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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쿤1 님의 서재입니다.

처용과 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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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쿤1
작품등록일 :
2015.03.24 22:14
최근연재일 :
2015.03.29 22:27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15,802
추천수 :
224
글자수 :
257,916

작성
15.03.27 19:29
조회
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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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21쪽

변혁의 소용돌이 13

DUMMY

아파트 공사장의 승강기 문이 열리자 많은 인부들이 쏟아져 나왔다. 허영은 취업으로 공사장에 들어왔지만 모든 일들이 힘에 부쳤다. 그러나 가족의 생계를 주동적으로 꾸려야 할 위치에 있는 그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한때는 잘나가는 예술쟁이였지만 시절이 돌변하면서 저임금의 노동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는 그것이 전락이라는 감도 오지 않았다. 누구라고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서는 귀천이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어이! 허씨!”


“예. 반장님.”


허영보다 열 살은 많아 보이는 늙수그레한 반장이 그를 불러 세웠다.


“이따 점심시간 지나고 나면 옥상에 있는 빠래트하고 아시바, 판네루를 모두 걷어 갈 거니까 미리 정리해둬. 아마 잠잘 시간 없이 바로 시작해야 할 거야.”


“네. 어떻게 정리할까요?”


“아! 혼자 하란 얘기는 아니고 여기 김씨하고 같이 해. 아침에 용역에서 잡부들 여섯 명을 불렀으니까 합류할 거야. 김씨가 선배니까 시키는 데로만 하면 돼”


“잡부들은 지금 뭐 하는 데요?”


김씨가 코를 풀며 물었다.


“아. 저기 조적하는데 지원 나갔는데 점심때는 이리로 부를게. 잘 가르치라고 전번처럼 사고내지 말고!”


반장은 김씨의 소매를 끌며 부탁조로 얘기하지만 김씨는 퉁명스럽게 반응했다.


“알았어. 신경 꺼두라고.”


“허형이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으니까 하나하나 잘 가르치라고. 어이! 김기사!”


반장은 다음 승강기로 올라오는 김기사에게 소리치며 다가갔다.


“어이! 반장님. 오늘 우리 공정을 모두 다 끝낼 테니 두고 보십쇼.”


김기사는 자신 있게 거수경례를 부쳤다.


“야! 너 선수 치는 거야? 내가 먼저 공정 얘기 꺼낼까봐 미리 납세하는 거지, 이 교활한 놈 같으니.......”


“하하하!”

반장이 김기사의 목을 조르려고 노리고 덤비지만 김기사는 요령 있게 잘 피해 다녔다.


“허형. 곤돌라라고 들어봤어?”


김씨가 낮은 소리로 허영에게 물었다.


“곤돌라? 영화 제목 아냐?”


“그런 영화도 있었대? 그건 아니고. 옥상에 있는 물건들을 저 밑바닥에 내려놓는 작업을 하는데 필요한 기중기 같은 거야.”


“아! 타워 크레인 말씀이군요? TV에서 많이 봤죠.”


“맞아. 타워 크레인. 역시 먹물이라 다르군. 아무튼 점심 먹고 나서 얘기니 일단 이 벽돌이나 빨리 날라다 쌓아.”


김씨는 구석에 쌓여 있는 벽돌무더기를 손으로 가리켰다. 허영은 지게에 벽돌을 싣고 부지런히 계단을 오르내린다. 멀리 승강기가 소리를 내며 위아래로 움직였다.

새로 인력사무실에서 파견 나온 신참들은 나이도 어리니 힘이 좋아 보였다. 벽돌지게에는 40장보다 많은 벽돌이 우람하게 보였다. 그러나 허영은 36장을 지고도 헐떡이고 있었다. 계단 중간 참에서 잠시 쉴 여유가 있어 지게를 받치고 어정쩡하게 앉아 쉬고 있는데 마침 반장이 다가왔다,


“형씨. 생각보다 일하는 게 시원찮아.”


“아! 죄송합니다. 반장님. 힘에 부칩니다. 하지만 양에 안찰지 모르지만 쉬지 않고 열심히 해서 만회하겠습니다.”


“아! 너무 신경 쓰지 마시오. 그런 뜻으로 말하는 건 아니니까. 괜히 내말에 열 받아서 40장씩 나르려고 하지 말고 천천히 사고만 없게 하면 돼. 솔직히 50장씩 빨리 나르는 건 중요한 게 아니야. 빨리 했다고 괜히 폼만 나는 거지만 조적하는 놈들이 그만큼 일을 더 하는 게 아니라면 다 똑같은 거야. 자기가 더 많은 일을 하고 쉰다고 하면서 담배피우며 거드름 피우는 것보단 개미처럼 일하는 게 낫지. 늦더라도 완전히 일을 끝내고 사고가 없는 게 중요한 거야.”


“열심히 하겠습니다.”


허영은 앉아 있는 게 미안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쉴 땐 쉬는 게 좋은 거야. 괜한 눈치 보는 거 좋지 않아. 그리고 쉴 땐 확실하게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앉으라고. 쪼그려 앉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흉한 거니까.........”


반장은 담배꽁초를 바닥에 던지고 일어서서 다른 곳으로 갔다. 허영은 잠시 쉬다 금방 일어나 지게를 졌다. 열심히 땀을 흘리고 나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다. 밥집에 들어가니 이미 좌석은 만석이었고 방안에 빈자리가 있었다. 이미 준비된 밥을 먹으며 이런 저런 얘기꽃이 피었다. 그때 누군가 심한 사투리로 욕설을 해댔다.


“저 시러베아들 같은 놈들이 다 해쳐먹고 또 먹겠다고 저런다.”


“정치하는 놈들이 다 그렇지 뭐, 솔직히 못하는 놈이 병신 아닌가?”


“야! 이 새끼야. 못하는 놈이 병신이라고? 법으로 하지 말라고 하는 걸 하는 놈은 멀쩡하게 대접받고 그렇게 하지 못한 놈이 병신소리 듣는 게 당연하단 말이야?”


TV에선 국회의원들이 장관 내정자를 앞에 앉혀두고 이련 저런 질문을 하고 있었다.


“지금 살고 계신 아파트 말고 7년 전에 강남에 주민등록이 되어있었는데 그 설명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아니 본인이 이사를 가고 주민등록도 이전하고 대출을 받으면 사인하고 하는 게 다 본인의 책임 하에 일이 진행되는 거지 누가 대신하고 그게 누가 한 일인지도 모르는 게 말이 됩니까?”


“그렇지! 말 잘한다. 와이프가 했건 처남이 했건 다 자기 책임이지.”


“처음부터 살지도 않는 동네에 주민등록을 이전하는 것 자체가 비리가 있는 것 아니겠어? 노림수가 있는 거지. 서울대 나온 놈이 아무리 그런 것도 모를까? 중학교만 나온 얘도 아는데.”


반장이 앞에 앉은 김씨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하자 일동 환하게 웃었다.


“근데 저 대머리는 뭐하는 놈인데 위장전입을 하고 지랄이야?”


김씨는 장관내정자를 보고 물었다.


“행안부 장관될 놈이라잖아? 여태 뭘 같이 본겨?”


“행안부? 행안부는 또 뭐여?”


“행정안전부. 행안부를 줄인 말이야. 행정안전부가 또 뭔지 모르지?”


“행정을 안전하게 하려는 데는 총무부 아닌가?”


“이 바보야. 행안부는 옛날 내무부를 말하는 거야.”


“여기 바보들 또 있네. 행안부가 아니라 안행부야. 안전행정부. 행정자치부가 새로 생겼으니 행자부라고 하고.”


“왜 똑같은 일을 하면서 명칭은 수도 없이 바꾸고 저런 놈들에게 일자리를 주려고 자리만 늘리고........”


“맞어. 그냥 내무부에서 경찰, 소방서, 해양구조 얼마든지 할 수 있잖아? 공무원 9급부터 시작해서 일급까지 승진하면 될 일이고. 그러면 9급 때 인적심사니 사상검열이니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거고 그놈이 설사 1급이 된다 해도 까딱없잖아, 안 그래?”


김씨가 입에 거품을 물고 일장연설을 하자 장내는 떠나갈 듯이 박수와 환호가 난무했다. 내용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시절이 수상하니 이런 막가는 말이 더 좋아보였다는 뜻이 투영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맞습니다. 김형께서 참 좋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정치는 전문가들보다는 열혈 백성이 더 좋은 시각을 가졌다고 봐야합니다.”


허영은 동료인 김씨를 한껏 치켜세웠다.


“그런데 말야. 저놈은 장관자리보다는 비서실 자리가 더 어울려.”


“그건 왜요?”


“수완이 보통이 아니라고. 대머리까진 놈이.........”


“이거 원 대머리 아닌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대머리까진 게 뭐 대수라고 수완이 좋다는 말로 칭찬을 받는 세상이야?”


“대머리는 중요한 게 아니고. 저 놈이 교회 집사출신인데 바로 찬양인도자학교를 만든 장본인이래.”


“그게 뭔데?”


“기독교에 청소년 수련기관이야 한둘이 아닌데 뭐 중요한 거야?”


“찬양을 인도하는 그러니까 노래나 악기연주로 찬송을 하는 단체들인데 중요한건 자격이 기독교인이 아니라 장차 목회자가 될 수 있는 청소년들 중에 우수한 자들을 가려 뽑는 거야.”


“왠지 스산한 기운이 서려있네?”


“문제 많았잖아. 땅밟기를 주동해서 절이고 사찰이고 신전이고 가리지 않고 공격한다는 그놈들.........”


“게다가 주민등록을 위장 전입한 거로 봐서 부동산투기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설이 있어. 지금 청문회도 목표가 그거로 몰리거야. 아마 교회 돈으로 어마어마한 투기를 하는 모양이야. 또 알아? 구원파처럼 엄청 큰 사건을 저지를지.......”


허영은 호기심에 슬쩍 고개를 들어 화면을 올려다보았다. 순간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김교언이 심통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김 내정자께서는 신도시개발계획의 전모를 파악하고 일대의 땅을 수만 평을 매입한 사실이 있는데 그 계획을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제가 개발계획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단지 교회 집사로 예산을 처분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또 우리 교회는 당시 새로운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강남의 세곡동을 투자가 아닌 소유의 개념으로 사들인 것입니다.”


허영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충격에 떨었다. 10년 전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김교언은 바로 아래위집에 살던 지인이었고 교회의 집사라는 직함이 있어서 나쁘게 보진 않았었다는 기억이 있었다.


“허선생님. 이 일대는 벌써 30년이나 개발 제한에 묶여 있습니다. 사람들에겐 풀릴 가능성이 보인다는 말들이 오가지만 풀릴 거라면 벌써 풀렸겠죠. 그러나 여긴 절대 풀리지는 않을 겁니다. 아니, 절대란 말은 취소하겠습니다. 언젠가는 풀리긴 할 겁니다. 그러나 우리대가 아닌 먼 훗날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근데 김 집사님은 이 땅을 사서 뭐에 쓰시려고요. 모두들 안 팔고 두고 볼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팔라고 팔라고 한다면 누구나 다 의심하지 않겠어요?”


“허선생도 아시다시피 전 집사입니다. 우리 교회가 작아요. 더 크게 지으려면 땅이 필요한데 근처에서는 그런 땅을 쉽게 구할 형편이 못됩니다. 여기라면 교통도 괜찮고 일단 넓으니까 우선 크게 지을 수 있으니 좋아서요. 꼭 여기여야 한다는 조항은 없지만 이왕 이렇게 구하면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저야, 조금 더 참으면 개발제한이 풀릴 경우 팔고 나갈 겁니다.”


“그러니 제가 그 비용까지 고려해서 비싸게 매입해드리겠습니다. 대신 싸게 매입한 것으로 소문만 내주십시오. 섭섭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허선생.”


허영은 자신이 최종판단해 땅을 판 것이기에 김교언에게 책임 추궁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졌다는 사실을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된 것이다. 허영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허형! 갑시다. 뭐해! 아직도 다 안 먹었어?”


“아! 예. 갑니다. 갑시다.”


허영은 숟가락을 던지며 일어섰다.


“우리 먼저 꼭대기 층에 가봅시다.”


“벌써요?”


“먼저 상태를 봐야 어떻게 작업해야할지 판가름이 나니까 미리 체크해야죠.”


“그럽시다.”


“저희도 같이 갈까요?”


인력사무소에서 온 잡부들이었다. 그들도 같은 일을 해야 하니 동참하려 했지만 김씨는 그냥 쉬고 있으라고 하고 허영과 단둘이 올라갔다. 옥상뿐만 아니라 그 아래 두 개 층이 모두 패널과 아시 바로 뒤엉켜 겨우 발만 디디며 올라가야했다. 그 잔해를 모두 치우려면 꽤 많은 시간을 투여해야할 것 같았다.


“이걸 다 하려면 오늘 늦게 끝나겠는데.......”


김씨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지금 할까요?”


“아뇨. 내려가서 커피한잔하고 장비도 가져와야죠. 내려갑시다.”


“김씨. 지금 시작이야? 이 사람들하고 같이 해.”


“알았어.”


“이사람 따라 올라가요.”


반장은 인부들을 김씨에게 몰아주고 사라졌다. 김씨는 각종 장비를 챙겨 사람들에게 분배하고 승강기로 옥상에 올라갔다.


“자! 당신들은 여기 이렇게 빠레트를 놓고 높이 열 단을 쌓아요.”


“이렇게요?”


인부들은 패널을 일일이 가져다 놓으며 지시를 받았다.


“많이 해본 솜씨네요.”


“일이 다 그렇죠, 뭐.”


일단 용역들은 합격점을 받은 셈이었다. 문제는 허영에게 있을 것이란 생각은 처음부터 들었었다.


“허형은 나랑 이렇게 아시바를 쌓읍시다. 이건 네모반듯하지가 않아서 더 어려워요. 잘 해야 합니다.”


김씨는 은연중에 허영에게 겁을 주었다. 자신의 키보다 약간 긴 두 개의 철봉이 나사산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양 끝에 갈고리처럼 생긴 조임 쇄가 아가리를 벌리고 위협하는 듯이 뒹굴고 있었다. 아시바와 패널은 서로 뒤엉켜 있어 하나씩 뽑아내 서로의 무더기에 쌓아야했다. 벌써 용역에서 온 인부들은 팀워크를 뽐내며 10층 높이의 패널을 한 무더기 쌓아올렸다. 그러나 김씨는 화도 내지 않고 천천히 여유를 부리며 아시바를 하나씩 끌어 모으고 있었다.


“저쪽 사람들은 벌써 한 무더기 끝냈네요.”


“신경 쓰지 마요. 빨리한다고 더 주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괜히 나 때문에 눈치 보이니까......”


“반네루가 쌓기가 훨씬 쉽잖아요. 아시바는 폭이 서로 다르니 네모 반듯이 올라가지도 않고 어려운 거요.”


허영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요령 피운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남들이 한걸음 걷는 동안 두 세 걸음 뛰다시피 했었다. 어느덧 옥상에 벌려진 자재들은 거의 정리가 되어가고 인부들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우리도 이거마저 끝내고 쉬었다가 아래로 내려갑시다.”


“아래는 지붕이 있는데 어떻게 쌓죠?”


“창가바깥쪽으로 위에서 뜨기 좋게만 쌓으면 돼요.”


“크레인으로 뜨려면 수직으로 올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꼭 그렇진 않죠. 줄이 얼마든지 휘청거릴 수 있으니 약간만 수직으로 올려주고 우리가 밀어주면 얼마든지 각이 없어도 가능합니다.”


허영과 김씨가 어느 정도 일을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벌써 다섯 무더기의 패널들이 바깥 난간 쪽에 쌓여 있었다. 백 오십 번 이상의 왕복운동을 했다는 말이었다. 허영은 더욱 마음이 조급해졌다.

지붕에서 내려온 기물들이 가로막고 있어서 일을 하기는 더 어려웠다. 인부들의 인원도 많았지만 일양을 따라잡기 위해서라도 허영은 잠시의 숨도 아까웠다. 어느덧 일의 숙련도에서 오는 간격을 줄일 수가 있게 되었다. 김씨가 말도 하지 않고 열심히 쌓아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곧 우리가 역전할 수 있겠는데요?”


“..........”


허영이 즐거운 표정으로 말을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김씨의 표정을 보니 약간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괜히 허영은 죄책감이 들었다.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다시 힘을 내 아시바를 주워 모았다. 김씨의 곁에는 아시바가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어느새 분업이 이루어져 숙련공인 김씨는 아시바를 쌓아올렸고 미숙련인 허영은 주워 모으는 역할을 했던 것인데 허영이 부지런히 하지 못한 관계로 쌓아 올리는 사람의 손이 한가해진 탓이었다.

이제 허영은 한손에 하나씩 한 번에 두 개의 아시바를 들고 날랐다. 열심히 주워 나르다 보니 먼지가 많이 피어올라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옇게 되었다.


“더 내려갑시다.”


김씨의 외침을 듣고서야 옥상과 그 아래층의 작업이 끝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마지막 한 개 층만 남은 것이다. 허영은 담배를 물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이제 막 자신이 붙었다. 요령은 요령이고 힘은 힘이라는 진리 아닌 진리를 발견한 것이다.

아래층에 와보니 생각보다 일거리가 적었다. 빨리 끝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내려갑시다.”


김씨가 내려가자는 말을 했다. 의아한 허영은 왜냐고 되물었다.


“참먹을 시간이니까 한 30분만 쉬었다 합시다.”


“아! 벌써 세시가 넘었나요? 시간이 참 빨리도 갑니다.”


우유를 곁들여 빵을 먹고 나니 몸이 노근한 게 느껴졌다. 쉬고 싶었지만 이제 조금 남은 걸 가지고 시간을 끄는 게 더 아쉬울 뿐이었다. 크레인 기사가 시동을 걸고 시운전을 시작했다.


“자! 빨리 마무리하고 상차해!”


반장이 김씨와 일행들을 보고 소리쳤다. 일행들은 부지런히 남은 일을 끝내고 옥상에 모였다.


“8톤 트럭 여섯 대를 불렀으니 한 일곱 시는 돼야 끝나지 않을까 싶네.”


반장이 말을 열었다. 그는 음료수를 두병 들고 왔다. 사람들이 달려들어 음료수를 빼앗다시피 해서 나눠 마셨다.


“허형! 오늘 괜찮았소? 이제 요령 좀 생겼어?”


“아! 네. 이제야 좀 적응이 되네요.”


“많이 먹어둬요. 이따가 일하려면 많이 어지러울 거요.”


“왜 어지러워요?”


“여태 계속 개미처럼 엎드려 일했지만 이제는 서서 손을 머리위로 들어 올리는 일만 해야 하니 현기증이 날 수도 있어.”


“그럼 음료수보다 막걸리가 제격이지.”


김씨가 끼어들었다. 일행들은 왁자지껄하게 웃으며 즐거워했다. 김씨도 얼굴 표정이 아까와는 다르게 활기 있어 보였다.


“아깐 좀 그랬었는데 지금은 괜찮으십니까?”


허영은 김씨의 표정을 보며 걱정되듯 물었다.


“왜. 또 김씨가 괜히 우리 허형을 갈구었나?”


“아니요. 그게 아니라 아깐 김씨의 표정이 별로였어요. 말도 없었고.”


“염려 말어! 다 끝나면 막걸리 한잔씩 걸칠 수 있게 해줄게.”


“정말이죠?”


“정말이 아니면 어쩔 건데?”


하늘에서 두 개의 갈고리가 내려오는 게 보였다. 크레인이 옥상으로 긴 연결 바를 내리는 중이었다.


“먼저 빠레트 두 개를 걸어!”


반장이 소리쳐 지시했다. 김씨는 달려가 팔레트의 아래 공간으로 바를 집어넣어 위에서 갈고리에 고정시켰다. 크레인으로 집어 올리자 김씨는 패널팔레트를 밀었다. 그네를 타듯 흔들리며 무거운 짐이 움직이더니 빌딩 아래로 내려가 8톤 트럭위에 안착했다. 두 개의 팔레트가 상차되자 다음엔 아시바를 엮은 팔레트가 실려 나갔다.

옥상위의 것들을 모두 청소하는데 두 시간이 걸렸다. 이제 남은 것은 별로 없지만 하나하나마다 시간이 걸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김씨는 이제 구경만 해. 저기 쓰레기나 치우고 천천히 보라고.”


위험한 일이라고 배려해 주는 반장의 마음씨에 감동이 되어 뭉클해졌었다. 그러나 밥값을 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다시 일어 열심히 비질을 하고 다시 팔레트 앞에 섰다.

김씨가 고리에 바를 연결해 단단히 묶었음을 확인했다. 높은 짐 꼭대기에서 아래로 뛰어 내린 김씨가 다시 일어서 팔레트를 밀려고 하자 허영은 자신이 하겠다면서 짐을 일단 당겼다. 그러자 김씨는 자리를 피해주었다. 짐은 당겨졌다가 놓아주니 멀리 휘익~하고 날아갔다. 크레인 기사는 짐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고 높이 달아 올렸다. 팔레트 짐은 좌우로 천천히 그네를 타며 높이 올라갔다 내려오며 트럭 위로 방향을 잡았다. 쉽게 안착하고 단단히 묶은 다음 다시 고리가 위에서 내려왔다.


“이번에도 허형이 해볼래? 내가 묶어줄 테니까.........”


“그러죠.”


다시 김씨가 줄을 완전히 묶고 내려오자 허영은 짐을 당겼다가 힘차게 밖으로 밀어냈다. 그리곤 벽에 기대서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크레인 기사가 줄을 당기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그네를 탄 팔레트 짐은 상사점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오고 있었다. 허영은 구석에 서 있다가 급히 방향을 틀고 짐을 다시 밀어내려 힘을 주었다. 그러나 0.5톤의 팔레트는 멈추지 않고 허영을 구석으로 밀어붙였다.


“아악!”


“사고다!”


“멈춰!”


“다리가 꼈어! 크레인 빨리 뽑아!”


반장은 무전기를 입에 대고 고함을 쳤고 인부들은 팔레트를 밀어내려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미 허영은 쇠붙이 조각에 넓적다리가 끼고 말았다.


“119 불러!”


“크레인 들어올려!”


“빨리 도망가야지 왜 구석에 서 있었어!”


“크레인이 잘못했지!”


불필요한 애기들이 난무했지만 이미 지난 일일뿐이었다. 허영은 응급실로 실려 갔다가 세 시간 만에 깨어났다. 멀리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다시 허준의 방을 울리는 풍경 소리로 들린다.


“준아! 어여 일어나라. 왜 이렇게 세상모르고 자니?”


세상모르고 잠에 빠져 있는 준을 흔들어 깨우는 엄마는 출근을 하려고 옷을 갖춰 입고 있었다.


“어머! 준아, 이게 웬일이냐?”


“아! 엄마. 왜요?”


준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머리는 멋대로 헝클어져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너 얼굴 꼴이 말이 아니다. 너 어제 술 많이 마셨니?”


“아니요. 엄마. 나 술 안 마셔요. 끊은 지 오래 됐어요.”


“근데 얼굴이 이렇게 창백하니, 꼭 어디 아픈 애처럼...... 알바가 너무 고돼서 그런 거 아니니?”


“아니에요. 알바라고 해봐야 8시간짜리인데요, 뭘.”


“공부하고 알바하고 잠은 모자라고, 에구.......네가 어미 복이 없어서 어린 게 고생만 하고 미안하구나.”


“아유, 어머니. 그런 말씀 이제 그만 하세요. 전 하나도 힘 안 들어요. 낼모레 군대 갈 장부가 뭐 이까짓 게 힘들다고.”


“이참에 병원에 한번 가서 진찰이라도 받아 보자.”


어머니는 아들이 안쓰러운지 몸의 여기저기를 만져보았다.


“병원은 뭘요?”


“아니면 한의원에라도 가서 보약이나 한 첩 해줄까? 에구. 이거 식은땀이 웬 말이냐?”


“보약은요 뭘. 나보다 엄마가 더 필요하죠. 전 됐어요. 아! 이거 보세요, 피골이 상접했다고요.”


준은 엄마의 허리를 두 손으로 잡고 과장을 했다.


“야! 인석아. 이 에미가 이래봬도 뒤태가 30대란 소릴 듣는 허리라고.........”


준은 어색함을 지우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휴대폰을 책상위에 올리며 밖으로 나갔다.


“미안하다. 얘야.”


“어머니, 그런 말씀 마세요. 아! 학교나 가야겠다.”


준은 어머니의 눈을 피해 화장실로 들어갔다.


“찌개 끓여 놨으니 데워 먹어라.”


어머니는 출근을 위해 밖으로 나갔다. 다시 풍경소리가 은은하게 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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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변혁의 소용돌이 12 15.03.27 586 6 20쪽
21 변혁의 소용돌이 11 15.03.27 588 8 32쪽
20 세기말 증후 37 15.03.24 665 10 26쪽
19 세기말 증후 36 15.03.24 228 5 25쪽
18 세기말 증후 35 15.03.24 483 5 25쪽
17 세기말 증후 34 15.03.24 470 8 18쪽
16 세기말 증후 33 15.03.24 479 7 17쪽
15 세기말 증후 32 15.03.24 419 6 17쪽
14 세기말 증후 31 15.03.24 355 7 22쪽
13 세기말 증후 29 15.03.24 609 6 17쪽
12 세기말 증후 28 15.03.24 696 4 18쪽
11 세기말 증후 27 15.03.24 417 9 20쪽
10 세기말 증후 26 15.03.24 579 5 27쪽
9 세기말 증후 25 15.03.24 596 8 18쪽
8 세기말 증후 24 15.03.24 454 10 20쪽
7 세기말 증후 23 15.03.24 248 6 15쪽
6 세기말 증후 22 15.03.24 459 7 5쪽
5 세기말 증후 21 15.03.24 480 9 15쪽
4 세기말 증후 14 15.03.24 656 9 26쪽
3 세기말 증후 13 15.03.24 611 9 10쪽
2 세기말 증후 12 15.03.24 619 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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