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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쿤1 님의 서재입니다.

처용과 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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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쿤1
작품등록일 :
2015.03.24 22:14
최근연재일 :
2015.03.29 22:27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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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24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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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세기말 증후 14

DUMMY

강성대학 교정. 왁자지껄한 가운데 수업시작종이 울린다. 학생회관 로비 한 켠에 앉은 형석과 준이 커피 자판기 앞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너희 단대 회의에 내가 왜 참석해야 하는 거야?”


형석은 노트에 짧은 메모를 하며 동전을 찾았다.


“답사와 참관 등의 취지는 좋은데 이해관계가 서로 얽힐 경우 중재할 사람도 필요하고.........”


먼저 준이 동전을 투입했다.


“내가 중재하라고?”


“아니, 형식적인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 일단 구경한다는 거로 생각해.”


준은 먼저 나온 컵을 형석에게 권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필 내가 이런 자리에서........”


형석은 컵을 받아 들며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아 했다.


“그제 내가 한 얘기에 충격을 받았나본데 꼭 그걸 확인해봐야겠어?”


“너도 그걸 원하는 거 아니야?”


“아무튼 너는 참 기동력이 있다. 땅 밟기 얘기를 했을 땐 그저 ‘그런 게 있으니 관심을 기울여라’는 의미였는데 벌써 답사에서 참관까지 실행에 옮기니........”


“기동력보다는 추진력이라고 하자. 난 미지근한 것은 싫거든.”


준은 바로 며칠 전 이런 기획을 낳은 모종의 일에 대해 잠시 회고했다. 풍경과 유사한 종소리가 울리며 현관문을 열고 준의 어머니가 들어온다. 수건으로 얼굴과 목을 닦고 간이 화장대 앞에 앉아 로션을 바르며 컴퓨터책상에 앉아 있는 준을 보았다.


“준아! 이제 그만 자자. 더 할 거니?”


“예. 어머니. 한 시간만 더 있다 잘게요.”


준의 시선은 화면에 고정되어 있고 형식적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그래라. 잘 때 불 끄고 스위치도 다 내려?”


“예. 먼저 주무세요.”


형석은 화면을 스크롤하면서 낮에 형석이 한 말을 음미하고 있었다.


‘너 봉은사 땅 밟기라고 들어봤어?’


형석의 말에 준은 화면에 펼쳐진 입력창에 ‘봉은사 땅 밟기’라고 입력했다. 화면에는 기독학생 대학생들이 어느 사찰의 정문 앞에서 스크럼을 짜고 예의 그 땅 밟기를 하고 있었다. 스님들이 모여 나와 어깨를 겯고 서로 대치하고 있었고 나이가 많은 신자들은 걱정스러운 듯 방관하고 있었다.


‘봉은사? 땅 밟기? 지신밟기가 아니고?’


‘지신밟기? 아! 그건 우리나라의 세시풍속의 하나로 좋은 거지만 기독교의 땅 밟기는 전혀 다른 거야.’


대학생들이 일정한 보폭으로 천천히 전진하면서 발바닥으로는 소리 나게 땅을 굴렀다.


‘기독교 대학생들의 모임에서 봉은사에 쳐들어가 발을 구르며 땅을 밟는 의식을 했대.’


‘의식? 불교를 공격하는 건가?’


‘결론은 그렇지. 땅 밟기는 상대를 공격하는 매우 적극적인 방식이야. 그런데 그 게 엄청 웃긴 얘기야.’


‘그게 뭐가 웃겨?’


‘웃긴 건 아니고 그런 사태로 몰고 간 종교지도자 놈들의 상식이 웃긴다는 거지. 자기네들의 저주로 불교를 망하게 하고 이 땅을 전부 붉은 십자가 아래 두겠다는 생각이라는 건데, 그게 어디 정상적인 인간의 사고냐? 천사의 탈을 쓴 사탄의 지령을 받은 졸개의 모양이지. 사이비라 욕을 하면서 자신들은 더 지저분한 사고를 가지고 있어.’


준이 마우스를 클릭했다. 화면이 바뀌며 어느 목사의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청소년들이 성숙하지 못한 판단으로 한 것이지만........”


‘전에는 자기들이 땅 밟기를 기획했다고 자랑처럼 얘기하더니 언론의 심층취재에 이어 여론의 뭇매를 맞으니까 저렇게 더럽게 촉수를 오므리는 거 봐라! 저놈들은 땅 밟기뿐만이 아니라 다른 짓들도 엄청 했다더라고.’


형석은 입에 거품을 물고 설명했다. 다시 목사의 인터뷰화면은 진행되었다.


“정통 기독교의 기본 입장과는 다른 것이고, 종교의 지도자로서 서로 관용하고 상생하는 것에 대한 통찰이 없는 유아적 발상의.......”


‘저런 쳐 죽일 놈들.’


준은 흥분한 마음을 억누르며 다시 마우스를 스크롤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더욱 교육을 강화하고........”


‘근데 그 역사가 꽤 오래된 거라는 데 문제가 있어. 미봉책이지. 기독교를 주장하는 각종 싸이트, 홈피, 블로그에 들어가 보니 땅 밟기를 선동하면서 유명한 절들을 몽땅 적어놨어. 봉은사, 선암사, 조계사, 선운사, 동화사, 통도사 등등. 조별로 과제를 나눠주고 미리 사전답사하고 계획적으로 저지른 짓인데 그걸 한 놈들은 위대한 성전이라고 자랑을 하고 동영상을 만들어 올렸다는 거야.’


‘그건 나도 아는 것 하나 있다. 절간에 몰래 들어가 문화재로 지정된 불상이나 탑에 십자가를 그리거나 못으로 긁어 새겨 넣은 놈들도 있다고 하더라.’


준도 형석과 같은 내용의 대화를 주도했다.


‘그 정도가 아니야. 우상숭배를 못하게 한다고 부처상 뒤에 십자가를 그려 넣는데, 불교신자들이 부처에게 절을 하면 당연히 십자가에 절을 한다는 결론이잖아. 절하는 게 우상숭배라면서 그건 절하는 게 아니야? 그건 우상이 아니냔 말이야?’


준은 다시 클릭한다. 어떤 사이트에 접속되었다. 여러 사찰의 대웅전이나 전각의 모습들이 지나가고 약도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준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을 크게 뜨고 화면을 뒤진다.


‘아직 땅 밟기는 끝난 게 아니야. 더 크고 은밀하게 진행하는 게 있어서 문제지.’


‘또 뭔 수작을 부리려 하는데 그래?’


‘강화도에 전등사라고 있지? 거긴 꽤 오래전부터 그래왔어. 대학생들의 수련회 겸 단합대회 자리로 유명하잖아. 원래는 단군의 아들인 삼랑이 살던 성이란 뜻으로 삼랑성이 있었는데 그걸 개조해서 전등사란 절이 생긴 거야.’


‘단군의 아들 이름이 삼랑이라고? 거기서도 땅 밟기를 했던 거야?’


‘그건 아니고 전등사 위로 단군사당과 참성단이 있는데 거길 공격할 모양이야. 참성단은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모시던 곳이고 단군사당은 우리가 단군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야. 그 놈들이 공격적인 짓을 한 것은 벌써 몇 십 년 전부터 했지만 이번은 좀 느낌이 달라.’


‘전과 지금은 다르다는 말인데 어떻게 공격했는데?’


‘절간에 놀러온 척 하면서 단군사당이나 참성단에서 잠도 자고 분비물이 잔뜩 뭍은 더러운 팬티도 막 널어놓고 똥오줌도 마구 싸갈기는 모양이야.’


‘허어, 이 잡놈들! 여리고성하고 똑같네? 그놈들을 잡아 족치지 그래? 못 들어오게 하면 안 되나? ’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어떻게 막아. 종교가 다르다고? 거기 강화도에도 교회 많아. 이건 종교의 문제가 아니야. 인간됨의 문제라고. 자기 할아버지 할머니가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절도 안하는 놈들이니.........’


준은 신경질적으로 스크롤하면서 마우스를 집어 던졌다. 그 소리에 놀라 옆으로 누워 있던 준의 어머니가 고개를 돌려 준을 보았다.


“왜 공부가 잘 안 되니?”


“아니에요. 그냥 답답해서......”


“안 되면 내일하고 어여 자.”


준은 컴퓨터를 거칠게 끄고 밖으로 나갔다.


“네. 씻고 잘게요.”


학교 내 강당으로 가는 길에 학생들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지하 소강당으로 내려가니 객석은 반 이상이 이미 차 있었고 단상에 마련된 토론석상은 이미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패널들도 입장완료 상태였다.


“예상외로 일이 커졌다. 준아! 학생회에서는 답사의 취지는 좋으나 보다 건설적이고 학구적으로 접근하자고 기독학생회의 회장단까지 초청해 놓았어.”


회의의 사회를 맡은 이정연이 들어오는 준을 붙잡고 말을 했다.


“그러게 왜 이렇게 일을 키웠어?”


“잘못 했다간 형석이 너랑 기독회장단이 싸울 지도 모르겠다. 미안하다. 내가 미리 너한테 설명을 하려 했는데 시간이 없었어. 지금 미안하단 말을 먼저 할게. 너 죽는다고 물귀신은 되지 말자.”


이정연은 형석의 팔을 붙잡고 미안함을 먼저 토로했다.


“될 대로 되라지. 난 신경 안 써.”


“그럼 좋고. 부탁한다.”


이정연은 손을 흔들고 단상쪽으로 걸어갔다.


“자! 곧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학생회장의 인사말이 있겠습니다. 서영식군입니다.”


이정연의 소개로 서영식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녕하십니까. 문과대 엠티로 내정된 행사에 이렇게 열화와 같은 관심을 가져주신 학형들에게 먼저 자부심을 갖는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형식적인 것은 다 생략하고 바로 안건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학생회장인 서영식이 인사말을 하고는 숨도 돌리지 않고 바로 주제로 말을 이었다.


“.........여리고 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숨이 붙어있는 모든 생명을 학살했다는데 그건 사회정의로도 신의 영광으로도 아니 그 무엇으로도 설명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여리고성 이야기가 바로 전개되자 기독학생대표로 구성된 문과대 측에 앉아있던 최반석이 몸을 앞으로 당겨 바로 말을 할 수 있도록 자세를 갖추자 사람들은 일제히 쑤군대기 시작했다.


“여리고성 내에는 당시 많은 이교도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인구는 수 천 명은 족히 되고 농사도 잘 되는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쟤가 강남 세곡 교회 목사 아들이야. 말을 좀 길게 하는 게 특기야.’


준은 형석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기보단 최반석이 누군가를 설명했다. 그 점이 더 확실한 상황판단이었던 것이다.


‘목사 아들이 신학대학에 안가고 여기 왔다는데 쟤였구나? 잘 생겼는데?’


형석도 그에 대한 소문을 들어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을 했다. 역시 최반석은 길게 말을 했다.


“여리고 성에서 지배적인 것은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농업의 신입니다. 그들은 바알신과 아세라신을 믿었는데 바알은 남성신이고 아세라는 여성신입니다. 농업의 풍작은 비가 많이 내리는 데 기인하고 두 신이 천상에서 성행위를 하면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져 비가 잘 내리고 풍년이 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제사란 인간이 바알과 아세라신에게 정성을 들이는 것인데 두 신이 볼 수 있도록 인간들이 제단위에서 성행위를 하는 것이 종교의 기능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성창이 존재하였고, 신학자들은 라합도 그 성창들 중 하나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성창이 뭡니까?”


객석에 앉아 있던 하병주가 손을 들어 사회자의 허락을 받고 질문을 했다.


‘벌서 시작이군. 저 친구는 불교학생회의 회원이야. 독설가야.’


준이 귓속말로 형석에게 설명했다.


“독설?”


“비꼬기 선수지.”


“성직자 중에 신자들과 공개적으로 성행위를 담당하는 직업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신에게 인간의 성행위 장면을 보여주는 게 임무니까 당연히 그런 일을 할 사람이 많이 필요했겠죠. 바알신은 남성 신이고 아세라신은 여성 신입니다. 성창도 남자가 있고 또 여자도 당연히 있었습니다. 제사의 하이라이트는 집단적인 성교행위입니다. 그들의 집단적인 난교가 최고조에 이르면 그 두 신이 하늘에서 교합을 하고 그로인해 비가 억수로 내려 다음 해의 풍년을 기약한다고 믿는 듯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유일신인 하나님만을 믿고 인정했기에 이교도들의 종교와 풍습이 들어오는 것을 엄격히 금지했습니다.”

“논리상으로는 문제가 없는데 이교도들의 종교와 풍습을 금하기 위한 행동에는 성창을 금한다는 것과 또 다른 방식으로 여리고성을 침략해서 그 이교도들의 목숨을 무참히 학살하는 것을 합리화하려는 논리 아닙니까? 이교도들의 재물도 모두 불태워 없앴고 항복하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들마저 처참하게 창으로 찔러 살해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종교가 비록 현재 우리의 눈에 거슬린다고 해서 모두 죽여 없애야한다는 당위는 없다고 봅니다.”


하병주는 똑 부러지게 말했다. 절대로 말싸움엔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아! 유대인들도 처음에는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 상황을 피했었습니다.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을 즐겨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포로를 노예로 쓴다든지 재물은 빼앗고 가축은 계속 돌보는 식으로 처리 했습니다만, 특히 예루살렘 점령 전에는 어떤 한 가나안의 민족 전체가 투항하자 모두 살려주는 일도 생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들에 대해 성경에 분명히 경고했습니다. ‘너희들이 오늘날 살려둔 이방인들이 훗날 너희를 찌르는 가시가 될 것이다’라고 경고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고대로...... 이스라엘은 유일신 종교의 신앙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하고 이방의 다신교를 받아들이고 이스라엘 민족이 살려둔 가나안의 후예들은 훗날 세력이 커지자 다시 이스라엘에게 엄청난 위협이 되고 맙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이런 일들을 반복하다 멸망하고 맙니다. 이것이 구약 전쟁에 대한 신학적인 해석입니다.”


“그게 기독교의 공식 입장이고 교리해석의 열쇠라면 그것은 파괴주의자요 융통성 없는 자만으로 가득한 종교라는 반증 아니겠습니까? 세상을 어떻게 하나의 종교로 통일하려는 망상을 가지고 있습니까? 인간의 다양성과 자주적인 의식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는 파시스트적인 발상 아닙니까?”


“아! 잠깐만요! 사회자의 직권으로 정리하겠습니다. 회의가 예상외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저흰 이런 적극적인 종교적 토론을 바라진 않습니다. 여러분들의 정성과 관심, 충분히 이해하고 일단 고맙습니다. 여기 모신 토론자들의 토론을 일단 지켜보시고 나중에 질문할 시간을 따로 드릴 테니 종교적 교리 및 그와 관련된 질문들은 그때 일괄로 해주시길 바랍니다.”


서영식이 마이크를 들고 얼른 일어서서 정리를 하며 병주를 손으로 가리키자 병주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에 앉는다. 순순히 물러나지만 나중에 준비한 큰 계획이 있는 듯한 표정이다.


“죄송합니다. 이번 간담회는 거창한 종교교리로 선악을 구분 짓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여기에 초청된 인사들도 종교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분들이 아니란 걸 여러분들도 다들 아시죠?”


관객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


“여러분들의 성화에 힘입어 토론을 계속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자! 어느 분 말씀하시겠습니까?”


진시몬이 손을 들자 사회자는 손을 흔들어 허가의 시늉을 내고 자리에 앉고 진시몬이 일어났다.


“아까 말씀 중에 집단 난교니 또는 다신교를 믿는 것은 저급한 문화로 취급하려는 것 같아 한 말씀드립니다.”


“아니오. 아닙니다. 전 저급하다고 한 적 없습니다.”


최반석이 당황하여 정색하고 말했다.


“집단난교란 말을 한 것은 어떤 의도가 있어서 한 말은 아니고 그런 상황을 설명해주는 적확한 단어를 찾다가 일반적으로 쓰는 말이라 그냥 그렇게 이해하기 쉽게 하려고 쓴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오해가 있었다면.........”


“저 친구는 불교학생회 회장이야. 점잖은 성격이지.”


준은 또 진시몬이란 학생을 소개했다.


“이름이 뭔데?”


“진시몬.”


“풉!”


형석은 웃음을 참느라고 손으로 입을 가렸지만 주위 사람들이 돌아볼 만큼 소란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런 잔인한 명령을 내린 것은 이스라엘의 신앙과 민족 자체의 생존을 지켜내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하신 성전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신학적인 성전은 구약시대 가나안 점령 전쟁으로 모두 종료됩니다. 그 이후에는 어디에도 성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이후에 일어나는 모든 종교적인 전쟁, 유럽의 종교전쟁이나 아랍과의 십자군 전쟁은 성전이 아닌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악으로 봅니다. 또, 그 당시의 가나안 인근의 문화는 바알과 아세라라는 풍요의 신을 섬기는 종교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 종교의 핵심은 성행위를 통해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여리고성의 종교도 주로 달의 여신을 섬겼다고 하는데, 그 종교적 분위기는 가나안의 풍요의 신 앞에 행하는 성교의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추측됩니다.”


최반석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달변이군. 장차 목회를 한다면 인기 있는 캐릭터가 되겠군.”


형석의 감상이 잠시 있었다. 옆에 앉은 학생도 그의 말에 수긍이라도 하듯이 의미심장하게 마주 보고 웃어주었다.


“요즘은 티벳이나 아니 힌두교인가요?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사원에 온갖 포르노 그림들을 조각해 놓은 것들은 그 영향을 받은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남자와 여자뿐 아니라 사람과 동물이 교접하는 그림도 있다고 하더군요. 당시에 만연한 우상숭배는 바로 기본적으로 성적 음란을 기초로 삼고 있고, 그들에게 있어 가장 고귀한 제물은 아기를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성행위를 통해서 가장 확실하게 나타난 제물이 아기니까요. 실제로 가나안 지방에서는 수많은 아기의 유골을 모아놓은 제사 터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가나안 지역의 문화를 알고자한다면, 구약 레위기 18장을 읽어보시면 됩니다. 하나님이 당시 유행하는 문화와 종교를 따르지 말 것을 명해놓은 것이니까요. 지금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는 안 될 당연한 일을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니, 그 당시의 문화가 얼마나 타락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문화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없애야 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게 성전의 올바른 개념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물론 가축과 재물까지 모두 파괴를 했다? 너무 긴 얘기라 조목조목 나열하고 싶지만 일단 생각나는 대로 하겠습니다. 포르노로 묘사되는 행위를 하는 모든 족속들은 죽여 마땅하다는 의미인가요, 하나님의 이름으로?”


진시몬이 흥분해서 감정적인 말투로 언성을 높였다.


“아! 그런 게 아니고 포르노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졌습니다.”


“상징이요. 포르노가 상징하는 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상징은 기독교에 적대적이기 때문에 파괴해야할 성질인가요?”


“아닙니다. 그런 뜻으로 상징이란 단어를 쓴 것은 아닙니다. 다만 당시 포르노의 상징성은 다산을 의미할 뿐입니다. 기독교와 적대적이란 개념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종교적 논쟁이 아닙니다. 우리의 단합대회가 참성단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실을 누구나 다 알고 또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하자는 겁니다. 지금 포르노라고 표현한 것은 힌두 사원에 있는 부처상입니다. 거기엔 사실적이 표현도 있지만 상징이 있습니다.”


상징이란 단어에 학생들이 웃음을 터트린다.


“그런데 요즘 사실적인 표현은 저급하다고 꺼리면서 상징적인 표현을 한 것은 은유니 비유니 하면서 고급한 것으로 평가하는 희한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구석기시대 유물인 동굴벽화가 천합니까? 묻고 싶습니다. 금욕과 청빈, 절제등의 가치로 상징을 제도화하는데 기발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에선 그런 상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어 다행입니다. 인류문화의 전체적인 면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말이 되니까 말이죠. 그런데 그 해석에 있어서 한마디 합니다. 이방인이 너희를 찌르는 가시가 될 것이고 그 가시로 이스라엘이 멸망할 것이란 예언은 포르노의 상징성과는 관계없다고 했습니다. 그건 난잡한 성행위를 장려하는 것에 포커스가 있는 게 아니라 풍요로운 생산을 담당하는 것에 있는 의미와 상징인 것입니다. 또한 그런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도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유대인들을 가나안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 원주민이 살고 있는 곳을 깡그리 소탕한다는 종교적 우월감을 가진 종교가 남의 종교를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아! 이상 종교적인 논쟁은 소모적이니까 중단합시다. 우리가 모인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으니까요. 그냥 땅 밟기가 있었는데 그 연원이 어디에서 기원했는가를 알고자 질문한 것이니 여리고성 함락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으로 끝내고 더 이상은 하지 말고 다음 얘기로 넘어갑니다. 문제는 땅 밟기를 한 행동들은 사과했고 분명 사과했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다짐도 했습니다. 그런데 동영상을 올린 사이트들을 보면 하나같이 죄다 그 협력 사이트들이 있는 데요. 그 사이트에서는 강화도 참성단도 땅 밟기의 대상으로 올려야한다는 글이 있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으로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학생회장인 서영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말을 막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회의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충남 어디에선가 단군의 목을 자르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건 우상숭배니 뭐니 란 말을 하기 전에 기본 상식의 문제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동상의 목을 잘랐다면 모두가 흥분하고 징죄하자고 난리가 났을 거지만 단군동상의 목을 자르면 실제 역사의 인물이 아니니까 별 관심이 없다는..... 아니! 조상도 없이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리 예수가 씨도 없이 생겼다고는 하지만 이런 몰상식은 너무 심각합니다. 강화도 참성단에서 지신밟기 아니 땅 밟기를 할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할 수 있습니다.”


이기문이란 학생이 첨언을 했다. 그러나 그의 말에 문제가 있어 이정연이 가로막았다.


“말씀 중 미안합니다만 예수도 족보가 있습니다. 그의 조상이 누군지 밝히는 대목이 신약 처음 몇 장에 아주 지루하게 나열해 놓고 있습니다. 그들 아니 유대인들이 개 족보가 아니라 조상의 핏줄을 누구보다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을 강변하고 있는 유일한 자료입니다. 그들도 자기 족보가 귀하면 남의 족보도 귀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 했지만 조상을 모시는 것은 우상숭배가 아니란 것을 기본적으로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 기독교 신자들 중에 조상신을 섬기지 않는 운동 비슷한 것을 하는 부류들이 있다고들 하는데 성경에도 그런 짓을 장려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조상을 돌보는 것을 중요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단군이 신화냐 역사냐를 떠나 우리민족의 공동의 할아버지로 모시고 있기에 단군사당은 중요한 것이고 참성단이 민족의 요람으로 간직돼야 한다는 것은 초등학교 4학년만 돼도 알 수 있습니다.”


“쟨 우리 과대표인데 기독교학생회에도 속해 있어. 이번 모임에서는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끌어낼 것이라 기대하고 그 책임을 지고 있어. 아까 봤지 이정연이라고.........”


“말투가 산뜻하네. 두 가지를 모두 수용하고 있어서 적대적 논쟁을 합리적으로 막고 있어. 난 상관없지만 아무튼 얘기는 재미있었어. 오늘 토론한 애들도 다 같이 갈 수 있는 거야?”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고 많은 학생들은 그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한편 강당에서는 계속 되던 토론이 이제 정리를 앞두고 있었다.


“저는 물론 기독교를 신앙하는 사람입니다만 철부지 학생들의 어이없는 행동으로 인해 대다수 선량한 기독교인들이 조상도 모르는 개만도 못한 부류로 배척을 당하는 현실을 타개하고 싶어서 이번 일을 기획한 것입니다. 부디 취지를 잘 살려 좋은 결과를 도출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어제 수련회를 갈 예정이라고 전화로 연락을 했었습니다. 단군사당 관리협회에서는 기독교학생회만 아니라면 받아들인다는 답변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우리 학교는 기독교, 불교, 증산교도 까지 다 있고 모두 함께 갈 거라고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허락하시고 유스호스텔의 편의까지 다 봐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학생들의 박수갈채로 토론은 끝이 났다. 형석은 밖으로 나가며 손가락으로 준에게 따라 나오라는 시늉을 했다. 형석과 준은 이야기를 하려고 자판기 앞으로 가다가 이정연이 손짓을 하자 그를 따라 학생회실로 들어갔다.


“야! 대박이다. 대박이야. 참가인원이 130명이 넘었어!”


정연이 모니터를 보며 소리쳤다. 많은 학생들이 그에게 몰렸다.


“그래? 웬일이니?”


“하긴 그동안 엠티란 게 순 처먹고 처마시고 처노는 일색이었는데 학구적이라는 소문이 나자 너도나도 몰린 모양이야.”


“야!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학구적이라고 여기저기서 몰린다는 게 맞는 말이냐고?”


“글쎄........ 그건 진짜 의외다. 참가자 명단 좀 분석해 볼까? 얘네들 왜 이래? 철학과와 사학과는 뭐야, 기독교는 그렇다고 치고.”


정연이 내림차순으로 정리를 하자 단과대 별로 학생 수가 다시 정리되었다. 경제학과나 행정학과는 당연히 나오는 건데 기독교학과에서 45명이 추가로 지원했고 전혀 사회대학과는 관계없는 철학과와 사학과에서도 지원자들이 있었다.


“철학과는 네가 데리고 온 거니?”


준이 형석에게 물었다.


“응. 더 확인해봐야 하겠지만 일단 서명한 애들은 83명이야. 150명이 정원이니 더 들어오겠지? 원래 경제학과만 엠티 가려고 했는데 이게 뭐야?”


이정연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의적절해서 그랬을 거야. 항상 일본 우익이 망언을 할 때가 되면 운동권이 들썩였는데 이번엔 단군과 예수가 붙었으니 아마 그렇겠지? 토론도 잘 됐고 기대했던 싸움도 없었고.”


“뭐? 싸움을 기대했었다고?”


준이 깜짝 놀라며 형석의 앞에 섰다.


“싸움이 나면 내가 중재해야한다고 불렀다며. 그건 싸움을 기대했다는 뜻 아냐?”


“하하하!”


형석과 준은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 커피 자판기 앞으로 갔다. 멀리 학생관 밖에 벤치가 있고 자리에는 연지와 소녀들이 앉아 있었다.


“그럼 우리 한 삼박사일로 놀러가자.”


연지가 두 소녀에게 제의를 했다.


“멋진 여행이 돼야 하니 외국으로 갈래? 연지가 몇 년이 걸릴 지도 모르는 유학을 가는데 삼박사일로 돼?”


“아니야. 멀리는 못가. 아빠가 국내에 있으랬어. 그리고 4년을 기한으로 잡았지만 중간에 왔다 갔다 할 수 있어.”


“어이~. 그래도 이거 안타까워서 어떡해.”


“그나저나 연지 너는 사귀던 사람하고는 잘 해결된 거야?”


연지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내가 괜히 그 얘길 꺼냈다. 미안해 연지야.”


“사실, 나중에 난 다시 만나고 싶어. 지금 아버지가 반대하시니까 헤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얘. 그 남친 웬만하면 개종을 하지. 그게 뭐 어렵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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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과 용신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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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변혁의 소용돌이 24 15.03.29 447 10 16쪽
30 변혁의 소용돌이 23 15.03.29 504 7 28쪽
29 변혁의 소용돌이 22 15.03.29 320 7 17쪽
28 변혁의 소용돌이 21 15.03.28 585 7 17쪽
27 변혁의 소용돌이 17 +1 15.03.27 529 9 13쪽
26 변혁의 소용돌이 16 15.03.27 465 5 17쪽
25 변혁의 소용돌이 15 15.03.27 260 7 14쪽
24 변혁의 소용돌이 14 15.03.27 613 7 15쪽
23 변혁의 소용돌이 13 15.03.27 648 8 21쪽
22 변혁의 소용돌이 12 15.03.27 586 6 20쪽
21 변혁의 소용돌이 11 15.03.27 588 8 32쪽
20 세기말 증후 37 15.03.24 665 10 26쪽
19 세기말 증후 36 15.03.24 228 5 25쪽
18 세기말 증후 35 15.03.24 483 5 25쪽
17 세기말 증후 34 15.03.24 470 8 18쪽
16 세기말 증후 33 15.03.24 479 7 17쪽
15 세기말 증후 32 15.03.24 419 6 17쪽
14 세기말 증후 31 15.03.24 355 7 22쪽
13 세기말 증후 29 15.03.24 609 6 17쪽
12 세기말 증후 28 15.03.24 696 4 18쪽
11 세기말 증후 27 15.03.24 417 9 20쪽
10 세기말 증후 26 15.03.24 579 5 27쪽
9 세기말 증후 25 15.03.24 596 8 18쪽
8 세기말 증후 24 15.03.24 454 10 20쪽
7 세기말 증후 23 15.03.24 248 6 15쪽
6 세기말 증후 22 15.03.24 459 7 5쪽
5 세기말 증후 21 15.03.24 480 9 15쪽
» 세기말 증후 14 15.03.24 657 9 26쪽
3 세기말 증후 13 15.03.24 611 9 10쪽
2 세기말 증후 12 15.03.24 619 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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