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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쿤1 님의 서재입니다.

처용과 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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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쿤1
작품등록일 :
2015.03.24 22:14
최근연재일 :
2015.03.29 22:27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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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09
추천수 :
224
글자수 :
257,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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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24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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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8쪽

세기말 증후 25

DUMMY

낭도들의 산행은 쉬지 않고 계속됐다. 흰 구름이 흘러가고 새소리가 새벽 계곡의 수풀을 흔들며 메아리치고 낭도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풀밭을 헤치며 걷는 일행이 드디어 길을 빠져 나와 공지에 이른다.


“이거! 난감하네.”


응렴이 독백처럼 뇌까렸다.


“왜 그러시오, 국선?”


바로 뒤에 길을 따르던 계원이 다가왔다. 이마에는 구슬 같은 땀이 맺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소매로 턱을 닦았다.


“길을 잃었어.”


응렴은 미안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흐르는 땀도 닦지 못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국선?”


숙종랑이 다가오며 말했다.


“그건 지금 위험합니다. 우리가 오대산을 벗어난 지 꼬박 하루가 지났소. 그렇다면 금강이든 철령이든 북국에 가까이 왔다고 봐서 조심해야만 합니다. 더 이상 위로 올라가면 위험합니다.”


“북국이라고 했소?”


계원이 심각하게 물어왔다.


“발해 말이오.”


응렴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발해의 국경을 넘을 수도 있기에 아무렇게나 산행을 하지 못하는 거였다.


“그냥 높은 봉우리로 가봅시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찾을 길이 나오겠죠. 산세를 보면 금강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고 했소. 일만 이천 봉이면 오죽이나 요란하겠소?”


범교사가 제안을 하지만 누구도 선뜻 동의하지는 않았다.


“다 움직일 필요는 없습니다. 발 빠른 제가 가서 확인하겠습니다.”


허곡이 한발 앞으로 나서며 자원을 하자 범교사가 가로 막았다.


“아뇨. 향도로 간다면 제가 가야 옳습니다. 다섯 번 가본 제가 낫지 않겠소?”


“그럼 저도 가겠습니다.”


계원이 팔을 걷어붙였다. 무기를 잡은 손에 경련이 일었다.


“그럽시다. 방법이 없군요. 우리 모두 같이 움직입시다.”


응렴이 한숨을 내쉬며 일행을 인솔했다. 응렴이 앞장서서 올라가자 누구라도 할 것 없이 모두 뒤를 따른다.


“저기 저쪽에 스님이 한분 계신데 우리 모두 그리로 한 번 가 봅시다. 혹시 길을 알고 있을지 모르니......”


허곡이 지나가던 스님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숲속 오솔길로 소나무 한그루 밑에 젊은 스님이 쉬고 있는 모습이 발견되자 일행은 반가운 마음으로 그곳으로 갔다.


“스님! 길 좀 묻겠습니다.”


허곡이 먼저 다가가 인사를 했다.


“그러시구려.”


“저희가 길을 잃어 그러는데.........”


급한 마음에 계원이 끼어들었다.


“어이구 저런~. 길을 잃었습니까?”


“여기서 연화사로 가려면 어느 길로 가야하는지 혹시 아십니까?”


“어쩌나. 소승도 초행길이라 잘은 모릅니다. 허지만 높은 곳으로 올라가 보면 길을 알지 않겠습니까? 허허허!”


“아! 네, 그렇죠. 아무래도 그 길 밖에 없겠지요? 헛허!”


계원은 여태껏 자신들도 같은 말을 했었다는 사실에 그만 헛웃음이 나왔다.


“뭔가 특별한 방법이 있을 줄 알고 기대했건만........”


숙종랑이 실망한 듯한 표정으로 등을 돌렸다.


“죄송하군요. 실망시켜드려서.”


“자네가 한 말이나 저 스님의 해법이 같잖은가?”


예흔랑이 허곡을 바라보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보아하니 길만 잃은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젊은이들.”


스님이 큰소리로 웃었다.


“예?”


계원은 스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길만 잃은 게 아니라니요?”


“보아하니 길도 잃고 초심도 잃은 모양이라서 그렇소.”


“초심을 잃었다는 게 무슨~”


범교사는 은근히 화가 났다. 자신들을 모두 비웃고 있는 저 스님의 정체가 궁금했다.


“처음 마음먹은 대로 행하면 도중에 실족하는 일은 없겠지요. 헌데 다른 사심이 개입하면 길을 잃게 되는 거라오.”


“가르침 고맙습니다. 스님께선 어디로 가시는 중입니까, 외람됩니다만........”


허곡이 얼른 한 걸음 나와 서로의 충돌을 피하려고 말을 했다. 스님은 허곡의 개입이 의도된 바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스님은 허곡의 이목구비를 찬찬히 살폈다. 그리고는 무릎을 쳤다. 하지만 이 행동이 무슨 의미인지 낭도들에게는 관심거리가 되지 않았다.


“허허! 난 연화사로 가는 길이오 만~.”


“연화사요?”


일동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그럼 우리가 같은 곳을 가려는데 왜 그런 말씀을 .........”


“소승이야 갈 곳을 알고 찾아가는 길이오만 그대들은 갈곳을 모르고 찾아가는 것 아니오. 그러니 우린 서로 갈 길이 다른 거지요.”


“그럼 길동무 삼아 같이 가도록 하시지요?”


응렴은 괜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 속내를 들키지 않고 스님을 비꼬았다.


“아니오. 그대들의 걸음이 느리니 따로 가겠소. 그리고 난 생각할 것도 있어 소란스러운 건 질색이오. 따로 갑시다.”


“길은 하나이지 않습니까?”


범교사는 스님의 행색을 살피며 의문을 했다.


“길은 여러 갈래입니다. 한 갈래인 길을 여러 개로 느낄 수도 있는 겁니다.”


어김없이 현답이 튀어나왔다. 범교사는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땡중의 자존심을 긁어댈 방법이 생각이 나지 않자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우리들의 걸음이 느리다고요? 우린 훈련을 받아서 하루에 오백 리를 능히 걷습니다. 스님과 비교하시다니.......”


계원은 가장 체격조건이 뛰어난 낭도로 힘을 비교당하는 것을 체질적으로 싫어했다.


“하루에 오백리라......... 그럼 내가 먼저 가서 일과를 끝낼 때쯤 돼야 그대들이 당도하겠군.”


“뭐라고요? 그게 정말이요. 우리가 하루 반나절이나 늦을 거란 말이오? 어디 우리 내기라도 할까요?”


일동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는 가운데 응렴이 무리의 리더로서 단안을 내렸다.


“내기라? 하하하! 소승이야 언제고 연화사에 당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 천천히 산수를 즐기며 가려고 했는데 내기를 하자면 딴 짓은 못 하겠구려. 그대들은 뭘 내려오?”

“스님은 뭘 거실 작정입니까?”


“난 따로 걸 게 없소이다. 이 몸뚱이 하나뿐. 그대들이나 걸 걸 준비하시죠?”


“참! 이거 황당하구먼.”


계원은 정말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표정으로 어이없어 하며 동료들을 둘러보며 동의를 구했다.


“내 오다가 철원 근방에서 길상초를 발견하였소.”


스님의 말에 모두가 진지하게 들었다.


“길상초라면 전설에나 나올법한 신비의 초목일 텐데 그걸 보셨다고요?”


“그렇소. 그런데 민간인이나 시정잡배들은 그걸 알아 볼 수가 없기에 특별히 표식을 해두었소.”


“시정잡배?”


흥분한 범교사가 그 단어를 되뇌다 콧물이 튀고 말았다.


“그래 그 길상초는 대체 어떻게 생긴 겁니까?”


예흔랑이 궁금한 것은 못 참고 먼저 물어왔다.


“가까운 곳에 세 그루의 소나무가 있어서 칡 끈으로 기둥에 표시를 해두었소, 그게 표식이 될 거요. 이쪽에서 철원 방면으로 조금 들어가면 보일 거요. 그대들이야 길상초가 무엇인지 봐도 모를 테니 세 그루의 소나무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곳에 연한 자주빛 꽃 달린 대공으로 아니 그대들이 갈 때쯤이면 꽃은 지고 보이지 않겠구려. 잎이 짙은 갈색이고 내가 세 그루를 묶어 두었으니 찾아보시오. 높이는 한 척이 조금 넘을 거요. 옆에 작은 연못도 있소이다.”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스님의 말을 음미하듯 있었다.


“그래, 우리가 그 길상초를 발견하면 그 다음에는 무얼 어떡하지요?”


응렴은 스님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즐거운 듯 느물거리며 웃음 지었다.


“그대들이 장차 이 나라의 군주와 명망가가 되거든 그 자리에 절이나 하나 지어주시게.”


스님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을 남기고 발걸음을 옮겼다. 일행은 그 자리에 얼어붙는 경험을 했다. 두 가지가 놀라운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스님이 하는 말은 하나의 진리일 것이고 또 하나는 일행 중에 왕이 나온다는 예언 때문이었다.


“우리가 군주가 되고 명망가가 된다니 그건 또 무슨 해괴한 소리요?”


계원이 스님의 앞길을 막아서서 다시 물었다.


“내가 관상을 좀 보지. 이 산속에서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그만큼 솔직하게 접근한 것인데 아닌 척 의뭉을 떨다니....... 헤이 이런 괘씸한! 이거 너무 속보이는 것 아니야?”


스님은 오히려 역정을 냈다. 차갑게 말하자 한기가 느껴지는지 계원은 양 팔뚝을 쓰다듬고 혹시 스님의 심기가 불편해질까봐 얼른 아양을 떠는 듯 낭도들의 태도가 순식간에 달라졌다.


“시국이 한창 위험해서 그렇습니다. 반란도 있고 정변도 있기에 말 한마디로 자칫 목숨을 담보하지 못하기 때문에, 물론 그런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좋게 볼 수도 있지만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경우도 있는 것 아니오? 내 말이 틀렸소이까?”


숙종랑이 무리를 대표해서 길게 설명을 했다. 스님은 숙종랑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럼, 우린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이고 내가 그대들을 뒤밟아 온 것도 아니란 것은 분명하오? 장담할 수 있소? 내가 그런 말을 한 것이 기분이 상할 만큼 불쾌한 거요?”


“그야.......전혀!”


숙종랑은 빠르게 한손을 옆으로 흔들어 부정했다.


“이 사람은 상선에서 온 게로구먼, 바다 냄새가 물씬 나지만 산속에서 평생을 하겠는데?”


스님은 허곡의 어깨를 짚고 어깨에서 팔목까지 손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이 사람은 장차 철원에서 수령이 되면 필시 나와 부딪힐 운세가 있네. 내가 그때쯤이면 관재구설수가 생기고....... 우린 자주 만날 인연이야, 내 얼굴 잘 봐두라고. 부탁이라도 해야 하나?”


스님은 다시 숙종랑을 바라보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러자 숙종랑은 상체를 뒤로 피했다.


“어? 맞네! 맞아! 허곡랑 자네는 상선출신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고, 그러면 숙종랑 자넨 철원지방의 수령이 될 팔자인가 보군? 그럼 이 스님을 유언비어 유포로 체포할련가?”


계원이 허곡과 숙종랑을 보고 스님을 존경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우리 중 누구에게 그런 제왕의 기운이 보입니까, 선사님? 여러 명이 다 군주가 될 수는 없는 거고........”


허곡은 스님의 앞에 서서 진지하게 물었다.


“자네도 알고 있잖은가! 지금 개나 소나 다 군주가 될 수 있는 세상이지 않은가? 군주라고 딱히 덕망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무력과 재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거. 하하하!”


일행들은 모두 염치없는 표정으로 실실 웃었다. 스님의 말이 하나도 어긋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런 거야....... 그렇지만 아까 말씀하시길, 외람되지만 우리 중 누구 하나를 지목해 주십시오.”


허곡은 지지 않고 다시 물었다.


“별 싱거운........ 네 놈들도 모두 군주가 되고 싶은 모양이지? 꿈 깨! 당신이 곧 군주가 될 상이지만 그리 좋아할 것 없어!”


스님은 손가락으로 낭도들을 하나하나 짚어내다가 응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전혀 예의도 갖추지 않았지만 응렴은 분개하지 않았다. 스님의 손가락은 응렴의 명치를 콕 찔렀다. 손가락을 빼지 않고 명치를 찌른 채 정지하고 있자 응렴은 순간 숨이 막혀 왔다.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이 드는지 눈의 초점이 흐려진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와 낭도들의 거친 숨소리가 오버랩 되어 긴박한 달리기가 시작된 것을 알게 했다. 멀리 연화사 탑루의 끝이 오르락내리락했다.


“빨리 갑시다! 난 내 사전에 양보하는 내기란 있을 수 없어! 훈련의 일환이라고 어쩌고는 생각하지 말고.....,, 진짜 내기입니다. 저 자가 진짜로 내공이 높은 도승일 지도 모릅니다.”


계원이 무리에 앞장을 서서 힘차게 달렸다.


“진짜 도승이라면?”


바로 뒤에 응렴이 따라붙었다. 체력으로는 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허투루 대결하면 우리가 망신당하니.........”


“벌써 질 것을 예견하는 것이오, 계원랑?”


허곡이 뒤따라가며 웃었다. 계원의 볼이 빨개졌다. 뒤따라오는 낭도들이 일제히 웃었다.


“그나저나 그럼 우리 국선께서 머지않아 등극하실 걸 그려봅니다. 히히히!”


숙종랑이 신이 났다.


“그건 숙종랑께서도 철원지방에서 현령으로 입관하실 일을 말씀하십니까?”


역시 허곡은 숙종랑의 마음을 제대로 읽었다.


“하하하! 그렇게 되나요? 진짜 저 자의 말이 사실로 실현되길 바랍니다. 오매불망! 국선님! 그때 그렇게 되면 저에게 군권을 맡겨주십시오.”


예흔랑이 박수를 치며 허곡을 제치고 응렴의 뒤에 붙었다.


“군권이오?”


“그대 예흔랑은 만약 군권을 갖게 된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오?”


범교사가 뒤에서 말을 던졌다.


“약속해 주시기만 한다면 왕권을 확고히 하는 일에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절대로 왕권에 도전하는 귀족이나 지방관리, 골품세력이 없게끔 하겠습니다.”


예흔랑은 범교사를 향해 몸을 돌려 공중재비를 했다.


“아! 귀족들의 발호를 척결하시겠다!”


응렴이 제대로 예우하며 말을 받았다.


“그게 가장 확실한 거죠. 왕권을 드높이는데 그것만한 방법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을 반드시 짚어야 합니다. 그게 의지만으로 성사될 성질입니까? 골품에서 비롯된 것뿐만 아니라 평민이나 천민들이 정권에 반하는 일도 생각해둬야 합니다.”


범교사가 냉철하게 분석했다. 계원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대적 세력이 귀족이나 진골이외에 평민과 천민도 있다는 뜻이죠?”


응렴이 범교사의 눈빛을 보며 물었다.


“만약 우리 국선께서 왕위에 오르신다면 누가 그 자리를 위태롭게 할까 생각해보면 쉽게 답이 나옵니다.”


“그렇군요. 왜도 그렇고 당도 그렇고 발해도 물론이고요.”


“골품 귀족은 물론이고 지방 관리도 가능하고요, 일반 백성들도 배고픔을 못 이겨 창궐할 수도 있고.........또?”


예흔랑이 구구절절이 자신의 적대세력을 줄을 세웠다.


“선대왕의 자손들이 가장 큰 적입니다.”


허곡이 한 마디 하자 모두들 멈칫했다.


“궁예? 아직 젖먹이 아니오?”


계원은 제자리에 서서 숨을 헐떡였다.


“그러니까 민감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오. 국선께서 왕위를 차지한다 해도 오늘 내일이 아니고 십년 이십년을 봐야 하는데 그새 그 아이가 힘을 가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를 옹립하는 무리가 있다면 그보다 더 빠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범교사가 재사답게 사정을 분석했다.


“왜구와 발해, 당도 가상의 적이고 천민들도 ....... ”


숙종랑도 동의하며 손가락을 꼽았다.


“헌데 천한 것들이 무기를 들고 왕궁을 습격한다? 감히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계원이 따졌다.


“귀족들이 왕권에 도전하는 것은 서로 경쟁하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건 그 나름대로 당위성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천민이건 양민이건 왕권에 도전한다는 것은 국권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그런 사태가 발생한다면 사직의 운명이 다했다는 척도로 봅니다. 천자의 나라에서 역사적인 사실로 증명이 되니 말입니다.”


범교사가 깊은 분석을 내놓았다. 낭도들은 범교사를 둥그렇게 에워쌌다.


“천민들이 들고 있어나면 정권의 운명은 끝이군요.”


응렴은 심각한 표정으로 범교사를 바라보았다. 범교사는 그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았다.


“그렇다고 봐야죠.”


“그럼 당나라는 곧 머지않아 그 길로 가고 있다고 보십니까?”


“자고로 천년 사직은 없습니다. 고구려나 우리 신라가 그에 근접했고 이미 고구려는 멸망했으니 천하에 우리 신라만한 왕국은 없는 겁니다.”


“전 자신 있습니다. 국선!”


예흔랑이 주먹을 쥐어 보이며 머리를 조아렸다.


“하하하! 그럼 그렇게 하십시다. 하지만 제가 먼저 왕위에 올라야 가능한 얘기들 아니겠습니까?”


“헌데 조짐이 좋습니다. 저 스님의 말씀대로라면 그렇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고 왠지 그럴 것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숙종랑이 확신에 찬 말을 자신 있게 했다.


스님은 전혀 망설이지 않고 응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전혀 예의도 갖추지 않았지만 응렴은 분개하지 않았다. 스님의 손가락은 응렴의 명치를 콕 찔렀다. 손가락을 빼지 않고 명치를 찌른 채 정지하고 있자 응렴은 순간 숨이 막혀 왔다.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정말로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그 속에 흰 광채가 한 줄기 빛이 되어 쏘아져왔다.


“ 근데 그때 정말이지 하늘이 노랬었습니다. 아찔한 게 숨을 쉴 수도 없었고 스님의 말씀은 허공에서 들리는 듯했습니다. 아직도 두 귀가 먹먹한 것 같습니다.”


응렴은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먼 허공을 응시했다.


“그럼 정말 군주의 위가 보이는 게 아닙니까?”


“왜요?”


“자고로 왕위는 방위로 중앙이니 황토색이 맞습니다. 노란 것은 황금색을 의미하는 것이니 당연히 왕좌를 상징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늘이 노랬었다니까요.”


“그러니까 말씀입니다. 하늘은 신의 귀의처고 노란 것은 계시 아니겠습니까?”


범교사와 응렴이 열심히 상황을 정리하려고 했다.


“천명이 우리에게 있다는 정언입니다.”


허곡이 한마디로 정리를 했다.


“와! 그럼 우리 국선께서 정말로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겠군요.”


계원이 손뼉을 쳤다. 일동 호쾌하게 웃었다. 무리는 일제히 연화사를 향해 달렸다. 연화사의 전각이 멀리 보이고 점차 가까이 다가온다.


“저기 연화사가 보입니다. 헉헉! 현판에 연화사라 쓰여 있습니다. 우리가 제대로 왔습니다.”


허곡이 맨 앞에서 연화사를 가리켰다.


“자! 힘들 내십시오. 다 왔습니다. 내친걸음으로 왕궁까지 가는 겁니다. 제가 구령을 붙이겠습니다. 자! 왼발! 왼발! 하나! 둘! 하나! 둘!”


계원이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구호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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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변혁의 소용돌이 11 15.03.27 589 8 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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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세기말 증후 36 15.03.24 228 5 25쪽
18 세기말 증후 35 15.03.24 483 5 25쪽
17 세기말 증후 34 15.03.24 470 8 18쪽
16 세기말 증후 33 15.03.24 479 7 17쪽
15 세기말 증후 32 15.03.24 419 6 17쪽
14 세기말 증후 31 15.03.24 355 7 22쪽
13 세기말 증후 29 15.03.24 609 6 17쪽
12 세기말 증후 28 15.03.24 696 4 18쪽
11 세기말 증후 27 15.03.24 417 9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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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세기말 증후 24 15.03.24 454 10 20쪽
7 세기말 증후 23 15.03.24 248 6 15쪽
6 세기말 증후 22 15.03.24 460 7 5쪽
5 세기말 증후 21 15.03.24 480 9 15쪽
4 세기말 증후 14 15.03.24 657 9 26쪽
3 세기말 증후 13 15.03.24 611 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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