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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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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2,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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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41,677

작성
11.05.04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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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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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글자
20쪽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3 - 낙원 (48)

DUMMY

" 윽. "


재수도 없지, 하고 아르모어는 쓴웃음을 지었다. 막 도서관을 나가려는 찰나 아침 일찍 눈을 감았을 이종족들의 시신이 실려있는 들것과 마주친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잠든 것처럼 평온해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시체는 시체라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 제대로 묻어주면 좋을텐데. '


아르모어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동시에 저 시신들이 호수변에 대충 버려질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작년에도 그랬고, 제작년에도 그러했듯이 사자(死者)들의 시신은 노상에 버려지고 오늘 밤이 지나기 전에 어느 요정의 뱃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이곳에는 생물의 사체를 즐기는 하이에나 같은 요정도 있었으니까.


' 내가 죽어도 저렇게 버려질까? '


그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죽을 때가 되면 저들처럼 평온히 잠드는 것처럼 조용히 죽고 싶었지만 만일 시체가 저렇게 버려진다면 글쌔... 영혼이 되서도 속이 많이 쓰릴 것 같았다.


' 지금부터 미리 말해놔야 하나? '


아르모어는 자신의 친구들을 떠올리며 심각하게 고민했다. 요정과 인간의 문화는 심하게 다르다. 화장, 수장, 매장... 장례 하나만 봐도 얼마나 다양한가. 인간 사이에서도 이런데 종족이 다른데야 오죽하랴. 티베트의 조장(鳥葬)처럼 시신을 먹는 요정에게 먹히는건 요정 나름의 장례 문화일지도 몰랐다.


' 역시 그건 좀 싫다... '


아무리 시체라지만 요정 밥으로 던져지는건 역시 꺼려졌다.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것이 풍습이라면 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 그래. 예식이 뭐 중요하냐? 중요한건 마음이지 마음. "


그들이라면 적어도 한번쯤은 자신을 떠올리며 슬퍼해주리라. 그것이면 충분했다. 아르모어는 그것으로 생각을 마무리지으며 고개를 흔드는 것으로 이 우울한 주제를 머릿속에서 털어냈다.


" 그럼, 가볼까! "


오늘은 화려한 요정의 축제날.


죽음과는 어울리지 않는 즐거운 음주가무의 날이다.



***



" 여기야 여기! "


아르모어는 매년 맞이하는 것인데도 익숙해지지 않는 인... 아니 요파(?)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것인지 세계수로 가는 길목에는 평소 하루종일 돌아다녀도 열을 보기가 힘든 요정들이 수백, 수천명씩 쏟아져나와 길을 가득 메웠다.


일행은 요정들로 이루어진 끔찍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계곡 위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르모어는 이럴 줄 알고 미리 준비해온 중력 감소 신발에 힘입어 계곡 벽을 타고올라 그들과 합류했다.


" 늦었잖아요. 이 둔탱아! "


올라오기가 무섭게 리사의 날카로운 면박이 날아왔다. 언제나 입고 다니는 하얀 실크 드레스를 벗지 못하는 실키의 특성상 복장은 언제나와 같았지만 브로치를 비롯해 깔끔하고 세련된 악세사리들이 눈에 띄었다. 출처는 보나마나 도서관이다. 아르모어의 옷을 핑개로 자기가 사용할 악세사리를 고르느라 시간가는 줄도 몰랐을 그녀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 그래봤자 소용도 없겠지만. '


아르모어의 예상처럼 엘리는 그녀의 악세사리 따위엔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난장판에서는 거추장스러운 긴 머리칼을 깔끔하게 땋아서 말아올린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는 수수한 원피스 차림으로 축제를 맞이했다.


" 너도 방금 왔잖아. "


그녀는 아르모어의 편을 들어주며 시끄럽게 잔소리 한세트를 쏟아내려는 리사의 입을 원천봉쇄한 뒤, 신디에게 시선을 돌렸다.


" 다 왔으니까 빨리 이동하자. 여기서 계속 지체하다간 간만의 축제를 영상으로만 보게 될거야. "


" 네이~! 알아서 모시겠습니다! "


그녀와 마찬가지로 평소의 하얀 원피스를 차림에 색을 맞춘 나들이 모자를 눌러쓴 신디가 쾌활하게 화답했다. 그녀가 막 공간을 일그러뜨리려는 찰나, 아르모어가 그녀를 말렸다.


" 잠깐 기다려. 뭔가 좀 허전하지않아? "


" 으아아아앙! 나를 잊어버리고 가면 아니되노라! "


뭔가 일 보고 뒤 안닦은 것처럼 찝찝한 기분에 아르모어가 제동을 걸자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리아가 징징대는 소리가 일행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 칫, 얼렁뚱땅 때어놓고 가려고 했는데. "


엘리가 남몰래 혀를차는 것처럼 보이는건 아마 기분탓일 것이다.


공간이 일렁이는 것을 보고 기겁해서 달려온 리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조용한 것은 잠시, 곧 예복 차림의 아르모어를 발견한 그녀는 금새 본성을 되찾고 낄낄대기 시작했다.


" 우히히히힛! 그게 뭐야~ 진짜, 진짜로 안어울리는 옷이노라~! 차라리 벌거벗고 가는게 나을거라고 생각하노라~! "


" 닥쳐. "


자기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옷차림에 대한 비웃음을 남에게 들었을땐 느낌이 또 달랐다. 아르모어가 대번에 인상을 구기자 재미있다고 생각했는지 리사가 약방의 감초마냥 끼어들었다.


" 그쵸? 그쵸? 나도 진짜 안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뭐랄까, 왕자님 옷을 거지에게 입혀놓은 것 같은 부조화라고 할까? "


" 이걸 골라온건 너잖아! "


아르모어의 비난에 그녀는 콧방귀를 뀌며 받아쳤다.


" 흥! 내 선택은 완벽했어요. 어딜가도 찬사를 받을만한 선택이었다구요. 누가봐도 문제는 옷이 아니라 너에요, 너! "


코디가 안티라는 말을 떠올리며 아르모어는 인상을 더욱 구겼다.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 없다는게 더욱 서글프다.


" 확실히 알에게 저런 옷은 좀... "


신디마저 난색을 표하며 시선을 돌리자 아르모어는 마지막으로 엘리를 돌아보았다. 이쯤되면 체면문제다. 그는 사실이 사실이니만큼 어울린다는 말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그저 나쁘지 않다는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그러나...


" 풉. "


엘리는 말없이, 같잖은 것을 보는 눈으로 비웃음을 날렸다.


" 에, 엘리투스 너마저...! "


그 한방으로 아르모어는 카이사르에 빙의된 기분으로 가슴을 부여잡고 침몰했다. 쓰러진 그의 머리위로 쏟아지는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죽은 가슴을 후벼판다. 참으로 눈물나는 아침이었다.



***



일행은 신디의 힘을 빌려 단번에 세계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으로 이동했다. 벌써부터 주변에 자리잡은 요정들이 눈에 띄었지만 그들이 앉을 자리는 그럭저럭 마련할 수 있었다.


" 작년보다 또 늘었네. 내년에는 좀 더 일찍 나와야겠어. "


경쟁자가 늘어나는게 짜증났는지 엘리가 눈살을 찌뿌리자 대번에 리사가 살기를 뿌리며 팔을 걷어붙였다.


" 알겠어요, 언니. 제가 당장 저 머저리들을 영원히 언니의 눈앞에서 치워드리겠어요. "


" 까불지 말고 앉아 있어. "


하지만 그녀의 객기는 상식을 탑제한 엘리의 한마디에 금방 찌그러졌다. 말린 엘리도 찌그러진 리사도 몰랐지만 그것이 그녀의 목숨을 살렸다. 계곡 위에는 강력한 요정인 스프리건도 있었다. 이 키가 50cm도 되지 않는 늙은 난쟁이 요정들은 사실 덩치가 15m까지 커지는 안식처의 수호자로, 끽해봐야 중급 요정에 불과한 실키 하나가 날뛰어봤자 파리체에 맞은 날파리마냥 손바닥 한방에 짜부러졌을 것이다.


" 그나저나 정말 많이 왔네. 작년보다 훨씬 늘어난 것 같아. "


신디도 계곡 아래를 가득 매운 요정들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요정은 보통 축제를 가까이서 보는 것을 좋아해 요파에 치이더라도 가급적 세계수 주변에서 축제를 즐기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 와중에 불의의 사고로 맞아죽거나 밟혀죽는 요정이 매년 수백명씩 나왔지만 축제를 즐기려는 요정들은 그조차 대수롭지 않게 여길 정도로 열광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등석 취급받는 계곡 위까지 일찍부터 몰려든다는 것은 더는 억지로 끼어들 자리조차 없다는 뜻이고 그만큼 안식처의 요정의 수가 늘어난다는 반증이었다.


" 자자, 그런건 접어놓고 아침부터 먹자. 배고파 죽겠어. "


자리를 잡은 일행은 아르모어의 제안에 준비해온 도시락을 깠다. 아르모어가 말하지 않았으면 이들은 언제까지고 도시락을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정들에게 음식이란 일종의 사치품과 같은 것이라 딱히 섭취하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하등의 지장이 없었다.


소소한 잡담을 나누며 음식을 먹고 있는데 세계수 주변이 시끌시끌했다. 동시에 세계수를 중심으로 허공에 거대한 홀로그램이 둥근 고리처럼 떠올랐다. 그것을 본 요정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일제히 세계수를 향해 몸을 숙였다.


" 여왕 폐하의 등장이군. "


오직 아르모어만이 고개를 꼿꼿히 펴고 영상을 마주보았다. 여왕은 의례적으로 몇 마디 인사를 나눈 뒤 매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맨트를 올해도 반복했다.


『오늘은 우리 요정들이 시작된 역사적인 날이다. 모두 오늘만큼은 태어난 그날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 마음껏 즐기거라!』


여왕의 말이 마치자 약속된 요정들의 화답이 돌아갔고 여왕은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공간을 넘어 거처로 돌아갔다. 그것을 신호로 축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높이 솟은 세계수의 그늘 아래 요정들이 날아다니며 몽환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페어리와 같이 작은 요정들이 주축이 되어 반짝이는 가루를 흩날리며 노래를 부른다.


트롤과 스프리건과 같이 덩치 큰 요정들의 현란한 박투가 대지를 진동하는가 하면, 밴시들이 아름답지만 소름끼치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키 작은 다나 시들의 앙증맞은 안무가 요정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캐트시도 고양이들을 잔뜩 이끌고 악단을 구성해 참가했다. 두 발로 걸어다니는 자그마한 고양이 요정들이 캐트시의 지휘에 따라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노래하는 모습은 보고만 있어도 어께가 들썩들썩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이 볼 것도 많고 즐길것도 많은 떠들썩한 축제는 밤이 깊도록 끊일 줄을 몰랐다. 그 동안 요정들은 도서관에서 쏟아져나온 음식들을 끊임없이 먹고 마셨으며 무대에 선 이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즐겼다.


마침내 도서관장이 야심차게 준비한 불꽃놀이가 세계수 아래를 뒤덮자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이때에 이르러 봉인이 해제된 술통이 그 달콤하고 저주받을 내용물을 사방으로 쏟아낸다. 페어리들의 앙증맞은 손이 잔을 끊임없이 돌리고 술을 받은 요정들은 너나할 것 없이 마시고 즐겼다.


그 동안 절제되던 분위기는 술이 들어가자 마침내 질서를 벗어던지고 광란으로 치달았다. 언제나와 같은 축제의 엔드페이즈. 요정들이 벌이는 난장판이 시작된 것이다.


" 후우, 이 열기는 봐도 봐도 적응이 안된다니까. "


아르모어는 신디의 도움으로 격리된 공간에서 안전을 확보하곤 신명나게 놀고 있는 요정들을 내려다보았다. 처음 보는 요정들끼리도 스스럼없이 어울렸고 잔을 나누었으며, 춤추고 노래하며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워낙 다양한 요정들이 좁은 장소에서 설치다보니 그 와중에 피가 흐르고 죽는 요정도 나왔지만 했지만 때린 놈이나 맞은 놈이나 신경도 쓰지 않았다.


리사와 리아, 신디는 이미 판에 끼었다. 도서관장을 기다리느라 멀리 가지는 않았지만, 병나발을 불어대는 걸 보면 불러도 돌아올지 의문이었다. 엘리와 아르모어만이 남아 신나게 놀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며 자리를 지켰다.


" 우리도 놀러 갈래? "


" 넌 날 죽일 셈이냐!? "


엘리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은근히 제안해오자 아르모어는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농담이 아니고 저 난장판에 끼었다간 30초가 지나기도 전에 머리가 실종되고 말 것이었다.


" 상관없잖아? 어차피 별 쓸모도 없어보이는데 뭘. "


" 시체와 멍청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단다. "


가벼운 놀림에 가벼운 응수가 돌아왔다. 아르모어는 별 생각없이 한 말이었지만 엘리는 그 말에서 무언가를 떠올린 듯 쓴웃음을 지었다.


" 맞아. 죽은 것과 산 것 사이엔 지독히도 큰 차이가 있었지. "


갑자기 분위기가 식는다. 어색해진 아르모어가 뭐든 말해서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생각했을 때, 엘리가 한발 앞서 물었다.


" 지금도 집에 돌아가고 싶어? "


그 뜬금없는 질문에 아르모어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는 입을 다물고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표정이 시시때때로 변한다. 심각한 기색을 띄었다가 고개를 흔들기도 하고 우울해보이다가도 빙긋 미소를 짓기도 한다. 그는 한참만에야 약간 후련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부모님을 못 뵙는건 아쉽지만 그것 말고는 딱히 돌아가지 못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해. "


그는 말하면서 생각을 완전히 정리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 요컨데 돌아가면 좋고 아니면 그만이랄까. "


" 그래. "


엘리는 어쩐지 기쁜듯한 기색으로 나직히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순간이었을 뿐, 고개를 든 그녀는 어느새 장난꾸러기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 어차피 백 년도 못 살고 죽을테지만 말이야. "


" 시끄럿. 너네들이 너무 오래 사는거야. "


요정은 보통 2천년에서 3천년을 산다. 오늘 자리에 나와준 일행들은 모두들 10대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미 살아온 세월이 천년에 육박하는 요정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 아르모어와 함께할 시간이란 실로 눈 깜빡할 순간이겠지.


' 아주 잠깐의 만남...인가. '


그런 생각을 하자 아르모어는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엘리가 지나가는 듯한 투로 작게 중얼거렸다. 본래라면 소란에 묻혀 들리지 않았을 그 말이 파동의 변덕으로 그의 고막을 울렸다.


" 걱정 마. 네가 죽더라도 잊지 않을테니까. "


아르모어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엘리를 돌아보았다. 그것을 보고 그녀는 자신의 말이 들렸다는걸 깨닫고 재빨리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녀의 옆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아르모어는 밝은 미소를 지었다.



***



도서관장은 그로부터 한참이 더 지나서야 나타났다. 뭇 요정들 사이에서도 확연히 눈에 띄는 그는 난장판 사이를 귀신같은 몸놀림으로 가볍게 빠져나왔다.


" 여어, 많이 기다렸나? "


" 아뇨, 생각보다 금방 오시네요. "


아르모어는 진심으로 감탄하며 말했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도서관장이 있었을 세계수 주변은 지금 하늘이고 땅이고 할 것 없이 완전히 요정천지였다. 그냥 지나오기도 힘든데 하물며 술처먹고 난동까지 부리는 상황에서 이토록 빨리 계곡을 올라오는 걸 보면 과연 드래곤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 나도 요놈을 빨리 써보고 싶어서 말이야. "


그는 어린아이 머리통만한 커다란 카메라를 들어올리며 씨익 웃었다. 이 세계에도 카메라가 있다는 것은 단어를 공부하며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 되게 크네. '


손바닥만한 지구의 카메라만 보다가 관장의 카메라를 보니 실소부터 나왔다. 그러는 사이 관장이 온건 어떻게 알았는지 자리로 돌아온 일행들이 벌때같이 달라붙어 카메라를 품평하기 시작했다. 가만 듣고 있자니 귀가 따가울 정도였지만 도서관장은 자기 물건에 관심을 가지는게 기분 좋은지 시덥잖은 질문에도 일일이 자랑스럽게 설명을 떠들어댔다.


" 너도 한번 만져볼래? "


" 아뇨, 됐습니다. "


카메라 따위에 흥분하는게 우습게 느껴져 홀로 떨어져 있자니 그 모습이 안되보였는지 관장이 물었다. 당연히 가볍게 거절하자 무슨 생각을 했는지 도서관장은 피식 웃고는 화재를 돌렸다.


" 자자, 질문은 이제 그만하고 실제로 한번 찍어보자고. 다들 자리에 서봐. "


관장의 말에 모두들 엉덩에 불이라도 붙은 듯, 신속하게 움직였다. 본의 아니게 카메라의 정면에 있던 아르모어를 중심으로 엘리가 그의 오른편에 자연스러운 자세로 섰고 신디가 왼편에서 언제나와 같은 순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 에헷~! "


리사는 당연하다는 듯, 즐겁게 엘리의 목을 끌어안고 밀착해 요염한 자세를 취했다. 눈이 묘하게 흐리멍텅하고 얼굴이 붉은 것이 술이 꽤 많이 들어간 모양인데 그러면서도 잊지 않고 카메라를 바라보는 것을 보면 사진에 잘 나오고 싶어하는 여자의 욕망은 차원과 종족을 뛰어넘는 모양이었다.


마지막으로 리아는 공중에 붕 떠서 웃는 얼굴로 모두의 머리의 위를 끌어안는 것처럼 팔을 과장되게 뻗었다.


" 좋아. 모두 가만히 있어라. "


모두가 자세를 취하자 도서관장은 카메라를 조작하더니 공중에 띄웠다. 그리고는 가장 왼편에 서서 팔짱을 끼고 언제나와 같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포즈를 취했다.


" 하나, 둘, 셋! "


찰칵


환한 플래쉬와 함께 모두의 모습이 카메라의 랜즈에 담겼다. 이 덩치 큰 카메라는 3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자신이 본 광경을 자그마한 종이에 담아 세상에 내놓았다.


" 우와! 진짜 똑같아! "


" 어머, 이 언니의 늠름한 표정... 너무 멋져요~! "


즉석에서 사진이 나오자 신디와 리사가 호들갑을 떠는 것을 보고 슬그머니 호기심이 생긴 아르모어도 다가와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 어? 이거 생각보다 훨씬 잘나왔는데! "


즉석에서 사진이 나온 것도 의외긴 했지만 흑백일 줄 알았던 사진이 지구의 것보다 훨씬 선명하게 나오자 아르모어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 그렇지? 나도 올해 카탈로그에 실린 사진을 보고 감동해서 대번에 구매했다. 하여튼 요즘 드워프 놈들, 아주 제법이야. 30년 전만해도 반지 나부랭이나 만들던 것들이 외계인이라도 고문했는지 가끔씩 이런 멋진걸 뽑아내더라고. 아직 전 세계에 100대도 풀리지 않았을 걸? 얼마든지 찬양해도 좋아. "


" 외계인 고문이라니... "


이 세계 기준으로 정말로 외계인인 아르모어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 뭐, 어디까지나 우스갯소리지만 말이야. "


도서관장의 짓궂은 미소에 아르모어는 그제야 마주 웃어주곤 사진으로 시선을 내렸다. 봐도 봐도 정말로 잘 나온 사진이다. 한참동안이나 흐뭇하게 바라보던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매년모다 모두가 이렇게 모여 즐겁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정말로 여기서 영영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



요정사전 - 트롤


몬스터로 주로 분류되지만 사실은 요정이다. 신장이 5m 정도 되는 대형 요정이며, 요정 중에서도 상위에 들어가는 괴력을 자랑한다. 이종족에게는 보이지 않으나 그 피에 접한 적이 있다면 볼 수 있다.


인적이 드문 깊은 숲에 살며, 수가 굉장히 드물긴 하지만 우악스러운 외모만큼이나 성질이 사나워 안식처 밖에서 만나면 꽤나 위험한 요정. 과거, 어느 트롤이 단신으로 성을 무너뜨리고 도시를 박살냈다는 전설이 있으나 진위여부는 알 수 없다.


***


요정사전 - 스프리건


늙은 난쟁이 요정. 평소엔 50cm도 되지않는 늙은 난쟁이지만 그 실체는 덩치가 15m까지 커지는 대형 요정. 페어리로 구성된 로열 가드와 더불어 요정의 안식처를 지키는 수호자이며 순수한 힘으로는 드래곤조차 가볍게 압도한다고 한다.


***


요정사전 - 다나 시


난쟁이 요정. 힘으로는 고블린과 더불어 최하위에 속한다. 사라진 신의 잔재라는 설이 있지만 진위여부는 불명이다.


***


요정사전 - 밴시


인간형 요정. 음침한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머지않아 죽을 사람의 집 앞에서 울음을 터뜨려 죽음의 소식을 전해준다고 한다.


밴시는 단순히 사실을 알려줄 뿐이지만 인간들은 이를 재수없게 여겨 매우 꺼려한다. 그들이 어째서 그런 것을 알 수 있는지는 불명. 그들 스스로도 알지 못한다.




주의 : 요정사전의 내용은 작중 설정으로, 실제 요정의 전승과는 다를 수 있음.


작가의말

분량이 많아져서 그런가 왠지 여러모로 별로인 것 같은 내용이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을거야 없을거야 없을테지 없겠지 설마 또 이걸 수정해야되는건 아니겠지 아이디어 안떠오르는데 표현력 바닥이라고. 드디어 바닥이 왔군. 내가 이럴 조짐을 느꼈지. 하지만 그때의 나는 이성이 말리는 소리를 듣지 않았어. 제기랄, 이건 미친 짓이야. 난 이 소설을 그만두겠어.

연재를 정지합니다.

어? 안되잖아? 글쓰기를 멈출 수가 없어. 안돼. 으아아아아아아아앙!!!!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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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38 스마우그
    작성일
    11.05.05 00:58
    No. 1

    키읔 키읔 키읔 걱정 마십시오 전혀 별로가 아닙니다!!! 이런 훈훈한 분위기의 일상이 좋습니다! 초 거대괴수 베히모스가 주인공을 잡아먹으려 들거나 먼치킨 악마와 천사들 그리고 먼치킨 신의 부하들이 설치고 주인공은 발발 기는 잔인무도한 분위기의 소설보다는 이런 분위기에 멋진 내용에다가 멋진 설정이 있는 소설이 훨씬 낫습니다!!! 절대로 정지하면 안돼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4 d3884
    작성일
    11.05.05 06:15
    No. 2

    연재를 정지합니다는 장비를 정지합니다의 패러디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인터넷에서 장비를 정지합니다 <- 검색.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8 스마우그
    작성일
    11.05.05 18:10
    No. 3

    저도 그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8 g4******..
    작성일
    17.08.22 18:55
    No. 4

    하~......낙원그만하고 진도 나가자
    질린다 인물 설정 나오길래 꼼꼼이 읽었는대 그냥 지나가는 행인3
    이었냐..짜증난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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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5 - 생활전선 (1) +7 11.10.28 2,065 32 11쪽
90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4 - 친구찾아 삼만리 (end) +4 11.10.27 1,985 29 6쪽
89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4 - 친구찾아 삼만리 (17) +6 11.10.21 1,908 30 22쪽
88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4 - 친구찾아 삼만리 (16) +5 11.10.02 1,817 24 17쪽
87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4 - 친구찾아 삼만리 (15) +6 11.09.27 1,969 27 7쪽
86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4 - 친구찾아 삼만리 (14) +3 11.09.22 1,797 25 9쪽
85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4 - 친구찾아 삼만리 (13) +4 11.09.15 2,014 29 13쪽
84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4 - 친구찾아 삼만리 (12) +3 11.09.14 1,948 27 10쪽
83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4 - 친구찾아 삼만리 (11) +5 11.09.06 1,861 27 8쪽
82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4 - 친구찾아 삼만리 (10) +2 11.09.04 2,100 24 11쪽
81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4 - 친구찾아 삼만리 (9) +8 11.08.31 1,809 26 8쪽
80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4 - 친구찾아 삼만리 (8) +2 11.08.24 2,095 31 17쪽
79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4 - 친구찾아 삼만리 (7) +4 11.08.23 2,048 28 15쪽
78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4 - 친구찾아 삼만리 (6) +4 11.08.22 2,145 33 15쪽
77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4 - 친구찾아 삼만리 (5) 11.08.22 2,112 26 12쪽
76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4 - 친구찾아 삼만리 (4) +10 11.08.20 2,155 29 13쪽
75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4 - 친구찾아 삼만리 (3) +4 11.08.19 2,445 37 8쪽
74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4 - 친구찾아 삼만리 (2) +7 11.08.18 1,998 29 7쪽
73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4 - 친구찾아 삼만리 (1) +9 11.08.17 3,094 35 12쪽
72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3 - 낙원 (end) +2 11.08.16 2,197 25 5쪽
71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3 - 낙원 (55) +2 11.08.12 2,157 34 17쪽
70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3 - 낙원 (54) +2 11.08.07 2,194 33 11쪽
69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3 - 낙원 (53) +3 11.08.06 1,962 30 9쪽
68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3 - 낙원 (52) +2 11.08.04 2,219 37 7쪽
67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3 - 낙원 (51) +6 11.08.03 2,008 20 12쪽
66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3 - 낙원 (50) +2 11.05.13 2,403 33 56쪽
65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3 - 낙원 (49) +6 11.05.07 2,186 29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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