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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쿤1 님의 서재입니다.

처용과 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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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쿤1
작품등록일 :
2015.03.24 22:14
최근연재일 :
2015.03.29 22:27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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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12
추천수 :
224
글자수 :
257,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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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24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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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세기말 증후 29

DUMMY

세상에 궁예를 낳은 왕비가 사실은 정식으로 입적된 비가 아니고 일개 나인이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게다가 왕은 궁예를 죽이려고 했지만 나인들은 궁예를 불쌍히 여겨 죽이지는 못하고 뒤로 빼돌려 지금은 살아있다는 소문이라 이백만 백성들에게 헌안왕은 매우 파렴치한 존재로 부각되고 말았다. 왕은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세력은 필시 반골이라고 여기고 주살할 것을 명했다. 그런데 한술 더 떠서 호박공주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하늘에서 천사의 직을 수행하던 자가 실수로 그 보직을 잃고 지상으로 쫓겨 왔대. 그런데 그는 반성할 생각은 않고 하늘을 원망했다는 거야.”


“그래서?”


“하느님은 그자를 악귀로 만들었다는데 그 동시에 어떤 행복한 가정에 천재의 기운이 내린 두 딸이 자매로 태어나게 된데.”


“천재의 기운?”


“하늘이 복을 내렸다는 뜻이겠지. 부자이면서도 아리땁고 무병장수할 운을 타고 났다는 거지.”


“그래서?”


“악귀가 그냥 둘 리가 없지. 당연히 저주를 내리기 위해 그 집에 온 거야.”


“첫째는 곰보얼굴에 심한 악취가 풍기는 괴물로 나왔데.”


“저런~.”


“그런데 이상한 건 둘째는 전혀 이상이 없다는 건데 그 이유가 다름 아닌 첫째가 모든 악형을 대신 가져갔다는 거야.”


“세상에 그런 재수가........”


첫째는 곧 곰보얼굴이 되었으며 얼굴에서 악취가 풍겨 사람들이 가까이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첫째는 어떤 일에도 슬퍼하거나 둘째에게 원망을 하지 않고 시간이 흘러 자신의 악형이 사해지기만 기다렸다는 얘기다. 둘째는 그런 언니를 보며 죄의식을 갖게 되었고 첫째의 행복을 빼앗았다는 오명을 얻었다는 게 이야기의 요점이었다.

하지만 첫째는 곰보의 천형을 가진 대신 두 자매에게 내려질 천재성을 혼자 모두 갖게 된 일이 나중에 밝혀지게 되었다.


“그러니까 첫째는 어릴 때부터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똑똑하다는 거야.”


“어느 정도로 똑똑한데?”


“마당에 개미가 들끓었는데 개미집이 어디에 있다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데.”


“그게 뭐?”


“땅을 파보니 개미집이 진짜 있다는 거야. 큰 아이들이야 보고 들은 게 있다면 모를 리는 없겠지만 궁궐 속에 어디 개미집이 있었겠어. 경험이란 게 전무하잖아? 그런 걸 한 번에 콕 찍어 냈다는 게 천재 아니냔 말이야.”


“대단한데.”


“그런데 안 좋은 게 있어.”


“뭔데?”


“똑똑한 사람들한테 흔히 보이는 그 차가움. 냉정하고 정 없는 그런 점이 단점이라면 단점이야. 너무 냉정해서 무서울 정도야.”


“애기가 냉정해봐야 애기지.”


“아냐. 단순한 게 아니라니까.”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둘째가 원래 멍청한 게 아니라는 거야.”


“원래 멍청했었다고 한 적도 없잖아.”


“곰보의 천형대신에 천재성을 받은 것과 반대로 화용월태의 미모를 가진 대신에 멍청함을 가진 거라는데 사실은 둘째도 똑똑하다는 거야.”


“그러면 둘째는 부족함이 없는 완벽함을 가진 셈이네?”


“그게 다 둘째의 천재성이라는 거야. 걔는 어릴 때부터 호박씨를 좋아했었는데 그건 머리가 멍청해지는 것을 막는 부적이었다는 거야.”


“뭐라고? 그걸 누가 알았어?”


“첫째가 밝혀낸 거야. 자신의 저주를 풀기 위해 악귀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길로 연구를 했었나봐. 그래서 악귀를 만나 얘기를 해보니 천재성과 미모를 바꾼 건데 둘째에겐 멍청함이 들어가지 않아서 악귀의 저주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다는 거야.”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악귀는 자신이 자매에게 내린 천형을 거두겠다며 부적을 써줬는데 그게 청우타용(靑雨唾容)이라고 씌인 비단이라는 거야.”


“그게 무슨 뜻인데?”


“빗물이 파란 색은 없으니까 생각하건데 푸른 소가 얼굴을 침으로 핥아야 한다는 소리야.”


“푸른 소는 또 어디에 있는데?”


“전국 방방곡곡을 뒤지니 멀리 변방에 소가 새끼를 낳았는데 푸른색이라 상서로운 기운이 있다고 진상을 올렸나봐.”


“푸른 소가 과연 있기는 있구나.”


“둘째가 푸른 소가 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고 하더라고.”


“그럼 둘째도 천재성이 있다는 말이 틀린 게 아니구나.”


“첫째가 소 앞에 얼굴을 들이밀자 청우는 긴 혀로 얼굴을 핥았다는 거야. 그랬더니 말끔하게 곰보가 씻긴 거야.”


“그런데 왜 이 호박씨 공주 얘기를 하면 안 되는 건데?”


“지금 임금님한테 궁예 말고는 두 딸밖에 없는데 첫째 딸인 연와 공주는 똑똑한 건 맞는데 둘째 딸이 음흉한 딸이라는 말이 되잖아. 그러니 그 이야기가 퍼지는 것이 싫다는 뜻이잖아.”


“그럼 그 호박씨 공주 얘기가 사실이란 말이야?”


헌안왕이 베푼 만찬은 최고위의 백관들만 참석하는 잔치였다. 그런 자리에 초대되어 온 응렴은 이제 막 열여섯이니 그야말로 출세의 대로에 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산천주유를 하면서 덕망 있는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관점을 세웠다는 말에 흥미를 가진 헌안왕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응렴은 머리를 싸매도 그 다음 셋째의 조건이 무엇인지 생각나지가 않았다.


“겸손한 자, 검소한 자 그다음엔 무엇인가?”


왕이 자꾸 재촉하자 땀만 날뿐 통 생각이 없었는데 갑자기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있었다.


“네, 폐하. 셋은 고귀한 세력가인데도 그 위엄을 보이기 위해 애쓰지 않는 사람입니다.”


응렴은 갑자기 찾아온 기억에 당황하거나 호들갑을 떨지 않고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연기를 했다.


“그렇다면 내가 임명한 모든 관료들은 다 그 잣대에 맞게 쓰였으니 과인은 옳게 덕을 쌓는 중이네 그려, 하하하!”


헌안왕으로선 처음엔 백관들을 하찮게 여기는 것처럼 위기의식을 갖게 하더니 마지막에는 자신이 인재를 적재적소에 잘 배치했다고 자찬을 하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황으로 연출한 것이다.

응렴이 실수를 하지 않고 잘 마무리를 하자 범교사는 안심했다. 헌안왕은 신하들의 눈치를 살피며 과일을 집어 들고 윤흥에게 던졌다. 윤흥은 처음엔 못 받아 과일은 그의 얼굴에 맞고 굴러 떨어졌다. 그러나 굴러 떨어지는 것을 무릎께에서 놓치지 않고 받아 들자 백관들은 일제히 웃으며 박수를 치고 안심하고 만족해했다.


“그렇지. 세력가 아닌 자가 어디 있어? 그런데 그런 위엄을 부리려고 해? 감히?”


왕은 대신들을 충분히 가지고 논 것이었다. 눈을 부라리며 응렴의 세 가지 조건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확신을 만족시켰다.


“좋아. 젊으니 패기가 있군. 비록 예의를 잃은 말이라 비난을 받을 지라도 대의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다 수긍할 수 있는 것이다.”


왕의 말을 듣고 응렴과 범교사는 심히 만족스러웠다. 서로 마주보고 웃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짐이 자네를 부른 건, 보일 사람이 있어서 그런 건데, 시험이라 생각하지 말고 임하게. 뭐 원한다면 시험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요즘 젊은 것들은 남과 서로 비교가 되고 시험에 드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더라.”


사람들은 영문을 모르니 두리번거리며 왕의 의중을 추리하기에 바빴다. 그 사실을 예견하고 왕은 느긋하게 즐기며 명을 내렸다.


“환수는 내 여식들을 들라하라!”


“명 받들겠나이다.”


환수가 앞으로 와 절을 올리고 대전을 빠져 나간다. 이때 범교사는 급하게 응렴에게 다가와 밖으로 나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폐하! 황공하오나 소신 잠시 측간에 다녀오겠습니다.”


응렴은 급히 왕에게 청하자 왕은 손을 들어 보이며 허락했다. 응렴과 범교사가 급하게 대전을 빠져나갔다.


“어린 국사가 참으로 당돌하기도 합니다. 전하.”


응렴이 밖으로 나간 것을 확인한 이찬 김윤흥이 왕에게 접근하며 술을 따랐다.


“세상은 그렇게 변하는 것 아니겠소? 젊음의 상징이 바로 그거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이찬도 아까 내 말에 깜짝 놀라던데?”


왕은 술잔을 높이 들어 백관들에게 잔을 들것을 종요하더니 인찬의 표정을 살폈다.


“아닙니다. 폐하! 놀라긴요? 전혀 예기치 않은 반응이어서 당황한 것입니다만 금방 폐하의 의중을 알고 안심했습니다.”


“아까 저 아이가 한 말 중에 세력가가 위엄을 보이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는 말은 무슨 뜻으로 한 말 같소?”


왕은 이찬의 얼굴을 보지는 않고 응렴이 나간 쪽을 응시하며 물었다.


“세력가가 자신이 힘이 있다는 것을 남이 알아채지 못하게 하려고 그런 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이찬은 자기의 입밖으로 나온 말을 두고 생각해보니 깜짝 놀랄 만한 것이었다. 응렴이 만약 계산적으로 한 말이라면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란 생각이 든 것이다.


“세력가로서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겸양지덕이 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가까이 와 있는 대신들 간에 그 말을 두고 갑론을박하게 생겼다.


“왜?”


왕은 대신들의 말에 끼어들었다.


“먼저 앞서 말한 겸양지덕이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었으니 같은 말을 반복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랬겠지, 아무렴. 그렇지 않다면 굳이 세 가지를 두고 물어볼 일은 아니잖은가?”


“세력가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세력이 있습니다. 그러니 위세를 떨 입장이 아니니까 숨기는 것인데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런 위세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골은 물론이고 왕족에 인연이 있는 모든 세력가를 지칭한다고 볼 수도 있겠나?”


마지막 말에 백관들은 등골이 오싹해져 옴을 느꼈다.

응렴과 범교사가 측간으로 향했다. 그러나 측간으로 가지 않고 측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섰다.


“국선께선 어찌 그런 말씀을 하셨소?”


“글쎄올시다. 어제 옥룡자 선사를 뵈었을 때 들었던 소린데 왠지 가볍진 않았소. 나도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게 아니었기에 자연스레 얘기가 나온 것뿐이오. 그때는 호연지기란 게 백날 해봐야 생길 턱이 없다고 해서 꽁해 있었지만 오늘 또 폐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소. 혹시나 폐하께서도 그이와 같은 생각을 하신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어 다른 것을 생각할 틈마저 없었잖소. 좋은 건 니 것 내 것 가릴 것 없이 써먹어야죠.”


“아까 대신들의 표정들을 못 봐서 그런 모양인데 참으로 가관이었소. 혼자 보기 아까웠소. 그리고 그런데 그걸 세 가지라고 딱 못을 박아 버리면 어떡합니까?”


“아휴! 아깐 정말 아찔했습니다. 그런데 하다 보니 괜찮겠다 싶더라고요. 좌우지간 다 잘 될 거예요.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저 거들먹거리는 귀족들이 바로 그 진골이랍시고 목에 힘주고 다니는 족속들이오. 나도 진골이지만 난 솔직히 민망한 짓을 하면 얼굴이 벌게집니다. 그런데 저들은 전혀 그런 게 없습니다. 대부분 저런 자들 속에 모반을 꿈꾸는 자들이 있으니 주상전하께서는 그걸 염려하시어 나를 부르신 거란 말이오. 나를 신임한다는 것은 우리 도당이 유리하게 나갈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겁니다. 그대도 그런 점을 느꼈으리라 보오. 안 그렇소?”


응렴은 자신감이 있었다. 말하면서 자꾸 몸을 부풀리게 되고 목에 힘이 들어갔다.


“당연히..... 그건 확실한 믿음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 좋습니다. 그러나 전하를 너무 믿지는 마십시오. 전하 곁에는 아직 세곡의 기운을 대리하는 자들이 꽤나 있습니다. 이찬이란 자도 만만한 게 아니고요. 그나저나 용케도 말을 잘 맞추었으니 다행입니다. 옥룡자 선사가 말한 것과는 조금 다른데 그건 나중 문제니까 급한 거 먼저 끝냅시다.”


“아! 조금 달랐습니까? 아깐 당황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급한 거라니? 많이 다르진 않았겠죠? 기억이 잘 안나 마구 끌어다 쓰려다 보니.......”


“폐하께서 두 여식을 부른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일로 그러시겠습니까?”


“그야 대충은 짐작하오만........”


“사실 두 공주님에 관한 소문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까 당연하겠지요?”


“내 어찌하길 바라시오?”


“제가 원하는........아니 당연 국선께선, 당연히 큰 공주님을 선택하셔야 합니다.”


“사내라면 으레 미인을 취하고 싶어 하는 게 당연지사 아니오? 당연이란 말을 그렇게 강조를 하시니 도대체 국사의 의견은 무엇이오?”


응렴은 둘째 공주에게 마음이 있었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말을 하지는 않고 심통 맞게 받았다.


“폐하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시오. 장차 이 나라를 맡길 후사가 누구겠습니까? 무조건 아무 생각마시고 큰 딸과 혼인을 하겠다고 하십시오. 큰 공주마마께서 일당백 하는 기백이 있습니다. 그걸 가벼이 보시면 낭패하십니다. 국선께선 그리해야 승산이 있습니다. 그러면 장차 세 가지 이익을 볼 수 있습니다.”


“박색의 큰 공주님과 결혼을 하라, 그리하면 장차 세 가지 이익이 생긴다 그 말씀이죠?”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래야만 후에 세 가지 이익을 맛 볼 수 있을 겁니다. 약속할 수 있습니다.”


둘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몇 마디 말을 더 나누고 안으로 들어갔다. 왕은 응렴이 오자 기다리지 않고 바로 준비했던 말을 꺼냈다.


“짐에게 두 여식이 있다는 것은 만천하 사람들이 다 아는 거고 국선 응렴은 내 두 여식 가운데 누구 하나와 혼인을 한다면 과연 누굴 짝으로 택할 것인가?”


둘째 딸은 천하일색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그런데 첫째는 박색이며 몸집도 거대하고 장군감이라는 말도 돌고 있었지만 눈으로 확인한 바는 아니라 긴가민가하고 있었던 차에 왕이 그런 말을 하니 난감했다. 그러나 응렴은 범교사의 전언도 있고 해서 망설이지 않고 첫째를 택했다.


“들라해라!”


환수가 고개를 돌려 신호를 하자 연회장을 가로막고 있었던 발이 거둬들여졌다. 멀리 정원에 두 공주가 나란히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두 공주가 나란히 연회장으로 입장했다. 월궁항아 같은 미인의 둘째 공주는 뒤에 섰고 여느 남자보다 건장한 모습의 첫째가 앞에서 걸어와 헌안왕에게 절을 하고 의자에 앉았다. 역시 기골이 장대한 장군감이었다. 얼굴 앞에 비단망사가 있어 확연한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이목구비를 구별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항간의 소문처럼 큰 공주가 박색은 아니었다. 응렴은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 같아 얼굴이 붉어졌다.


“드디어 내 눈으로 박색의 첫째 공주님 얼굴을 보게 되는 건가?”


예흔랑이 모기만한 소리로 속삭였다.


“듣겠다. 조용히 해!”


“누가 박색이라고 소문냈냐?”


숙종랑이 낮은 소리로 다그쳤다.


“의도적인 낭설일 거야. 도대체 왜?”


응렴이 일어나 자신 있는 표정으로 큰 공주 앞으로 나아가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연 공주의 입가에 함박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약간 수줍은 듯 고개를 숙였다. 무표정으로 일관했던 작은 공주의 표정은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그녀는 무덤덤하게 응렴을 응시했지만 응렴이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자 현 공주의 눈초리는 알게 모르게 흔들렸다.


“그것 보게! 저 자는 내 부마로서 손색이 없네. 사람 보는 눈도 있고 권력을 보는 눈도 있잖은가?”


헌안왕은 주위 대신들과 환수에게 기쁨의 표현을 했다.


“그렇습니다. 폐하. 앞으로 왕궁에서 권력의 소용돌이를 잠시나마 막을 수는 있을 것으로, 그러니까 수호에는 무리가 없을 거라 사료됩니다.”


“짐도 그렇게 생각하오. 오늘 이거 기분이 좋구만. 취해도 좋을 듯하이.”


헌안왕이 흡족해하며 잔을 들어 올리자 환수는 다시 술병을 들었다. 시녀는 안주를 집어 왕의 입에 고기를 넣어 주었다.

그해 가을날 응렴과 연 공주는 백년가약을 맺었다. 신랑측 들러리로는 함께 동고동락한 낭도들과 범교사가 나섰다.


“그건 시험이 아니라는데.........”


“그렇지. 누구라도 그런 경우에는 당연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지.”


“그러니 그건 선택도 아니고 그냥 흘러가는 거지.”


“왜 그 이야기에서도 그러잖아? 이웃 나라 왕자는 둘째 공주를 선택하고 싶었지만 너무 무서워서 첫째를 선택했다는 거. 그게 괜히 있는 말이 아니고 다 실제로 그런 걸 알고 한 것이라니깐.”


“그 소문은 사실이 아니니까 더 이상 말하지 말라고 관에서 추상같이 호령했잖아.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에이 뭘 그 정도 가지고....... 전에 궁예왕자 얘기도 쉬쉬하지만 이번 호박공주 애기는 일단 재미있잖아.”


왕궁의 혼인은 경사중의 경사이지만 백성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추문은 처음엔 의혹의 수준에서였지만 차츰 확신과 예언의 경지로까지 전개되고 말았다.


“폐하. 소신 분부대로 거행했습니다.”


헌안왕은 대전에 나가지 않고 침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환수가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와서 첫인사로 일의 성패를 알렸다.


“그래. 갔던 일은 잘 된 거고?”


“네, 폐하. 분부대로 잘 일렀습니다.”


헌안왕은 말없이 한동안 환수를 노려보았다.


“후환이 없도록 잘 처리했습니다. 세곡사로 떠난 것을 다 확인했고 그곳 주지에게 분명한 뜻을 전했습니다. 조만간 확답을 들을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앞으로 더 이상 궁예에 대한 소문을 입으로 옮기는 자들은 엄벌에 처하도록 하라.”


“폐하! 지당하신 분부이시옵니다. 반드시 발본색원하여 다시는 허무맹랑한 헛소문이 돌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통촉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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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변혁의 소용돌이 14 15.03.27 613 7 15쪽
23 변혁의 소용돌이 13 15.03.27 648 8 21쪽
22 변혁의 소용돌이 12 15.03.27 586 6 20쪽
21 변혁의 소용돌이 11 15.03.27 589 8 32쪽
20 세기말 증후 37 15.03.24 665 10 26쪽
19 세기말 증후 36 15.03.24 228 5 25쪽
18 세기말 증후 35 15.03.24 483 5 25쪽
17 세기말 증후 34 15.03.24 471 8 18쪽
16 세기말 증후 33 15.03.24 479 7 17쪽
15 세기말 증후 32 15.03.24 419 6 17쪽
14 세기말 증후 31 15.03.24 355 7 22쪽
» 세기말 증후 29 15.03.24 610 6 17쪽
12 세기말 증후 28 15.03.24 696 4 18쪽
11 세기말 증후 27 15.03.24 418 9 20쪽
10 세기말 증후 26 15.03.24 579 5 27쪽
9 세기말 증후 25 15.03.24 597 8 18쪽
8 세기말 증후 24 15.03.24 454 10 20쪽
7 세기말 증후 23 15.03.24 248 6 15쪽
6 세기말 증후 22 15.03.24 460 7 5쪽
5 세기말 증후 21 15.03.24 480 9 15쪽
4 세기말 증후 14 15.03.24 657 9 26쪽
3 세기말 증후 13 15.03.24 611 9 10쪽
2 세기말 증후 12 15.03.24 619 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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