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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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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조회수 :
624,254
추천수 :
8,717
글자수 :
1,341,677

작성
11.08.06 10:06
조회
1,966
추천
30
글자
9쪽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3 - 낙원 (53)

DUMMY

" 축제병? 언니가? "


처음 닷새를 포함해 거의 20일동안 엘리를 만나지 못했던 리사는 아르모어가 전해주는 놀라운 소식에 눈을 휘둥그레떴다.


" 그래. 의심의 여지가 없어. "


말을 하면서도 아르모어는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엘리가 리사에게는 얼마나 큰 존재일지 짐작하면서도 이런 잔인한 말을 해야하는 자신의 처지가 서글펐다.


어떻게 반응할까?


경악할까, 울고불고 난리를 칠까, 아니면 소리없이 기절해버릴까?


갖가지 상황을 상정하고 대처법을 준비하던 아르모어가 마주한 그녀의 반응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 흐음... 그랬구나. 그래서 언니가 요즘 보이지 않았던 거였군요. 멋진 분이셨는데 아쉽네... "


리사의 반응은 지극히 차분하고 침착했다. 누가봐도 억지로 꾸미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표정이 일치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천만 뜻밖에도 그녀는 엘리가 죽을 병에 걸렸다고 하는데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 의외로... 차분하네? "


너무도 차분한 태도에 오히려 아르모어가 동요했다. 친구. 아니,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병에 걸렸다는데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태연한 태도라니. 이런 반응은 상상조차 해본 일이 없었다.


" 별로 철저하게 숨긴 것도 아니었잖아요. 도서관에 축제병에 걸린 요정이 있다는 소문은 벌써 파다하게 퍼져있어요. 모르는건 기껏해야 너 같은 둔탱이 정도일걸요? "


확실히 도서관장은 별로 적극적으로 엘리를 숨기진 않았다. 안식처 전체로 보면 열심히 숨길만한 사건이 아니었던 탓이다. 덕분에 식사를 가져다주는 녀석들을 통해 입소문이 퍼진 모양이었다.


" 축제병에 걸린게 누구라는 것까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동안 언니의 모습이 보이질 않아서 대충 짐작하고 있었어요. "


설령, 예상하고 있었더라도 실제로 확인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리사의 모습은 너무나도 태연해서 이미 먼 옛날에 끝나버린 일을 말하는 것만 같았다.


아니, 아쉬움과 그리움조차 느껴지지 않는 것을 봐서는 마치 생판 관심없는 남의 일을 말하는 것 같았다.


" .....어떻게 그렇게 태연한거지? 사랑한다고 아예 노래를 부르고 다녔던 요정이잖아? 그런 요정이 죽는다는데 너는 슬프지도 않아?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은거야? "


아르모어에게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사람이었다. 사람 중에서도 친구, 연인, 가족과 같이 가까운 자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에 속했다.


그에게 있어서 엘리가 진실된 친구라면 리사에게 있어서는 사랑하는 연인이다.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인 것이다. 그런 것이 꺾여나간다는데도 이토록 태연할 수 있다니.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다곤 하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허나, 리사는 오히려 자신이야말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 슬픔? 그런 또 뭔가요? 아픔? 어째서 그런 것을 지금 느껴야 하는 것이죠? "


" 뭐? "


끼릭


인간과 요정은 얼핏 보면 맞물려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아무런 문제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근본적으로 톱니바퀴의 이빨이 맞지 않는다.


돌아가고 있기에 눈치체지 못했지만 사실은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 제멋대로 돌아가는 것 뿐이었다.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아르모어가 할말을 잃은 사이, 드디어 생각이 났는지 리사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 맞아! 이종족들이 느끼는 시간낭비를 후회나 슬픔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었죠. 정말 어리석은 일이에요. 어째서 부질없는 일에 소중한 삶을 낭비하는 걸까요? "


아르모어는 부글부글 끓어올라 외부로 터져나오려는 마음속의 열화를 찍어누르려고 애쓰며 말했다.


" 너는 엘리에게 아무런 미련도 없는거야? 그때 그랬으면 좋았었는데, 그때 그래서는 안됐는데, 시간이 있을때 조금만 더 잘해줄걸. 그때 망설이지 말고 해버렸으면 좋았을텐데! 이런 생각이 눈꼽만치도 들지 않는거야? 사랑하는 사람이 이제 사라져버린다는데 아쉽지도 않은거야!? "


누르려고 애를 썼는데도 자신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지고 말았다. 고성에 놀란 리사는 눈을 둥그렇게 뜨면서도 태연하게 답했다.


" 그야, 할 수 없잖아요? 제가 무슨 짓을 하든 그분은 이미 죽은 시체인걸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짓에 시간과 감정을 낭비할 이유가 없어요. "


빠직!


마치 벌써 죽은 사람을 대하는 듯한 리사의 태도에 아르모어의 이마에 두꺼운 힘줄이 돋았다. 그는 리사가 아니라 세상에게 항의하는 듯한 기분으로 언성을 높였다.


" 아직 안죽었어! 멀쩡하게 살아있다고! "


" 요정에게 있어서 축제병은 곧 죽음이에요. 너도 겪어봤을텐데 아직도 그걸 모르나요, 이 멍청아? "


우둔한 아랫사람을 가르치는 듯한 리사의 말에 아르모어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멱살을 잡을 뻔 했다. 그가 자신의 충동을 눌러참은 것은 순전히 용건이 끝나지 않은 탓이다.


" 아직, 방법은 있어. 위험하고 확률이 낮은 도박이긴 하지만 모두가 힘을 합친다면 분명히 가능성은 있다고! 마지막 방법이 남아있는 한, 엘리는 아직 죽은게 아냐. "


그러니 너도 동참하라는 뒷말이 정도는 바보가 아닌 이상, 아르모어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으리라. 물론 리사는 바보가 아니었고 이 맹랑한 소리를 지껄이는 인간을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 그래요. 나도 네가 폭군과 어울려서 뭔가를 꾸미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분명히 가능성은 있는 일이겠죠. "


그녀는 마치 동참해줄 것 같이 서두를 던졌으나 이어지는 말은 냉혹했다.


" 하지만 그만두는게 좋아요. 위험하고 희박한 일이라는 말, 분명 폭군이 한 말이겠죠? 그 거북이는 절대로 헛소리를 하는 법이 없어요. 위험하다면 정말로 위험하고,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면 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성공할 수 없는 일이에요.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안된다구요. "


" ..... "


" 포기하세요. 언니는 이미 죽었어요. 죽은 요정을 위해 산 요정이 죽을게 뻔한 일에 뛰어드는건 바보짓에 지나지 않아요. "


" 하지... "


리사는 막 무어라 반박하려는 아르모어의 말을 끊고 한발 앞서 말했다.


"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니 잘 들어요. 삶이란 정말로 짧은거에요. 더군다나 백년도 되지 않는 인간의 삶 같은건 돌이켜보면 눈 깜짝할 사이죠. 즐기면서 살기에도 삶은 짧아요. 하물며 부질없는 짓으로 낭비할 여유 따윈 어디에도 없다구요. "


" 부질없는지 어떤지는 해보지 않으면 모르잖아! "


쥐어짜듯이 말한 아르모어의 외침에 리사는 이마를 짚고는 한숨을 푸욱 쉬었다. 그녀는 마치 때를 쓰는 어린아이를 달래는 것처럼 말했다.


" 정말, 어리광은 그만 피우고 어른이 되세요. 아무리 발버둥쳐도 안되는 건 안되는 거라구요. 기적이란, 일어나지 않으니까 기적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


리사의 말은 분명히 이치에 닿았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녀의 말대로 엘리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리사의 말은 전혀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만일, 그녀가 아르모어와 같은 감정을 이해하면서도 현실적인 결론을 내놓았다면 설득당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아르모어가 느끼고 있는 격렬한 감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슬픔도 모르고, 안타까움도 모르며, 아쉬움조차 없다. 아무것도 모르기에 냉정할 수 있는 요정.


그런 요정의 말따위가 감정의 홍수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사람의 머릿속에 닿을 리가 없다.


그랬기에, 아르모어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 『일어나지 않으니까 기적이라고 하는거에요.』분명 불치병에 걸려서 희망을 잃은 녀석의 말이었지. 그런데 말이야, 넌 그 말을 한 녀석이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 알고 있어? "


" .....? "


" 그 녀석, 결국은 기적이 일어나서 불치병에서 해방됐어. "


이야기는 끝났다.


근본적인 가치관이 평행선을 달리는 이상, 아무리 말해봤자 시간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방을 나서는 아르모어의 귓가에 먼 옛날 도서관장이 해주었던 말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슬픔을 아는 요정은 드물단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였다.


작가의말

※ 일어나지 않으니까 기적이라고 하는 거에요.

애니메이션 '카논'의 등장인물 미사카 시오리의 명대사.


***


후우, 생각없이 수정했다가 설정오류가 일어나서 재수정한다고 하루 늦었습니다. 분량은 가독성을 고려해 여전히 4천자를 넘지 않았습니다. (라고 작가는 거짓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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