봐야했다.


경문왕은 범교사와 단둘이 사냥을 즐기기로 하고 남산에 올랐다. 으렴은 세간에 화제가 되는 여러 말들을 범교사에게서 전해 듣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참! 전에 그때 세 가지 이익이 있다는 말을 했었죠, 대덕 국사?”



범교사는 명실상부한 대덕국사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응렴은 전토에서 활을 뽑아 장전했다.


“예. 소신이 그랬습니다. 세 가지 이익이 있으니 당시 큰 공주님을 혼처로 먼저 삼으셔야 한다고 말이죠.”


“이제 때가 된 것 같은데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시겠소?”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다 아실 거라 믿습니다. 시간도 많이 지났고 게다가 폐하께서도 능히 그 이유를 깨달을 만큼 상황이 무르익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폐하?”


“모를 거야 없지만 그래도 그대 입으로 직접 설명해 주시오.”


응렴은 화살시위를 당겼다. 멀리 까투리가 푸드덕하며 날아올랐다.


“첫째 기쁨은 큰 공주마마를 선택함으로서 선대왕마마와 중전마마님을 만족시켰으며 그로인해 커다란 신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범교사가 활시위를 당겼다. 도망치던 꿩이 화살에 맞아 곤두박질쳤다. 응렴은 부러운 시선을 국선에게 보냈다.


“그랬었죠. 아마 그게 가장 큰 이유였으니........ 둘째는요?”


“그 신뢰를 바탕으로 폐하께서는 능히 태자의 위에 오르시고 신라의 대권을 가지셨으니 그게 둘째 기쁨입니다.”


“하하하! 맞소. 그로 인해 나에 대한 무한신뢰를 바탕으로 오늘날 왕위를 잇게 되었죠. 인정합니다. 다음 셋째는요?”


“처음 원하시던 현 공주님을 후궁으로 아니, 결국엔 왕비로 얻으셨습니다. 그게 세 번째입니다.”


“그대의 기지는 정말로 제갈량 못지않은 모사로군요 하하하하! 맞습니다. 그때 만약 둘째 공주를 선택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하하! 폐하! 일전에 옥룡자라는 중이 한 말을 기억하십니까?”


“옥룡자? 아! 바로 그 도선스님. 알다마다요. 그런데 그가 무슨 말을 했었죠?”


“허곡랑이 그때 주유 마지막 날 도선 선사께 이렇게 물었죠. 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라고.”


“아! 맞소. 그때 들은 말을 내가 궁중연회에 와서 그대로 써먹어서 부마로 간택되는 호기를 잡은 셈이지, 하하하! 그때 허곡랑은 참으로 궁금한 게 많은 사람이었죠. 허구한 날 이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게 보편적이지 않습니까? 이건 논리가 그르지 않습니까? 하고 많이 질문을 했었죠.”


“궁금한 걸 묻는다기보다 그게 아마도 참 진리를 구도하는 자세의 일환이었을 겁니다. 고기 한 점을 먹더라도 그게 입안을 통과해 식도를 지나간다. 식도가 끝나는 곳에서 위장으로 연결된 관을 통과한다. 위장에서 어느 정도 소화가 되면 잘게 분해가 되어 소장으로 들어간다. 이런 게 얼마나 골 아픈 내용입니까? 그런데도 그런 일을 하면서 꽤나 진지했었죠. 그런데 그날 반드시 필요한 사람을 찾는 내용은 아마도 당시 6두품이라 낭도 생활을 청산하고 구도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상단에 들어가 세속적인 일을 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기로에서 청한 물음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세 가지 인물을 말한 것과 그게 무슨 관련이 있는 것입니까?”


“겸손하여 남의 밑에 있는 자, 부호이면서 검소한 자, 또 세력가이면서 그 위엄을 자랑하지 않는 자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했었죠?”


“그랬죠. 그래서 짐은 겸손하고 검소하며 위엄 있는 자를 추천해야한다고 말씀 올렸었죠. 하지만 지어낸 말이었어요. 세가지 부류의 사람을 의도적으로 말한 것이라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당시 옥룡자 선사님께서는 그런 말씀을 하신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그분 분위기에 어떤 말을 했을 텐데 내 기분에 듣기 좋은 말로 변질시키지나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사실 그런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은 지금 신라에는 없습니다.”


“없을까요? 진정 신라에는 그런 인물이 없을까요? 지금 없다는 뜻이라면 언제 온답니까? 개혁에 합당한 인물이 되어줄 텐데........”


“한가지씩만 충족하더군요. 이찬 계원이 지휘하는 화랑지도관들의 모임인 천지화교에서 그 분야마다 첩보를 가지고 대입을 해봤는데 세 가지를 모두 가진 사람은 없고 그 중 한 가지씩만 가지고 있더군요. 그런데 가장 그 세 가지를 모두 가지는, 아니면 가까이 근접한 사람이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면 그것처럼 행복한 것은 없을 겁니다. 폐하께서는 그리하시면 천하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그래요. 그대는 그런 사람을 짐에게 추천해줘야 짐의 체면이 서지 않겠습니까? 도선선사는 누굴 의미하는지 그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고 했었지만 난 솔직히 답답했었소. 혹시 허곡랑은 그런 사람을 찾아 아직도 세상을 주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그래도 난 허곡랑의 마음을 얻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런 위인을 찾아냈다면 반드시 짐에게 천거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분은 바로 둘째 중전마마님이십니다. 지금 신라 땅에서 현 중전마마님만이 세 가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남자가 아니라 아쉽지만 왕족이고 왕비이시니 폐하께선 이제 천마의 등에 날개를 달았다 해도 어폐가 아닙니다. 그런 분을 왕비로 맞으셨으니 폐하께옵서는 소원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경하 드립니다.”


응렴의 얼굴색이 퍼렇게 변했다. 싫어해서가 아니라 놀라움의 표시였을 것이다. 세 가지 위인의 조건을 겸보한 자가 바로 남도 아닌 자신의 아내인 현화 중전이라니........


“하지만..........”


“폐하! 여자라 편견을 가지실 일은 아닌 줄 아룁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위인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세간에 떠도는 그 유명한 해중릉 이야기도 그런 일을 증면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해중릉이 그런 거라고요? 만파식적도?”


“네 그렇습니다. 폐하! 통일된 이후로 사람들의 관심과 정을 줄 인물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과거의 사건과 영웅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이 시대의 인물을 우리사람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은 천부적 이득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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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과 용신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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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변혁의 소용돌이 24 15.03.29 447 10 16쪽
» 변혁의 소용돌이 23 15.03.29 504 7 28쪽
29 변혁의 소용돌이 22 15.03.29 320 7 17쪽
28 변혁의 소용돌이 21 15.03.28 584 7 17쪽
27 변혁의 소용돌이 17 +1 15.03.27 529 9 13쪽
26 변혁의 소용돌이 16 15.03.27 465 5 17쪽
25 변혁의 소용돌이 15 15.03.27 260 7 14쪽
24 변혁의 소용돌이 14 15.03.27 613 7 15쪽
23 변혁의 소용돌이 13 15.03.27 647 8 21쪽
22 변혁의 소용돌이 12 15.03.27 586 6 20쪽
21 변혁의 소용돌이 11 15.03.27 588 8 32쪽
20 세기말 증후 37 15.03.24 665 10 26쪽
19 세기말 증후 36 15.03.24 227 5 25쪽
18 세기말 증후 35 15.03.24 483 5 25쪽
17 세기말 증후 34 15.03.24 470 8 18쪽
16 세기말 증후 33 15.03.24 478 7 17쪽
15 세기말 증후 32 15.03.24 419 6 17쪽
14 세기말 증후 31 15.03.24 355 7 22쪽
13 세기말 증후 29 15.03.24 609 6 17쪽
12 세기말 증후 28 15.03.24 696 4 18쪽
11 세기말 증후 27 15.03.24 417 9 20쪽
10 세기말 증후 26 15.03.24 579 5 27쪽
9 세기말 증후 25 15.03.24 596 8 18쪽
8 세기말 증후 24 15.03.24 454 10 20쪽
7 세기말 증후 23 15.03.24 248 6 15쪽
6 세기말 증후 22 15.03.24 459 7 5쪽
5 세기말 증후 21 15.03.24 480 9 15쪽
4 세기말 증후 14 15.03.24 656 9 26쪽
3 세기말 증후 13 15.03.24 611 9 10쪽
2 세기말 증후 12 15.03.24 619 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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